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섹스를 싫어하게 되었나

나는 왜 섹스를 싫어하게 되었나

‘김미영의 갱년기? 갱생기!’는

완경(폐경)을 앞두고 있거나, 경험한 40~60살 여성(feat. 남성 포함)을 위한 한겨레만의 콘텐츠입니다.
갱년기 극복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49살 김미영 기자의 생생한 체험담과 함께 여러분의 갱년기를 ‘갱생기’로 바꿔줄 각종 방법과 정보를 전달합니다.
격주 수요일 오전 11시 찾아뵙겠습니다.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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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동안 말하고 싶어도 부끄러워서 차마 입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부부의 성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어 보려고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배 나온 아저씨(feat. 남편)가 매력적이지도 않고, 이제는 옆에 오는 것조차 두려운(?) 단계에 들어선 저 같은 분들을 위해 말이지요. 왜 우리는 알잖아요?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야!’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연재 구독하기)

불현듯 ‘가족(feat. 부부)끼리 하는 거…’를 자랑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졌어요. 부부, 가정의 화목, 행복한 노후를 위해. 저 역시 신혼 때는 연세 지긋한 부부가 손잡고 지나는 모습을 보며 ‘나도 나이 들어 남편과 저렇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부러워했는데, 어느샌가 남편과 손을 스치는 것조차 어색해졌지 뭐예요.

ep1. 섹스리스인 걸 자랑스러워하셨죠?

섹스를 하지 않는 부부들이 생각보다 참 많습니다.
한두 번 잠자리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수년간 섹스를 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해요. 저와 제 주변의 여성들을 보면 대체로 임신과 출산, 육아를 겪으며 섹스에 대한 욕구와 관심이 크게 줄어드는 것 같더라고요.

연세대 사회학과 염유식 교수와 연세대 의대 내과학교실 최준용 교수가 발표한 2021년 ‘서울 거주자의 성생활’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3명 중 1명이 지난 1년간 성관계를 갖지 않았다고 응답했다고 합니다.
 

왜 다수의 부부(특히 결혼 유지기간이 길수록)는 섹스를 하지 않는 것일까요? ‘가족끼리 그러면 안 되기 때문’일까요? 제 생각은 서로에 대한 성관계 만족감이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즐겁고 행복해야 하고 싶은데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이지요. 육아, 가사, 회사 업무 등에 따른 피로와 스트레스도 그 원인 중 하나일 것이고요. 물론 갱년기도 한 몫 하겠죠? 실제 성호르몬의 영향으로 여성의 관련 능력은 30대에 최고조에 달해 40대까지 유지하다가 50대에 감퇴된대요. 아~ 50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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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섹스리스입니까?

문화방송 ‘오은영 리포트 - 결혼지옥'을 통해 부부 사이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있는 오은영 박사는 방송에서 “의학적으로 어려움 없는 건강한 부부 기준으로 봤을 때 1년간 10회 미만, 월 1회 미만으로 성생활을 하면 의학적으로 ‘섹스리스 부부'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우리 부부는 100% ‘섹스리스’ 맞네요.ㅋㅋㅋ’ ‘원래 연례행사 아닌가요?’ ‘지금은 섹스가 귀찮은 것을 넘어 죽기보다 싫어요.’ … 설마 여기에 해당되나요?

단도직입적으로 저희 부부는 섹스리스가 맞습니다.
그런데 억울한 건, ‘아이를 셋이나 낳았는데, 무슨 섹스리스야?’ 오해를 받는다는 것이죠. 더 문제인 건 갱년기를 겪으면서 더 싫고 귀찮은 일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에요. 남편이 옆에 오기만 해도 두려워요. 그럴 땐 옆에서 자고 있는 막내딸을 아주 꽈~악 껴안죠.

ep2. 여자의 마음을 모르는 남자

왜 나는 섹스를 싫어하게 되었나 글을 쓰면서 곰곰히 생각해 보았어요. 그냥 재미없고 힘들기만 했던 것 같아요. 저는 부드럽고 편안한 분위기,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더 받기를 원했던 것 같아요.

