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현실 인식, 이 정도로 민심과 동떨어져 있나


‘빈손 회동’ 일차적 책임은 갈라파고스 인식 대통령 몫

서로 다른 곳 보고 있는데 추가 회동한들 뭔 의미 있나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간 81분 회동이 결국 알맹이 없는 빈손으로 끝난 듯하다.
윤 대통령은 한 대표가 제기한
▶대통령실 내 김건희 여사 라인 인적 쇄신
▶김 여사 대외활동 중단
▶김 여사에 제기된 의혹 설명 및 해소 등 3가지 요구 사항에 대해 수용의 뜻을 밝히지 않았다.
특별감찰관 임명 요구도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대표 측 박정하 비서실장은 브리핑에서 “한 대표가 충분히 말씀은 전했고, 다만 대통령 반응이나 분위기는 용산에 확인해 보라는 말만 반복했다.
“해가 진 상황이라 한 대표 표정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고도 했다.
인식 차이, 회담 결렬을 시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회동은 여권의 운명을 가를 분수령으로 평가받았지만, 이제 한 대표의 결심에 따라선 당정이 갈라서는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도 부인하지 못하게 됐다.
당장 김 여사 특검법 재표결에서 한 대표 측 세력 8명 이상이 이탈하면 특검법이 확정되기 때문이다.

면담의 구체적 내용은 오늘 점차 밝혀지겠지만, 빈손 회동으로 확인될 경우 일차적 책임은 윤 대통령에게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민심이 김 여사에 등을 돌린 걸 알면서도, 대다수 보수 세력까지 ‘마지막 기회’라고 경고하는데도 윤 대통령이 이런 대응을 보였다면 일단 놀랍다.
한 대표의 김 여사 관련 요구에 즉각 굴복하는 모양새가 힘들다면 적어도 “국민적 걱정을 충분히 들었고, 민심에 부응하는 해법을 모색하겠다는 정도의 전향적 자세를 내놨어야 했다.
그리고 다음 달 10일 임기 반환점을 맞이하는 시점에 주도적이고 자연스럽게 당정 쇄신을 하든, 김 여사 제어 장치를 만들든 했으면 될 일이었다.

대통령실은 한 대표와의 회동 시간도 외교 일정을 이유로 20분가량 늦췄다.
브리핑도 하지 않았다.
불쾌감을 이런 식으로 노출해선 곤란했다.
국민 속으로 다가가기 위해 용산으로 대통령실까지 옮겼지만 대통령 스스로 용산을 외딴섬, 갈라파고스로 만들고 있는 건 아닌가. 대통령의 현실 인식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제 책임은 오롯이 대통령의 몫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됐다.

대통령실은 그동안 “김 여사 활동에 불법은 없다고 항변해 왔다.
그래서 번번이 대응할 타이밍을 놓쳤다.
이번 면담도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지금 국민이 문제 삼는 건 김 여사의 불법이나 위법보다는 어떻게 신뢰성 없는 인물에게 명품백을 받고, 오랜 기간 문자를 나눌 수 있느냐는 허망함과 분노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이런 민심을 외면하고 있다.
한 대표도 면담 내용을 사전에 공개해 대통령의 운신 폭을 좁혔다.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는데,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추가 회동을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85981

 

시간은 윤 대통령의 편이 아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위기? 무슨 위기?(Crisis? What crisis?)

요즘 정국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반응을 보면서 떠오른 말이다.
원래 이 표현은 영국 노동당 총리 캘러헌을 향한 것이었다.
1978년 영국 사회는 인플레와 노조의 파업 등으로 심각한 경제적, 사회적 혼란을 겪고 있었다.
이른바 ‘불만의 겨울’이다.
그렇게 명명될 정도로 당시 상황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컸지만, 캘러헌 총리는 국민의 이런 불만과 어려움에 공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혼란(chaos)이 있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둔감한 대응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의회의 내각불신임으로 이어졌고, 뒤이은 총선에서 노동당은 마거릿 대처의 보수당에 권력을 넘겨주고 말았다.

