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 존재해도 살아가야겠다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을 비극적 낙관주의라고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살면서 누구나 하나씩은 생기기 마련인 지병과 벌써 10여년을 함께 지내고 있다.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나기도 했고 또 어차피 생로병사의 고통은 인간의 숙명이니까 크게 동요되는 일 없이 마음만큼은 무던하게 잘 지내고 있다.
약도 잘 챙겨먹고 있고 쓸데없이 "나는 약 같은 거 없이도 혼자 병을 이겨낼 수 있다!" 같은 객기는 잘 부리지 않는 편이다.
어차피 그런 믿음은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고 불필요한 고통은 최대한 줄이고 싶기 때문에 밥 먹고 매일 병 고치는 일만 생각하는 전문가들의 판단을 최대한 존중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그런분들이 세상에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한 일이다.
없을 수도 있을텐데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딱 한 번 약을 끊어본 적이 있는데 왜 약에만 의존하고 다른 민간요법 등은 시도해 보지 않냐는 엄마의 끈질긴 설득에 반쯤 체념해서 그래 그냥 어떻게 되는지 보자 하는 마음에 그랬던 것 같다.
물론 실패할 것을 알고 있었고 실제로도 실패해서 고통과 약 용량만 더 늘리는 엔딩이었다.
이 때 한 가지 흥미로웠던 것은 엄마가 나에게 "너는 왜 이렇게 부정적이냐"고 계속 나무랐던 점이다.
내가 나의 병을 인지하고 최대한 행복하게 유병장수하기 위해 첨단과학의 도움을 받고 있는데 부정적이라니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엄마의 시선에서 볼 때는 병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매우 부정적이라고 느껴졌던 모양이다.
하지만 있는 병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삶을 외면하고 또 나를 돌볼 책임으로부터 무책임하게 도망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나 자신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 하는 꽤나 긍정적인 사람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에 엄마의 해석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삶에 도움이 되는 긍정이란 나는 절대 생로병사의 고통 따위를 겪지 않을 거라는 현실 도피가 아니라 어떤 일이 닥치든 아주 작은 것이라도 내가 나를 보살피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정도는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일 거다.
그러다 얼마 전 이러한 태도를 일컬어 '비극적 낙관주의(Tragic Optimism)'라고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삶의 유한함과 인간이기에 겪어야만 하는 고통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살아가겠다는 태도를 의미한다.
내가 나를 스스로 꽤 긍정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도 이것이다.
앞으로도 좋은 일 만큼이나 안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겠지만 그럼에도 쉽게 죽지는 않으리라는 이상한 자신감(?)이 있다.
아마 나름의 풍파를 이겨내고서 얻은 마음의 훈장 같은 무엇일 것 같다.
한 연구에서도 지난 팬데믹과 같이 큰 어려움이 닥쳤을 때 어려움을 심하게 느낀 사람들에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비극적 낙관주의가 행복과 더 큰 상관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어려울 때일수록 그 어려움을 받아들이지만 여전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아닐까?
크게 힘들지 않을 때에는 대충 다 잘 될 거라는 안일함만 가지고도 마음이 크게 추락하는 일 없이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큰 어려움이 닥쳐와서 그런 안일함만으로 버틸 수 없는 상황이 오면 결국 이 또한 지나갈 것이고(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의미에서) 나는 계속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덤덤한 믿음이 큰 힘이 되는 것 같다.
어쩌면 그런 깨달음이 바로 심리학자들이 입을 모아 중요하다고 이야기 하는 삶의 의미감과 맞닿아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Leung, M. M., Arslan, G., & Wong, P. T. (2021). Tragic optimism as a buffer against COVID-19 suffering and the psychometric properties of a brief version of the Life Attitudes Scale. Frontiers in Psychology, 12, 646843.
※필자소개
박진영.《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유전자 교정으로 '달달해진' 토마토
중국농업과학원
토마토당도를 조절하는 기술이 개발됐다.
게티이미지뱅크
토마토의 당도를 조절할 수 있는 유전자 교정법이 개발됐다.
토마토의 크기를 키우는 유전자 교정 기술은 있었지만 단맛을 내는 방법은 없었다.
크기와 맛을 모두 잡은 토마토를 만드는 과학자들의 숙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황산웬 중국농업과학원 연구원 연구팀은 토마토두 개의 유전자를 교정해 무게나 수확량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고 당도만 조절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발견하고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13일(현지시간) 발표했다.
