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은 식욕과의 싸움이기도 하지만 시간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단식 첫날처럼 긴 하루는 없다.
아무것도 안 먹으면 이상하게 시간도 안 간다.
굶어 보면 우리의 하루가 얼마나 먹는 일들을 중심으로 세세하게 구분되어 있는지 알게 된다.
소설가 권여선 산문집 『술꾼들의 모국어』 중에서.
세상 처절했던 나의 ‘간헐적 단식’ 4개월
[토요판] 이런 홀로
다이어트 성공기
사회생활 후 1년 만에 10㎏ 쪄
하루 점심 한 끼만 먹고
공복시간 18시간 이상 유지
‘뭣 하러 이 짓 하나’ 회의 왔지만
4개월 만에 10㎏ 넘는 감량 성공
평생 식습관 조절하고 운동하는
‘유지어터’
길 진입…훨씬 어려워
환절기만큼 시렸던 나의 간헐적 단식을 지나 진짜 혹독한 겨울로 들어서는 기분이다.
혹독한 겨울 뒤 따스한 봄이 찾아오듯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단 1년 만에 10㎏이 넘는 체중 변화가 찾아왔다.
몇 가지 이유가 있었을 거다.
선배들의 넘치는 사랑으로 마련된 화려한 점심식사와 술자리를 동반한 잦은 저녁식사, 이제 막 시작한 사회생활의 긴장과 피로 탓에 주말에는 꼼짝 않고 움직임을 최소화한 덕분이었다.
사실, 짧은 시간 동안 징후는 명확했다.
하루에 축구 두 경기는 풀타임으로 뛰던 내가 가벼운 활동에도 숨이 가쁨을 느꼈고, 수면 시 전에 없던 코골이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중계에 올라 내 현실을 파악하는 대신, 유전적 심장 질환을 추적하고
고된 사회생활이 내 생각보다 더 피곤했을 거라는 과대망상을 선택했다.
그사이 주변에서는 명징하게 불어난 내 몸을 지적하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웃어넘기며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뺄 수 있다고 과하게 큰소리쳤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자 어쩌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씩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러다 무릎이 아파 찾은 병원에서 은퇴를 코앞에 둔 것처럼 보이는 노회한 의사 선생님이 뚜렷한 의학적 소견 대신 일반인 같은 인상비평을 아무렇지 않게 날렸다.
“무릎이 아픈 이유는 신발이 싸구려거나, 어쩌면 살이
쪄서일 거요.”
그렇게 건강, 자존감 등 살을 빼야 할 이유가 셀 수 없이 쌓여가고 있었지만 그 뒤로도 수년간 나는 살을 뺄 어떠한 결정적 동기도 찾지 못한 채 허송세월하고 있었다.
다이어트, 시작만 있고 끝은 없더라
끝끝내 결정적 계기는 찾아오지 않았다.
비장함과 결기 같은 것도 확보하기 힘들었다.
그저 문득 ‘지금’이라는 버튼이 눌렸을 뿐이다.
그 버튼이 눌린 이상, 곧장 시작해야 했다.
입대를 앞두고 곧 세상이 끝날 것처럼, 며칠 뒤 시작할 다이어트를 앞두고 뷔페와 야식으로 내 몸을 망치는 일부터 당장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굳이 목표를 정하진 않았다.
대신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지 결정해야 했다.
생각보다 다이어트 종류가 많았다.
온갖 보조제가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도 새삼 알게 됐다.
그런데 검색을 하면 할수록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또다시 슬금슬금 도망치려다 예전에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본 ‘간헐적 단식’이 떠올랐다.
간헐적 단식을 선택한 이유는 2가지다.
적어도 먹을 때만은 스트레스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샐러드나 과일 등 번거로운 식단 준비는 하지 말자였다.
뭔가 준비하는 게 많아지면 긴 동력을 얻기 힘들 거 같았고 마찬가지로 식탐이 많은 내가 먹을 때는 먹고 싶은 걸 양껏 먹어야 최소한의 동력을 유지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스스로 2가지 원칙을 만들었다.
운동은 하지 않더라도 저녁 7시 이후에는 물 이외에 금식, 혹여나 뭔가를 불가피하게 먹게 된다면 잠자리에는
그로부터 3시간 이후에 들 것.
특별한 준비 없이 곧장 시작했지만 간헐적 단식은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하루 점심 한 끼만 먹으면서 공복 시간을 최소 18시간 이상 유지하려 했다.
퇴근 뒤에는 저녁식사를 하는 대신 헬스장으로 향했다.
살을 빼야 했기에 유산소 운동을 주로 했지만 다이어트 이후를 내다보는 성급함으로 적절한 근력 운동도 반드시 병행했다.
첫 한달은 배가 고파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몸은 고단하다고 신호를 보내는 데 잠이
오지 않는 심정이란. 가장 편안해야 할 잠자리가 고통으로 변하는 순간들이었다.
‘뭣 하러 이 짓을 하고 있나 싶어’, 예민하게 굴기 일쑤였고, 기운이 없어 그나마도 얼마 없던 직장에서의 내 생산성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시시때때로 이 단식을 그만둬야 할 이유를 좀비처럼 찾아다니며 스스로를 합리화하기 바빴다.
자꾸만 포기해야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러다 뷔페에서 끝없이 폭립을 먹으며 다이어트 중이라는 한 친구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다 왜 사람들이 ‘끝’이 없는 다이어트를 자꾸 ‘시작’만
하는지 절절히 이해하게 됐다.
포기하면 편했을 텐데, 그들은 그렇게 끊임없이 스스로를 옥죄고 채찍질하며 마지막 남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쉽사리 포기하지 못했다.
그렇게 한달을 집요하게 버텼다.
돌이켜보면 그 한달이 매 순간 고비였다.
그 시간을 지나니 지금까지 해온 게 아까워서라도 포기하기가 힘들어졌다.
몸도 어느 정도 적응했음이 느껴졌다.
물론, 이렇게 나름 처절하게 했는데도 한달 동안 고작 2㎏이라는
생각보다 더딘 체중 변화에 답답함과 스트레스가 밀려오기도 했지만 최대한 갈 데까지 가보자는 ‘독한’ 마음이 뒤늦게 찾아왔다.
두달 정도가 지나면서는 체중 변화에 속도가 붙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운동 강도를 조금씩 늘려가며 동시에 아침에 시리얼을 먹거나 퇴근 전에 선식을 먹으며 완급조절을 해나갔다.
이쯤 되니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묘한 자신감과 간헐적 단식이 내게 안성맞춤이라는 뻔뻔함까지 생겼다.
그 무엇보다 힘든 건 저녁 약속을 피해 다니는 일이었다.
어떨 때는 내가 봐도
성의 없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가며 저녁 약속을 피하느라 갖은 힐난을 감수해야 했다.
또한 때때로 결코 피할 수 없는 일적인 저녁 자리에서는 상대방을 최대한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 허공과 입에 열심히 젓가락질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렇게 조금이라도 식사를 하고 난 뒤에는 무언가를 먹었다는 온갖 자괴감과 함께 집에 와서도 피곤함을 무릅쓰고 앞서 언급한 그 3시간을 채우기 위해 새벽 무렵 느지막이 잠자리에 들곤 했다.
