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서운한 아내 vs. 아내의 서운함이 버거운 남편

 


[데일리안 = 데스크]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이 있다.

부부는 싸우더라도 쉽게 화해한다는 말이다.
다만 어떤 싸움은 화해가 쉽지 않은 경우가 있다.
특히 서로 성격이 다른 경우에는 상대방이 화가 난 이유를 파악하지 못하거나, 파악하더라도 공감하지 못하면서 더욱 골이 깊어지기도 한다.
이럴 때 심리학은 화해를 도와줄 수 있다.
서로의 기질과 성격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주고 적절한 대화 방법에 대해 제안해줄 수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지, 아래 사례를 통해 알아보겠다.
(아래는 가상의 사례입니다)당연한 것도 생각 안 하는 남편이 너무 답답해요결혼 2년차인 30대 A씨는 남편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연애 때는 제법 듬직해서 의지가 되는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결혼하고 나서는 태도가 완전히 딴판인 것이다.
신혼집을 구하기 위해 대출을 알아볼 때도, 가구나 가전을 구할 때도 A씨가 모두 발품을 팔았다.
결혼 후에도 크고 작은 문제들에 대해 A씨 혼자만 걱정하는 느낌이다.
남편에게 불만을 토로하면 잠시 고민하는 시늉은 하지만 그 때 뿐이다.
어떨 때는 ‘잘 하는 사람이 하는게 낫다’고 피해버리기도 한다.
이런 식이라면 나중에 자녀가 생겼을 때 정말 힘들어질 것 같아 2세에 대한 고민도 깊어진다.
A씨의 남편인 B씨도 할 말은 있다.
B씨는 우선 너무 바쁘다.
새벽 같이 출근해서 밤 늦게 퇴근하고, 더러 주말에 출근을 하는 날도 있다.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는 아내에게 미안하기는 하지만 체력을 겨우 충전하기 위해 잠만 자게 된다.
그리고 B씨보다는 아내가 여러 분야에 대한 취향이 더 확고해서 맞춰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
B씨가 ‘이런게 좋지 않냐’고 제안해도 아내가 거절한 일이 여러 번 누적되면서, 먼저 알아보고 선택하기를 체념하기도 했다.
돈 벌어오는 것만 감당하기도 버거운데, 이런 마음을 좀 알아줄 수 없나 서운해진다.
A씨와 남편 B씨의 기질이나 성격, 마음상태 등을 파악하고자 기질 및 성격검사(TCI)를 포함한 정서검사를 실시했다.
검사 결과를 간단하게 정리해보자면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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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결과: 꼼꼼하고 신중한 아내 vs. 좋은 게 좋은 남편/ 함께 고민하고 싶은 아내 vs. 각자 잘 하는 분야에 집중했으면 하는 남편검사 결과, A씨는 자극추구(NS) 기질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고, 위험회피(HA) 기질과 사회적 민감성(RD)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원하는 것이 생기면 매사를 꼼꼼하게 알아본 뒤 신중하게 결정할 것으로 고려되며, 섣부른 결정은 절대 내리지 않으려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원만한 인간관계를 중요시하는 경향이 엿보이는 바, 문제 상황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고자 할 수 있겠다.
때문에 남편과 의사결정을 내릴 때도 ‘함께’, ‘신중하게’ 고민하고자 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남편 B씨는 자극추구(NS)와 위험회피(HA)가 모두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
좋은 일에도, 나쁜 일에도 큰 감정적인 동요가 없는 것이다.
때문에 원하는 것도 싫은 것도 뚜렷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사회적 민감성(RD)이 낮은 남편은 문제 상황이 생겼을 때 주변에 털어놓기 보다도 혼자 고민한 뒤 문제를 해결하는 경향이 엿보인다.
그리고 상대방의 감정적 호소에도 잘 흔들리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아울러 이러한 모습은 무던하고 듬직한 모습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매사에 무관심한 모습으로 비춰질 수도 있겠다.
검사자 제안1 : 아내는 남편의 무던함을 인정하기. 남편에게 도와줬으면 하는 것을 명확하게 제시하기.아내 A씨에게는, 남편과 자신이 생각하는 ‘당연한 것’이 매우 다름을 인정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남편 B씨는 욕심도, 불만도 많지 않다.
때문에 A씨 만큼 적극적이지 않을 수 있다.
또한 매사에 ‘당연히’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게 아니라, ‘당연히’ 각자 잘하는 것을 도맡아 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다만 근면함과 책임감이 높은 것으로 시사되기 때문에, 가장으로서의 역할은 충실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남편의 기질적인 무던함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 원하는 것이 있을 때는 업무를 지시하듯 명확하게 전달해보실 것을 제안한다.
더불어 함께 고민해야 하는 것이 생겼을 때는 남편에게 ‘다른 건 몰라도 이건 혼자 결정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처리해야 할 고민거리에 대해 명확하게 제시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검사자 제안2 : 남편은 아내의 하루 일과에 대해 궁금해하는 태도를 갖고 경청하기. 아내의 희생에 대해 분명하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현하기.남편 B씨에게는, ‘아내는 칭찬과 애정을 먹고 사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아마 A씨는 B씨의 기질을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어서 맞춰주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B씨는 정서적으로 둔감하기 때문에 아내의 이러한 배려를 잘 알아채지 못하고 넘어갔을 수 있다.
때문에 B씨는 이제부터 ‘아내가 무엇을 배려해주고 있는가’에 대해 관심을 갖고 관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때문에 매일 30분 정도는 ‘아내가 하루 일과를 어떻게 보냈는지’에 대해 경청할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아내에게 ‘고생했어’, ‘수고했어’, ‘늘 고마워’라고 이야기하셔야 한다.
이 말은 습관이 되어서 곧장 튀어나올 수 있게끔 반복하시는 것이 좋다.
꼭 아내가 원하는 만큼 중대사에 관여하지 않더라도, 고마움을 충분히 표현 할 수 있다면 부부 사이가 훨씬 원만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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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임상심리사 ljmin0926@naver.com