그간 토마토 유전자 교정 기술은 크기를 키우는 데집중했다.
오늘날 시장에서 유통되는 토마토 중 일부는 야생에서 난 토마토의 먼 조상보다 10~100배 더 크다.
토마토의 크기가커진 만큼 당도가 높아진 건 아니기 때문에 '크고 맛없는' 토마토에 대한소비자들의 불만이 제기됐다.
연구팀은 야생에서 자란 토마토와 재배된 토마토의 유전체를 분석해 토마토의 당분 축적을 조절하는 핵심 유전자를 발견했다.
'SlCDPK27'과 'SlCDPK26'란 유전자에 의해 암호화된 단백질은 토마토에서 당분을 생산하는 효소와 상호 작용해 당분을 분해했다.
3세대 유전자 가위인 크리스퍼(CRISPR)캐스9를사용해 두 유전자가 기능하지 않도록 만들자 토마토의 당분 함량은 최대 30% 증가했다.
두 유전자를 제거한 토마토는 유전자 교정을 하지 않은 토마토와 비교했을 때 무게와 수확량에 큰 차이가 없었다.
유전자를 교정한 토마토의씨앗이 조금 더 작고 가벼운 차이만있었다.
이 토마토에서 난 종자들은 세대를 거칠수록 점점 더 작은 씨앗을 생산했다.
연구팀은 "당분 축적에 관여하는 두 유전자는 토마토가 숙성되는 과정에서 당분이증가하는 것을 억제하며이를 통해 씨앗 발달에 필요한 충분한 에너지를 확보하는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유전자 교정을 통해 당도를높인 토마토가 3~5년 내에 상용화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또 이번에 발견된 당분 축적에 관여하는 두 유전자는 다양한 식물 종에 걸쳐 보존된 만큼 다양한 작물에게서 당도를 높이는 데활용될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토마토, 가뭄일 때도 살아남는 비결
토마토 연구를 통해 식물이 가뭄에 견딜 수 있는 추가 요인이 확인됐다.
bfk92/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기후 변화는 인간에게만 위기가 아니다.
식물도 변화하는 기후 조건에 맞춰 살아남아야 한다.
토마토가 가뭄에 살아남는 방식이 확인됐다.
가뭄에 강한 작물을 재배할 때 참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시오반 M. 브래디 미국 데이비스캘리포니아대 식물생물학과 교수 연구팀은 2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플랜츠’에 토마토가 가뭄에서 생존하는 이유를 발표했다.
식물의 뿌리에서는 ‘코르크질’이라는 발수성 고분자물질이 생산된다.
물이 잎으로 빠르게 이동해 증발하는 것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연구팀은 “코르크질이 없다면 마치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것처럼 수분 손실이 빠르게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뿌리 안의 내피세포에서 만들어지는 코르크질은 이처럼 가뭄에 대처하는 기능을 한다는 점이 확인됐다.
반면 토마토처럼 뿌리 끝부분에 있는 외피세포에서 만들어지는 코르크질의 기능은 아직확인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통해 내피세포와 외피세포에 있는 코르크질이 동일한 기능을 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내피세포 코르크질과 마찬가지로 외피세포 코르크질도 수분이 부족한 환경에서 식물이 살아남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연구팀은 외피세포 코르크질의 기능을 확인하기 위해 우선 뿌리 외피세포가 활발하게 사용하는 유전자들을 찾아냈다.
그 다음 유전자 교정을 통해 코르크질 생성에 관여하는 것으로 보이는 유전자가 기능하지 못하도록 돌연변이 토마토를 만들고 열흘간 가뭄과 같은 환경에 토마토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살폈다.
그 결과 코르크질 생성에 필요한 유전자들에 변이가 발생하면 물 부족에 대한 토마토 대처 능력이 떨어지면서 훨씬 시들해진다는 점을 발견했다.
브래디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식물이 가뭄에 대처하도록 돕는 요인에 외피세포 코르크질을 추가할 수 있게 됐다”며 “과학자들이 가뭄에 강한 작물을 설계하는 데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온실 환경에서 외피세포 코르크질의 가치를 확인했으며 향후 외부 환경에서 추가적인 연구를 진행해 코르크질의 역할을 재차 확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방울토마토 먹고 배탈 난 과학적 이유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지난주 TV에서 의아한 뉴스를 봤다.
급식으로 나온 방울토마토를 먹은 아이들이 구토와 배탈 증상을 보였다는 내용이었다.