‘유지어트’는 혹독한 겨울
그렇게
4개월 만에 10㎏이 넘는 감량에 성공했다.
이후 지금은 간헐적 단식을 하고 있지 않으나 곰도 사람으로 만든 100일이 넘는 시간을 겪으며 내게도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단식이 끝났는데도 퇴근 후 저녁 운동을 습관처럼 꾸준히 하고 있으며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체중계에 올라 여전히 두려운 마음으로 내게 불현듯 찾아왔을 변화를 확인한다.
그리고 자연스레 오늘 하루 내가 어느 정도의 활동량을 가져가고 어떤 음식을 얼마만큼 먹어야 할지를 떠올린다.
혹 내 범위를 넘어서는 변화가 감지되면 곧장 운동량을 조절하고 하루씩
간헐적 단식을 하며 감량한 체중을 유지해나간다.
사실 세상 처절했다고 생각한 지난 4개월보다 어쩌다 하루씩 단식을 해가며 체중을 유지해나가고자 노력하는 지금이 훨씬 더 어렵게 느껴질 때가 많다.
심각한 표정으로 평생 다이어트 중이라고 이야기하는 친구들을 향해 황당함과 어이없음을 주저 없이 뽐냈던 지난 나의 모습을 떠올리며 반성과 함께 절로 웃음이 새어 나온다.
그리고 그렇게 나 또한 그 평생 다이어트의 길에 접어든 것 같다.
겸연쩍음과 민망함은 마땅히 내
몫이다.
그래도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는 때늦은 비장함이 찾아온다.
다이어트가 끝나고 이제는 멋진 몸을 완성하기 위한 웨이트 트레이닝에 돌입했다.
환절기만큼 시렸던 나의 간헐적 단식을 지나 진짜 혹독한 겨울로 들어서는 기분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그 혹독한 겨울 뒤에는 따스한 봄이 반드시 찾아온다.
내 삶에도 더 큰 자신감과 행복이 어느새 또 찾아와 있겠지.
한국의 민주주의는 왜 실패하고 있는가
[복지국가SOCIETY] 시민주권, 시민의회를 통해 가능하다
대한민국 시민은 정치 영역에 있어 세계 어느 나라의 사람들보다 깨어 있으며 역동적이다.
87년 민주화 대위업과 2016-17년 간 촛불행동이 이러한 역사의 자랑스런 증언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수십 년 동안 제도 정치권은 격변시대의
소명을 외면하고 제도 개혁에 실패하면서 해방 이후 최악의 무능하고 무도한 집단에게 국가권력을 강탈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왜 실패하고 있는가?
국제적 흐름이 한반도와 동북아에 전쟁의 먹구름으로 몰고 오며 '다시개벽'의 엄중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음에도, 우물안 개구리 신세인 한국의 국내정치는 타협과 출구가 없는 싸움에 갇혀 우리의 미래를 갉아먹고 있다.
민주화 항쟁과 촛불행동 등 지난 시기를 되돌아 성찰해보면, 기존 정치인들이 시민이 만들어낸 역사적 성과를
제도화하기는커녕, 마치 자신들이 성취한 획득물인양 그 열매를 고스란히 독점했다.
국민이 희망하고 기대했던 전진과 변화는커녕 이명박, 박근혜, 그리고 윤석열의 등장을 허용하면서 악몽같은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됐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고질적이고 심각한 배경이 있다고 본다.
첫째는 엘리트와 유산층의 과두제라는 비판을 받는 18세기에 시작된 서구식 선거방식의 대의제가 지닌 시대적 한계에 더하여 현재의 한국정치제도가 가지는 결함들이다.
대표적인 것이 소선구제가 지닌 승자독식의
선거제도와 대통령이
지닌 무소불위의 제왕적 권력이다.
둘 다 치명적인 문제를 지니고 있지만, 이번 글에서는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돌째는 구한말 이후 반민족매판 수구기득권의 기반과 조직을 정리해 내지 못한 까닭이다.
현재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검찰사법세력의 법비적 행태와 법적 근거는 일제가 한국민을 지배하기 위해 도입한 것에 원형을 두고 있다.
이것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고 개혁하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 되고 있다.
또한 일제와 협력하고 부역해왔던 반민족매판 수구언론들이 자성과
회개의 과정도 없이
여전히 공론의 장에서 주류를 자처하면서 지록위마와 교언영색을 일삼고 있는 것이 현재의 미디어 지형이다.
이로 인해 국민 여론의 공론장에서 합리적인 공적 이성이 작동하지 못하고 수구 기득권에 의한 마구잡이 왜곡과 조작이 판을 치고 있다.
셋째로 1945년 9월 미군이 점령군으로 이 땅에 진입한 이래 대한민국은 온전한 주권이 없는 반쪽의 나라, 결핍의 국가가 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군사안보 주권은 물론이고 통상과 외교에서 조차 국익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지난 70여 년간
한국정치에는 항상
한반도에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일본정치 세력과 지정학적 패권을 유지하고 있는 미국에 의한 왜곡과 간섭이 있었다.
예를 들자면 작년 8월에 이루어진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삼국 정상회담은 1905년 을사늑약이 이루어지기 직전의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연상하게 한다.
국란의 위기마다 나라를 구한 것은 무기력한 집권세력이 아니라 민초들, 백성들이라는 것은 역사에서 매우 소중한 대목이다.
집권자가 아니라 오로지 조직된 시민만이 국가를 구하는 바탕이자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는
제도정치권,
특히 개혁민주세력들의 역량 부족과 시대정신을 상실한 채 상호간에 분열로 표류하는 재탕의 모습들이다.
해방공간의 좌충우돌에서도, 87년 대투쟁 이후 양김의 분열에서도, 촛불 이후 문재인 정권의 무책임한 행보에서도, 최근의 대선에서 보는 개혁진보세력의 갈등과 대립 어디에서도 시대정신과 현안과제에 대한 제대로 된 해답을 읽을 수 없다.
개혁의 맏형을 자칭하는 이재명의 민주당은 다를까? 막연한 기대는 금물이다.
시민주권을 위한 제3의 민주화운동이 필요하다
이대로가면 정치뿐만 아니라,
지난 수십 년간 자랑스럽게 이루어낸 사회 제 영역의 성과 뿐만 아니라 민족의 운명까지 위기에 처할 것이 명백해 보인다.
위기의 순간이다.
위에도 이야기했지만, 수천 년의 민족역사를 되돌아 보면 국란의 위기에는 예외 없이 힘없는 일반 백성들이 떨쳐 일어나 나라를 구하고 위기를 극복해왔다.
따라서 이제 기존의 제도를 뛰어 넘어서 한국시민이 보여준 엄청난 역량과 에너지를 규범화하고 제도화하고 반드시 법제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기존 정치권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일반 시민이 직접 나서
참여하고 토의와 숙의를 통한
집단지성의 결정으로 시대의 소명과 과제를 해결하는 시스템을 도입해야만 한다.
이제 엄중한 내우외환의 상황에서 개혁진보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서로가 힘을 보태가며 새롭게 제3의 민주화운동을 전개해야 할 중차대한 시기다.
