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시대는 이미 왔어요. 하지만 교육은 아직 바뀌지 않았죠. 학교도, 사교육도요. 어디서도 시대에 맞는 교육을 받을 수 없다면, 집에서 해야죠.
어딜 가나 AI 얘기다. ‘손안의 PC’라 불리는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산업과 일상이 완전히 바뀌었듯, AI 역시 그럴 것이란 전망이 대세다. 그래서 불안하다. 결국 AI에게 일자리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아이는 어떻게 키워야 할까? 트렌드 분석가 겸 경영전략 컨설턴트인 김용섭 소장(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은 “교육 시스템은 빠르게 변할 수 없다”며 “부모가 가르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2013년부턴 매해 『라이프 트렌드』를 발행하고 있는 김 소장은 자타 공인 트렌드 전문가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 같은 주요 대기업과 정부 기관에서 트렌드를 주제로 강연뿐 아니라 컨설팅 프로젝트도 수없이 진행했다. AI 시대 교육 트렌드를 주제로 한 『프로페셔널 스튜던트』『아웃스탠딩 티처』를 쓰기도 했다. ‘미래의 교육’을 주제로 그를 찾아간 이유다.
실제로 그는 강연에서 “아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럴 때마다 그는 “어떤 변화에도 대응할 수 있는 진짜 공부를 해야 한다”고 답한다. 대체 진짜 공부는 뭘까? 학교도, 학원도 가르치지 않는 걸 집에서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 지난달 29일 김 소장을 만나 물었다
Intro. AI 시대, 어떻게 키워야 하나요
Part1. 의대 가도 소용없다?!
Parr2. 가르치고 싶다면, 경험하게 하라
Part3. 시키지 말고, 먼저 공부하라
의대 열풍이 거세다. 초등학생이 다니는 학원에 ‘의대반’이 생길 정도다. 안정적인 데다 경제적 여유까지 누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AI 시대에도 그럴까? 김 소장은 “의사가 누리는 부와 지위가 더는 유효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 AI 시대라고 질병이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요. 고령화 추세가 꺾이지 않을 텐데, 의사는 유망한 직업 아닌가요?
- 의사가 각광을 받기 시작한 건 1997년 외환위기 이후예요. 엄청난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잘리지도 않는데 돈까지 많이 버는 의사가 최고라고 여기게 된 거죠. 하지만 AI로 대체될 수 있는 직업이기도 합니다. 진단 결과나 증상에 따라 약을 처방하는 일을 AI가 못할까요? 더 잘할 수 있습니다. 그간의 진단 데이터와 처방 데이터가 있으니까요. 인간보다 더 짧은 시간에 더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면, 더 정확하게 진단하고 처방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의사가 지금처럼 돈 많이 벌고 안정적으로 살 수 있을까요?
- 일자리가 확실히 늘어나는 분야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정보기술(IT) 분야고, 다른 하나는 복지 분야입니다.
- IT 분야 일자리가 느는 건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복지 분야는 왜 그렇죠?
- AI 기술이 발달할수록 대규모 실업을 피할 순 없습니다. 실업은 큰 사회문제입니다. 정부는 이 사람들이 다시 교육받고 노동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해요. 이게 바로 복지죠. 복지 관련 산업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원하는 일자리는 이런 게 아닐 겁니다. 부와 지위를 얻을 수 있는 일자리를 원하죠. 어떤 분야에서 일하든 IT 기술을 잘 알아야 해요. IT 분야에서 일하지 않더라도요. 의사가 된다면, 의학에 IT 기술을 접목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진료실에서 환자를 보고 처방하는 걸 넘어서요. 기술을 잘 활용해 일하면 부와 지위를 누릴 수 있습니다. 다만 그런 일자리는 소수만이 가질 수 있어요.
- IT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소수의 부자와 복지 혜택을 누리는 가난한 다수가 살게 되는 건가요? 그렇다면 다수는 지금보다 더 먹고살기 힘들어지는 거 아닐까요?
- 먹고사는 것 자체가 어렵진 않을 겁니다. 정부가 그만큼 세금을 거두어 나눌 테니까요. 당장 로봇세가 논의되고 있어요. 심지어 전 세계 0.001% 부자로 꼽히는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나 MS 창업자 빌 게이츠 같은 사람이 주장하죠. 로봇을 가지고 있거나 활용하는 사람과 기업으로부터 세금을 거두자는 겁니다. 그걸로 사람들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하고요. 미국엔 360만 명가량의 트럭운전사가 있어요. 땅덩이가 크니 이들이 혈관이 되어 물류가 흐르게 하죠. 그런데 자율주행 트럭이 상용화되면 이들은 일자리를 잃고 맙니다. 그럼 정부가 자율주행 트럭을 만들고 이용하는 기업으로부터 로봇세를 걷어, 실직한 운전사들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거죠.
- 트럭운전사 같은 일자리만 없어질까요? 고학력 고소득 일자리라고, 안전하진 않을 것 같아요.