증상이 일시적이고 쉽게 회복돼 일반적인 식중독은 아닌 것 같다는 말로 봐서는 병원체 감염은 아닌 것 같았다.
농약 중독일 수도 있겠지만, 방울토마토처럼 온실재배 기법이 확립된 작물에 농약을 과도하게 뿌렸거나 인체 독성이 커 허가가 안 된 농약을 썼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2~3일 뒤 원인이 밝혀졌다는 후속 보도가 나왔다.
토마토에 들어있는 토마틴이라는 성분 때문이라는 것이다.
덜 익은 열매에 있는 토마틴은 열매가 익으면서 사라지는데, 이번 경우는 이 과정에서 저온에 노출돼 익은 뒤에도 꽤 남아있었다고 한다.
난방비가 비싸다 보니 하우스 온도를 좀 낮췄던 것일까. 아무튼 원인이 밝혀져서 다행이다.
그런데 토마틴은 어떤 물질이기에 먹었을 때 탈이 나는 것일까.
다른 많은 식물처럼 가지과 식물도 여러 속으로 분화하면서 속마다 특징적인 방어물질인 이차대사물(피토케미컬)을 발명해 살아남았다.
담배속(Nicotiana) 식물은 니코틴(연두색)을, 아트로파(Atropa) 등 몇몇 속 식물은 트로판 알칼로이드(녹색)를, 고추속(Capsicum)식물은 캡사이시노이드(보라색)를, 가지속(Solanum) 식물은 스테로이드 글리코알칼로이드(파란색) 생합성 경로를 진화시켰다.
천연물 리포츠 제공
● 감자가 녹색을 띠면 먹지 말아야
가지과(Solanaceae) 식물에는 중요한 작물이 여럿 들어있다.
식용작물로는 가지와 토마토, 감자, 고추가 있고 특용작물로는 담배, 페튜니아가 있다.
이 가운데 앞의 셋은 가지속(Solanum)으로 가까운 사이다.
가지속 식물은 잎과 열매에 스테로이드 글리코알칼로이드(steroidal glycoalkaloid, 이하 SGA)라는 구조의 이차대사물인 피토케미컬을 지니고 있다.
SGA는 알칼로이드와 배당체의 구조에 따라 수십 가지가 있는데, 종에 따라 주성분이 다르다.
이름에서 짐작하겠지만 토마틴(tomatine)은 토마토에 있는 SGA다.
가지에는 솔라소닌(solasonine)과 솔라마진(solamargine)이 있고 감자에는 솔라닌(solanine)과 차코닌(chaconine)이
있다.
2011년 감자 게놈과 2012년 토마토 게놈이 해독되면서 가지속 식물의 SGA 생합성에 관여하는 유전자 네트워크를 밝히는 연구가 진행됐고 이듬해 결과가 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렸다.
감자와 토마토는 최종 산물이 다르지만, 합성에 관여하는 유전자 종류와 유전자가 자리한 염색체 위치는 거의 겹친다.
그 결과 콜레스테롤을 출발물질로 해서 스피로솔레놀(spirosolenol) 골격을 지닌 스테로이드알칼로이드 분자가 만들어지는 과정까지는 공통이다.
‘식물에도 콜레스테롤이 있나?’ 이렇게 생각하는 독자도 있을 텐데, 콜레스테롤은 식물과 동물이 등장하기 이전 초기 진핵생물이 발명한 생체분자로 대표적인 스테로이드다.
그 뒤 토마토에서는 스피로솔레놀 골격에 당분자가 붙어 콜레스테롤 글리코알칼로이드인 토마틴이 만들어진다.
참고로 글리코알칼로이드의 글리코(glyco-)는 ‘당’이라는 뜻이다.
감자에서는 약간 복잡해 먼저 스피로솔레놀 골격이 솔라니데인(solanidane) 골격으로 바뀐 뒤 당분자가 붙어 솔라닌과 차코닌이 만들어진다.
솔라니데인은 스피로솔레놀보다 독성이 좀더 강하다.
감자를 빛에 노출된 채 보관하면 껍질에 엽록체가 많아져 녹색을 띤다.
이때 솔라닌 합성도 활발해지므로 이 부분을 잘라내지 않고 먹으면 탈이 날 수 있다.
위키피디아 제공
SGA 가운데 감자의 솔라닌이 널리 알려져 있다.
제철 감자가 싸다고 상자로 사서 두고 먹다 보면 어느 순간 녹색 기운을 띠는 감자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이 부분을 칼로 도려내지 않으면 맛도 쓰지만 몸에 안 좋고 많이 먹으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
바로 솔라닌 때문이다.