저속노화를 위한 스트레스 관리법 

[데일리안 = 데스크] 한때는 ‘마라탕후루’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오히려 반대로 ‘저속노화’가 유행을 타고 있다.
혈당 스파이크를 걱정하며 식단을 조절하고, 체계적인 운동법을 따라 건강을 관리한다.
한때 유행일지언정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저속노화를 위해서는 ‘스트레스 관리’ 또한 필수적일 것이다.
오늘은 스트레스 관리법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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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스트레스 정도 파악하기 : 예전과 다른 부분이 있지는 않나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인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어느 정도로 받고 있는지 잘 인지하지 못한 채로 살아간다.
사실 ‘스트레스’라는 건 정말 큰 문제가 있지 않은 이상 은은하게 밀려오기 때문에 잘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적당한 스트레스는 오히려 사람을 어느 정도 움직이게 해주기도 한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계속 스스로를 모니터링하는 것이 좋다.
내 안에서 사소한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는 것이 그 방법이다.
 전에 비해 주변 청소를 잘 안하게 되지는 않은지, 전에 비해 배달음식을 시켜먹는 횟수가 늘어나지는 않았는지, 매번 즐겨하던 SNS가 점점 귀찮아지지는 않는지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이처럼 평소에는 일상적으로 해오던 일들을 잘 해내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지금 내가 지쳐있다’, ‘스트레스 받고 있다’라는 신호일 것이다.
스스로를 잘 관찰해보자.

내가 ‘무엇에’ 취약한 사람인지 파악하기 : 어떨 때 더 쉽게 짜증이 나나요?