20년을 함께 살았는데도, 저는 남편한데 그 말을 하는 게 그렇게 창피하고 쑥스럽네요. 저만 그런가요? “하자!” “좋아.” 같은 말도 역시나… 안 나옵디다.
 그러니 “불만이야!” 같은 말이 입 밖으로 나오겠습니까? 이런 감정을 남편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불만은 불만대로 쌓이고. 불만이 쌓이니 하기 싫은 악순환이 20년째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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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 사랑과 믿음, 친밀감의 표현

가장 좋은 섹스란 무엇일까요? 지극히 주관적인 행위이니만큼, 공식과 정답은 없습니다.
사랑과 믿음, 친밀감의 표현이기 때문에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이해, 배려가 전제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전문가들이 써놓은 글, 책, 방송 등을 보니 섹스는 talk(대화)와 play(놀이), love(사랑 표현)를 한꺼번에 할 수 있는 부부만의 전유물이라고 하더군요. 몸으로 하는 놀이와 대화를 통해 사랑을 표현하고, 친근감을 쌓을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삼조라는 건데, 정말 100% 동의합니다.
놀이처럼, 즐겁게 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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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 하면 젊어집니다~

꾸준한 섹스는 갱년기 이후 감소하는 성호르몬 생성을 증가시키고, 건강과 수명에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특히 사랑을 확인과 신뢰를 확인하는 부부 사이 섹스는 갱년기 이후 겪는 우울감과 상실감, 무기력감을 극복하고 삶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지요.

젊어지는 건 덤(?)이죠. 실제 스코틀랜드 로열 에든버러병원 연구팀이 3500명을 조사한 결과, 주당 3회 이상 섹스를 하는 사람은 평균 10년(남자 12년1개월, 여자 9년7개월) 더 젊은 것으로 나타났어요. 두통, 관절통, 치통, 요동 등의 통증을 완화하고, 골다공증을 예방시켜줄 뿐 아니라 면역력도 향상시키기 때문이죠. 미국 윌크스대학 연구팀은 1주일에 1~2회 섹스를 하면 면역글로블린A의 분비량이 증가해 감기나 독감 등 호흡기 질환에 대한 저항력이 강해진다고 발표했어요.

ep5. 나도 하고 싶다!

주변에는 결혼 20년차이지만 여전히 부부 사이에 왕성한(?) 성생활을 하는 친구들이 여럿 있어요. “아이들을 연년생으로 낳고 키우다보니 1년만 정도 섹스리스가 된 적이 있었어. 그래서 이후 서로 상담도 받고, 질성형 수술도 하면서 노력을 했지.” 그 친구는 수술 이후 자신감을 찾았을 뿐 아니라 ‘제2의 신혼’을 맞이했다며, 제게 그 수술을 적극 권하고 있는 중이죠.

이 친구가 남편과의 관계를 극복할 수 있었던 건 수술 때문이 아니었어요. 둘 사이에 놓여있던 벽을 허물고, 허심탄회하게 서로의 의견을 나눴기 때문이지요. 전문가 상담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노력을 한 셈이죠. 그리고 자주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보는 것!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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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 실전 돌입!

배우자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신뢰를 회복하고 마음의 위안과 안정을 얻는 것. 그것이 바로 섹스의 효용일 것입니다.

오늘 밤, 나의 배우자에게 이렇게 말해보는 건 어떨까요?

“하자.”(feat. 쑥스러움은 나의 몫) 이것이 성공했을 땐, “좋아.”까지.

‘김미영의 갱년기? 갱생기!’를 여러분과 함께 만들고 싶습니다.

궁금했던 내용이나 정보, 나만의 건강 비결이 있다면 언제든지 kimmy@hani.co.kr로 연락 주세요!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진화의 본질은 정보…데이터는 어떻게 지식이 되나

주철현의 커넥션 정보 엔트로피 

정보의 불확실성에서 비롯된 공포를 해소하려는 욕망이 호기심의 근원이며, 정보는 이를 치료하는 특효약이다.<BR> 픽사베이

정보의 불확실성에서 비롯된 공포를 해소하려는 욕망이 호기심의 근원이며, 정보는 이를 치료하는 특효약이다.
픽사베이

“정보는 불확실성의 해소다.”

