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의 어린 나이에 마돈나를 연상시키는 흰 레이스 드레스에 진주 목걸이를 한 채 198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 등장합니다.
안젤리나 졸리의 얘기입니다.
어떤 할리우드 스타라도 비교적 소규모 행사를 통해 레드 카펫에 데뷔하는 것과는 달랐죠.
오늘 밤 아빠 때문에 긴장되나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녀는 그해 <폭주 기관차>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아버지 존 보이트(그는 이미 <귀향(1978)>으로 오스카상을 수상했음)를 생각하며 그런 셈이죠”라며 사랑스러운 틈새의 치아를 드러내며 웃어 보였습니다.
놀랍게도 아카데미는 공식적인 첫 행사가 아니었습니다.
로스앤젤레스 태생의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대중의 주목을 받아왔으며, 처음에는 가족과 함께, 그다음엔 스스로의 힘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조숙한 일곱 살은 1982년 할 애쉬비(Hal Ashby) 감독의 코미디 영화 <라스베가스의 도박사들>로 스크린 데뷔를 합니다.
일련의 뮤직비디오에서 매혹적인 존재감을 드러냈으며, 첫 주연작으로 1995년 <해커스>에 출연한 뒤 드라마 <조지 월리스(George Wallace)>로 1998년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을 수상합니다.
그리고 텔레비전 영화 <지아(Gia)>로 1999년
골든글로브 TV 부문 여우주연상과 미국배우조합상(SAG) 극영화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2000년에 영화 <처음 만나는 자유>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명실상부 A급 배우로 올라섭니다.
그 후는 우리가 잘 알다시피, <툼 레이더>의 라라 크로프트 역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리며,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를 통해 브래드 피트와 경쟁을 펼쳤고, 눈물을 자아내는 <체인질링>으로 아카데미 후보에 올랐습니다.
이제 그녀는 파블로 라라인 감독의 매혹적인 <마리아>를 통해 우아한 카리스마의 비극적인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로 분해
세 번째 아카데미를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두 살 때 할리우드 파티에 참석한 안젤리나 졸리부터, 픽시 커트의 10대 시절 등 1970년대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 이 배우의 놀라운 과거 사진 29장을 모았습니다.
1975년 안젤리나 졸리가 태어난 지 4시간 만에 찍은 사진으로 배우인 아버지 존 보이트의 품에 안겨 있습니다.
1978년 아버지와 함께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한 두 살배기 졸리. 카메라 앞에 서길 부끄러워했죠.
1986년 아버지가 수상 후보로 지목돼 가족 모두 아카데미 레드 카펫을 밟았습니다.
1988년 2년 후 아버지, 오빠와 함께 아카데미 시상식에 다시 참석한 졸리. 이번에는 큐빅 장식이 들어간 블랙 실크 드레스에 치아 교정기를 낀 채로 등장했죠.
1991년 열다섯 살의 졸리. 트레이드마크인 밝은 미소가 이때부터 돋보였습니다.
1991년 열다섯 살, 안젤리나 졸리의 포트레이트.
1991년 스트레이트 헤어에 스트랩리스의 블랙 프롬 드레스로도 멋집니다.
1991년 아버지와 함께 레드 카펫에 등장한 그녀. 진주 초커에 레이스 장식 실크 톱, 지금도 즐겨 입는 수트에 반짝이는 핑크색 립글로스를 발랐습니다.
1993년 면도날처럼 가는 눈썹, 곧게 편 헤어, 끈이 달린 블랙 드레스를 입은 열여덟 졸리는 1990년대 소녀 그 자체입니다.
1993년 미트 로프의 ‘Rock and Roll Dreams Come Through’ 뮤직비디오 촬영장에서 포착된 안젤리나 졸리. 거친 몸짓의 미트 로프와 함께 엉뚱한 도망자 캐릭터를 연기하면서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았죠.
1994년 가죽 재킷 차림으로 존 보이트의 <미드나잇 카우보이> 25주년을 축하하는 모습. 아버지, 오빠와 함께했습니다.
1995년 영화 <해커스>에서 주연을 맡은 조니 리 밀러와 함께. 사랑에 빠진 두 사람, 스무 살의 안젤리나는 곧 결혼했지만, 18개월 후 헤어졌습니다.