- AI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엔 육체노동이 대체되고, 지식노동은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 반대였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고 글을 쓰는 창의적인 영역이 먼저 위협받았어요. 기술이 발전해도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직업도 예외 없이 위협에 처할 겁니다. 회계사, 법조인 같은 전문직의 미래가 더 불투명하다는 얘깁니다.
- 고학력 고소득 일자리가 줄면, 결국 중산층도 사라지겠네요.
- 맞아요. AI 시대는 극단적으로 양극화될 가능성이 커요. 극소수의 엄청난 부자와 평범한 사람들로 완벽하게 나뉘는 거죠. 지금은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도 계층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올라가려고 경쟁하고요. 하지만 그런 게 무의미해질 수 있어요. 머스크가 아니라면, 다 똑같은 거죠. 그런데 모든 사람이 머스크가 될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 지금 같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수준의 경쟁 자체가 무의미해질 수 있습니다. 소수의 부자와 다수의 평범한 사람이라는 극단적인 양극화가 반드시 나쁜 결과가 아닐 수 있단 얘깁니다.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렸죠.
- 그렇다 하더라도 평범하게 살고 싶지 않을 수 있잖아요. AI 시대를 이끌어가는 그룹이 되려면, 뭘 해야 할까요?
- 기존의 지식을 암기하는 학습을 하는 건 의미가 없다는 건 다들 알 겁니다. AI는 데이터로 학습한 결과예요. 데이터는 이미 존재하는 것이죠. 데이터가 없는 것,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능력이 필요해요. 창의력이죠. 이게 있어야 AI로 대체되지 않을 겁니다.
김용섭 소장은 "부모들은 아직도 입시 공부를 잘해서 명문대를 나와야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그 관성을 빨리 깨지 않으면 자녀가 커서 부모를 많이 원망할 것"이라고 했다. 장진영 기자
👨👩👧👦 가르치고 싶다면, 경험하게 하라
AI 시대, 창의력이 중요하다는 데엔 이견이 없다. 문제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 창의력을 키워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김 소장이 “가정교육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그럼 가정에서 대체 뭘 가르쳐야 할까? 그는 “무엇보다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하라”고 강조했다.
- 그래야 아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적성은 뭔지 찾을 수 있으니까요. 좋아해야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어요. 그러니 좋아하는 걸 찾는 게 먼저죠. ‘짜장면’이 대세라고 짜장면만 주면, 아이는 짜장면을 좋아한다고 착각합니다. 짬뽕도 먹고, 팔보채도 먹어봐야 진짜 좋아하는 게 뭔지 알 수 있죠. 다양하게 경험하고 직접 결정해야 능동적으로 공부할 수 있고, 그래야 창의적인 수준까지 도달할 수 있고요. 이때 놓쳐선 안 되는 게 하나 있어요.
- 직접 경험입니다. 책으로 보고, 영상으로 보는 것만으론 부족해요. 그래야 진짜 알 수 있거든요. AI가 발달할수록 로봇이 발달하는 것도 사실은 그래섭니다. 챗GPT 같은 AI는 책으로만 학습했어요. 인간처럼 보고, 듣고, 만질 수 없죠. 그래서 인간을 뛰어넘지 못합니다. 인간처럼 다양한 감각 기관으로 정보를 얻기 위해 로봇이 발달하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아이에게도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 다양하게 경험해 보고 직접 선택하면, AI의 위협에서 안전한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요?
- 애석하게도 그렇게 하더라도 안정적인 일자리가 보장되지는 않을 겁니다. ‘평생 직장’이란 개념이 사라졌듯 ‘평생 직업’이라는 개념도 사라질 겁니다. 하나의 전공과 기술로 평생 같은 일을 하는 시대는 끝났죠. 다양한 분야를 공부해 융합해야 해요. 기술이 중요한 만큼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를 함께 공부하는 게 좋습니다. 이렇게 공부하려면, 지금 입시 공부를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공부해야 해요. 공부할 게 많아질수록 ‘울트라러닝(Ultralearning)’이 필요하고요.
- 압축해서 강력하게 공부하는 겁니다. 이를테면 학교에서 4년에 걸쳐 배울 걸 독학으로 1년 만에 끝내는 겁니다. 요즘엔 온라인으로 국내외 양질의 수업을 들을 수 있어요. 이런 걸 활용해 강도 높게 학습하는 거죠. 그럼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정보를 빠르게 익힐 수 있어요. 한국에서 공부했다면, 울트라러닝에 있어서만큼은 경쟁력이 충분합니다. 학창 시절 학교와 학원에서 하루 10시간 넘게 공부해 봤으니까요. 그 시간에 입시 공부가 아닌 진짜 공부를 하기만 하면 되죠.
- 다양하게 경험하는 것 외에 가정에서 하면 좋은 건 없을까요?