사람마다 각기 성격이 다르듯이, 사람마다 예민하게 반응하는 부분은 모두 다르다.
어떤 사람은 이미 한 번 말한 것을 여러 번 반복해야 하는 상황에 짜증이 나고, 또 어떤 사람은 무시 당하는 것 같은 상황에서 울컥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았는지 지나치게 의식하면서 살기도 하고, 반대로 자신이 불이익을 받는 상황은 아닌지 예민하게 의식하며 지내는 사람도 있다.
다시 말하면 사람마다 취약한 부분이 각기 다르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모두 ‘내가 어느 부분에 취약한지’ 알아야 한다.
스트레스에 취약한 포인트를 인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나는 무엇에 더 쉽게 짜증이 나는지’, 혹은 ‘무엇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돌아보는 것이 좋다.
아울러 이러한 상황은 되도록 피해주는 것이 좋겠지만 어쩔 수 없이 맞이하게 된다면, 그 때는 나 스스로를 더욱 예민하게 돌봐주면서 스트레스를 해소시켜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스트레스를 없애려고만 하기 보다는 스트레스를 ‘마주하기’ : 스트레스 안에 답이 있다보통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없애기’ 위해서 노력한다.
잠을 자고, 술이나 담배를 하고, 친구들에게 털어놓는 등 다양한 방법을 사용한다.
물론 스트레스는 일종의 정신적인 고통이기 때문에 피하고자 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일이다.
다만 때로 한 번쯤은 그 고통스러운 감정을 피하지 말고 마주해보는 것도 스트레스 관리에 도움이 된다.
근본적으로 스트레스는 내가 원하는, 혹은 기대하는 부분이 좌절되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그 고통을 잘 들여다 보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나에게 중요한 욕구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그 원하는 것을 스스로 이해해주는 것만으로도 정서적인 고통은 어느 정도 이완된다.
아울러 내가 원하는 것이 현재 이뤄질 수 없는 것이라면, 다른 상황에서라도 내가 원하는 ‘그 느낌’을 얻을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좌절된 그 감정은 생각보다 나에게 중요한 감정이고 욕구일 수 있으니 잘 돌봐주자.

정확한 파악이 어렵다면 심리검사를 받아보기

다만 이러한 노력으로도 자신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왜 받는지, 해결책은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럴 때는 기관을 방문하여 전문적인 분석을 받는 것도 도움이 된다.
결국, 스트레스 관리는 ‘평상시의 나를 잘 관찰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어린 아이의 부모가 자신의 자녀를 꼼꼼히 관찰하고 돌보려 하듯, 나 자신의 여러 모습을 허투루 지나치지 않고 잘 관찰해주자.

걷기만으론 100세 못 간다...느리게 늙는 식사·운동법은

조선일보 의학 전문 유튜브 콘텐츠 ‘이러면 낫는다’가 3일 고령화 시대 최대의 관심사로 떠오른 ‘노화’ 모음편을 공개했다.
생활 습관 개선 등을 통해 노화 속도를 줄이는 ‘감속 노화’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가 출연해 노화의 위험성과 노화를 줄일 수 있는 식습관을 소개했다.
정 교수는 “노화의 원인은 유전이 3이라면 생활 습관이 7이라고 봐야 한다”고 했다.
일란성 쌍둥이라도 무엇을 먹고 어떻게 활동하고 휴식하느냐에 따라 큰 폭으로 노화 속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식습관이 중요하다.
다량의 육류를 섭취하면 활성화되는 ‘엠토르(mTOR)’ 단백질은 노화를 촉진한다.
또 설탕과 같은 단순당이나 빵, 떡 등 정제 곡물을 많이 섭취하면 혈당이 높아지고 인슐린 분비가 늘어난다.
정 교수는 “20~40대일 때는 단순당과 정제 곡물을 피하고 식물성 단백질을 많이 먹는 것이 좋다”며 “반대로 노년 세대일 경우, 근육 생성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흰쌀밥을 매끼 챙겨 먹고 충분한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하는 게 좋다”고 했다
이러면 낫는다 노화 2편/오!건강