정책 난맥, 부인 논란에 민심 동요

대통령은 ‘무슨 위기?’ 팔짱만 껴

선거 치러야 하는 여당은 위기감

여당과 관계서 대통령은 이미 ‘을’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통령의 업무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가 20%대 초반까지 떨어진 데서 알 수 있듯이, 윤석열 정부의 국정 운영에 대한 국민의 불만은 높다.

임기의 절반이 지나가고 있는데도 딱 부러지게 풀어낸 정책이 없다.
의사들과의 다툼은 장기화하지만 별다른 해결책이 안 보이고, 노동, 연금, 교육 등 약속했던 개혁 정책도 지지부진하다.
이런 상황에서 잇달아 터져 나오는 대통령 부인을 둘러싼 각종 논란은 안 그래도 불편한 민심에 불을 질렀다.
더 불편한 건 대통령의 안이함이다.
민심이 요동치고 있지만 윤 대통령은 사안의 심각함을 공감하지 못한 채, ‘위기? 무슨 위기?’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대통령이 둔감하게 사태를 바라보고 있다고 해도 여당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팔짱 끼고 편히 지켜볼 수가 없다.
윤 대통령은 여당을 지원 조직 정도로 생각하고 당연히 자기를 지지하고 따라야 할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대통령에 대한 여당의 협조는 자동적인 것이 아니다.
대통령은 한번 당선되고 나면 그만이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선거를 겪어야 하는 여당의 처지는 대통령과 다른 것이다.
지난 국회의원 선거 때 국민의힘이 참패한 데서 알 수 있듯이, 대통령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면 그 결과는 오롯이 여당이 뒤집어써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당은 정치적 위기 국면에 예민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 사람들은 듣기 싫은 소리에 대통령이 화를 내면 입을 다물 수밖에 없을지 모르지만, 민심이 위험하게 출렁거리는데도 대통령이 안 움직이면 스스로 살기 위해서라도 여당은 쓴소리를 할 수밖에 없다.

어제 ‘마침내’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회동했다.
그동안 여당 대표와의 회동에 대한 대통령의 태도를 보면서, 대통령이 여당 대표와 만나는 게 이렇게도 어려운 일일까 싶었다.
그 회동이 결정된 후 이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면서도 이게 이 정도로 주목받을 일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윤 대통령은 자신이 ‘양보해서 만나 준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사실 대통령-여당 관계에서 시간은 대통령의 편이 아니다.
시간이 갈수록 여당은 임기 말을 향해 가는 대통령, 더욱이 인기 없는 대통령과는 차별화하려고 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 여당 내에 친이-친박 간 갈등이 있었고, 여당 내 분열은 결국 이 대통령이 추진해 온 세종시 수정안의 좌절로 이어졌다.
이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타격을 입었지만 차기 주자로서 박근혜는 이 대통령과 차별되는 자신의 이미지를 분명히 했다.

상명하복의 위계적 조직에 익숙한 윤 대통령은, 한때 자신의 부하였던 여당 대표를 여전히 그렇게 여기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여당의 도움을 절실하게 부탁해야 하는 건 오히려 대통령이다.
점점 더 여당은 대통령에 대한 지원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겨우 8석의 근소한 의석으로 대통령 거부권이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여당과의 원만한 관계 유지는 윤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국정을 이끌고 나가기 위해 제일 중요한 일이다.
대통령이 이들을 붙잡아 두기 위해 줄 수 있는 ‘선물’도 마땅치 않다.
공천 여부가 달려 있는 선거는 윤 대통령 임기 중에는 없고, 옛날처럼 정치 자금을 나눠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대통령이 여당에 낮은 자세로 먼저 다가서야 하는 것이다.