- 클로드 섀넌 (1916~2001) -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는 말처럼, 정보에 대한 갈망은 죽음의 공포도 극복하는 지적 본능이다.
호기심으로 가득한 어린이들은 비밀 놀이를 좋아한다.
시시콜콜한 내용을 비밀이라 정하고 친한 친구끼리 몰래 공유한다.
하지만 무리와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는 비밀이 궁금해 잠을 설치며 괴로워한다.
비밀이 진실인지 혹은 가치가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으며, 모두가 아는 정보를 나만 모른다는 비대칭성이 문제가 된다.
정보의 비대칭성은 일방적 불확실성이다.
구사일생의 생존 경쟁을 거친 인간의 두뇌는 불확실성에 본능적 공포를 느낀다.
이런 공포를 해소하려는 욕망이 호기심의 근원이며, 정보가 이를 치료하는 특효약이다.

인간의 고등지능은 유전자 진화를 통한 선천지능과 문명을 통한 후천지능의 총합이다.

그리고 후천지능은 인류가 누적한 방대한 지식 정보를 통해 획득된다.
정보를 의미하는 인포메이션(information)은 머리 속(in)에 무언가를 형성시킨다(formation)는 합성어다.
이는 심층신경망이나 뉴런 세포를 몰랐던 시절부터 정보와 회로 형성의 관계에 대한 통찰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태계와 문명을 관통하는 진화의 본질은 정보다.
생태계에서는 유전 정보가, 문명에서는 지식 정보가 진화한다.
하지만 정보를 담을 수 있는 미디어와 전달되는 방식에는 큰 차이가 있다.
유전자에 담겨 있는 유전 정보는 생물 개체가 살아남아 번식에 성공해야 후대로 전달이 가능하다.
하지만 문명의 지식 정보는 통신 미디어에 담겨 공간을 초월해 수평 전달되고, 기록을 통해 시간을 초월해 수직으로 후대로 전달된다.

지식 정보의 중요한 특성은 불변성이다.
두뇌에 저장된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오류가 발생한다.
구전을 통해 전승되는 것도 한계가 명확하다.
하지만 문자로 기록되면 시공간을 초월하는 불변성을 획득할 수 있다.
인류 문명과 함께 시작된 문자 정보는 세대를 초월한 지식 축적과 발전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시대가 변해 문자의 해석이 틀리는 경우는 있어도, 기록된 정보가 변하지는 않는다.
문자 정보에는 두 가지 규칙이 있다.
첫째는 순서대로 나열해 정보를 기록하는 문자 집합이다.
영어는 알파벳, 한글은 자모가 연결되어 정보를 담게 된다.
둘째는 글을 읽어가는 방향이다.
즉 방향과 순서가 문자의 연결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처럼 정보를 담은 문자열을 서열(sequence)이라 한다.

서열에 담긴 정보의 양은 확률로 측정하게 된다.
확률은 노름이 기원이라 수학치고 재미있는 편이다.
가끔 100% 확률이라는 표현이 쓰이지만 퍼센트는 확률이 아닌 빈도의 단위다.
수학 교과서에 확률과 통계로 묶여 있지만 통계는 과거에, 확률은 미래에 관심을 두고 접근한다.
내일 아침에 동쪽에서 해가 뜰 확률은 1, 서쪽에서 뜰 확률은 0이다.
확률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0에서, 반드시 일어날 1 사이의 값을 가진다.
학창 시절 동전 던지기 기억을 더듬어 보자. 동전을 두 번 던져 연속으로 앞면이 나올 확률에 대해, 4분의 1 혹은 0.25가 떠오르면 충분하다.
동전을 한 번 던지면 ‘앞, 뒤’ 중 하나가 나온다.
두 번을 던지면 ‘앞앞, 앞뒤, 뒤앞, 뒤뒤’ 네 가지 중 하나가 나온다.
이렇게 나올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의 조합을 경우의 수라고 한다.
따라서 두 번 연속으로 앞이 나올 확률은 네 가지 경우 중 하나이니 0.25다.

