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 욕구가 강할수록 상처받는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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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사람이 갈등을 잘 풀어갈까
어떤 관계에서든 아무리 좋은 사람을 만나더라도 적어도 한 번 이상 부딪힐 일이 반드시 생기기 때문에 인간관계에서는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 하는 '선택'의 문제 못지않게 어떻게 관계를 '유지'해 나갈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비슷한 갈등을 마주하게 되어도 어떤 사람들은 인간관계에서 갈등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잘 얘기해서 풀어나가면 된다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반면 어떤 사람은 "어떻게 이런 일이!"라며 갈등은 결코 존재해선 안 되는 양 호들갑을 떨고 상대의 가벼운 실수에도 '나를 해치려고 일부러' 그랬다거나 '원래 저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며 파괴적인 해석을 내려 결국 다른 사람들보다 더 쉽게 파국을 맞이하곤 한다.
이 차이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우선 연구들에 의하면 기본적인 성격 특성(높은 신경증)과 애착 유형(불안정 애착),
사람은 (따라서 관계 또한) 잘 변하지 않는다는 믿음(관계에 대한 성장적 관점과 운명론적 관점),
자기 자신이나 타인을 향한 비판적 완벽주의,
또 여러 상황적 요소(많은 스트레스와 걱정거리로 인해 정신적 소모가 심한 상태,
소외감) 등이 한몫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지금까지의 글에서 함께 살펴본 것들이기도 하다.
인격과 사회심리학 공보(PersonalityandSocialPsychologyBulletin)에 실린 한 연구에 의하면 지나치게 강한 '소속 욕구' 또한 너그럽지 않은 모습과 관련을 보인다고 한다.

● 소속 욕구가 강할수록 쉽게 상처받고 상처가 오래간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받아들여 줬으면 좋겠다",
"나는 소속되고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
"사람들이 나를 받아들여 주지 않으면 나는 쉽게 상처받는다",
"사람들이 나를 빼고 뭔가를 하는 것이 싫다" 이는 소속 욕구(needtobelong)를 묻는 문항들이다.
사회적 동물인 이상 인간은 누구나 어느 정도 애정과 인정을 갈구하기 마련이다.
다만 그 '정도'가 사람마다 달라서 위의 문항들에 높은 점수를 기록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비교적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모리시오 카발로 등의 연구자들은 사람들에게 지난 3개월 사이에 가족,
친구,
연인,
직장 동료 등에 의해 상처받거나 화가 났던 일에 대해 적어보라고 했다.
그런 뒤 상대에게 얼마나 보복하고 싶은지,
상대가 얼마나 망했으면 좋겠는지,
앞으로도 계속 볼 것인지 아니면 피해 다닐 것인지 등에 대해 물었다.
그 결과 소속 욕구가 강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상대에게 화가 많이 났고 사건의 심각성을 크게 지각하며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없다고 응답하는 경향을 보였다.
소속 욕구가 강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이 사람과 계속 관계를 유지하면 미래에 비슷한 일이 또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내가' 채워지는 것이 목적일 때 나타나는 보상 심리

언뜻 생각해 보면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면 상대가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더 잘 포용하고 관계를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할 것 같다.
하지만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일반적으로 목표가 간절할수록 많은 애를 쓰기 때문에 목표 달성률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간과되는 점은 간절할수록 그것이 좌절되었을 때의 '실망'이 크며 때로는 자신의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해 '이게 다xx때문'이라고 외부에 책임을 돌리는 현상도 나타난다는 것이다(Maussetal.,
2011).인간관계 또한 그렇다.
적당히 애를 쓰는 것은 좋지만 강박적으로 애를 쓰는 경우 자연스러운 갈등과 내리막에도 필요 이상의 충격을 받으며 자신 외에 비난할 무언가를 찾으러 다닐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나의) 소속 욕구를 채우고 싶다거나 (내가) 외로운 게 싫다는 다소 자기중심적인 이유가 관계의 핵심 동기가 되면 관계에 과한 노력을 쏟고서도 정작 상대는 요청한 적 없는 '필요 없는 오지랖'이나 '부담스러운 친절'이라는 결과를 낳게 되기도 한다(Feeney&Collins,
2001).이 과정에서 나는 이만큼 했는데 상대가 하나도 알아주지 않는다던가 되려 나를 피한다는 사실에 큰 배신감을 느끼기도 한다.
더 많이 받고자 할수록 보상 심리도,
서운함도 커지는 법이다.
관계를 위한 노력과 자신의 희생에 주로 억울함을 먼저 느끼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애초에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고 사랑을 주는 것 자체가 내게는 기쁨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나 역시 서운함이 컸던 관계를 돌아보면 그 중의 상당수가 상대에게 주기보다 내가 받아내고자 하는 욕구가 더 컸던 관계들이다.
내 안의 결핍은 내가 알아서 채워야 한다.
누가 시켜서 또는 외로워지기 싫다는 수동적 이유가 아니라 내가 주길 원해서 내가 주고 싶은 만큼 맘껏 주고 그 자체로 기뻐할 수 있는 성숙한 사랑을 할 것을 기억해 보자.