대통령 부인이 관련된 논란이라는 휘발성 높은 사안을 잡은 거대 야당의 공세는 앞으로도 더욱 강해지겠지만, 대통령을 정말 힘들게 할 수 있는 건 여당이 등을 돌릴 때이다.
대통령의 레임덕은 야당 때문이 아니라 여당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여당과의 소통과 협력은 대통령에게 중요하다.
특히나 여당이 위기의식을 느끼는 절박한 사안에 대해 대통령이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해결해 낼 수 있어야 한다.

‘위기? 무슨 위기?’ 이야기로 되돌아가면, 1970년대 후반 영국에서 최고 정치 지도자의 둔감함은 노동당이 권력을 잃는 것으로 끝이 났다.
캘러헌도 총리 자리를 잃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그 책임은 여당만이 홀로 지게 된다.
인정하기 싫더라도 여당과의 관계에서 대통령은 이미 ‘을’의 입장이 되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85979


여사가 일등 공신이라는데…

최민우 정치부장

김건희 여사 의혹과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은 왜 이토록 머뭇거릴까. 아내니까, 가족이니까, 억울하니까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정권 기반마저 흔들리는 작금의 상황을 고려하면 안이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집권 초만 해도 윤 대통령이 여사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데엔 ‘부채 의식이 작용해서’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윤 대통령과 김 여사는 2012년 결혼했다.
둘은 띠동갑이다.
윤 대통령의 구애가 깊었다고 한다.
당시 윤 대통령은 특수부 검사로는 유명했지만, 경제적으로는 풍족하지 않은 50대 노총각이었다.
하지만 결혼 이후 윤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에서 잠시 좌천된 것을 빼곤 국정농단 특검-서울중앙지검장-검찰총장-대통령으로 승승장구했다.

필리핀, 싱가포르 국빈 방문 및 라오스에서 열리는 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지난 6일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해 공군1호기로 향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반면에 김 여사가 영부인이 되는 과정은 험악했다.
‘쥴리’로 몰리며 입에 담기도 민망한 모욕과 마녀사냥이 이어졌고, 그의 모친은 여러 구설에 휘말리며 결국 옥고를 치러야 했다.
윤 대통령이 정치를 하지 않았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었을 게다.

김 여사 대선 활약 윤 대통령도 인정

궂은일 도맡았던 개국 공신이라면

자초한 위기, 본인이 직접 해결해야

이에 대한 인간적 미안함, 일부분 수긍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뿐이었을까. 최근 여권 핵심 인사의 전언은 맥락이 조금 다르다.
그에 따르면 취임 초 윤 대통령은 측근 그룹에 ‘대선 승리의 숨은 일등 공신은 내 와이프’라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 대선 과정에서 자신을 ‘권력 동업자’로 여기는 듯한 김 여사의 발언이 가끔씩 드러나곤 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도 최근 인터뷰에서 “여사는 (대통령 당선에) 본인도 엄청난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자기도 권력을 어느 정도 향유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김 여사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윤 대통령의 인식이다.
정치가 아무리 ‘패밀리 비즈니스’라고 하지만, 윤 대통령이 김 여사를 단순한 내조자·조언자가 아니라 정권 창출의 공신(功臣)으로 인정하고, 심지어 그것을 주위에 알렸다면 그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권력의 속성상 김 여사 지분이 커질 수밖에 없다.

최재영씨가 지난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사건 무혐의 관련 항고장 접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왜 높게 평가했을까. 일각에선 김 여사의 정무적 판단력을 거론한다.
윤 대통령은 수사 검사만 해왔기에 사안을 선악의 2분법으로 단정 짓는 습성이 있는 데 반해 전시기획 사업을 했던 김 여사는 좀 더 입체적인 시각이 있다는 거다.
이는 외교부 등 의전 파트에서도 비슷한 뉘앙스로 얘기를 전하곤 했다.
해외 순방 갈 때 김 여사가 같이 나가는 게 일하기 편하다는 거다.
결정의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란다.