이러면 낫는다 노화 2편/오!건강최고의 노화 예방책은 ‘근테크’다.
근테크는 근육과 재테크를 합친 신조어다.
정 교수는 “30대부터 1년에 약 1%씩 근력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60대에 이르면 그 속도가 더 빨라진다”며 “노화를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근육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했다.
정 교수는 노인일수록 걷거나 달리기 같은 유산소 운동보다 계단 오르기와 스쿼트, 플랭크, 런지 같은 근력 운동에 더 신경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걷는 것만 가지고는 100세까지 갈 수 없다”며 20~30대는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7:3 비율로, 60~70대는 3:7 비율로 할 것”을 권장했다.
‘이러면 낫는다’는 유튜브 홈페이지나 앱에서 ‘오건강’을 검색하면 시청할 수 있다.

박지민 기자 bgm@chosun.com


허공에 첫 발을 내딛는 용기 

by 김동규 

산에 온 지도 1년이 넘었다.
거주지를 서울에서 울산으로 옮기면서 생긴 가장 뚜렷한 변화는 지인이 거의 없는 곳에서 살다 보니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가족끼리 산책 겸 자주 가는 곳이 집 근처 태화강이다.
집에서 강변을 따라 조금 걷다 보면, 온갖 다양한 동식물들을 만난다.
깨끗한 강물에는 ‘물 반 물고기 반’이라 말할 정도로 물고기가 많고, 그걸 잡아먹는 백로, 까마귀, 오리, 각종 철새 등이 가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서울의 한강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울산에 와서 딸의 그림 솜씨가 많이 늘었습니다.
딸래미의 최신작, <판타지 아이유>랍니다.
아이유는 딸애의 영원한 본진 최애라네요. 낯선 곳에서 낯선 친구를 사귀는 중인 딸을 응원합니다.

그렇게 걷다 보면 이윽고 ‘태화강 국가정원’에 도착한다.
이곳은 도시 근린공원으로 2019년 순천만에 이어 두 번째 국가정원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봄에는 빨간 꽃양귀비와 장미 등 각종 꽃들이 피어나고, 가을에는 드넓은 정원이 국화와 억새들로 뒤덮인다.
11월 즈음 이 부근에는 추위를 피해 시베리아에서 날아온 떼까마귀들을 만날 수 있는데 그 수가 어마어마하다(약 10만 마리 가량!). 일전에 하늘을 온통 검게 물들인 까마귀 무리의 군무를 보면서, 감격한 나머지 울산에 온 보람을 느낀다고 아내에게 말했던 적이 있다.
이 광경 하나로 타향살이의 시름이 몽땅 사라진 셈이다.

겨울마다 찾아오는 철새 까마귀

태화강 국가정원 가장자리에는 강의 남쪽과 북쪽 둔치를 잇는 다리가 있다.
차들이 오가는 ‘국가정원교’가 그것인데, 바로 그 아래 설치된 인도교가 ‘은하수 다리’이다.
이 인도교의 특징은 다리를 건널 때 강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는 투명 바닥으로 조립되었다는 점이다.
그 투명 다리를 건너다보면 공중에 붕 뜬 느낌이 난다.
아이들은 그걸 무서워하면서도 재미있어 한다.
투명하게 비치는 허공에 선뜻 발을 내딛기가 망설여지지만, 일단 발을 뻗으면 공중을 나는 듯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투명 발판의 내구성을 믿지 못하면, 이 자유를 결코 구가(謳歌)할 수 없다.

‘은하수 다리’는 시민 공모로 지어진 이름이라는데, 투명한 바닥과 잘 어울린다.

시인 정현종은 「섬」이라는 짧은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 『나는 별아저씨』. 문학과지성사, 1978(초판), 1992. 「섬」 65쪽.