1997년 영화 <조지 월리스> 로스앤젤레스 시사회 참석 당시, 누드 컬러의 스트랩리스 드레스를 입고 회색 실크 스카프를 머리에 두른 모습.
1997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포착된 안젤리나 졸리. 완벽한 버즈 커트에 원 숄더 블랙 드레스를 입고 있습니다.
1998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스팽글 장식 볼 가운을 입고, 블루 스모키 아이와 누드 립을 한 모습은 눈부시게 빛났습니다.
그해에 그녀는 <조지 월리스>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습니다.
1998년 블랙 수트를 입고 제이 레노의 NBC <투나잇 쇼>에 출연한 그녀.
1998년 <지아> 뉴욕 상영회에 참석한 그녀는 뒤로 넘긴 머리, 매끈한 블랙 셔츠에 심플한 주얼리를 하고 있습니다.
1998년 남편 조니 리 밀러와 함께 BAFTA 시상식에 참석한 그녀, 끈이 달린 블랙 드레스를 입었습니다.
1998년 제50회 에미상에서 그녀는 깊은 슬릿이 있는 얇은 스팽글 장식의 실크 슬립 드레스를 입고 매력을 뽐냈습니다.
1998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플래닝 하트> 시사회에는 베이지색 코트를 입고 등장했죠.
1998년 <플래닝 하트>의 두 주역. 빨간 머리의 안젤리나 졸리와 파란 머리를 한 라이언 필립.
1999년 스팽글 장식이 돋보이는 멋진 드레스를 입고, <지아>로 두 번째 골든글로브상을 수상했습니다.
1999년 미국배우조합상(SAG) 시상식에서 스트랩리스 화이트 볼 가운을 입은 안젤리나 졸리는 <지아>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1999년 영화 <처음 만나는 자유> 로스앤젤레스 시사회에서 그녀는 블랙 톱에 치마, 포근해 보이는 회색 코트를 입고 등장했습니다.
1999년 영화 <처음 만나는 자유>의 한 장면.
2000년 눈부시게 빛나는 하얀색 드레스에 어울리는 재킷 차림의 안젤리나 졸리는 영화 <처음 만나는 자유>로 세 번째 골든글로브상을 수상했습니다.
2000년 짙은 핑크 숄에 블랙 드레스를 입고 미국배우조합상(SAG) 시상식 레드 카펫에 선 그녀. 영화 <처음 만나는 자유>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습니다 .
2000년 영화 <처음 만나는 자유>로 그녀는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합니다.
2000년 윈저의 ‘가드 폴로 클럽’에서 열린 폴로 행사에 참석한 안젤리나 졸리.
파블로 라라인 감독이 제작한 마리아 칼라스 전기 영화 <마리아>의 베니스국제영화제 프리미어 전날, 주연을 맡은 안젤리나 졸리는 사색에 잠겨 있었다.
아주 오래전이에요. 파블로를 처음 만난 날, 제가 그의 열렬한 팬이며 언젠가는 함께 일하고 싶다고 그에게 말했죠. 마리아 칼라스를 연기할 수 있었던 건 엄청난 영광입니다.
위대한 여성이자 예술가였던
그녀에게 감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존경심을 갖고 있습니다.
부족한 연기력으로 그녀에게 누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했을 정도로요.”
졸리의 걱정은 기우에 그칠 것이다.
<마리아>에 출연한 그녀는 커리어에서 손꼽을 만한 열연을 펼친다.
검은 스모키 화장부터 아름다운 목소리, 격정적인 감정까지 마리아 칼라스의 모든 것을 완벽에 가깝게 재연한다.
졸리는 마리아 칼라스를 연기하는 대신, 마리아 칼라스가 되기 위해 강도 높은 연습 과정을 거쳤다.
파블로는 많은 것을 요구했습니다.
노래도 제가 직접 하기를 바랐죠. 6개월이 넘도록 노래와 이탈리아어 수업을 듣고, 오페라를 공부했습니다.