1987년 민주화 대투쟁은 27년간의 기나긴 군사독재정권의 시대에 종말을 고하고 문민 정치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제1의 민주화 운동이라 할 수 있고, 2016~17년간의 촛불운동은 살아있던 권력인 현직 대통령을 탄핵 소추하고 이를 인용하여 해임한 계기를 마련한 점에서
제2의
민주화운동이라 할 수 있다.
치명적 재앙으로 치닫고 있는 윤석열 정권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이제 세계인이 모두 부러워했던 한국시민이 보여준 엄청난 민주 역량과 에너지를 규범화하고 제도화하고 반드시 법제화하여 새로운 정치의 장을 마련하는 제3의 민주화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시민주권·시민권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
그 실현방식으로는 직접민주주의와 감독민주주의 등 여러 형태가 있으나, 우리가 지닌 여러 여건과 정황을 고려할 때 OECD가 강력히 추천하고 서구사회에서 이미 도입 검증하여 성공의 사례를 만들어가고 있는 층위별추첨형 시민의회가 우리 상황에서는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이며 곧바로 실천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시민의회는 2017년 이후 다수의 공론화위원회와 2018년 대통령 개헌안에 대한 숙의형 개헌토론회라는 이름으로 시행된 바 있다.
촛불이 뜨겁던 2017년 초 민주당을 위시한 야당들은 시민의회법을 약속했고, 2018년 '국민참여에 의한 헌법개정의 절차에 대한 법률안'을 발의했고,
2023년 선거법 개정 논의에서는
여야합의로 500인 시민의 공론화 과정을 진행한 바 있다.
그러나 위의 사례들은 자기정당화를 위하여 면피용 흉내만 내는 절차와 결함투성이의 과정이었다.
더구나 시행하려는 의지의 빈약으로 그나마 합의된 내용조차 묵살되는 실패의 사례로 남아 있다.
이제 우리는 주저없이 지난 경험들을 바탕으로 세계적 모범이 될 수 있는 시민의회의 제도들을 만들어가야 한다.
지난 5월8일 수백 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시민의회 운동을 주도해온 해외의 여러 인사들과 이를 다방면으로 연구해온 국내 연구학자들이
결집하여
국제심포지움을 성공적으로 치른 바 있다.
시민의 자발적 모임인 '시민의회 입법을 위한 100인 위원회(시민의회 포럼)'는 당시 국내외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5월 국제심포지엄의 토론결과를 바탕삼아 말하자면, 우리 사회는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시민의회 제도를 만들어가야 한다.
시민의회 제도화,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세계 각국에서 시도되고 있는 다양한 시민의회 사례들은 한국에 중요한 댜양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면한 정치적, 정책적 목표에 매몰되지 말고
민주주의 정치의 넓은 지형과 장기적인 과정 안에서 시민의회의 위상과 역할을 적절히 설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이런 시도가 기존 대의제 정치제도 및 과정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협력적이고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경우에 따라 충분히 비판적 관계를 형성할 수도 있어야 한다.
비교적 성공적인 해외의 사례들은 시민참여포럼이 공식적인 정치과정과 적절한 긴장을 유지하면서도 긴밀히 연결될 때 효과성과 지속력을 갖는다는 점이다.
특히 정당이나 의회를 중심으로 하는 공식적인
정치과정을
우회하거나 심지어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제도화되어서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은 정당성이나 책임성 문제에 발목을 잡히기 쉽고 장기적인 동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마찬가지 이유로 시민참여포럼이 고립된 실험에 머무르지 않고 진보언론 매체나 연구기관 등과 긴밀하게 협업하면서 공론장의 토론을 촉발 및 질적으로 향상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요컨대 민주주의 정치과정 전체의 참여성과 숙의성을 향상하는 큰 목표 안에서 시민의회의 기능과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
그간 한국의 숙의적 미니공중의 효과성이 약하고
정당성과
효과성에 대한 의문이 자주 제기되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도 바로 이러한 연계가 약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권한과 역할에 대해서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당장 특정사안에 대해 시민의회에서 도출된 결론이 최종적인 결정권을 행사해는 것이 매우 중요한 목표이지만 반드시 그렇지 않더라도 결과물을 여러 경로로 정치과정에 연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선 의회와 행정부에 권고안의 형태로 제출될 수 있는데, 이 경우 그저 제출하는 데에서 끝나지 않고 효과성을 가지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설계 단계에서부터 시민의회의 결과물이 행정부의 해당 부서나 의회의 위원회 등에서 일정 기간 안에 적절한 방식으로 심의되고 그 결과가 공표되도록 하는 제도적 경로를 분명히 설정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렇게 할 경우에도 결정권 자체는 행정부나 의회에 놓이지만, 행정부와 의회 차원의 공식적 심의와 결정 프로세스를 반드시 수반해야 하므로 시민의회의 권고를 별다른 근거 없이 무시해버리는 상황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 가지 방식은 방향을 달리하여 시민발의 내지는
시민투표 제도와 적극적으로
결합하는 것이다.
특히 지방자치 수준에서 이미 제도화되어 있는 주민발의와 주민투표 제도를 적극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강구할 필요가 있다.
시민의회는 주민발의와 주민투표 제도의 숙의성을 강화하는데 기여할 수 있으며, 주민발의와 주민투표 제도는 시민의회 프로세스와 관련된 공중의 참여를 크게 확대시킬 수 있어 시너지가 기대된다.
국가적인 사안의 경우에는 캐나다나 아일랜드 등의 사례에서처럼 시민의회에서 도출된 결과를 국민투표와 연계하여 헌법이나 법률의 개정 여부를 결정하는 방법도 있다.
한편 한국의
경우, 시민의회의 입법화와 별개로 또는 연계하여 국가적 수준의 시민발의와 시민투표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으며, 이는 헌법 개정과 별도의 법률 제정을 요하는 과제가 될 것이다.
어떤 방식의 제도화 경로이든 의견의 지형을 보여주거나 찬반투표의 결과 자체에만 매몰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집합적 숙의를 거치면서 의견의 지형이 얼마나 바뀌었고 어떤 입장이 결과적으로 다수의 지지를 얻었는지는 그 자체로도 중요한 문제이지만,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경쟁하는 여러 견해가 왜곡 없이 파악되고
그
근거가 제시되며, 토의와 설득을 위한 노력이 진행되는 과정 자체이다.
이렇게 볼 때 이미 구체적으로 좁혀진 선택지를 미리 정해놓고 찬성과 반대를 묻는 방식에서 벗어나 의제의 설정에서부터 결론 도출에 이르기까지 시민 들의 참여를 다층적으로 강화할 수 있다.
2026년 지방선거, 시민의회 실험과 도약의 장으로!
2026년 지방선거에서 그 동안 풀뿌리 민주주의, 지역민회, 지방분권 등 다양한 운동에 헌신해온 현장조직의 활동가들은 함께 힘을 합하고 지혜를 모아 기초단위에서부터 추첨형 주민의회를
제도화하는 조례가 도입되도록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또한 이를 기반으로 향후 중앙정치에도 시민의회법을 제정해 한국사회의 진로를 결정하는 개헌과 선거법개정, 그리고 검찰사법개혁 등 중대 사안들을 반드시 '시민의회' 방식으로 추진하고 결정해야 한다.
지정학을 포함하여 현재 한국사회가 봉착한 다중적 위기상황에서 현재의 정치권과 여의도식 정치로는 해결이 난망해 보인다.