또 다른 이들은 ‘여사가 궂은일을 도맡았다’는 말도 전한다.
선거엔 돈이 들고, 음지의 일도 있기 마련인데 그걸 김 여사가 외면하지 않았다는 거다.
최근 명태균씨와 주고받은 카톡만 봐도 김 여사가 어떤 일을 했을지는 얼추 짐작할 수 있다.
읍소인지 청탁인지 압력인지 모호한 지점에서 김 여사가 합법과 탈법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은 정치인 윤석열 등장 때부터 김 여사를 약한 고리로 정조준했다.
후보 때는 학력·경력 위조 및 사생활을 먹잇감 삼았고, 취임 이후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이 주재료였다.
그때도 김 여사에 대한 반감이 적지 않았지만, 야당의 일방적 공세로 치부하는 여론도 상당했다.
그랬던 ‘김건희 리스크’가 급변한 건 지난해 11월 디올백 수수 영상이었다.
실상은 종북 인사의 몰카 공작인 측면이 컸지만, 현 정권은 사안을 매듭짓지 못하고 1년째 질질 끌려왔다.
여기에 명태균·김대남 폭로가 가세하며 이젠 통제 불능 상태다.
김 여사의 평소 발언 수위로 봤을 때 또 어떤 녹취가 나올지 가늠하기 어렵다.

김건희 여사와 명태균씨 카카오톡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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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결자해지(結者解之)할 이는 김 여사다.
현 정권 실세라던 장제원 전 의원도 총선 불출마를 했는데, 자신이 온몸 던져 만든 정권이 본인으로 인해 휘청거린다면 무엇을 못 하랴. 해법 또한 김 여사 스스로가 잘 알 것이다.
문제는 시간이다.
국민의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다.

최민우 정치부장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85978


‘권력 동업자’ 아닌 ‘인생 동반자’로만 남기를

“전 미셸입니다.
시카고에 살죠. 버락 오바마라는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이게 다예요. 가장 모범적인 퍼스트레이디였던 미셸 오바마가 남편의 대선후보 시절 한 얘기다.
8년의 퍼스트레이디 뒤 그녀는 이런 기억을 남겼다.
“내 앞에 43명이 있었지만 남겨진 지침서 같은 건 없었다.
퍼스트레이디라는 게 직업도, 정부 직함도 아니고 연봉도, 정해진 의무도 없다.
그냥 대통령에게 딸린 사이드카일 뿐. 그 진실은 나와 딸들이 버락에게 주어진 혜택을 나눠 받는 수혜자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조연인 내가 중요한 이유는 내가 문제 없이 잘 지내야 버락이 행복하고, 그래야 버락이 맑은 정신으로 나라를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가볍게 처신하지 말자고 작정했다.
내가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주제넘은 여자라는 성난 민심이 들이닥칠 터이니.(『BECOMING』)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최고 엘리트이던 ‘전업 영부인’의 고민과 성찰이었다.

8월 20일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둘째 날 찬조연설자로 나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왼쪽)과 미셸 오바마가 연단 위에서 포옹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김건희 여사 논란에 국정 난맥 가중