덕분에 배역에 완벽하게 몰입할 수 있었죠.” 험난한 여정이었지만, 졸리는 그 속에서 크나큰 성취감을 얻었다며 자신을 믿어준 파블로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안젤리나 졸리는 마리아 칼라스의 스타일까지 재현해낸다.
칼라스에게 패션이란 갑옷 같은 존재였다.
거친 세상에 발을 디딜 수 있도록 그녀를 보호해주는 갑옷 말이다.
칼라스는 비키(Biki), 크리스챤 디올, 이브 생 로랑 등 당대 최고 꾸뛰리에의 고객이 되었고 그들은 칼라스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이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에르뎀은 1953년
마리아가 <메데아(Medea)> 공연 중 착용한 드레스에서 영감을 받아 2024 F/W 컬렉션을 선보였다.
마리아 칼라스는 주얼리 수집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소유한 수많은 주얼리 중 그녀가 가장 아낀 것은 까르띠에의 브로치. 1971년 제작된 이 브로치는 흰색 칼세도니 위에 까르띠에의 상징과도 같은 금색 팬더를 올린 디자인이었다.
프리미어를 앞둔 안젤리나 졸리와 코스튬 디자이너 마시모 칸티니 파리니(Massimo Cantini Parrini)는 바로 이 브로치에 주목했다.
칼라스가
아꼈던 그 브로치를 까르띠에 하우스가 소장하고 있었던 것.
지난 8월 29일 <마리아>의 프리미어가 열린 날, 졸리는 ‘아뜰리에 졸리’의 블랙 드레스 위에 마리아의 브로치를 단 채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만의 방식으로 전설적인 오페라 가수에게 존경심을 표한 것. 졸리 역시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그녀가 직접 하고 다니던 브로치를 달고 프리미어에 참석하다니! 정말 특별한 순간입니다.
<마리아>에서도 이 브로치가
등장하니, 영화 관람할 때 눈여겨보세요!”
<마리아>에서 찾아볼 수 있는 칼라스의 주얼리는 이뿐만이 아니다.
극 중 등장하는 꽃 모양 브로치 역시 칼라스가 평소 즐겨 착용하던 아이템. 1972년 제작된 이 브로치는 다이아몬드, 에메랄드, 사파이어, 루비가 박혀 있으며 꽃잎을 여닫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29일 오후에 열린 <마리아>의 2차 프리미어에 참석한 졸리의 선택은 바로 이 브로치였다.
타마라 랄프의 시폰 가운과 모피 숄 위에 금빛으로 빛나는 브로치를 단 것. 졸리는 특히 꽃이 만개한 브로치의 섬세한 디자인에 반했다고 밝히며, 마리아 역시 이 디테일을 보며 미소 지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50년이 지나 새로운 주인을 찾은 두 브로치. 까르띠에의 이미지, 스타일, 헤리티지 부문 디렉팅을 맡고 있는 피에르 레네로(Pierre Rainero) 역시 감회를 전했다.
그는 시대를 대표하던 모든 여성이 그랬듯, 마리아 칼라스 역시 까르띠에를 선택했습니다”라고 말하며, 멕시코 출신 배우 마리아 펠릭스(María Félix)의 말을 인용했다.
까르띠에는 언제나
상류층뿐 아니라 특별한 재능을 지닌 이들을 위한 주얼리 하우스였습니다.
”
주얼리를 활용해 마리아 칼라스를 오마주한 안젤리나 졸리가 아뜰리에 졸리와 타마라 랄프의 룩을 선택한 이유는? 졸리는 모두의 예측을 벗어나고 싶었다고 말한다.
마리아의 룩을 그대로 따라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녀가 베니스의 레드 카펫에서 선보인 룩은 아름다웠지만, 그건 온전히 마리아만의 것이죠. 조금 다른 방식으로 그녀의 스타일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교양 넘치는 숙녀가 입을 법한 드레스를 선택했죠.” 졸리는 이날 고대 그리스풍의 생 로랑 드레스를 입고 포토콜에 참석했다.
이 역시 그리스 혈통인 마리아 칼라스에 대한 오마주였다.