불필요한 관심사 '가지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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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이 정말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
무엇에 관심을 두고 무엇에 대해 이야기 해야 할지,
반대로 어떤 것들에 대해 관심을 줄이고 이야기하지 말아야 할지를 잘 따져봐야 해." 몇 해 전 들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조언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평소에 불평불만인 것들,
친구들 또는 가족들과 하루 종일 이야기하는 대화의 주제들,
어떤 유명인이 무슨 일을 했다더라 또 요즘 무엇이 유행이더라 하는 정보들,
카더라 식의 별다른 근거 없는 주장들,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고 쉽게 귀를 기울이게되는 흥미로운 이야기들 중 우리가 쓴 시간과 에너지에 정말 걸맞는 진짜 중요한 것들이 몇 개나 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고민하는 것들의 대다수가 아직 일어나지 않았거나 앞으로도 일어날 일이 없는 부질없는 일들인 것처럼 안타깝지만 우리가 평소 개인적으로 또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관심을 쏟는 많은 것들 또한 그다지중요하지 않을 때가 많다.
어떤 자극 또는 소재,
정보가 흥미롭다고 느끼는 것,
마음을 사로잡는 정도와 그것들의 진위나 중요성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구들에 의하면 사람들은 '감정은 곧 정보'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예를들어 평소 전문가들의 조언은 귀찮아 하면서도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 뭘 먹고 건강해졌다더라는 류의 이야기에는 귀가 솔깃해져서 비싼 돈을 주고서라도 구해 먹는다.

자신이 사는 지역에 화재가 나타날 확률보다 타지역에 사는 친구 집에 불이 났다는 소식이 화재 보험 가입률에 더 큰 영향을 준다.
똑같은 주장을 해도 정치 성향이 같은 사람이 한 주장이라면 맞장구를 치지만 다른 사람이 한 주장이라면 반대부터 하고 본다.
무엇이 유행이라고 하면 일단 무조건 대세에 탑승한다.

단순히 심심하거나 귀찮아서,
있을리 만무한 '만병통치약'을 바라는 허황된 마음 때문에,
관계에서의 친밀감,
우리 편이 이기길 바라는 마음 때문에,
유행을 좇지 않으면 뒤쳐질 것 같다는 불안감 때문에 등다양한 이유로 우리는 잘못되었거나 중요하지 않은 정보나 가치관에 큰 관심을 가지고 삶의 많은 시간을 소모한다.

안타깝게도 가짜뉴스나 타인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비방 등 감정을 자극해서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중요한 것처럼 포장해서 판매하는 자극판매상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고우리가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소모하는 시간들도 점점 늘어만 간다.

현실이 이런 탓에 가짜뉴스에 대한 연구를 하는 학자들은 감정을 지나치게 자극하는 정보들은 일단 걸러서 듣고 신뢰할만한 출처를 통해 진위를 확인할 것을 강조한다.
물론 이렇게 새로 접하는 정보에 대해 팩트체크를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나 문제는 너무 많은 정보들이 빠르게 쏟아진다는 것이다.