옛사람들 말처럼, 저마다 자기만의 별이 있다면, 그 별들을 잇는 보이지 않는 다리가 있어 커다란 별 무리가 만들어진다.
그 무리의 형체를 두고 은빛 강줄기(銀河水)라 부르기도 하고 우윳빛 길(milky way, via lactea)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아기 헤라클레스가 너무 세게 헤라의 젖을 빨아서 그 천하장사의 입을 뿌리치면서 생긴 젖줄기라고 상상했다).

낯선 곳에서 살다보면 모든 게 다 새롭다.
새로운 게 아무리 좋더라도, 새로운 일들이 반복되다 보면 힘들기 마련이다.
특히 낯선 사람과 만나는 일은 매번 어렵다.
상대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그와 관계를 맺는 일에는 언제나 위험이 동반되기 때문이다.
저이가 이방인을 환대하는 착한 이웃일지 손님을 배척하고 갈취하는 악당일지, 단박에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계 자체를 주저하게 되고 피하게 된다.
지금이야 엄마 아빠보다 더 잘 적응하고 친구가 많아졌지만, 우리 집 아이들이 처음에는 집 밖에 나가는 것을 싫어했던 이유다.

하기야 ‘돌다리도 두드리며 건너야 한다’는 속담도 있듯이, 낯선 타인을 만날 때에는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단단한 돌다리마저 그러한데,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투명 다리를 어떻게 쉽게 믿고 건너갈 수 있다는 말인가?
낯선 타인에 대한 공포, 즉 제노포비아(xenophobia)는 생명체가 오랜 진화 과정에서 습득한 생의 본능적 지혜에 가깝다.

서양에서 이런 신중한 지혜를 잘 겸비한 최초의 사람이 오뒷세우스이다.
그는 트로이 전쟁 후 10년 동안 지중해 전역을 떠돌면서 낯선 사람들을 만난다.
외눈박이 식인 괴물 폴뤼페모스도 만나고 마법으로 사람을 돼지로 바꾸어 놓는 키르케도 만난다.
개중에는 나우시카 같이 이방인을 환대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는 위험천만한 존재들이었다.
그래서 그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
구사일생 귀향하고 나서도 집안 재물을 축내는 구혼자들은 차치하고라도 자기 식구들, 즉 아버지, 아내, 아들에게도 자신의 정체를 곧바로 드러내지 않는다.
거지 행색의 나그네로 위장한 채 먼저 그들의 신의를 확인한다.
오뒷세우스는 현실의 위협에 대처하는 꾀 많은 사람의 전형 그대로다.

세상 풍파를 다 겪은 오뒷세우스는 물론이거니와, 그의 아내 페넬로페의 의심도 만만치 않다.
오랫동안 108명이나 되는 구혼자들에게 시달려서인지, 그녀는 오뒷세우스가 남편임을 밝혔는데도 선뜻 믿으려 하지 않는다.
남편하고만 공유했던 비밀을 통해 그를 시험한다.
남편이 들으라고 페넬로페는 하녀에게 부부의 방 밖으로 침상을 내놓으라고 명하는데, 이것을 들은 오뒷세우스가 역정을 내며 이렇게 말한다.

여보! 당신이 하는 말은 정말로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구려. 누가 내 침상을 다른 데로 옮긴단 말이오?
아무리 솜씨 좋은 자라도 그렇게 하기는 어려울 것이오. … 정교하게 만든 그 침상의 구조에는 남모를 비밀이 있고,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그것을 애써 만들었으니 하는 말이오. 우리 안마당에는 잎사귀가 긴 올리브 한 그루가 한창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는데 그 줄기가 기둥처럼 굵었소. 그 나무 둘레로 나는 돌들을 촘촘히 쌓아올려 방을 들이기 시작했고, 드디어 그것이 완성되자 그 위에 훌륭하게 지붕을 씌우고 튼튼하게 짜맞춘 단단한 문짝들을 달았소. 그러고 나서 잎사귀가 긴 올리브의 우듬지를 자르고 밑동을 뿌리 쪽부터 위로 대충 다듬은 뒤 청동으로 훌륭하고 솜씨 좋게 두루 깎고 먹줄을 치고 똑바르게 말라 침대 기둥으로 만들었지요. … 이것이 내가 그대에게 제시하는 우리 침상의 비밀이오.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천병희 옮김, 도서출판숲, 2019. 540-41쪽.