정권 동업자 ‘보상 심리’라면 곤란

미셸 “내가 잘해야 남편 정신 맑아

국정 선 넘지 말고 아내의 길 가야

우리의 퍼스트레이디 문제로 바람 잘 날이 없다.
“아내 역할에만 충실하겠다던 김건희 여사의 대선 전 약속이 가물가물할 만큼 인사·공천·현장시찰 등 공사를 무너뜨린 팩트들이 이어지며 정국 혼란의 블랙홀이 되고 있다.
정책들은 죄다 파묻히고 지지율 22%이니 대통령의 국정 운영 동력마저 흔들려버렸다.
혼란의 원인은 단 하나. 김 여사가 자신을 ‘권력의 동업자’로 자리매김하려 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아세안 정상회의 참석에 동행한 김건희 여사가 9일(현지시간) 라오스 비엔티안 왓타이 국제공항에 도착해 환영나온 라오스측 인사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남편을 대통령 만들려고 그녀가 음지에서 무진 애를 썼던 건 맞다.
김종인·이준석의 도움을 끌어내고, 심지어 ‘정치 브로커’ 격인 명태균도 활용하는 등 구석구석 고비고비마다 빠짐없이 등장한다.
명태균과의 문자에선 “저는 명 선생님 식견이 가장 탁월하다고 생각, 완전 의지하고 있다는 등 대선 브레인으로서의 자기동일시를 느낄 수 있다.
대선 전 아크로비스타 자택을 찾은 한 정치인은 “김 여사가 ‘당신은 정치는 잘 모르니 이 분 하라는 대로 하세요’라고 면전에서 얘기해 놀란 적이 있다고 기억했다.
서울의 소리 기자에겐 “난 지금 어쨌든 후보니, 나랑 인터뷰하면 안 되고에 이어 “우리 남편은 바보다.
내가 다 챙겨줘야지 뭐라도 할 수 있지. 내 말은 잘 들으니까라고도 했다.
강한 자기애(自己愛)다.
권력을 함께 만들어 준 동업자라는 에고(ego)는 그러나 2022년 5월 10일 취임, 그 전날까지였어야 했다.

미국 대통령 부인들 중 가장 막강해 그만큼의 비난을 받은 낸시는 회고록에서 이런 심리를 드러냈다.
“내가 경제·국방은 잘 모르지만, 사람 보고 판단하는 눈이 있다.
그래서 인사 문제에 제언한 건 사실이다.
로니(레이건)에게도 한가지 약점이 있다.
경계심이 없어 주위 사람들을 너무 믿고 순진했다.
그런데 나보다 로니를 더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 압박감에 시달리는 대통령의 마음을 돌봐줄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로니에게 도움이 안 되고 충성심이 약하다고 그녀에게 찍힌 법무장관, CIA국장 등 죄다 은밀히 제거됐다.
“부족한 남편을 뛰어난 정치 연기자로 만든 숨은 제작자 겸 총감독이 낸시였다.
“감독의 수직적 지시를 받는 배우로 길들여져 오히려 부인의 지시를 편안하게 느낀 레이건이었다(케이티 마틴 『히든 파워』).

1981년 제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과 낸시 레이건 여사. 백악관 홈페이지

낸시류 심리의 문제는 그러나 지극한 ‘남편 사랑’이 바로 ‘나라의 이익’으로 이어질 거라는 자기중심적 착각이다.
베갯잇 소통이 줄 남편의 심리적 안정과 건강이야 모든 아내의 기여이겠다.
그러나 여사는 선거로 ‘획득한 권력’이 아닌 ‘획득된 자리’일 뿐이다.
대통령의 국정은 제도와 시스템의 운영이다.

더구나 ‘코바나컨텐츠’ 수준의 네트워크에서 얻은 김 여사의 안목과 경험을 세계 경제 10위 국가의 국정에 대입시키기란 턱없이 부족할 뿐이다.
기분 맞춰주는 ‘불나방류’ 인간들 속에서 사람 보는 눈 또한 제대로 키워졌을까. 함께 창업했으니 보상받겠다는 권력의 동업자가 돼선 절대 안 될 이유다.
아니 윤석열·이재명 후보의 아내들이야 대선 때 모두 감표(학·경력 부풀리기, 법인카드 유용) 요인으로 작동하지 않았던가. 법과 관행으로 그어진 실선을 넘어 인사·사업·예산 등에 입김을 미치면 공정·균형이 무너진 ‘비정상의 나라’는 순간이다.
진짜 대통령을 ‘바보’ ‘허수아비’로 만들려고 하려는 건가. 안 그래도 박근혜 ‘비선’의 트라우마가 깊어 권력 보는 눈이 훨씬 예리해진 우리 국민이다.
주변의 아첨과 보고의 홍수 속에 ‘자발적 격리와 고독’마저 필요한 결단의 자리가 대통령이다.
아내를 포함, 그 누구도 오염시켜서는 안 될 신성한 직무, 그게 대통령이다.