그럼 동전을 100번 던졌을 때 모두 앞면이 나올 확률은 어떨까. 가능한 서열에 대한 경우의 수를 앞앞…앞, 앞앞…뒤,... 이런 식으로 세면 평생 걸려도 못 끝낸다.
만약 백 자리 서열 한 개 적는 데 1초가 걸린다면, 모두 세는데 1,267,650,600,228,229,401,496,703,205,376초가 걸린다.
단위를 바꿔보면 40,196,936,841,331,475,186,983년이 걸린다.
우주의 나이를 단위로 바꿔보면 2,955,657,120,686번이다.
빅뱅이 시작되어 지금까지 시간을 약 30조 반복해야 끝나는 시간이다.
하지만 이 경우의 수를 학창시절 배운 순열을 이용하면 간단히 구할 수 있다.
‘앞, 뒤’ 둘 중 하나인 동전 던지기 서열이 한자리 늘면 경우의 수는 두 배씩 늘어난다.
따라서 동전을 백번 던지는 경우의 수는 2를 100번 곱하면 된다.
이처럼 수학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마술 같은 힘이 있다.

디지털 시대에서는 모든 정보가 0과 1의 서열로 저장이 가능하다.<BR> 픽사베이

디지털 시대에서는 모든 정보가 0과 1의 서열로 저장이 가능하다.
픽사베이

정보를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전달할까

유난스럽게 동전 던지기를 이야기한 것은 디지털 시대에서는 모든 정보가 0과 1의 서열로 저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대 문명의 필수품인 컴퓨터가 데이터를 한 번에 처리하는 능력을 비트라고 한다.
이는 0과 1로 구성되는 디지털 데이터의 기본 단위다.
위의 동전 던지기 결과, 서열에서 ‘앞, 뒤’를 ‘0,1’로 치환하면 100비트 디지털 데이터가 된다.
디지털 데이터가 너무 간단해 세상의 정보를 담기에는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최근 64비트 컴퓨터가 한 번에 다룰 수 있는 크기는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모래알에 번호를 붙이고 남는 범위다.
100비트라면 우주의 모든 별에 번호를 붙이고 남는 범위를 가진다.
이처럼 이진수에 불과한 간단한 비트를 이용해 무한에 가까운 다양성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서열이다.
영어는 알파벳 26개가 기본 단위다.
햄릿 같은 문학 작품도 알파벳이 연결되어 단어, 문장, 문단이 단계적으로 구성된 26진수의 서열 정보다.
이미지의 경우도 삼원색의 값을 화소 단위로 연결한 서열 정보로 변환할 수 있고, 동영상은 이런 이미지 정보를 순서대로 연결한 서열 정보로 저장된다.
우리가 접하는 세상의 모든 정보는 서열이며, 진수 변환을 통해 디지털 정보로 통신하고, 저장되고, 분석된다.

정보 공학은 정보의 전달 비용 절감을 위해 시작되었다.
혼자 알고 있는 지식은 비밀이지 정보가 아니다.
정보의 가치는 누군가에게 전달되어야 발생한다.
그런데 정보 전달은 공짜가 아니다.
통신은 전보가 발명되면서 빛의 속도로 도약하였다.
그런데 처음 전보가 상용화되었을 때 비용은 지금 통신비용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비쌌다.
사람들은 비용을 아끼기 위해 글자를 최대한 줄여 보냈다.
예를 들면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빨리 나으시길 바랍니다’라는 안부를 ‘기쾌유’로 보내는 식이었다.
이는 현대 디지털 통신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정보 압축의 일종이다.
지금 핸드폰으로 부담 없이 동영상을 보는 것도 이 정보 압축 덕분이다.