2년에 걸친 <마리아> 프로젝트가 끝난 지금, 안젤리나 졸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궁극적으로 관객이 <마리아>를 보며 무엇을 얻어가길 바랄까? 모두 영화를 본 뒤 마리아 칼라스라는 사람을 더 잘 이해하고, 더욱 존경하게 됐으면 좋겠어요.” 졸리의 연기는 마리아 칼라스에 대한 경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안젤리나 졸리는 수트 스타일링에 능합니다.
배우로서 레드 카펫을 밟든, ‘아틀리에 졸리’로 출근할 때든 블레이저와 수트 팬츠를 갖춰 입은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재미를 포기한 건 아니에요. 언제나 그만의 한 끗이 있죠. 블레이저 안에 란제리 톱을 받쳐 입거나 넥타이가 프린트된 티셔츠로 유머를 주는 식입니다.
지난 18일에도 졸리는 수트를 선택했습니다.
돌체앤가바나의 스리피스 수트였죠. 영화 <마리아>로 BFI 런던 영화제의 레드 카펫에 올랐을 때였습니다.
이날의 한 끗은 더 도드라져 보였습니다.
지금껏 졸리가 보여준 수트 패션과는 많이 다른 실루엣이었거든요. 유니폼처럼 챙겨 입던 플레어 팬츠 대신 발목으로 갈수록 통이 좁아지는 시가렛 팬츠를 고른 건데요. 꼭 플레어
팬츠가 아니더라도 근 몇 년간 헐렁한 실루엣을 고집하던 그였기에 변화가 더욱 크게 와닿았습니다.
오히려 10년 전 그의 모습과 더 많이 닮았죠.
반듯한 블레이저 밑으로 매끈하게 떨어지는 팬츠의 라인은 매니시하면서도 묘하게 관능적이었습니다.
스타일링의 공도 컸죠. 톱은 베스트였습니다.
가슴 부근에 위치한 제비 문신과 단추 사이로 비치는 맨살이 어떤 액세서리보다 감각적인 포인트가 되어주었어요. 못다 푼 페미닌함은 골드 이어링이, 절제미는 스퀘어 토 부츠가 담당했습니다.
마지막 퍼즐 조각이 되어준 건 졸리의 애티튜드였습니다.
얇은 시가렛 팬츠 주머니에 손을 푹 꽂은 채 연신 편안한 미소를 전하는 졸리의 자태가 참 근사하고 여유로워 보였죠. 그 모습은 지난여름부터 줄곧 선보여온 올드 할리우드 스타일의 드레스만큼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포멀’로 귀결되곤
하는 스리피스 수트도 이렇게 부드럽고 우아할 수 있다는 걸 보란 듯이 증명해냈죠.
안젤리나 졸리는 동시대 최고의 할리우드 배우입니다.
그녀의 품위 있는 자태는 루이스 브룩스(Louise Brooks), 폴린 스털크(Pauline Starke), 마릴린 먼로 등 시대를 대표했던 전설적인 배우들의 모습을 차례로 떠올리게 하죠. 최근 그녀의 신작이자 마리아 칼라스의 전기 영화 <마리아>가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영국 <보그>의 영화 및 문화 에디터 라디카 세스(Radhika Seth)는 이 영화를 안젤리나 졸리의 작품 중 최고라고 묘사했고,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는 영화가 끝난 후 약 8분간 기립 박수를 받기도 했죠.
졸리는 얼마 전 <보그>를 통해 마리아의 룩을 그대로 따라 하지 않기로 했어요. 그건 그녀만의 것이니까요. 전 다른 방식으로 그녀에게 경의를 표했죠”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녀가 선택한 건 생 로랑, 톰 포드, 타마라 랄프 등의 드레스였습니다.
모두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디자인이었죠.
지난 31일 콜로라도의 텔루라이드영화제에서 선보인 드레스는 한결 편안해 보였습니다.
물론 우아함은 여전했어요. 그 점이 놀라웠습니다.
졸리가 선택한 드레스는 고급스러운 캐시미어 소재의 칼럼 드레스였습니다.
회색과 베이지색을 알맞은 비율로 섞은 듯한 빛깔이었죠.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실루엣 아래에는 로저 비비에의 펌프스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드레스 위로는 같은 소재와 컬러의 니트 카디건을 걸쳤어요. 담요처럼요. 얼마 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둘렀던 인조 모피 스톨과 비슷한 스타일링이었죠.