한국사회의 위기에서 언제나 '민'이 위기극복의 선봉장이 되어 온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깨어있는 시민이 주인으로
참여하고
숙의하는 과정을 통해 집단지성의 지혜가 작동하는 장을 마련해 줌으로써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만약 시민의회가 우리 사회에서 자리잡는다면 세계의 그 어떤 민주주의보다는 새롭고 찬란한 민주주의를 만들어갈 수 있다.
시민의회로 대표되는 제3의 민주화운동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한 시대'를 활짝 열어갈 수 있다.
그러면 안된다는걸 아는데도 아이를 돌볼 때 자꾸 짜증이 나요. 나는 나쁜 엄마일까요?
‘과거 산후우울증이 있었나’에 대한 여부이다.
산후우울증을 경험했는가, 그리고 그 시기를 건강하게 보냈는가는 생각보다 가족 모두에게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과거 산후우울증 시기를 건강하게 지내지 못할 경우, 현재는 비교적 나아졌다고 해도 상당한 무력감과 감정기복이 남아있는 어머니들이 많다.
그리고 보호자의 만성적인 우울은 자녀의 정서 발달에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줄 수밖에 없고, 부부 관계에도 영향을 준다.
때문에 보호자의 정신건강은 가족의 행복을 위해 생각보다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심리검사 및 심리상담은 보호자의 안정적인 정신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아래 사례를 통해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겠다.
www.canva.com(아래는 가상의 사례입니다)
그러면 안된다는 걸 아는데도 아이를 돌볼 때 자꾸만 짜증이 나요. 나는 나쁜 엄마일까요?A씨는 30대 초반에 아들을 출산하여 현재는 28개월이 되었다.
다른 엄마들은 이 시기쯤 되면 자녀가 너무 예뻐서 둘째 생각이 나기도 한다는데 A씨는 왜 이렇게 여전히 힘들고 짜증만 나는지 모르겠다.
물론 엄마를 바라보고 눈을 빛내며 품에 안겨오는
아이를 보면 마음이 충만해진다.
하지만 여전히 몸은 너무 힘든데 해야 할 일은 너무 많고, 아이는 절대 내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다.
때문에 매일 피곤하고, 조급하고, 짜증이 난다.
그렇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아이에게 짜증내듯 화를 내는 일도 있다.
그러고 나면 죄책감이 밀려오고, 이도 저도 잘 해내지 못하는 것 같아 무기력해진다.
출산 후 1년은 그냥 너무 힘들었고, 그래서 자주 울었다.
하지만 남편은 너무 바빠서 자기 건강도 돌보기 어려웠다.
그리고 지방에 사는 시댁과 친정은 육아를 도와주기 어려웠다.
그래서 몸과 마음을 돌볼 새 없이 육아에 정신없이 임했다.
지금이야 그때보다는 많이 여유로워진 편이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짜증이나 감정기복은 이제 내 성격이 된 것만 같다.
1년 전 복직한 후에는 더 버거워져서, 일은 일대로 힘들고 육아는 육아대로 힘들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답이 보이지 않는다.
A의 성향 및 현재 마음상태 등을 알아보기 위해 종합정서검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를 간단하게 정리해보자면 아래와 같다.
검사결과: ‘예측, 통제 가능한’ 상황을 선호하는 기질.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들이 A씨를 힘들게 했을 수 있음. 현재는 우울증에 대한 치료가 필요.
기질 및 성격검사(TCI) 결과, A씨는 신중하고 꼼꼼한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을 미리 예측하고 대비하기 때문에 실수가 적지만 임기응변에는 능하지 못할 수 있다.
또한 A씨는 정서적 예민성이 높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에 문제를 미리 경험하지 않게끔 통제하는 것에는
능하지만, 이 과정에서 경험하는 자신의 긴장을 돌보는 것은 익숙하지 않을 것으로 고려된다.
또한 A씨는 자녀 등 주변 타인의 감정을 파악하는 일에도 미숙할 것으로 시사된다.
적절한 생활태도를 갖게끔 교육하는 건 가능하지만, 자녀가 미숙한 행동을 보였던 이유나 행동의 의도에 대해 파악하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다.
그리고 A씨는 우울증 진단이 내려졌다.
출산 후 산후우울증을 경험했던 것으로 보이며, 이것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 채 현재까지 이어져서 일정 수준 이상의 우울감이 지속되는
모습이다.
그리고 현재는 우울감이 일상 전반에 만연해있다 보니 비교적 평화로운 상황에서도 만족감이나 안정감만을 뚜렷하게 누리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그보다는 이후에 해야 할 일에 대해 생각하면서 ‘버겁다’고 여기거나, ‘언제 어디서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는 긴장만을 경험했을 수 있겠다.
검사자 제안 : ‘돌발 상황에 쉽게 당황하고 우왕좌왕 하는 나’를 이해하고 돌봐주세요.
A씨는 현재 우울증으로 인해 자책감이 큰 것으로 보인다.
또한 ‘앞으로도 잘 키우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도 만연해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러한 A씨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잘 키우는 방법’에 대한 교육이 아니라 ‘쉽게 당황하고 지치는 나를 다독이는 법’을 익히게 도와주는 것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양육인데, A씨는 기질적으로 이런 상황에 매우 취약하다.
남들보다 피로감이 배로 쌓일 수밖에 없고, 대처는 더욱 미숙할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지금 내가 원래 잘 못하는 일’에 도전하고 있다는 것, ‘이 기질에 이 정도 하는 것만해도 충분히 노력하고 있는 것’임을 스스로 알아주고 다독여준다면, 정신적 피로감이 덜 쌓일 수 있다.
또한 나의 미숙한 면을 인정해주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은 양육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자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당황하는 나’ 또한 예측가능한 부분이 되기 때문에 비교적 차분하게 대응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현재 마음상태 상 혼자 힘으로 이렇게 스스로를 도닥이는 것은 매우 어려울 수 있다.
때문에 우울증에 대한 약물치료 개입 및 상담 치료 개입을 권한다.
그리고 엄마가 자신의 스트레스를 현명하게 감당하고 나아가는 것을 볼 때, 아이와 가족들 또한 함께 성숙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정민 임상심리사 ljmin0926@naver.com
아이가 친구들 무리에서 떨어져 나왔대요. 그 이후로 부쩍 의기소침해졌어요 [이정민의 ‘내 마음의 건강검진’⑱]
1학기는 나와 잘 맞을만한 사람을 찾아서 사귀는 것이 중요한 시기이고, 2학기는 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사실 2학기는 또래관계 고민을 가진 아동, 청소년 내담자가 많아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올해 유독 성격이 안 맞는 친구들과 같은 반이 되는 바람에 고생하는 아이도 있고, 관계 유지의 어려움을 해마다 경험하는 아이도 있다.
그리고 심리검사 및 심리치료는 이러한 아이들의 고민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된다.
ⓒ(아래는 가상의 사례입니다)
딸 아이가 친구들
무리에서
떨어져
나왔대요. 그 이후로 부쩍 의기소침해졌어요.
초등학교 4학년 여학생인 A는 사교적이고 외향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1학기 때는 인기가 많은 편이었고 친한 무리도 금세 만들었다.