가장 간단한 송신자, 통신, 수신자로 구성된 정보 통신 시스템을 생각해보자. 송신자는 정보를 전기 신호에 담아서 보낸다.
통신은 전기 신호를 주고받는 수단이다.
수신자는 전기 신호를 통해 정보를 받게 된다.
여기서 비용은 통신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비용을 절약하려면 송신자는 정보를 압축하고, 수신자는 압축을 풀어서 원래 정보로 복구해야 한다.
이때 송신자와 수신자가 압축 방법에 대해 미리 약속해야 정보가 제대로 전달된다.
전보의 예에서 ‘기쾌유’의 뜻이 통하려면 송수신자가 모두 한자에 익숙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처럼 압축 방법에 대한 약속을 프로토콜(protocol)이라 한다.
복원으로 원래 정보가 완벽하게 복구되는 프로토콜이 사용된다면 무손실 압축이라 한다.
하지만 이 경우는 압축을 많이 할 수가 없다.
반대로 손실 압축은 원래 정보에서 드물게 나오는 부분을 버리고 압축한다.
따라서 압축을 많이 해서 통신 비용을 줄이면 데이터는 더 많이 손상된다.
정보 공학은 정보 손실도 최소화하면서 가능한 한 많이 압축할 수 있는 프로토콜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프로토콜 연구를 하려면 원본과 압축 데이터의 정보량을 비교해 압축률이 얼마인지 알아야 한다.
과학에서는 어떤 대상을 연구하려면 정량적 측정이 필수다.
예를 들어 열역학에서는 기체의 종류나 담겨 있는 용기에 상관없이 온도, 압력, 부피 등의 정량적 수치를 측정해 상관관계를 연구한다.
정보 공학에서도 마찬가지로 언어나 매체에 상관없이 담겨 있는 정보의 객관적 양을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정보량을 유지하면서 데이터의 크기를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다양한 압축 프로토콜을 실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섀넌은 1948년 발표한 ‘통신의 수학적 이론’이라는 논문에서, 정보량의 척도로 서열의 확률적 기댓값을 사용하였다.
이것이 추상적 개념이 아닌 학문의 대상으로 정보를 다루기 시작한 접근의 시작이었다.

정보의 기댓값은 서열에 대한 놀라움을 확률을 통해 수치화한 개념이다.
만약 고양이가 ‘hi’ 라고 컴퓨터 키보드를 쳤다면 얼마나 놀라야 할까. 컴퓨터 키보드를 아무거나 무작위로 두 번 눌렀을 때 h와 i가 순서대로 눌러지는 것은 로또 2등 당첨보다 살짝 높은 확률이다.
깜짝 놀랄 정도는 되지만 고양이가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오버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럼 강아지가 햄릿 13만자를 정확히 타이핑하면 얼마나 놀라야 할까. 무작위로 키보드를 두들겨 햄릿 전체 알파벳 서열이 나올 확률은, 사람이 콘크리트 벽을 통과할 확률이나 다름없다.
양자역학에서 일어나는 확률로 0이 아니지만,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의미다.

백번을 던져 모두 앞면이 나왔다면 정보 엔트로피는 0에 수렴한다.<BR> 위키미디어 코먼스

백번을 던져 모두 앞면이 나왔다면 정보 엔트로피는 0에 수렴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정보 엔트로피란 무엇인가

섀넌은 서열의 확률적 기댓값을 정보 엔트로피로 계산하였다.
디지털 정보 엔트로피도 확률과 마찬가지로 0에서 1의 값을 가진다.
확률의 놀라움은 일반적 놀라움과 약간 다르다.
강아지가 햄릿을 친다면 누구나 놀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강아지가 햄릿을 쳐서 놀라는 것이지 햄릿이라는 정보에 대해 놀라는 것은 아니다.
햄릿의 정보 엔트로피는 0에 수렴하는데, 이는 절대 우연히 생길 수 있는 정보가 아니라는 의미다.
동전을 백번 던지는 예를 다시 생각해보자. 백번을 던져 모두 앞면이 나왔다면 정보 엔트로피가 0에 수렴한다.
이는 놀랄 일이 아니라 누군가 사기를 치는 것이다.
만약 문자를 모르는 외계인이 햄릿이 저장된 전파 데이터를 수신했다고 생각해보자. 외계인이 정보 엔트로피를 계산할 정도의 지능이 있다면, 영어를 몰라도 전파에 어떤 정보가 담겨 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반대로 우리가 외계인의 정보를 받을 때도 마찬가지다.
천문학자들이 우주에서 날아오는 전파를 분석해 외계 문명을 찾으려 시도한 적이 있다.
외계인의 언어를 몰라도 우주에서 수신된 전파의 정보 엔트로피를 계산해 보면 담겨 있는 정보량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보 엔트로피가 섀넌의 생각보다 훨씬 강력한 개념이라는 것은 금방 드러났다.
이 개념을 접한 다른 영역의 과학자들이 열역학 엔트로피와 유사성을 발견하고 정보 엔트로피로 부르기 시작하였다.
물리적 실체와 추상적 정보가 대상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두 개념의 수식은 서로 변환이 가능하다.
더 포괄적 개념의 정보 엔트로피는 통신 분야에서 정보학, 생물학, 전산학, 사회과학 등 전방위로 개념이 확장되었다.
우리 유전자에 담겨 있는 생명 정보 역시 핵산 4개의 알파벳으로 구성되는 서열이다.
따라서 정보 엔트로피 개념은 유전자 분석에도 적용할 수 있다.
유전자 분석 기법의 발전으로 서열 정보는 쉽게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방법적인 한계로 전체 유전자 길이에 비해 아주 짧은 서열 정보를 파편처럼 얻게 된다.
특히 과거 화석에서 검출된 유전자 서열의 경우 어느 부분인지 유추할 단서조차 없는 경우가 있다.
이때 유전자의 정보 엔트로피를 계산해보면, 그 서열이 얼마나 의미 있는 정보인지 쉽게 판단할 수 있다.
유전자에서 중요한 기능 정보 부위에 발생하는 돌연변이는 치명적이다.
따라서 이 부위에 발생한 돌연변이 유전자는 소멸하기 때문에 무작위 정보 엔트로피는 낮아지게 된다.
이는 기능을 발현하는 질서가 형성되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림1. DIKW 피라미드와 이해의 동심원. 주철현