물론 그때처럼 호화스러운 연출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조 모피가 아니라 고운 실로 엮인 원단으로 몸을 감싼 모습은 또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죠. 조금 더 유약하고 보호받는 느낌이었달까요? 이 대목에서 마리아 칼라스가 옷을 대한 방식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얼마 전 <보그> 에디터 리암 헤스(Liam Hess)는 졸리와의 인터뷰에서
칼라스에게 패션이란 갑옷 같은 존재였다.
거친 세상에 발을 디딜 수 있도록 그녀를 보호해주는 갑옷 말이다”라고 말한 것처럼요. 이날 졸리의 얇고 부드러운 카디건도 든든한 ‘갑옷’ 역할을 해낸 듯하군요. 시종일관 미소를 띤 그녀의 모습이 어느 때보다 편안하고 여유로워 보였거든요.
2024 베니스국제영화제를 찾은 안젤리나 졸리는 그리스 여신 같은 자태로 레드 카펫을 밟았습니다.
전체가 드레이프된 누디한 컬러의 롱 드레스에 인조 모피 스톨을 걸친 뒤 브로치로 포인트를 주었죠.
전날 디올의 반팔 트렌치 코트를 입은 그녀는 다음 날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브라운 톤의 롱 시폰 드레스 차림을 선보여 레드 카펫을 더욱 기대하게 만들었는데요.
이날 그녀가 입은 의상은 런던에서 활동 중인 호주 디자이너 타마라 랄프의 의상이었습니다.
안젤리나 졸리는 레이블의 팬으로 이미 여러 차례 랄프의 룩을 입고 레드 카펫에 오른 바 있습니다.
드레이프 드레스는 그녀의 가느다란 몸매와 큰 키를 돋보이게 했죠. 그리고 무엇보다 눈에 띈 건 브로치였습니다.
그녀를 베니스로 부른, 영화 <마리아>의 주인공 ‘마리아 칼라스’가 실제로 소유했던 브로치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날 모든 카메라의 플래시가 터지게 만든 건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근사한 룩으로 우아하게 걷던 그녀는 레드 카펫 끝에서 취약성 뼈 질환을 앓는 팬을 만났고, 지체 없이 그 옆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레드 카펫에 모인 이들 중 가장 높은 자리에 있던 그녀가 단박에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온 순간, 사람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여왕의
귀환이었죠.
그녀는 기자회견에서 아카데미라는 영예도 좋지만 칼라스 팬들의 인정을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졸리는 작품에 대한 반응이 좋다면 제 개인적으로는 매우 감사한 일이지만,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에게 큰 의미가 있는 사람들과 그녀의 유산을 아끼는 사람들을 실망시킬까 봐 마음속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해를 끼치고 싶지 않았습니다”라고 덧붙였죠.
오페라 가수 마리아 칼라스에 대한 새로운 전기 영화 <마리아>는 이번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초연되었으며, 관객들은 8분간 기립 박수를 보냈습니다.
안젤리나 졸리는 열광적인 반응에 감동해 눈물을 흘렸고, 감격한 나머지 얼굴을 돌렸다고 전해집니다.
또 졸리는 <마리아>를 통해 15년 만에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 경쟁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안젤리나 졸리도 잘못된 신발 이론에 탑승한 걸까요?
언제 어디서나 잘 차려입는 안젤리나 졸리는 공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잠옷을 입고 공항에 간 날에도 잘 차려입은 듯 보였습니다). 졸리는 영화 속 비밀 요원처럼 올 블랙이나 올 화이트 의상을 입고 공항을 활보하길
즐깁니다.
블랙이나 흰색 드레스에 고급스러운 셀린느 가방, 크리스찬 루부탱의 스틸레토를 신고 유유히 보안 검색대를 지나치죠. 우아하고도 고상한 여행 스타일을 연출하고 싶나요? 그렇다면 애슬레저 룩, 이지 룩, 원 마일 웨어 룩은 접어둬야 합니다.
LAX에서 포착된 안젤리나 졸리처럼 말이죠.