A까지 총 5명 무리였고, 왁자지껄하게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전부터 친구들이 A만 멀리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하며, 2학기가 되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A를 멀리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이에 SNS로 ‘왜
나를 멀리 하냐’
물었지만 친구들은 ‘우리가 언제 그랬냐’며 A를 예민한 사람 취급했다.
그리고 그렇게 싸우다가 무리에서 떨어져 나갔다.
이유도 모른 채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A는 그 이후로 부쩍 의기소침해졌고, 혼자 쉬는 시간을 보내는 날들이 많아졌다.
때로는 점심을 굶기도 했다.
그리고 A의 어머니는 딸에 대한 걱정이 점점 커져만 간다.
그 결과를 간단하게 정리해보자면 아래와 같다.
검사결과: 매력적인 첫인상을 줄 수 있을 만큼 외향적이지만, 섬세함과 ‘눈치’는 부족
A는 기질적인 에너지 수준이 높고 외향적인 경향을 가진 것으로 나타난다.
또한 주변의 주목과 애정을 얻고자 하는 욕구도 높은 것으로 보인다.
이에 낯선 또래들에게 주저없이 다가갔을 것으로 고려되며, 관심을 끌기 위해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풍부하게 이야기했을 것으로 시사된다.
또한 언어적 유창성이 풍부하기 때문에 더욱 적극적인 의사소통을 나눌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는 매우 매력적인 첫인상을
줄 수 있었을
것으로 고려된다.
다만 한편으로, A는 주변을 세심하게 파악해가며 교류하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상대방이 자신의 감정을 직접 표현하지 않는 이상은 섬세하게 감정을 파악하는 것이 미숙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어떤 말과 행동을 할 때 주변 분위기가 어떤지, 상대방이 그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해 파악하기 어렵다 보니 의도치 않게 분위기를 흐리는 경우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는 더러 눈치 없는 모습으로 비춰졌을 수 있겠다.
또한 A는 감수성이 풍부한
것으로 고려된다.
이에 갈등이 생겼을 때는 내면의 강렬한 불쾌감에 압도되다가 감정적으로 대처했을 것으로 시사된다.
그리고 더욱 성급하고 미숙한 대처를 보였을 수 있겠다.
아울러 갈등이 벌어진 다양한 원인들에 대해 숙고하는 것은 어렵다 보니, 현재는 그저 스스로를 자책하고 위축된 것으로 고려된다.
검사자 제안 : 주변을 관찰하는 연습하기. 말하거나 행동하기 전에 두 번 더 생각하기.
A는 자신과 같이 외향적이고 의사표현이 직설적인, 소위 말해 ‘뒤끝이 없는’ 친구들과는 비교적
관계를
잘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섬세한 성향을 가진 친구들에게는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거나 부담감을 줬을 가능성이 엿보인다.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은 풍부하지만 주변 정보를 탐색하는 능력이 미숙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A에게 필요한 것은 ‘상대방을 관찰하는 연습
꼭 대화하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평소에 반 친구들이 혼자 있는지, 여럿이 모여 있는지, 어떤 주제의 대화를 주로 나누는지 등에 대해 늘 관찰하는 것이 습관화 되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관찰한 바에 대해 가족이나 심리치료사와 함께 나누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면 더욱 도움이 된다.
또한 A는 다소 즉흥적인 성향이 시사되기 때문에, ‘말하기 전에 두 번 더 생각하는 것’이 습관화되게끔 노력하면 좋다.
곧장 말하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 우선 입 안으로 꿀꺽 삼키고, 주변 사람들을 충분히 관찰하는 것. 그리고 지금 이 말을 하는 것이 분위기에 맞을지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되풀이 하면서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성공하게 되면, 기존의 자신감 있는 태도 또한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경험이 해마다 쌓이면서 점차 성숙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처 받고 위축되었던 경험을 통해 또 한 번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정민 임상심리사 ljmin0926@naver.com
남편에게 서운한 아내 vs. 아내의 서운함이 버거운 남편 [이정민의 ‘내 마음의 건강검진’⑰]
부부는 싸우더라도 쉽게 화해한다는 말이다.
다만 어떤 싸움은 화해가 쉽지 않은 경우가 있다.
특히 서로 성격이 다른 경우에는 상대방이 화가 난 이유를 파악하지 못하거나, 파악하더라도 공감하지 못하면서 더욱 골이 깊어지기도 한다.
이럴 때 심리학은 화해를 도와줄 수 있다.
서로의 기질과 성격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주고 적절한 대화 방법에 대해 제안해줄 수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지, 아래 사례를 통해 알아보겠다.
(아래는 가상의 사례입니다)당연한 것도 생각 안 하는 남편이 너무 답답해요결혼 2년차인 30대 A씨는 남편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연애 때는 제법 듬직해서 의지가 되는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결혼하고 나서는 태도가 완전히 딴판인 것이다.
신혼집을 구하기 위해 대출을 알아볼 때도, 가구나 가전을 구할 때도 A씨가 모두 발품을 팔았다.
결혼 후에도 크고 작은 문제들에 대해 A씨 혼자만 걱정하는 느낌이다.
남편에게 불만을 토로하면 잠시 고민하는 시늉은 하지만 그 때 뿐이다.
어떨 때는 ‘잘 하는 사람이 하는게 낫다’고 피해버리기도 한다.
이런 식이라면 나중에 자녀가 생겼을 때 정말 힘들어질 것 같아 2세에 대한 고민도 깊어진다.
A씨의 남편인 B씨도 할 말은 있다.
B씨는 우선 너무 바쁘다.
새벽 같이 출근해서 밤 늦게 퇴근하고, 더러 주말에 출근을 하는 날도 있다.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는 아내에게 미안하기는 하지만 체력을 겨우 충전하기 위해 잠만 자게 된다.
그리고 B씨보다는 아내가 여러 분야에 대한 취향이 더 확고해서 맞춰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
B씨가 ‘이런게 좋지 않냐’고 제안해도 아내가 거절한 일이 여러 번 누적되면서, 먼저 알아보고 선택하기를 체념하기도 했다.
돈 벌어오는 것만 감당하기도 버거운데, 이런 마음을 좀 알아줄 수 없나 서운해진다.
A씨와 남편 B씨의 기질이나 성격, 마음상태 등을 파악하고자 기질 및 성격검사(TCI)를 포함한 정서검사를 실시했다.
검사 결과를 간단하게 정리해보자면 아래와 같다.
ⓒ검사결과: 꼼꼼하고 신중한 아내 vs.
좋은 게 좋은 남편/ 함께 고민하고 싶은 아내 vs. 각자 잘 하는 분야에 집중했으면 하는 남편검사 결과, A씨는 자극추구(NS) 기질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고, 위험회피(HA) 기질과 사회적 민감성(RD)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원하는 것이 생기면 매사를 꼼꼼하게 알아본 뒤 신중하게 결정할 것으로 고려되며, 섣부른 결정은 절대 내리지
않으려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원만한 인간관계를 중요시하는 경향이 엿보이는 바, 문제 상황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고자 할 수 있겠다.
때문에 남편과 의사결정을 내릴 때도 ‘함께’, ‘신중하게’ 고민하고자 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남편 B씨는 자극추구(NS)와 위험회피(HA)가 모두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
좋은 일에도, 나쁜 일에도 큰 감정적인 동요가 없는 것이다.