그림1. DIKW 피라미드와 이해의 동심원. 주철현

문명이 고도화수록 정보 엔트로피는 낮아진다

인류 지식을 발전시켜온 학문이라는 집단 지성도 정보 엔트로피를 낮추는 행위다.
정보 엔트로피라는 개념 자체는 정보의 진실성과는 상관이 없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뉴스에 대한 정보 엔트로피를 계산할 수 있다.
그런데 정보 엔트로피는 뉴스가 가짜인지 진짜인지 말해주지 않는다.
이는 열역학의 엔트로피처럼 단순 정량화 수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사실관계를 전달하는 뉴스가 많아진다는 것은 정보의 혼란도가 증가한다는 의미다.
반대로 일치하는 사실관계를 전달하는 뉴스가 많아질수록 정보 엔트로피는 낮아지면서 진실에 가까워진다.
즉 정보 엔트로피도 혼란도와 비례하며, 지식의 측면에서는 이해도에 반비례한다.
이해의 단계는 데이터(Data), 정보(Information), 지식(Knowledge), 지혜(Wisdom)로 구분할 수 있다.
데이터는 발생한 사건을 측정해 얻어지는 날 것 그대로 자료다.
정보는 측정한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가공해 구체적 상황을 재구성한 것이다.
따라서 데이터 자체는 의미가 없고, 정보로 다듬어지면서 가치가 부여된다.
지식은 정보를 분석해 얻어낸 사건의 원인과 결과의 연관 법칙이다.
마지막으로 지혜는 지식을 이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데이터, 정보, 지식, 지혜의 단계적 개념은 ‘DIKW 피라미드’(‘그림 1’의 아래 삼각형)로 그려진다.
그리고 이 피라미드를 동심원으로 확장하면 엔트로피와 이해도의 관계를 보여주는 이해의 동심원이 된다.
각 원의 면적은 정보 엔트로피의 크기와 비례한다.
개인의 후천적 지능이 지식 학습을 통해 발현되는 것과 동일하게, 문명의 집단 지능도 정보 엔트로피가 낮은 방향으로 탐구가 진행된다.
이해의 동심원에서 데이터에서 출발해 지식을 향해 단계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학문의 진행 과정이다.
그리고 진행 단계에서 합의와 피드백이 반복되는 역동적 상호작용이 가장 활발한 학문 영역이 과학이다.
피라미드 단계의 위로 올라갈수록 이해도는 높아지면서 정보 엔트로피는 감소한다.
예를 들어 나무 아래에 앉아 있는데 사과가 머리에 떨어졌다면 단순한 관찰 데이터다.
이런 사건을 많이 측정해서 관찰된 모든 물체가 땅으로 떨어지는 것을 확인했다면 가치 있는 정보가 된다.
이 정보들을 분석해 찾아낸 중력의 법칙은 지식이 된다.
그리고 공사 중인 건물 아래 서 있지 않는 것은 지혜다.