나라를 되세우려면 단호히 매듭짓고 가야 한다.
명품백, 공천·인사 등 모든 구설에의 진정한 해명·사과다.
“재발 없다는 맹서다.
용산 내 ‘김 여사 라인’ 사퇴는 그 믿음의 징표다.
엄정한 기개의 제2부속실, 특별감찰관도 함께다.
무엇보다 절실한 건 대통령의 ‘인생의 동반자’로만 되돌아가겠다는 김 여사의 자기 성찰이다.
“저는 윤석열과 결혼했습니다.
그게 다예요. 그게 다여야 한다.

최훈 주필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85644


당정 갈등, 너무나 한국적인 정치 퇴행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명예교수

찰리 채플린의 원근법 얘기로부터 시작해 보자.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던. 채플린의 원근법을 뒤집어 보면 요즘 대통령실과 여당 대표가 지루하게 이어가는 당정 갈등의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미시적으로 보면 윤-한 갈등은 권력자들끼리 벌이는 한시적 정치 희극이다.
하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한국 대통령제의 무기력과 퇴행이 드러나는 비극이다.

근접해서 보면 당정 갈등은 사소한 밀당의 희극이다.
둘이서만 만나는가, 여럿이 만나는가, 누가 먼저 연락을 취했는가 등의 사소함이 본질을 압도하고 있다.
게다가 수십 년간 동고동락해온 선후배가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자리에 마주 서서 벌이는 권력 갈등이니만큼 그 자체가 관심거리이다.
아울러 의외의 조연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면서 예상 밖 반전이 이어진다.
이 갈등이 어디까지 확산할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관객들이 눈을 떼기 어려운 권력 드라마이다.

유사 사례 거의 없는 한국적 현상

권력분산 명분의 이원 권력 체제

현실은 권력 운용 주체들 역부족

제도보다 문화·관습이 정착돼야

하지만 좀 더 멀리서 바라보면 요즘의 당정 갈등은 대다수 대통령제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지극히 한국적인 권력 다툼이다.
제왕적 대통령-당 총재 겸임이라는 구모델을 넘어서려는 권력 분산의 실험이었지만 그 실험은 실패한 듯하다.
달리 말해 지금의 당정 갈등은 권력 분산의 제도를 운용할 정치문화가 전혀 자리 잡지 못한 우리 대통령제의 무기력, 한국 민주주의의 퇴행을 상징하고 있다.

먼저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갈등하는 한국적 현상의 뿌리부터 살펴보자. 우리에게는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당 대표의 갈등을 비롯하여 당정 갈등은 사뭇 익숙한 관습이다.

하지만 대표적 대통령 중심제 국가인 미국의 역사를 돌아보면 현직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갈등이란 매우 낯선 얘기이다.
우리네 여당의 당 대표에게 해당할 만한 직위로서 당 전국위원회 의장 등이 있기는 하지만 이들의 권한은 매우 제한적일 뿐이다.
다시 말해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정치적 자원을 소모하는 갈등을 벌이고, 그 결과로 정책 논의는 뒷전으로 밀려나는 권력 게임은 한국 정치의 고유한 현상이다.

모두 기억하다시피 대통령-여당 대표의 이인삼각 체제의 뿌리는 양 김 시대 제왕적 대통령(당 총재 겸임)에 대한 반작용에서 비롯되었다.
정당을 제왕적으로 지배하던 김영삼, 김대중 총재가 각각 대통령에 선출되면서 여당의 공천, 자금 등이 모두 제왕적 대통령의 관할이던 시대가 있었다.