때문에 원하는 것도
싫은 것도 뚜렷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사회적 민감성(RD)이 낮은 남편은 문제 상황이 생겼을 때 주변에 털어놓기 보다도 혼자 고민한 뒤 문제를 해결하는 경향이 엿보인다.
그리고 상대방의 감정적 호소에도 잘 흔들리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아울러 이러한 모습은 무던하고 듬직한 모습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매사에 무관심한 모습으로 비춰질 수도 있겠다.
검사자 제안1 : 아내는 남편의 무던함을 인정하기. 남편에게 도와줬으면 하는 것을 명확하게 제시하기.아내
A씨에게는,
남편과 자신이 생각하는 ‘당연한 것’이 매우 다름을 인정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남편 B씨는 욕심도, 불만도 많지 않다.
때문에 A씨 만큼 적극적이지 않을 수 있다.
또한 매사에 ‘당연히’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게 아니라, ‘당연히’ 각자 잘하는 것을 도맡아 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다만 근면함과 책임감이 높은 것으로 시사되기 때문에, 가장으로서의 역할은 충실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남편의 기질적인 무던함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 원하는 것이 있을 때는 업무를 지시하듯
명확하게 전달해보실
것을 제안한다.
더불어 함께 고민해야 하는 것이 생겼을 때는 남편에게 ‘다른 건 몰라도 이건 혼자 결정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처리해야 할 고민거리에 대해 명확하게 제시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검사자 제안2 : 남편은 아내의 하루 일과에 대해 궁금해하는 태도를 갖고 경청하기. 아내의 희생에 대해 분명하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현하기.남편 B씨에게는, ‘아내는 칭찬과 애정을 먹고 사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아마 A씨는 B씨의 기질을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어서 맞춰주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B씨는 정서적으로 둔감하기 때문에 아내의 이러한 배려를 잘 알아채지 못하고 넘어갔을 수 있다.
때문에 B씨는 이제부터 ‘아내가 무엇을 배려해주고 있는가’에 대해 관심을 갖고 관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때문에 매일 30분 정도는 ‘아내가 하루 일과를 어떻게 보냈는지’에 대해 경청할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아내에게 ‘고생했어’, ‘수고했어’, ‘늘 고마워’라고 이야기하셔야 한다.
이 말은 습관이 되어서 곧장 튀어나올 수 있게끔 반복하시는 것이 좋다.
꼭 아내가 원하는 만큼
중대사에 관여하지 않더라도,
고마움을 충분히 표현 할 수 있다면 부부 사이가 훨씬 원만해질 것이다.
ⓒ이정민 임상심리사 ljmin0926@naver.com
이재명은 좋겠다, 사병(私兵) 많이 거느려서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데일리안
=
데스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30일, 위증교사 혐의로 징역 3년을 구형받았다.
그는 이날 1심 결심공판에 출석하면서 검찰을 맹비난했다.
“총칼로 나라를 어지럽히던 군사독재 정권이 물러간 지가 수십 년인데 이제 영장을 든 검사들이 독재국가를 만들고 있다.
이 대표 한 사람 잡자고 대한민국의 검찰이 독재국가를 만든다는 뜻이겠는데 21세기에 천동설(天動說) 같은 궤변을 듣는 기분이 어이없고 떨떠름하다.
명색이 거대 야당의 대표다.
지난 대선 때는 0.73%포인트의 표 차로 아깝게 진 정치 스타였다.
그런 정치적 위상에 비해 대응 태도가 너무 좀스럽다.
징역 3년 형을 구형받고 나오면서 그는 호기롭게 말했다.
“구형이야 5년 7년도 할 수 있다.
그거야 검사 마음 아니겠느냐. 재판이란 실체적 진실에 따라서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겁나면 목소리가 커지게 마련
이 대표가 이 이치를 이제야 겨우 깨달았을까. 일반 국민도 다 아는 일인데 법률가인 이 대표가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런데도 그간 자신에 대한 수사와 관련해 그악스럽게 검찰을 비난하고 협박했던 것은 사람이 너무 가벼워서인가, 아니면 뭔가 찔리는 구석이 있기 때문인가?법원의 재판을 신뢰한다면, 그의 말 대로 검사가 어떤 구형을 하든 놀라고 겁낼 필요가 없다.
그건 알지만, 수사 및 공소제기 검사가 괘씸해서 분풀이하지 않을 수 없었던 걸까? 일반인이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원내 제1당의 대표이자 차기 대권 경쟁에 나설 정치리더가 단지 분풀이를 위해 ‘이 나라 역사 최악의 정치 검사’라는 식으로 모질게 매도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떳떳하지 못한 점이 있어서 오히려 위협적인 태도로 대드는 게 아닌가?“
나 혼자 감당하게 할 거야? 모두가 대표의 방패로서 그 책무를 다해야 하는 것 아닌가?
당 소속 의원, 당직자, 당원들에게 이런 뜻으로 보낸
메시지일 수도 있다.
작년 9월 이 대표는 검찰의 체포 동의 요구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단식(아마도)만으로는 불안했던지 당 소속 의원들에게 “검찰 독재의 폭주 기관차를 국회 앞에서 멈춰 세워 달라고 호소(지령?)하는 장문의 SNS 메시지를 보낸 바 있다.
그 점을 감안하면 이 대표의 검찰에 대한 분노 표출이 민주당 ‘총동원령’으로 들릴 소지가 다분하다.
그는 지난달 20일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에서 징역 2년을, 30일 위증교사 재판에서 다시 징역 3년 형을
구형받았다.
1심 선고일은 11월 15일과 25일로 각각 지정됐다.
그는 이외에도 △대장동·백현동 개발 비리 의혹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 등 2개의 재판을 받고 있지만 발등의 불은 앞의 2개 재판이다.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 이상, 위증교사로 집행유예 이상의 선고를 받으면 차기 대선 출마 자격을 상실한다.
다른 재판은 재주를 피워 대선 이후까지 시간을 끌 수 있겠으나, 앞의 두 재판은 그 이전에 대법원의 선고까지 받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법원행정처가 지난달 30일 일선 법원에 보낸 ‘공직선거법
위반사건 신속
재판’ 권고문이 판사들에 의해 존중될 경우를 전제로 한 예측이다.
공직선거법 제270조는 ‘선거범의 재판 기간에 관한 강행규정’으로 1심 6개월, 2심과 3심은 3개월 이내에 판결을 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간엔 아예 사문화되다시피 했던 이 조문의 준수를 대법원이 특별히 주문한 만큼 일선 판사들이 흘려듣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대표에 대한 최종심도 종전의 예상보다는 훨씬 빨리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하겠다.
정치인 언어 이렇게 험악해서야
이 같은 상황 변화 때문에 윤석열 대통령과 검찰, 나아가 사법부에 대해서까지 압박의 강도를 높여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됐으리라는 점은 이해할 여지가 있다.
그렇지만 검찰의 악마화는 너무 나간 언어폭력이다.
이 대표 말고도 형사 재판받는 피고인은 수없이 많다.
그들 모두에 대해 검찰이 없는 죄를 만들어 덮어씌우고 있다는 것인가? 그러므로 검찰을 아예 없애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아니면 이 대표 개인에 대해서만 검찰이 저의를 갖고
악마적 수사·기소를
했다는 것인가? 그런 뜻이라면 이 대표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기에 검찰이 기관 자체(혹은 정권)의 존폐를 걸고 수사 및 기소 도박을 벌이고 있다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을 해줘야 한다.