하지만 정보 엔트로피가 낮다고 절대 불변의 진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의 발전에 의해 지식이나 지혜는 언제라도 새로운 것으로 교체될 수 있다.
오컴의 칼날처럼 집단 지성의 진행 과정에서 관찰되는 엔트로피의 상대성만 확인이 가능할 뿐이다.

주철현 | 울산의대 미생물학·의학교육학 교수

논다는 건 정말이지 중요해…부모와 함께는 더! [ESC]

송호균의 목업일기│아이와 함께하는 목공

아이와 공방에서 보내는 한나절
냄비받침, 스툴, 책장 뚝딱뚝딱
‘함께 물건 만들기’ 추억 한뼘 더

송호균 필자의 큰아들이 목공방에서 톱질에 열중하고 있다.<BR>

송호균 필자의 큰아들이 목공방에서 톱질에 열중하고 있다.

“친구 같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
” 선친은 늘 말씀하셨다.
안타깝게도 아버지는 그 세대의 많은 다른 어른들처럼, 그 방법은 알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늘 바빴다.
아버지는 언제나 집 밖에 계셨고, 어머니 입장에서의 결혼생활은 자식의 눈으로 보기에도 썩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두 분 모두 돌아가셨지만, 아버지를 원망하던 때도 있었다.
어쨌든 아버지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셨던 것이라고 이제는 생각한다.

그럼에도 두 분의 결혼생활은 내겐 늘 반면교사였다.
아버지는 부재했으며, 어머니는 불행했다.
부모님과의 관계가 늘 서먹했던 건, 함께 가족이 보낸 절대적인 시간이 너무 짧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주말이든, 평일이든 각자의 공간에서 따로 시간을 보내는 가족들은 서로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프로 목수와 육아 아빠 사이

다른 삶을 꿈꾸게 했으므로, 반면교사 역시 교사임이 분명하다.
두 아들을 낳고,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온 가족이 제주로 내려온 것도 그래서다.
자랑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두 아이들은 부모와 떨어져 본 적이 없다.
이곳 제주에서 직장을 다니는 아내에게도, 꽤 오랜 시간을 살림만 해온 내게도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
아이들은 문제가 생기거나 필요한 게 있으면 우선 아빠를 찾는다.
‘함께 논다’는 게 중요하다.
아, 노는 것은 정말이지 중요하다.
인간은 놀아야 한다.
무엇을 하고 놀 것인가. 제주에 살면서 오름도 오르고, 바다에도 뛰어들고, 관광지도 다니고, 시장통에서 할 일 없이 배회도 하면서 하여튼 매일매일 아이들과 놀면서 지냈다.

목공을 배우고 창업까지 하게 되자 아이들에게도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놀이터가 하나 더 생긴 것이다.
‘아빠 목공방’이라는 장소는, 아이들에게는 단순한 아버지의 일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거기엔 마음대로 잘라볼 수 있는 나무도 있고 각종 공구도 있다.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도 있고, 당장 일할 시간을 확보해야 하는 아빠가 여차하면 스마트폰도 쥐여주는 곳이다.
둘째가 틈만 나면 “아빠 목공방에 가자”고 조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스승의 공방에서 일하던 시절, 유치원생인 아들을 처음 데려갔다.
쓱싹쓱싹 손사포질도 해보고, 작은 소품에 레이저각인도 해보며 소나무 냄비받침을 만들었다.
벌써 5년쯤 전의 일인데 두 아들의 이름이 각각 새겨진 두 개의 냄비받침은 아직도 잘 쓰고 있다.
그 뒤로 틈날 때마다 아들을 데리고 하나둘씩 뭔가를 함께 만들었다.
접이식 스툴도, 작은 벤치, 수납장과 책장도 만들었다.