- 질문과 토론을 추천해요. 이 둘은 결국 생각하는 훈련이거든요. 창의력도 결국엔 생각하는 힘에서 나오니까요. 그런데 질문과 토론이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닙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꾸준히 해야 하죠. 그래서 가정에서 가르치는 게 좋습니다. 미국의 대통령을 지낸 존 F 케네디는 온 가족이 모인 식사 시간에 뉴욕타임스 기사를 읽고 대화를 했대요. 대화라는 게 결국 묻고 답하는 거죠. 이 과정이 토론이고요. 처음부터 잘되진 않을 겁니다. 뭘 묻든 처음엔 아이가 “몰라” 할 겁니다. 그럼 다음 날 또 물어보세요. 그사이 아이가 생각을 했을 테니까요. 그렇게 몇 마디씩 늘리면 됩니다.
김용섭 소장은 앞으로 강력한 일자리가 사라지고 부의 양극화가 심화한다고 전망했다. 그렇다고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대체 불가한 콘텐트가 있는 진짜 실력자는 살아남는다”고 강조했다. 장진영 기자
좋은 질문이 좋은 답을 끌어내는 법이다. 결국 아이에게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게 관건이다. 어떤 질문을 해야 할까? 김 소장은 “좋은 질문을 하려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바쁘다는 핑계로 교육을 학교와 학원에만 맡기는 건 무책임한 처사”라며 “아이에게 질문할 준비를 하라”고 강조했다. “좋은 질문이야말로 창의력을 키우는 최고의 교육”이기 때문이다.
- 답을 찾는 공부만 해서 그런지, 어떻게 질문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 특정한 답을 얻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질문해서 그래요. 딱히 답이 없는데도 말이죠. 또 혹시 다 아는 걸 묻는 건 아닐까 걱정하고 뭔가 거창한 질문을 하려고 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왜 그럴까요? 편하게 질문하면서 자라지 못해서 그래요. 유대인들은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오늘 학교에서 무슨 질문을 했니?” 하고 묻는대요. 그런데 우리는 “오늘 뭐 배웠니?” 하고 묻죠. 수동적으로 배우는 것에만 길들여져 있는 겁니다.
-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신문을 봐야 해요. 하루 이틀 보고 말아선 안 됩니다. 매일 꾸준히 봐야 합니다. 저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신문을 봤어요. 군대에 있을 때도 친구들에게 신문을 스크랩해 편지로 보내 달라고 했어요. 신문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분야별로 기사가 나뉘어 있는데요. 처음엔 각기 다른 분야처럼 보였죠. 그런데 보다 보니까 전혀 다른 분야의 이슈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돼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러면서 한국 사회가, 나아가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감이 오더라고요. 그럼 저절로 좋은 질문을 할 수 있어요.
- 토론도 낯설긴 마찬가집니다.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어서, 아이에게 가르쳐줄 수도 없어요.
- 그래서 부모가 먼저 배워야 해요. 저는 공부 모임을 꾸려 보라고 추천합니다. 지식을 학습하는 공부는 혼자서 할 수 있지만, 문제를 발견하고 토론하는 건 함께 하는 게 효과적이거든요. 그런데 어른들은 학교나 학원처럼 모여서 공부할 만한 계기가 없잖아요. 독서모임 같은 게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어요. 아이들이 등원하면 삼삼오오 모여 담소도 나누고 정보도 나누잖아요. 그때 같이 공부도 하는 거죠. 그런데 이렇게 모임을 만들 때 주의해야 할 게 있어요. 다양한 사람이 모여서 수평적으로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거죠.
- 선후배나 사제 관계처럼 수직적인 관계면, 치열하게 토론하기 힘들거든요. 그렇다고 경쟁하란 의미는 아닙니다. 진짜 공부는 타인과 경쟁하는 게 아니에요. 자신과 경쟁하는 거죠.
- 비슷한 사람끼리 모이면 관심사가 비슷하거든요. 공부하는 내용의 깊이나 폭에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어요.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시작했다고 해도, 점차 다양한 사람들을 불러 모아야 해요. 그래야 넓고 깊게 공부할 수 있으니까요.
김용섭 소장은 내년 핵심 트렌드로 ‘조용한 사람들’을 꼽았다. 그는 "요즘 젊은 사람들은 화려한 관광지보다 명상 여행을 좋아하고, 침묵 카페와 술집을 찾아다니며 독서 활동에 전념한다"면서 "조용히 자기만의 가치를 계속 높여가는 내향형이 두각을 보이는 시대가 오고 있다"고 분석했다. 장진영 기자
기술 덕에 확실히 인간의 삶은 편리해졌고,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졌다. 하지만 기술 발달이 고도화될수록, 속도가 빨라질수록 불안과 고민도 커진다. 나의 미래도 이러할진대, 아이의 미래는 말해 무엇할까? 불안과 고민의 크기 역시 크고 깊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김 소장은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며 “모르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느냐”고 묻기 전에 공부부터 하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세상을 알면, 불안해해야 하는 순간과 그러지 않아도 되는 순간을 구분할 수 있어요.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채근하기 전에 양육자 먼저 공부해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키워야 할지도 알 수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