검찰의 구형이 떨어지자 민주당 쪽에서는 성토의 목소리가 봇물이 터졌다.
예컨대 이런 내용들이다.
“이 대표에 대한 검찰의 무리한 구형은 검찰 스스로 자신들이 윤석열 정부의 칼잡이임을 자인한 것이다.
검찰은 검찰 출신 대통령 앞에서 도대체 얼마나 더 망가질 작정인가.(1일, 한민수 민주당 대변인 국회 브리핑).
“검찰은 위증교사와 모순되는 이 대표의 말을 고의적으로 삭제, 왜곡해 공소장을 조작했다.
조작된 녹취 하나로 야당의 대표를 위증 교사범으로 몰아가는 검찰의 행태는 파렴치하기 짝이 없다.
(9월 30일,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 논평).
“오늘 검찰은 ‘내게 한 문장만 달라. 그러면 누구든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라고 말한 독일 나치의 괴벨스보다 더 악독한 괴물이 되고 말았다.
(같은 날, 민주당 검찰독재대책위원회 기자회견).
“윤석열 정권에 충실한 사냥개로 전락한 현 상황이 계속된다면 해체 수준의 검찰개혁은 필연이 될 것이다.
(9월 20일, 한준호 민주당 최고위원).
“검찰이 기록을 조작하고 은닉하고 이런 부분이 있었다.
그런 부분을 좀 법리적으로 검토해서 적극적으로 고발 조치를 할 예정이다.
(같은 날, 김동아 민주당 의원).
그의 결백 못 믿는 당 소속 의원들
“권력에 굴종한 공정과 상식을 벗어난 정치검찰의 정치 보복의 끝은 분노한 국민의 검찰개혁 명령임을 명심해야 한다.
(같은 날, 전현희 민주당 의원 페이스북)
그렇게 결백을 확신한다면 무엇이 두려워 소리를 질러대는가? 재판부가 어련히 알아서 진실을 밝혀줄까. 자꾸 되는 소리 안 되는 소리 질러대면 재판부도 불쾌해지지 않을까? 압박하는 말을 듣고 기분 좋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걸 모르지 않을 것이면서도 분개의 목소리를, 남 들으라고 내는 것은 이 대표의 결백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짐작된다(아마 그럴 것이다).이 대표 한 사람의 사법 리스크를 해소하자고 대의 민주정치의 기본 틀을 무너뜨려서 될 일은 아니다.
이 대표가 받는 11개의 혐의 대부분은 개인적인 영역의 것들이다.
정치적 신조·사상·이념·선택 등 공적 영역의 혐의는 없다.
그렇다면 정당이 나설 일은 못 된다.
민주당 소속 의원이나 당료들, 그리고 열성 당원들이 이 대표의 사병(私兵)이 아니라면 재판의 문제는 피고인 본인에게 맡겨두고 의원의 역할에 충실해야 옳다(이것이 국민의 당연한 요구다). “그렇게는 못 하겠다.
나는 이 대표의 충직한 사병이다라고 주장하고 싶은 의원이 있다면 자신의 세비와 보좌진의 월급은 주인에게
청구하시라.
이러나저러나 이 대표는 정말 좋겠다.
유권자의 선택을 받아 높직한 지위에 오른 멀쩡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사병 노릇을 해주니 이보다 더 신나는 권력 놀음이 또 있을까. 21세기의 선진 대한민국에서 왕조시대의 군신 관계, 조선시대의 사화를 보는 기분이 정말 착잡하다.
이 대표 자신이 말했듯 ‘그까짓 5년짜리 정권이 무슨 대수라고’, 그걸 탐내서 이 난리인가. 지금이라도 상식으로 회귀하는 것이 다 같이 사는 길이다.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가?문득 의문이 생긴다.
민주당 사람들
유난히 ‘반일(反日)’ 정체성을
과시하던데, 일제의 식민 통치에 맞서 조국 광복 투쟁을 벌였던 선열들이 바랐던 바가 이 난장판 정치였을까? 이렇게 편을 갈라 사생결단의 정치를 하라고 그분들이 목숨을 바쳐 광복의 길을 닦았던 것일까? 경쟁 상대에게 ‘친일’의 낙인만 찍으면 자신은 저절로 애국자가 된다고 정말 믿고 있는가? ‘민주당의 아버지’로 불리기까지 한 이 대표와 그의 열렬한 추종자들 생각이 궁금하다.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진보도 보수도 아닌 ‘정신 승리’에 입각한 가짜 역사
송평인 논설위원일제 시대 조선인의 국적이 일본임을
명시한
여권은 다수 남아있다.
반면 일제 시대 조선인의 국적이 일본이 아니거나 대한민국임을 보여주는 여권은 하나도 없다.
당연히 없다.
나라를 잃었으니까.조선인의 국적은 1910년 일본의 조선 병합 이전에, 이미 1905년 을사늑약 이후로 대외적으로 일본이었다.
1907년 전라도 해남군에 주소를 둔 박창규라는 조선인의 여권에는 ‘일본제국 해외여권’ ‘조선신민(臣民)전용’이란 제목이 붙어 있다.
미국의 보호령인 괌의 주민이 대외적으로 미국 국적을 갖는 것과 비슷하다.
병합 이후인
1916년 하와이로
이민 간 천현희라는 조선인의 여권에는 ‘일본제국 해외여권’, 1938년 역시 하와이로 이민 간 이동진이라는 조선인의 여권에는 ‘대일본제국 여권’이라는 제목이 달려 있다.
다만 병합이 된 다음이어서인지 ‘조선신민전용’이란 말은 사라졌다.
이종찬 광복회장과 정청래 등 더불어민주당 몇몇 의원들이 국민을 상대로 겁박하듯 일제 시대 조선인의 국적에 대해 묻기 전까지 대다수는 그런 걸 생각해본 적이 없다.
동아일보가 보도한 마라톤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소 사건도 있고 해서 당시 국적은 대외적으로 일본이지
않았겠나
추측하는 정도였다.
상식적인 추측이 옳았다.
내가 일제 시대 조선인의 국적에 대해 잠시나마 생각해본 것은 2009년이다.
당시 보훈처발로 일제 시대 국내에 호적이 없어 ‘무국적자’로 취급받던 독립유공자들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게 된다는 보도가 나왔다.
일제 시대 국내에 호적이 있던 사람은 1948년 대한민국 국적법 제정 이후 대한민국 국적으로 자동 계승됐지만 호적이 없던 사람은 계속 무국적자로 남았던 것이다.
세계가 한 나라라면 국적은 필요 없다.
국적은 상대할 외국이
있을 때 의미가
있다.
그래서 국적이라고 하면 여권을 떠올린다.
물론 여권에 기재되는 국적은 그 나라에 속해 있음을 증명하는 자료에 기초해서 주어진다.
그 자료가 일제 시대에는 호적이었다.
지금의 우리는 전근대적인 신분 사회에 산 것도 아니고 제국주의를 경험한 것도 아니어서 한 나라에 두 종류 이상의 내국인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잘 못한다.