일일이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에는 시간도 에너지도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우선 정보의 소용돌이에서 한 발짝 물러나 쏟아지는 이야기들이 "과연 정말 중요한지,
관심을 가질만한 일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어떤 정보나 주장이 나와 직접적인 상관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크게 상관 없는 것인지 (유명인의 사생활,
조직 내에서의 가십거리,
타인에 대한 험담 등),
정말 중요하고 사실이어서 관심을 갖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사실이라고 믿고 싶은 것인지 (잘못된 건강 정보,
일확천금에 관한 정보들),
역시 중요해서 따라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대세에 편승하는 것일 뿐인지 (자기계발 트렌드) 따져볼 필요가 있다.

특히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지만 정작 진짜로 중요한 일에 에너지를 쏟고 있는 것 같지 않다면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줄이고 밤에 잠이라도 편하게 자도록 관심사에 있어 가지치기를 할 필요가 있다.
단순한 정보나 관심사 뿐 아니라 목표나 인간관계 등도 가지치기가 필요하다.
솎아 내고 나면 언제나 쭉정이가 상당히 많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과 실제 중요한 것은 다르다.
"이게 정말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자주 던져야 하는 이유다.

'나'를 이해하는 사람과의 관계는 '나의 일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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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의 실제 모습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는 꽤 다르다.
예를 들어 친구가 많고 항상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사람이 외롭지 않을 것 같지만 실제로 관계의 '양'은 외로움과 큰 상관이 없다.

이보다는 관계의 '질'이 더 중요해서 한 두 명일지라도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또 나를 잘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는지 여부에 따라 외로움을 느끼는 정도가 크게 달라진다.
외로움을 '사회적 배고픔'이라고 보는 시선에 따르면 적어도 우리가 존재론적인 수준에서 갈구하는 관계란 서로 깊이 '이해하는 관계'라는 것이다.

최근 애밀리 오거 캐나다 맥길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서로 이해하는 관계는 우리의 외로움을 충족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내가 나를 정의할 때 사용하는 요소 '나의 일부'가 된다고 한다.

연구자들은 참가자들에게 가상의 연인 제인과 마이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 그룹의 사람들에게는 마이크가 제인에게 항상 따뜻하고 상냥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제인의 목표들과 깊은 두려움들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높은 이해,
낮은 따뜻함),
다른 그룹의 사람들에게는 마이크가 제인의 목표와 두려움들을 잘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항상 따뜻하고 상냥한 모습을 보인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낮은 이해,
높은 따뜻함). 그런 뒤제인에게 마이크와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 것 같냐고 물었다.

그 결과 마이크가 항상 따뜻하지는 않아도 제인을 정말 잘 알고 이해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룹의 사람들이 반대로 마이크가 항상 따뜻하지만 제인을 잘 모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룹의 사람들보다 마이크와의 관계가 제인에게매우 소중하고 중요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물론 친밀한 관계라면 따뜻함과 이해가 모두 있어야겠지만 굳이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이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실제 연인 및 친구들을 대상으로 연인 또는 친구가 자신을 다른 사람들보다 잘 이해하고 있거나 잘 못 이해하고 있다고 여기게 만들고 해당 관계가 자신이라는 사람을 얼마나 잘 말해주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 결과 친구나 연인이 자기 자신이 진정으로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다고 여긴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관계를 자신을 정의하는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는 경향을 보였다.

생각해보면 영혼의 동반자 같은 친구나 연인의 특징이란 성격이나 자라온 배경이 같다는 것보다도 다른 점이 많지만 대화가 잘 되고 웃음코드가 비슷하다는 사소한 요소들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대화가 잘 되고 코드가 비슷하다는 것이 상호 이해의 전제 조건이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나온 곳은 다르더라도 바라보는 곳이 같고 생각이나 감정은 달라도 대화가 잘 돼서 얼마든지 다른 경험을 함께 공유할 수 있고 내가 재미있어 하는 것을 이 사람도 재미있어 하겠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나의 이해자인 것은 아닐까.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 무엇보다 이해가 중요하다는 것은 어느 정도 위안이 되기도 한다.
어떤 관계든지 항상 감정적으로 뜨겁고 좋을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해는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상대방을 향해 한 쪽 귀를 열고 있는 한 얼마든지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관계는 오랜 친구로 수렴한다는 것이 이런 현상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어찌되었든 친구이든 연인이든 누군가가 나의 세상을 정의할 수 있고 반대로 내가 타인의 세상을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나'라고 믿었던 모든 것,'착각'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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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자신과 다른 사람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데에는 자신이 가지지 않은 특성을 '나쁘다'고 보는 것이 한 몫 할지도 모르겠다.