물론 이날은 조금 달랐습니다.
개인 제트기에서 내린 졸리는 시크한 블랙 드레스에 더블브레스트 오버코트를 입고 있었습니다.
블랙 선글라스까지 평소 그녀와 다름없었죠.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신발이었습니다.
굽이 8cm는 돼 보이는 스웨이드 플랫폼 샌들을 신고 있었거든요. 비행기를 타기에 적절한가 아닌가를 떠나서(그녀가 공항에서
하이힐을 신은 것이 한두 번은 아니니까요), 코트에 플랫폼 샌들은 잘못된 신발 이론에 가장 적합한 예이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신발 이론이란, 옷을 다 입은 뒤 남들이 전혀 예상치 못할 만한 신발을 선택하는 것을 말합니다.
신발 하나 바꿨을 뿐인데, 전체적인 무드가 변화하면서 신선한 느낌을 주죠.
안젤리나 졸리 또한 계절상 코트를 입을 때는 발가락이 가장 시려운 때이니 함부로 시도해보지 못했던 샌들을 매치함으로써 룩에 변화를 준 것이고요!
그녀는 지난 6월에도 공항 패션에 흘러내리는 헐렁한 스웨이드 부츠를 매치해 잘못된 신발 이론을 따르는 것인가 의심케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을 기점으로 확실해졌습니다.
평소 즐겨 입던 클래식한 룩에 색다른 슈즈를 더함으로써 전체적인 무드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이 말이죠.
한겨울에도 삼선 슬리퍼로 동네를 돌아다닐 수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도전할 수 있습니다.
롱 코트에 아슬아슬한 끈으로 연결된 샌들을 신는 일 말이죠. 코트 안에는 근사한 드레스를 입고서요!
올해의 패션은 비교적 점잖았습니다.
왁자지껄하던 Y2K의 자리를 조용한 럭셔리가 휩쓸었기 때문이죠. 사실 이 트렌드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우리는 본 적이 있습니다.
안젤리나 졸리에게서 말이죠.
조용한 럭셔리의 기본 공식은 튀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았을 때 남다른 악센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안젤리나 졸리의 올 블랙 룩이 공식에 완벽하게 맞아떨어집니다.
손목을 덮는 소매와 엉덩이를 살짝 덮는 재킷의 총길이, 우아한 실루엣의 플레어 팬츠와 블랙 펌프스까지 졸리는 치밀하게 계산한 수트를 입었는데요. 이렇게
우아한 토탈 블랙 룩으로 만족할 수 없었는지, 네크라인에는 시스루 장식을 얹어 룩에 작은 디테일을 더했습니다.
또 다른 블랙 룩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날 졸리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맥시 드레스에 그만큼 긴 코트와 블랙 레더 부츠를 선택했죠. 나풀거리는 코트와 드레스가 매력적인 실루엣을 만드는데요. 다른 디테일과 컬러 없이도 시크했죠. 오직 브랜드를 알 수 있는 건 생 로랑의 이카르 맥시 쇼퍼백뿐이었고요.
드레이프가 긴 원피스에 클래식한 재킷을 걸친 졸리. 비슷해 보이는 블랙 룩이지만 여기서도 주목해야 할 디테일이 있습니다.
마무리로 ‘논슈즈’를 택했다는 것. 그녀는 유독 논슈즈를 사랑하는데요. 눈에 띄지 않는 것이 목적인 조용한 럭셔리에 안성맞춤인 슈즈이기 때문이죠.
졸리의 조용한 럭셔리 룩은 블랙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화이트도 유려하게 활용하죠. 하얀색 트렌치 코트의 벨트를 질끈 묶고, 같은 컬러의 백을 멘 졸리. 이날은 스타킹도 피부색에 가까운 컬러로 골랐군요. 룩을 봤을 때 이질감이 느껴지는 요소가 단 하나도 없죠. 여기에
슈즈까지 화이트였다면 분명 과한 느낌을 받았을 텐데요. 클래식한 블랙 펌프스를 신어 룩의 균형을 완벽하게 맞췄습니다.
모든 영화인의 꿈, 칸영화제가 막을 올립니다.