일제하에서는 호적이 있는 곳에 따라 일본인 조선인 대만인 등으로 나뉘었다.
조선인 대만인 등은 일본인과 같은 권리를 누리지 못했다.
온전한 형사사법절차 등은 물론이고
외국적 취득 등 일본인에게 적용되는 국적법의 혜택도 받지 못했다.
그렇다고는 하나 대외적으로 당시 조선인과 대만인이 일본 국적이 아닌 것은 아니었다.
미국 남부의 흑인들은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시민권과 국적 사이에 괴리가 있었다.
그들은 미국 시민으로서의 온전한 권리를 누리지 못했지만 국적은 미국이었다.
일제 시대 조선인 국적 문제는 스스로도 대내적인 권리의 문제와 대외적인 국적의 문제를 구별하지 못하는 자들이 이를 한데 뒤섞어 불러일으킨 혼란이다.
동아일보는 1923년
일제 시대
만주 간도 용정에서 일어난 탈적(脫籍) 운동을 보도했다.
그해 2월 용정에서 한 조선인이 중국인 병사에게 살해당하자 그곳 조선인들은 대회를 열어 중국 정부에 항의함과 동시에 일본 국적에서 벗어나자는 운동을 벌였다.
일본이 조선인을 보호해 주지도 않으면서 일본 국적에 매어 놓았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조선인은 간도에 있는 조선인까지 국내에 호적을 두고 있는 한 일본 국적이었고 그 사실을 조선인 스스로도 잘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일제 때 나라 잃은 설움을 말하면
매국노 취급받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한일병합이 국제법적으로 원천 무효이기 때문에 소급해 일제 시대에도 나라를 잃은 적이 없다는 주장은 법적(de jure) 상태와 사실적(de facto) 상태도 구별하지 못하는 치기를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삶이 법으로 환원되지 않듯이 역사는 법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한일병합이 무효이든
아니든 일본은 조선을
강점했고 그 사실이 선조들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한일병합이 무효라고 해서 그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다.
일제 시대 나라를 잃은 적이 없기 때문에 일제 시대 조선인의 국적이 일본이 아니라거나 대한민국이라는 주장은 치기가 치기를 낳은 끝에 생겨난 거짓말이다.
그것은 진보 사관에 입각한 것도, 보수 사관에 입각한 것도 아니고 그냥 ‘정신 승리’에 입각한 가짜 역사일 뿐이다.
최근 정형돈이 20년째 불안장애를 앓고 있다고 고백했다.
이게 충격인 것은 많은 이들이 정형돈의 불안장애 문제가 이미 해결됐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과거 '무한도전'이 절정기를 구가할 때 정형돈이 불안장애 문제로 갑자기 하차했었다.
그후 복귀해 현재까지 잘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불안장애로 고통 받지는 않을 거라 생각됐다.
하지만 이번에 정형돈은 자신의 불안장애가 끊임없이 계속 이어졌다고 했다.
연예인의 불안장애 치유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새감 느끼게 한다.
정형돈은 몇 가지 예를 들었다.
그가 급하게 뛰어가고 있었는데 한 사람이 "정형돈이다"라고 외치면서 그의 후드티를 잡아당겨서 그가 뒤로 넘어졌다는 것이다.
한번은 그가 돌도 안 지난 아기를 안고 나갔는데 한 여성이 "어머 형돈 씨 애!"라고 하며 아기를 뺏어 갔다고 한다.
이런 식의 행동들이 그의 불안을 가중시켰다는 것이다.
과거 정형돈은 '사람들이 자신을 찌를 것 같다'는 불안에 시달린다고 했었다.
그는 온라인 상에서
많은 비난을 받았었다.
'무한도전' 초기에 안 웃긴다는 비난을 받은 것인데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상황이 반전돼 찬사가 쏟아졌다.
당시 '무한도전'에 대한 시청자 반응이 워낙 뜨거웠다.
시청자 구미에 맞으면 극렬한 찬사가 이어지다가 조금이라도 기대에 어긋나면 집단 공격이 터지는 식이었다.
그렇게 과열된 관심 속에 비난과 찬사가 교차하면서 사람들 입방아의 도마 위에 오르는 건 매우 부담스런 일이다.
결국 정형돈은 '무한도전' 복귀를 포기했다.
그러자 '무한도전'을 떠나기 위해 불안장애라는 거짓말을
한 것 아니냐는 비난이 나왔다.
한때 찬사를 보냈던 사람들이 바로 공격 모드를 돌아선 것이다.
이런 분위기이니 정형돈이 '사람들이 나를 찌를 것 같다'라고 느꼈을 것이다.
연예인들이 일반적으로 처해있는 상황이다.
특히 악플 문제가 날로 심각해진다.
스타라며 떠받들다가 태도 논란이라도 한번 터지면 바로 악플 사태가 벌어진다.
과거 한 여성 연예인은 영화 시사회 무대인사 때 잠시 짝다리 자세를 취했다는 이유로 악플 세례를 받기도 했다.
이러면 극도의 긴장 속에서 살게 된다.
사생활 침해와
루머의 문제도 심각하다.
연예인의 사적인 부분을 심심풀이 땅콩처럼 소비하는데 사실관계도 따지지 않는다.
그 결과 근거 없는 연예인 사생활 이야기를 퍼뜨리는 개인방송이 넘쳐난다.
밥 먹는 도중이나 그밖에 다양한 사적 상황에서 불쑥불쑥 아는 척하면서 여러 가지 무리한 요구를 하기도 한다.
아무 때나 카메라를 들이대고 응대를 제대로 안 해주면 거만하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이런 구조에서 연예인의 속이 허물어져간다.
그 결과 불안장애, 공황장애, 우울증, 수면장애 등이 연예계에 넘쳐나는 것이다.
약물에 손대기도 한다.
흔히들
이런 증상을 연예인 직업병으로 치부한다.
그러면서 연예인인 이상 그런 피해는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도 한다.
하지만 연예인이라고 정신적인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더군다나 이건 생명하고도 연결될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더 엄중하게 대처해야 한다.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결과 생명을 끊은 연예인이 한둘이 아니니 말이다.
문제는 의외로 많은 이들이 연예인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연예인을 인형이나 샌드백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악플을 던지고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루머를 소비한다.
사회생활하면서 쌓인 울분을 연예인 때리기로 풀기도 한다.
이런 상황 속에 멀쩡한 시민들까지도 연예인 악플 군단에 가세하곤 한다.
그런 악플 군단이 악인은 아니다.
악플러들을 직접 만나보면 대부분 평범한 시민이라서 깜짝 놀란다고 한다.
직접 대면한 사람들에겐 모질게 못할 이들이 연예인에겐 거리낌 없이 악플 세례를 퍼붓는다.
앞에 언급한 것처럼 연예인을 사람이 아닌 샌드백처럼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자 연예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능력이 사라지면서
마치 소시오패스처럼 대중이 연예인의 아픔에 무감각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그러니 연예인들이 불안장애, 공황장애 등의 고통을 호소해도 안타까워하지 않고 악플 등 공격행위를 이어간다.
이러다간 피해자가 계속 양산될 것이다.
생명까지 위협하는 정신적 고통이 직업병이라고 가볍게 여겨져선 안 된다.
연예인도인권과 가족이 있는, 고통을 느낄 줄 아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분명히 인지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