앤디 바네쉬 뉴질랜드 캔터베리대의 연구자는 사람들에게 성격 테스트를 하게 하고 그 결과 당신은 '이상주의자' 또는 이상주의자이기보다는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는 피드백을 주었다.
그러자 이상주의자라는 평가를 받은 사람은 이상주의자인 것이 더 중요하다고 평가한 반면 자신이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는 피드백을 들은 사람은 이상주의보다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비밀이 숨어 있었는데 바로 이 성격 테스트는 가짜였다는 것이다.
실제 성격과 상관 없이 랜덤하게 이상주의자라거나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주었을 때 사람들은 이게 실제 자신의 특성인지 아닌지와 상관 없이 자신의 것이라고 들은 특징이 더 중요하고 귀하다고 반응한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포인트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자신의 성격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바넘이펙트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 어떤 성격특성들에 대해 설명해 주었을 때 마치 다 자신의 특성인 것처럼 "맞아 맞아. 정말 그래" 라고 반응하는 현상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외향적이라고 해서 365일 내내 사람과 같이 있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고 내향적이라고 해서 매일 혼자이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들 외향적이면서 혼자 있고 싶은 시간도 있고 반대로 혼자 있고 싶으면서 타인과 부대끼고 싶은 순간이 오는 법이다.
따라서 어떤 특징이든 대충 그 반대 되는 것과 섞으면 모든 사람들에게 "그거 완전 나야"라는 반응을 듣게 된다.

이런 점에서 사람들에게 어떤 일반적인 특성을 자신의 고유한 특성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렇게 어떤 특성을 자신의 특성이라고 받아들이게 하면 그것이 더 좋고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이러한 편향을 발생시키기 위해 당신은 어떠한 사람이라고 하는 메시지를 우리는 쉴 새 없이 받는다.

미디어에서,
다양한 상품 광고에서,
정치적인 메시지에서 당신은 우리와 같이 ○○한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계속해서 던진다.
이런 메시지들이 때로는 내가 진짜로 원한 적 없는 삶을 내가 원한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다들 어떤 삶의 모습이 좋다고 해서 그렇게 살았는데 실은 하나도 좋지 않다든가,
열심히 살았지만 어딘가 비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나 자신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다양한 영향력이 넘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기에 더욱더 내가 생각하는 내가 진짜 나인지 혹은 그렇게 착각하고 그게 옳은 거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아닌지 따져 봐야 할 것 같다.
내가 나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다 착각일지도 모른다.

타인의 '다름'을 포용해야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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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주변에는 대부분이 성인이 되면 집과 차를 부모로부터 받기 때문에 사정이 어려운 사람을 거의 한 번도 직접 본 적이 없다고 이야기 한 사람을 본 적이 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생활고를 겪는 청년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진짜인지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또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학력의 소유자이지만 자신과 비슷하게 학력이 높은 사람들과 주로 어울리다 보니 자신의 이력이 한참 초라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세상에 빈곤은 없다.
왜냐하면 내가 점심을 먹었으니까"라고 보는 오류,
또 자기 주변 사람들이 (실제로는 매우 편중되어 있지만) 곧 세상의 평균이라고 보는 오류들이다.

나는 안 그렇다고 이야기하지만 어차피 우리는 자기 자신의 경험만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고 한 개인이 경험할 수 있는 세상의 크기는 한정적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에 둘러싸여 손바닥 크기 만한 작은 세상을 경험하고 이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는 오류를 보인다.
그래서 적어도 이러한 오류를 인식하거나 좀 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어울리려 애쓰지 않으면 편협한 사고방식을 갖기 쉽다.