솔라닌과 토마틴을 포함해 가지속 식물이 만드는 SGA의 다수는 이를 먹은 동물의 세포막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을 분해하는 효소의 작용을 방해한다.
그 결과 소화계와 신경계를 교란시키고 고농도로 섭취하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다만 SGA는 맛이 쓰기 때문에 보통은 치사량을 먹기 전에 피하기 마련이다.
본래 SGA는 가지속 식물이 병원체와 병해충, 동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고 만들어내는 방어물질이다.
따라서 씨가 여물 때까지 손상되면 안 되는 잎과 덜 익은 열매에 고농도로존재한다.
열매가 익으면서 SGA의 농도가 떨어지며 독성과 쓴맛이 사라지면서 동물의 먹이가 되고 배설을 통해 씨를 퍼뜨린다.
그럼에도 야생 식물의 익은 열매에는 여전히 SGA가 꽤 존재한다.
토마토 열매가 익으면서 맛이 쓰고 독성이 있는 토마틴이 쓴맛과 독성이 없는 에스큘레오시드 A로 바뀐다.
지난 2020년 이 과정에 관여하는 유전자 네트워크의 일부가 밝혀졌다.
이번에 문제를 일으킨 방울토마토 품종은 저온 스트레스 조건에서 이 과정에 관여하는 효소의 유전자(아마도 23DOX) 발현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아 열매가 익어도 토마틴이 여전히 남아있었던 게 아닐까. 식물&세포생리학 제공
● 작물화 과정에서 농도 낮아져
다른 작물도 그렇지만 가지속 식물도 작물화 과정에서 맛이 쓰거나 독성이 있는 피토케미컬은 농도가 낮아지는 쪽으로 선별이 이뤄졌다.
따라서 작물 감자와 토마토 역시 야생 식물에 비하면 GSA 함량이 꽤 낮지만, 감자처럼 상황에 따라서는 많이 만들어져 독성을 띨 수도 있다.
감자를 빛에 노출된 채 보관하면 껍질에서 솔라닌 합성이 활발해지고 엽록체가 많아져 녹색을 띤다.
싹이 날 조건이 될 때까지 땅속에서 안전하게 있어야 할 덩이줄기가 외부에 노출됐다는 뜻이므로 화학무기를 생산해 앞으로 닥칠 공격에 대비하는 것이다.
이때 껍질째 감자를 요리해 먹으면 다량의 솔라닌을 섭취할 수 있다.
참고로 솔라닌은 안정한 분자라 웬만한 열로는 분해되지 않는다.
의학사를 보면 소위 ‘솔라닌 중독’으로 불리는 사례가 여럿 보고됐는데, 2000여 명의 발생 사례 가운데 사망자가 30명에 이른다.
굶주리다 보니 쓴맛을 참아가며 많은 먹은 결과 아닐까.
토마토 역시 작물화 과정에서 열매의 토마틴 함량이 크게 줄었을 뿐 아니라 열매가 성숙하면서 토마틴이 인체에 무해하고 쓴맛이 없는 SGA인 에스큘레오시드 A(esculeoside A)로 바뀐다.
열매인 토마토는 일단 익으면 새로 토마틴을 만들지 않으므로 싹을 품고 있는 덩이줄기인 감자처럼 유통이나 보관 중에 위험하게 바뀔 가능성은 없다.
이번 토마틴 사건의 경우 야생 토마토 수준으로 토마틴이 많이 만들어졌거나 열매 숙성 과정에서 에스큘레오시드 A로 바뀌는 과정에 문제가 생긴 결과일 것이다.
그런데 이번 말고도 재배과정에서 저온을 겪은 일이 꽤 있었을 텐데 왜 과거에는 이런 일이 없었을까. 토마토의 작물화와 육종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번 사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수천 년 전 남미 안데스 지역에서 야생 토마토의 작물화가 일어난 뒤 중미에서 본격적으로 재배됐고 16세기 유럽을 거쳐 세계로 퍼졌다.
이 과정에서 유전자 다양성이 떨어졌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병충해 저항성과 당도와 향미 등 품질에 대한 시장의 요구에 맞춰 품종을 개량하는 과정에서 여러 야생종과 재래종을 도입하면서 토마토 유전자 다양성이 커지고 있다.