워터하우스 Penelope and the Suitors

오뒷세우스는 낯선 이방인을 조건부로 환대하는 인물이다.
자신에게 해가 되는지 얼마만큼 이득이 되는지를 꼼꼼히 따져가며 환대할 손님과 쫓아낼 사람을 구별한다.
해를 입힌 자(구혼자들)에게는 무자비한 폭력도 불사한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명대사가 등장하는 영화 <킹스맨>의 한 장면, 즉 술집에서 시비를 거는 동네 양아치들을 응징하기 위해 먼저 술집 문을 걸어 잠그는 장면은 『오뒷세이아』에서 유래한 것이다.
오뒷세우스는 하인을 시켜 자기 집 문을 걸어 잠근 후, 구혼자들을 무참히 도륙한다.

영화 <킹스맨>

타자에 대한 철저한 무지 상태에서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까?
때로는 오뒷세우스처럼 조건을 따지면서 선별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무조건적인 환대를 실천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유나 조건을 전혀 제시하지 않았음에도 타인으로부터 신뢰를 받는 것만큼 감격적인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 경험을 해 본 사람은 낯 세상을 고향처럼 느낄 수 있다.
세상을 더욱 사랑할 수 있고, 그럴수록 더 큰 사랑을 베풀 수 있다.
고독한 (인간) 별들이 투명 다리로 이어져 장대하고 아름다운 은하수가 만들어지듯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좀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

신뢰trust’라는 단어는 ‘보호하다’, ‘의지하다’, ‘안전하고 강하게 하다’라는 뜻의 고대 스칸디나비아어 ‘트레이스타treysta’에서 나왔다.
신뢰는 전설 속의 투명 다리 같은 것이다.
다리의 존재를 믿고 첫 발짝을 내디디면 그제서야 눈앞에 나타나는 그런 다리 말이다.
떨리는 두 발 아래 그 다리가 있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니 경계하고 발밑을 조심해야 한다.
… 언제 어떻게 타인을 신뢰해야 하는지 파악하는 것은 까다로운 기술이다.
그러나 신뢰를 거부하고 모든 가능한 관계를 거부하면 취약함 속에 홀로 남게 된다.
그러니 아무런 보장 없이 몸을 덜덜 떨며 투명 다리 위로 한 발짝을 내디딘다.
일이 잘 풀리면 심연으로 추락하는 대신 전보다 조금 더 안전한 세상에 도착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윌 버킹엄, 『타인이라는 가능성』, 김하연 옮김, 어크로스, 2022. 62-63쪽.

그렇다.
신뢰란 투명한 은하수 다리와 같은 것이다.
미지의 타자를 향해 첫 발을 내딛는 용기가 그나마 안전을 보장해 주는 최선책이다.
필승의 전략은 적과 피 흘리며 싸우는 것이 아니다.
적을 아예 친구로 만드는 길이다.
그 길로 향한 출발점은 바로 ‘없어 보이는’ 투명 다리를 믿고 내딛는 첫 발걸음이다.
믿을만한 구석이 전혀 보이지 않더라도 눈 질끈 감고 허공에 한 발 내딛는 용기가 관계의 시작이다.
다음부터는 한 걸음 더 다가설 때마다 신뢰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근거 없는(위험천만한) 첫 믿음, 바로 이것이 시인이 말했던 사람들 사이의 섬이다.
그곳에 가고 싶지 않은가?

* 이 글은 <웹진 한국연구>에 실린 것을 조금 수정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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