세상을 좀 더 정확히 이해하고 내 경험의 반경을 넓히기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미구엘 라모스 영국 버밍엄대의 연구자 등에 의하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의 교류는 정신적인 풍요와 행복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이들에 의하면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주는 행복에는 한계가 있어서 친구들 중 50% 정도만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로 채우고 나머지 50%는 자신과 다른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로 채우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로 연구자들은 모두가 비슷비슷한 사람들로만 구성된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필연적으로 배척당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서로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서 살 때 비로소 그 사회는 살기 좋은,
포용력이 높은 사회가 되고 이는 구성원들의 행복 또한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장애인의 이동권이라는 사회 구성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이들의 당연한 권리를 무시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나중에 본인이 또는 본인의 가족이 나이들거나 다쳐서 비슷한 어려움을 겪을 때 이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나올 것인지 궁금해지곤 한다.
자신과 다른 남을 배척하는 사회는 언젠가 나를 소외시키는 사회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나와 타인의 다름을 포용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언젠가 발견될 나의 다름 또한 배척의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타인을 포용하지 않았으면서 타인에게 나를 포용해 달라고 아무리 외쳐봤자 포용력을 기른 적이 없는 사회에서 이러한 요구는 또 다시 묵살되고 만다.

다름에 대한 포용력이 없는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은 자신은 '정상'임을 증명하기 위해 언제나 고군분투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봤자 사회는 내가 따라가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에 결국 다들 조금씩 그 좁은 바운더리 안에서 밀려나게 되고 힘 없이 자신이 배척당할 순서를 기다리게 된다.

이런 점에서 사회 구성원들이 다름을 자연스럽게 포용하는지의 여부는 곧 사람들이 안정성과 행복을 느끼는 기반이 되고 그 사회와 모두의 자산이 된다.
다름을 포용하자는 주장을 놓고 뜬구름 잡는다고 보는 시각이 되려 이상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포용력이 높은 사회는 언젠가 사회의 중심에서 밀려날 나와 내 주변인들의 행복을 위해서도 중요함을 기억하자.

혈압 높으면 외로움 등 '사회적 고통' 덜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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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고통(social pain),
사람들로부터 거절 당하고 소외되는 아픔이 신체적 고통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신체적 고통에 예민한 사람이 사회적 고통에도 예민한 현상이 관찰되는가 하면 신체적 고통을 줄여주는 진통제가 외로움 같은 사회적 고통도 줄여준다는 발견들이 있었다.
또한 신체적 고통에 관여하는 뇌 부위와 사회적 고통에 관여하는 뇌 부위가 상당부분 겹쳐져 있음이 밝혀졌다(Eisenberger,
2015).

최근에는 '혈압'이 통증을 느끼는 정도와 관련되어 있고 나아가 사회적 고통과도 관련을 보인다는 발견들이 보고되고 있다.
혈압이 다소 높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통증에 둔감한 경향을 보이고 사회적 고통에도 둔한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미국 샌디에이고주립대의 심리학자 이나가키 연구팀은 사람들로 하여금 온라인 공 던지기 놀이를 하게 했다.
처음에는 여럿이 함께 골고루 공을 주고받지만 점점 나머지 플레이어들이 실제 실험 참가자를 제외하고 공을 주고받으며 참가자를 따돌리는 상황이다.

이 때 따돌림을 당한 참가자들에게 따돌림 당한다는 사실을 인지했는지,
또 그에 대해 어떻게 느꼈는지에 대해 물으면 따돌림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데에서는 혈압에 따른 차이가 없었지만 어떻게 느끼는지에 있어 차이가 나타났다.
혈압이 높은 편인 참가자들이 그렇지 않은 참가자들에 비해 기분이 덜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사람들의 나이와 체질량지수,
스트레스,
공격성,
부정적 정서성과 상관없이 유효했다고 한다.

연구자들은 혈압을 일정하게 조율하는 데 관여하는 압력반사(baroreflex)가 통각과도 관련을 보인다는 점에서 혈압이 사회적 고통과도 관련을 보이는 것일 수 있다고 추측했다.
하지만 아직 추측일 뿐 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지는 미지수다.
물론 혈압과 사회적 통증 사이에 관련성이 나타난다는 것이 곧 그 둘 사이에 인과관계가 존재함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다만 사회적 고통,
특히 '외로움' 같이 고질적인 사회적 고통은 각종 건강 지표를 악화시킨다는 점에서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있어 '받아들여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다시금 상기시키는 발견이다.
식욕 못지 않게 사회적 욕구가 강한 인간에게 사회적 고통과 관련된 지표가 몸에 새겨져 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첫인상이 완벽한 사람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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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해야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다고들 이야기한다.
일리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사랑이 '지나칠' 때는 어떨까.