이후 양 김 대통령의 퇴장과 더불어 정당의 민주화, 개방화 바람이 불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대통령의 평당원화, 당 대표 선출에 당원과 여론의 뜻이 반영되는 절차가 도입되었다.
이에 따라 나름의 독자적 정당성을 갖는 당 대표가 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하지만 대통령은 행정부를 이끌고 여당 대표는 당을 이끈다는 아름다운 권력 분산은 현실에선 작동하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의 권력자원이 상대적으로 넉넉하던 임기 전반 2년여 동안 당정 관계는 대통령실의 독주 체제였다.
여당 대표는 대통령과의 갈등 혹은 이런저런 이유로 숨 가쁘게 교체되어왔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임기가 중간 반환점 부근에 오고 지지율이 20% 선에 머무는 현상이 지속되면서 대통령-여당 대표의 관계는 본격적 갈등으로 들어서고 있다.
권력이 있는 곳에 권력투쟁이 있게 마련이지만, 정치학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저 한국 민주정치의 미성숙의 한 단면일 뿐이다.
민주화의 역사가 40년 가까이 흐르고 있지만, 당정 관계는 대통령 임기 초반에는 대통령에 의한 유사(類似) 제왕적 지배가 이뤄지다가 임기 후반에는 지리멸렬한 갈등의 폭발로 이어지는 냉탕-열탕의 무한 반복일 뿐이다.

무능력의 핵심은 제도·절차는 대체로 정돈되어 있지만 일상적으로 민주주의를 운영하고 이끌어가는 민주주의의 습속과 문화는 우리 사회에 전혀 뿌리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대통령의 평당원화, 당원-지지자들의 기반을 가진 당 대표라는 이원적 권력 체제를 도입하였다면, 이러한 제도의 성패는 대통령실과 여당 대표의 민주적 운영 능력이 좌우하기 마련이다.
설사 감정의 골이 깊어도, 정치적 목표가 서로 달라도, 대화와 소통으로 정책 결과를 산출하라는 것이 권력 분산의 목표였다.
하지만 실제 현실은 판이하다.
의료 갈등이 당정 갈등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자 오히려 의료 위기의 해법은 더욱 갈피를 못 잡고 있다.

결국 당정 갈등이라는 희비극을 통해 우리는 민주정치의 오래된 교훈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제도의 도입은 쉬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제도의 운용은 훨씬 더 성숙한 능력을 필요로 한다.
20년 전 당정 간에 권력 분산 장치들이 도입될 때 그 뜻은 그럴싸해 보였다.
전문가도, 언론도, 모두 손뼉 치던 사안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확인된 것은 우리 정치는 권력 분산을 운영할 역량도, 의식도 갖추지 못했다는 씁쓸한 현실뿐이다.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명예교수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83995

 

윤 대통령, 나라와 부인 사이에서 결단할 때다

그제 온 나라가 ‘오빠’가 누구냐는 논란으로 시끄러웠다.
선거 브로커 명태균씨가 “철없이 떠드는 우리 오빠 용서해 주세요라는 김건희 여사의 문자를 공개했기 때문이다.
용산 소식통은 “문제의 문자가 나온 시점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에 입당(2021년 7월 30일)하기 전인 2021년 6월께라고 했다.
당시 명씨는 김 여사와 김 여사 오빠를 만나 윤 대통령이 어떻게 정치를 해나갈 것인지에 대해 ‘강의’를 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김 여사 오빠가 “이××, 사기꾼 아냐란 취지의 말을 해 기분이 상한 명씨에게 김 여사가 “철없는 오빠 용서해 달라는 문자를 보냈다는 것이다.
“문자의 ‘오빠’는 친오빠란 대통령실 해명이 납득은 된다.
그러나 친오빠라도 문제다.
대선 후보 외척의 비선 논란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사 리스크’ 국민 인내 임계점

대통령실 기강문란도 위험수위

억울함 있어도 민심을 따를 때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감사원 국정감사에서 김건희 여사와 명태균 씨의 문자 메시지를 공개하며 최재해 감사원장에게 질의하고 있다.
뉴시스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김 여사가 명씨에게 “제가 완전 의지하는 상황 “명 선생님 식견이 가장 탁월하다고 장담합니다.
해결할 유일한 분이고요란 문자를 날린 점이다.
“명씨는 (김 여사와) 스쳐 지나간 짧은 인연일 뿐이란 용산의 해명과는 배치된다.
선거 브로커에게 김 여사가 매달리다시피 과하게 응대한 사실 자체가 민심의 비호감과 언론의 비판을 부른다.