많은 품종을 개발하다 보니 평가가 제대로 되지 않아 이번처럼 문제가 있는 품종이 농가에
보급된 게 아닐까. 식물과학의 경계 제공
● 야생종 유입으로 게놈 다양성 높아졌지만...
가지속은 구성원이 2000종 가까이 돼 네 아속(subgenus)로 나누는데, 가지는 렙토스테모눔아속(Leptostemonum)이고 토마토와 감자는 솔라눔센수스트릭토아속(Solanum sensu sticto)으로 더 가까운 사이다.
실제 감자 열매를 보면 방울토마토처럼 생겼다.
식용 부위로 보면 열매인 가지/토마토와 덩이줄기인 감자로 나뉘지만, 분류학 관점에서는 가지와 토마토/감자로 나뉜다는 말이다.
자생지를 봐도 가지는 아시아이고 토마토와
감자는 중남미다.
아속은 다시 섹션(section)으로 나뉘는데, 토마토는 리코페르시콘(Lycopersicon) 섹션이고 감자는 페토타(Petota) 섹션이다.
게놈을 비교한 결과 약 730만 년 전 갈라진 것으로 보인다.
두 섹션의 차이 가운데 하나가 덩이줄기를 만드는가 여부다.
리코페르시콘 섹션의 종들을 넓은 의미에서 토마토로 부르고 페토타 섹션의 종들 역시 넓은 의미에서 감자라고 부른다.
우리가 먹는 토마토(학명 솔라눔 리코페르시쿰S. lycopersicum)는 수천 년 전 남미 에콰도르와 페루 일대에서 야생 토마토인 솔라눔 핌피넬리폴리움(S. pimpinellifolium)을 작물화한 것이다.
야생 토마토 열매는 크기가 콩알만한데(평균 2g), 이때 작물화를 거치며 방울토마토만한 크기가 됐다.
그 뒤 방울토마토가 중미로 퍼졌고 여기서 육종으로 좀 더 큰 토마토가 나왔다.
16세기에 유럽인들이 중미에서 토마토를 가져갔고 그 뒤 세계로 퍼졌다.
이 과정을 거치며 토마토의 게놈 다양성은 줄어들었다.
이는 다른 작물에서도 보이는 일반적인 경향이다.
1940년 25살의 젊은 나이에 미국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 채소작물과 교수가 된 찰스 릭(Charles Rick)은 토마토 육종에 혁신을 불러오기 위해 원산지인 남미 안데스의 페루와 에콰도르, 갈라파고스까지 탐사하며 수많은 야생종(리코페르시콘 섹션)과 재래품종 자원을 모았다.
릭 교수는 기존 작물 토마토가 취약한 병원체에 내성이 있는 종류를 찾아 교배해 잡종을 얻었고 이를 다듬어 새 품종을 개발했다.
오늘날 유통되는 토마토 품종 대부분은 게놈에 야생종에서 유래한 병원체 저항유전자를 포함한 영역을 지니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맛과 향, 색깔 등 과일로서의 상품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육종이 진행됐고 그 결과 마트에서 새로운 토마토 품종이 속속 소개되고 있다.
특히 방울토마토가 다채로운데, 이 가운데는 초기 작물화의 결과물인 재래품종을 개량한 게 아니라 열매가 큰 작물 토마토와 야생 토마토(핌피넬리폴리움) 또는 야생 근연종을 교배해 나온 것도 있다.
오늘날 토마토 대다수는 두세 종의 게놈이 뒤섞인 잡종이라는 말이다.
이번에 문제를 일으킨 방울토마토는 국내 품종 등록번호 ‘HS2106’인 특정 품종이라는데 구체적인 정보가 없어 어떻게 나온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교배 과정에서 게놈이 뒤섞이며 저온 스트레스 아래에서 토마틴 생합성에 관여하는 유전자의 발현이 강화되거나 토마틴을 에스큘레오시드 A로 바꾸는 과정에 관여하는 유전자의 발현이 억제돼 열매에 토마틴이 축적된 것으로 보인다.
아마 단맛도 꽤 있어 토마틴의 쓴맛이 가려져
아이들이 거부감 없이 먹은 게 아닐까.
신품종을 개발할 때는 다양한 조건에서 재배해 결과물을 평가해야 하는데, 저온 스트레스 실험을 소홀히 했던 것 같다.
이 품종을 재배한 농가가 세 곳에 불과했고 그나마 한 곳은 출하하기 전에 사건이 터져 폐기했다고 하니 불행 중 다행이다.
※ 필자소개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고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7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