자신을 향한 지나친 사랑의 대명사인 나르키소스의 신화에서 이름을 가져온 '나르시시스트(narcissist)'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인다.

① 자신은 보통사람들과 다르며 다른 사람들보다 더 똑똑하고 매력적이며 여러 면에서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
② 스스로를 대단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만한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③ 비슷한 맥락에서 인기,
유명세,
권력에 대한 욕구가 크며 자신에 대한 비판을 참지 못한다.
사람들의 관심과 선망을 사는 것을 좋아한다.
④ 공감능력이 낮은 편이며 친밀한 관계에 별로 관심이 없다.

주변에 한 두명쯤 있을 법한 사람들이다.
목소리와 행동이 과장되어 있고 주목받길 좋아하며 사람들의 선망과 부러움을 즐기는 한편 조금이라도 비판을 받으면 금방 날이 서는 사람. 잘 된 일은 전부 본인이 잘했기 때문이고 잘 안 된 일은 전부 다른 사람들 탓이라고 생각하며 이미 잔뜩 부푼 자아상에 계속해서 펌프질을 가하는 그런 사람 말이다.

이런 특성의 사람과 피상적인 관계로 지낸다면 크게 피곤할 일은 없겠지만 만약 '사랑'에 빠지기라도 하면 그 사랑은 정신건강에 해로울 가능성이 크다.

조지아대의 심리학자 케이스 캠벨l과 동료들(Campbell et al.,
2002)은 나르시시스트들은 친밀한 관계에서도 파트너의 행복 증진에는 큰 관심이 없으며 상대방을 자신을 빛나보이게 할 액세서리또는 전리품 정도로 여길 것이라고 보았다.

이 사람과 사귄다고 하면 자신이 더 멋져 보일 것이라거나 별 볼일 없는 너와 사귀어주는 나에게 늘 충성을 다하라는 식으로 상대방을 착취하는 등 관계에서도 득과 실,
이기는 것과 지는 것을 크게 따질 것이라고 보았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던 나르키소스처럼 나르시시스트의 사랑은 상대방을 사랑하기보다 연애를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가꾸는 데 그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람들을 대상으로 설문했을 때 나르시시즘이 높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연애는 게임 같은 것이라고 보는 경향이 강했다.
이들은 연애중일 때에도 계속해서 파트너의 마음을 시험하고 사랑하는 듯 사랑하지 않는 듯 밀당하는 편이라고 응답했다.
연애 중일 때에도 다른 매력적인 상대방에게 구애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고 응답하기도 했다.

이들은 또한 관계에서의 '주도권'을 잡는 것을 좋아하며 상대방보다 더 많은 결정권을 갖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런 반면 실제 관계 유지를 위해서 헌신할 생각은 비교적 적었다.

나르시시스트의 파트너들이 실제로 이런 경험을 하는지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연구자들은 사람들에게 과거 연인들 중 나르시시즘이 높은 연인과 그렇지 않은 연인들에 대해서 설명해보라고 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나르시시즘이 높은 연인들이 그렇지 않은 연인에 비해 바람을 잘 폈고,
다른 매력적인 사람들에게 작업을 거는 일이 잦았고,
상대의 생각과 행동을 통제하려고 했으며,
거짓말을 많이 했다고 묘사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나르시시스트인 연인은 그렇지 않은 연인에 비해 처음 만나고 나서 이후의 인상이 크게 달라졌으며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기까지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나르시시스트들은 실제로 자신이의도했던 것처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처음에는 잘 속이고 상대를 교묘하게 착취하는 일을 더 잘 한다는 것이다.
결국 나르시스스트는 사랑을 하면서 (자신을 향한 사랑을 제외하고) 사랑이 없는 사람인 것일까.

'이런 사람 안 만나면 되지' 라며 지나치기 쉽지만 문제는 이들이,
이들을 사귀고 후회했던 사람들의 고백에서처럼 처음에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상당히 잘 속인다는 점이다.
나르시시스트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초반에 이미지 메이킹을 잘 하며다른 사람들에 비해 자신감있어 보이고 매력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었다(Back et al.,
2010).

첫인상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거나 첫 눈에 완벽해 보이는 사람을 경계해야 하는 한 가지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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