노잼 라이프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오래전 조카가 하는 게임이 너무 재미있어 보여 다운받은 적이 있다.
시작하자마자 얻어터지고 게임이 바로 종료됐다.
게임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외워야 할 게 많았는데 이동, 공격, 방어, 아이템 사용 등 기본적 무기 사용 방법을 배워야 제대로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단순하고 쉬워 보이는 게임에도 기초가 있어야 했다.
PT 수업을 받을 때 가장 이해되지 않았던 건 “웨이트 트레이닝처럼 재밌는 건 없다!”는 트레이너의 주장이었다.
공감이 전혀 안 되던 그 말이 이해된 건 지루한 근력 운동을 3개월 반복한 후, 두부 같던 팔뚝에 약간의 근육이 생긴 걸 느낀 다음부터다.
쾌락과 기쁨은 다르다.
재미의 기쁨은 즉각적일 때도 있지만 나중에 오는 경우가 더 많다.
재미에도 진입 장벽이 있기 때문이다.
좋은 취미라고 말하는 독서나 음악, 미술 같은 것이 더 그렇다.
안 읽히던 책이 읽히고, 안 되던 연주가 되면서부터 우리는 점점 흥미를 느낀다.
재미있어 보이는 일의 이면에는 지루한 반복이 많다.
그래서 내가 재미에 대해 가장 공감하는 말은 ‘원래 사는 건 재미가 없다!’는 말이다.
번아웃된 환자들을 진료한 한 정신과 의사의 조언 중 기억에 남는 건, 소진되지 않고 일하려면 신나게 하지 말고 그냥 하라는 것이었다.
조회 수 경쟁이 벌어지면서 즉각적인 재미를 주는 도파민 중독이 최근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흥미로운 건 최고의 가속도를 추구하는 수퍼 카 제조 업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엔진이 아니라 ‘브레이크’라는 사실이다.
멈추고 싶을 때 멈출 수 있는 브레이크가 없다면 최고 속도가 과연 의미가 있을까. 도파민 과잉 시대일수록 우리는 스스로 멈추고 만족을 느끼는 능력이 필요하다.
삶을 여행에 비교하면 속도와 풍경 모두를 가지긴 힘들다.
빠른 속도는 여행의 밀도를 떨어뜨린다.
우리 뇌의 쾌략과 고통을 느끼는 중추가 맞닿아 있다는 것은 뭘 의미하는 걸까. 나는 이것이 재밌게 살기 위해서 재미없는 걸 견디는 힘을 키워야 한다는 우리 몸의 충고처럼 느껴진다.

백영옥 소설가

백영옥 소설가

초식동물과 아파트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동물 다큐멘터리를 보면 얼룩말, 영양, 가젤 같은 초식동물은 군집 생활을 한다.
반면 호랑이나 사자 같은 맹수는 가족 단위거나 혼자 초원을 누빈다.
초식 동물들은 왜 집단 생활을 할까. 안전에 대한 본능 때문이다.
사자가 가젤을 공격해 무리에서 가장 느린 가젤 하나가 희생되면 무리의 생존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전쟁 같은 극한 상황이 닥치면 아이와 여성, 노약자들이 먼저 희생되는 것과 비슷하다.
‘스프링복의 비극’이라는 말이 있다.
스프링복(springbok)은 수천 마리가 무리를 이루며 시속 88km로 달릴 수 있는 아프리카 영양의 일종이다.
스프링복은 신선한 풀을 찾아 수시로 이동하는데 문제는 수천 마리가 무리 지어 사는 데서 발생한다.
선두 그룹은 신선한 풀을 먹을 수 있지만 뒤쪽은 더 이상 먹을 풀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기에는 풀이 많아 평화롭지만 풀이 부족한 건기가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때부터 이들은 자신들의 장기인 달리기로 극한의 속도 경쟁을 벌인다.
누군가 선두를 위해 달리기 시작하면 모두 광란의 질주를 시작한다.
그 질주의 끝은 절벽에 이르러야 끝난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가속도가 붙은 질주는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모두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것이다.
스프링복의 비극은 신선한 풀을 먹기 위해서지만, 본래의 목적을 잊은 의미 없는 경쟁은 공멸로 다가온다.
축구 경기장의 앞 관중이 일어나면 뒤에 관중들도 일어나 모두가 불편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며칠 전, 공원에서 앞서가던 젊은 부부의 대화를 들었다.
사려던 아파트 가격이 전 고점을 넘었다며 대출을 받아야 한다고 옥신각신 중이었다.
누군가를 뒤따르며 돈을 버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그 어려운 길을 걷겠다고 서로 설전을 벌이는 건, 보통의 대한민국 국민들에겐 초식동물처럼 대단지 아파트에 오순도순 모여 살고 싶은 꿈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기억해야 한다.
고삐 풀린 가계 대출 기사가 쏟아지는 지금이 스프링복의 교훈을 떠올려야 할 때라는 걸.

게임의 법칙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1988년 서울 올림픽 관련 다큐를 봤다.
서울이 아니라 ‘쎄울’이었다.
“아 라 빌 드 쎄울!(à la ville de Séoul)!” IOC 위원장 사마란치의 88올림픽 개최지 발표가 아직 귀에 선하다.
최신 드론으로 오륜기를 만드는 요즘, 하늘에서 다이빙하는 인간을 띄워 오륜기를 만든 장면을 보니 그 시절의 결기가 느껴졌다.
올림픽 하면 떠오르는 군가풍의 출정가 ‘이기자 대한건아’는 ‘이기자, 이겨야 한다!’는 가사를 무한 반복하며 ‘체력은 국력’이라는 표어가 유행하던 개발도상국 시절의 비장함을 풍겼다.
2024 파리 올림픽의 선전을 보며 떠오른 건 장미란 선수다.
경쟁자인 중국의 ‘무솽솽’ 선수와의 일화를 소개한 그녀는 금메달을 딴 2008년 베이징 올림픽보다, 2007년 세계 선수권이 자신의 역도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메달을 바라면 상대의 실수를 바라기 마련인데, 시합 전 준비 운동을 하는 무솽솽을 보며 문득 그녀는 모든 선수가 죽도록 노력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 순간 경쟁자의 실패가 아니라 “너는 네 할 것을 해라. 나는 내가 준비한 것을 하겠다”는 새로운 다짐이 생겼다.
그러자 상대의 실수를 바라며 생겼던 긴장이 사라지고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시합이 끝나고도 가슴이 두근거린 건 단지 메달 때문이 아니었다.
성공처럼 보이는 실패도 있고 실패처럼 보이는 성공도 있다.
그녀가 선택한 것은 성공을 뛰어넘는 성장이었다.
어떤 경지에 오른 선수들은 ‘더 잘하겠다’가 아니라 ‘연습하던 대로 하겠다’라는 특유의 태도가 있다.
이번 양궁 대표팀 선수들도 비슷한 말을 했다.
게임은 승자와 패자를 나눈다.
과거에는 은메달을 따고도 죄 지은 표정을 짓던 선수를 여럿 봤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최선을 다한 멋진 패배에는 아낌없이 박수 치는 일이 많아졌다.
이기는 올림픽에서, 즐기는 올림픽으로 게임의 법칙이 바뀐 것이다.
서구에 비해 실력이 모자라 투혼과 헝그리 정신을 유독 강조하던 시대를 지나온 황금 세대의 발랄한 자신감, 이 또한 우리 모두의 성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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