제77회 칸영화제는 5월 14일, 오늘부터 25일까지 개최되는데요. 빈티지 열풍으로 멧 갈라 못지않게 칸영화제에도 빈티지 의상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안젤리나 졸리부터 케이트 모스까지 칸을 화려하게 빛낸
최고의 빈티지 드레스 17벌을 모았습니다.
영화 <마이티 하트>로 칸영화제를 찾은 안젤리나 졸리. 그녀의 선택은 발망의 1950년대 꾸뛰르 드레스였습니다.
2008년 미셸 윌리엄스는 샤넬의 빈티지 드레스를 입고 레드 카펫을 밟았습니다.
드레스와 어울리는 액세서리에 헤어 스타일링이 돋보이는군요.
2010년대 초반을 대표하는 패션 아이콘, 알렉사 청. 1960년대에 만든 발렌시아가의 화이트 드레스가 더없이 잘 어울립니다.
2014년 베르사체의 향수 광고 캠페인에 출연했던 라라 스톤. 지아니 베르사체가 디자인한 빈티지 드레스는 그녀에게 당연한 선택이었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빈티지로 도배하고 2016년 칸영화제에 참석한 커스틴 던스트. 크레이프 드레스는 디올의 1947 F/W 꾸뛰르 컬렉션 제품이었고, 백과 슈즈는 페라가모의 빈티지였습니다.
15년 만에 칸영화제에 참석한 케이트 모스. 홀스턴의 레드 컬러 비대칭 드레스는 케이트 모스라는 아이콘의 귀환을 알리기에 충분했습니다.
돌이켜보니 2016년에 많은 셀럽이 빈티지를 선택했군요. 바네사 파라디는 샤넬의 빈티지 드레스를 입고 폐막식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2018년 샤넬 앰배서더로 선정된 뒤 지금까지 하우스와 관계를 이어오는 페넬로페 크루즈.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에 출연하며 칸에 입성한 그녀를 더 빛낸 것은 샤넬의 빈티지 드레스였습니다.
2014년 골든글로브 시상식 당시 입었던 아르마니 프리베의 드레스를 그대로 입고 칸에 등장한 케이트 블란쳇. 그녀는 2023년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할 때도 8년 전에 입었던 드레스를 그대로 착용했죠.
크리스틴 스튜어트 또한 샤넬의 2013 S/S 꾸뛰르 드레스를 입고 폐막식에 참석했습니다.
엘튼 존의 일생을 바탕으로 한 영화 <로켓맨>의 프리미어에 참석한 프리앙카 초프라. 그녀가 착용한 로베르토 카발리의 아카이브 드레스는 엘튼 존이 공연 때마다 즐겨 입던 화려한 수트를 연상케 했습니다.
바비의 핑크가 있기 전, 샤넬의 블랙 & 화이트가 있었습니다.
당시 샤넬 앰배서더로 활동하던 마고 로비는 2011 S/S 컬렉션에 등장한 시퀸 톱과 팬츠를 선택했군요.
19년 전 ‘대선배’ 나오미 캠벨이 입었던 장 폴 고티에의 드레스를 소화한 벨라 하디드.
1년 뒤, 또 한 번 칸을 찾은 그녀는 1987년 지아니 베르사체가 디자인한 블랙 드레스를 선택했습니다.
생전 릴리 로즈 뎁을 향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던 칼 라거펠트. 크리스티 털링턴 역시 그의 총애를 받은 모델이었죠. 릴리 로즈 뎁은 1994 F/W 컬렉션 가운데 크리스티 털링턴이 입었던 시퀸 미니 드레스를 완벽하게 소화했습니다.
장 폴 고티에가 2008 F/W 꾸뛰르 컬렉션에서 선보인 벨벳 드레스를 입은 위니 할로우.
강렬한 임팩트를 남긴 후임(피비 파일로) 탓에 스텔라 맥카트니의 끌로에는 종종 과소평가되곤 합니다.
하지만 2023년 칸의 레드 카펫에서만큼은 그녀의 디자인이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났죠. 1999년 끌로에의 S/S 컬렉션 슬립 드레스를 소화한 잔느 다마스 덕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