김 여사로 인해 벌어진 소동들을 보면 여사의 패턴이 보인다.
여권 소식통은 “여사 딴에는 남편 위한다고 이 사람 저 사람 만나 얘기를 듣는데, 말솜씨 좋은 입담꾼에게 쉽게 속아 과하게 의지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명태균씨나 ‘서울의 소리’ 이명수 기자 등 언론의 관점에서 신뢰감 높다고 볼 수 없는 이들에게 넘어간 게 대표적이다.
또 안타까운 게 여사의 휴대전화다.
소식통은 “김 여사 전화에 하루에 오만가지 문자가 쏟아진다.
여사는 답답한 마음에 그것들을 보면서 ‘이렇게 해야 하나 저렇게 해야 하나’고 휘둘리니, 주변에선 난감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여권에선 “여사가 휴대전화를 끊게 하거나, 아니면 전화기를 바꾸고 기존에 문자 주고받은 사람들과 연을 차단하는 특단의 조치라도 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십상시’니, ‘7간신’이니 구설이 끊이지 않는 ‘김건희 라인’ 비서관·행정관들의 행태도 문제다.
“진짜 대통령 비서실장은 정진석 실장이 아니라 여사의 영부인 이전 시절부터 인연을 맺어온 김모 비서관이란 뒷말까지 돈다.
그가 ‘왕명(여사의 지시)’을 출납하면 김건희 라인 비서관·행정관들이 움직여 비서실장이나 수석들도 모르는 가운데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대통령실 회의에서 오간 얘기들이 김 여사에게 들어간다는 설도 끊이지 않는다.
여권 소식통은 “김 여사가 시키지 않았어도 김 여사 라인 가운데 누군가가 회의 내용을 여사에게 갖다 바친다는 얘기가 있다.
이러니 여당에서 김 여사 라인 정리를 촉구하고 나선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필리핀·싱가포르 국빈 방문 및 라오스에서 열리는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6일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공군1호기로 향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명태균 같은 사람이 여사와 주고받은 문자를 척척 공개하고 “그런 게 2000장은 된다.
(날 구속하면) 윤 대통령은 한 달이면 하야하고 탄핵일 텐데란 말을 거침없이 해도 용산은 속만 끓이고 있다.
‘자업자득’이란 얘기가 나온다.
여당 소식통의 한숨이다.
“지난 2년간 이관섭 전 비서실장 등 초기 대통령실 참모들이 위기 징후를 파악하고 대통령에게 보고하면 육두문자를 듣고 일축당하기 일쑤였다.
‘직언하려면 직을 걸어야 한다’는 말이 참모진의 금과옥조가 된 지 오래다.
‘명태균 폭탄’이 째깍거린 건 오래됐다.
참모들이 자율권을 갖고 일하는 분위기였다면 선제적으로 해결할 수도 있었을 거다.
그러나 지금 남은 참모들은 시키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못 한다.
아니, 안 한다.
그래야만 자리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천안함 폭침으로 아들을 잃고 받은 보상금 1억원과 성금 898만8000원 전액을 해군에 기증한 고(故) 민평기 상사 어머니 윤청자 여사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김 여사) 논란에 억울한 측면도 있겠지만, 대통령은 민심이 요구할 땐 들어야 한다고 했다.
‘황산벌 전투에 나가기 전 계백 장군의 마음’을 헤아렸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했다.

윤 대통령은 윤 여사를 ‘호국의 어머니’로 각별히 예우해 왔다.
그 마음을 행동으로 옮길 때가 됐다.
국민의 인내심이 임계치에 달해서다.
윤 대통령은 나라와 부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대통령이) 여사를 끊어내지 않으면 절체절명의 위기라고 어제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일갈한 국민의힘 비윤 김재섭 의원은 “‘제가 할 얘기 대신해 줘 고맙다’는 인사를 동료 의원 여럿에게 받았다면서 덧붙였다.
“친윤계 의원들이어서 저도 놀랐어요.

강찬호 논설위원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84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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