창업을 하면서 ‘프로 목수’가 되었지만 여전히 본업은 ‘살림하는 육아 아빠’라고 생각한다.
본업이 육아인 공방장의 일과가 궁금한가? 아침에 일어나 두 아이의 아침식사를 차린다.
씻기고, 입히고, 가방 챙기는 것도 봐주고 함께 길을 나선다.
두 아들을 학교에 내려주고 출근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내게 주어진 근무 시간이다.
일이 없을 때는 한없이 한가하지만, 마감에 쫓길 때는 밥 먹을 시간도 없다.
일상적 정리정돈과 작업 후 청소는 기본 중의 기본일 터. 청소는커녕 손에 쥔 공구를 그대로 내던지고 퇴근하는 일이 잦다.
작업도 해야 하고, 아이들을 기다리게 할 수도 없으니 다른 도리가 없다.
하교와 학원 라이딩 등을 책임지고 집에 가선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함께 숙제도 하고, 목욕도 해야 하고, 텔레비전도 보고 놀다가 잔다.

방학이 되면 완전히 다른 게임이다.
방학에 비하면 학기 중의 동선은 누워서 떡 먹기다.
우선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라는 소중한 근무시간이 확보되지 않는다.
저학년 때는 돌봄교실 등이 운영되지만, 이미 4학년인 큰아이는 해당되지 않는다.
둘째는 학교에 내려주고, 큰아이와 공방으로 간다.
공방 바로 앞이 공립도서관이라 오전에 책 한권씩을 꼭 읽기로 했지만, 한 시간도 안 돼 쫄래쫄래 공방문을 열고 들어서는 일이 다반사다.
“톱질할래요, 이거 잘라주세요, 저거 조립할래요.” 말도 많고 요구도 많다.
아무리 ‘목공인의 아들’로 상대적인 경험이 풍부하다 해도 아이는 아이다.
계속 신경써주고,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봐줘야 한다.

호두나무 자투리 톱질하는 아들

함께 제작한 수납장에 바니시를 칠하고 있는 둘째 아들.

함께 제작한 수납장에 바니시를 칠하고 있는 둘째 아들.

아이를 데리고 오전 중에 어찌어찌 작업을 마치고 함께 점심을 먹고 나면, 둘째를 데리고 와야 한다.
여름방학 중에는 아예 물놀이 세트를 늘 차에 두고 곧바로 바다로 간다.
물질을 마친 해녀가 몸을 씻는다는 용천수탕이 있는 포구가 있다.
거기서 대충 씻고, 갈아입고 학원도 보낸다.
그러고 나면 다시 저녁일과의 시작이다.
평상시에는 오후 3시, 방학에는 점심때 퇴근해야 하는 목공방이 아직 망하지 않고 있으니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모든 건 공방의 실질적 주인이시자 제주에 와서도 직장생활을 이어가사, 가장으로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아내 덕분이 아니겠는가.

짧은 여름방학은 그래도 양반이다.
두 달 동안 이어지는 겨울방학 동안 공방은 사실상의 개점휴업 상태가 된다.
차라리 아이와 함께하는 목표를 하나씩 정하는 게 낫다.
지난 겨울방학에는 함께 침대를 짰다.
이번 여름방학에는 내가 바빠서 아직 목표를 정하지 못했는데, 얼마 전 혼자 뭘 열심히 하고 있길래 봤더니 호두나무(월넛) 자투리 나무를 갖고 톱질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아들아, 그거 아빠가 나중에 쓰려고 모아둔 거 같은데. 음, 그래 괜찮아. 뭘 만들어 볼까?

비뚤비뚤 불규칙한 모양으로 잘린 호두나무 조각이 작업대에 뒹굴었다.
하나둘씩 조각을 맞춰보던 아들이 “예쁘지 않냐”고 물어본다.
제법 그럴듯했다.
꼭 실용적인 무언가가 아니라도 그냥 ‘예쁜 물건’이라는 것도 있단다.
좀 더 유식해 보이는 말로는 ‘오브제’라고 하지. 그런 식으로, 좀 더 규모있게 제작하면 이름하여 ‘월넛 패턴 디자인 벽체’가 되는 거란다.

그래도 여기에 뭔가 ‘실용성’을 더할 순 없을까? 결국 아이가 구상한 ‘월넛 오브제’에 자석을 부착해 마그넷으로 완성하기로 했다.
적당히 샌딩하고 오일마감까지 마친 마그넷은 집 냉장고에 부착해 잘 쓰고 있다.
이렇게 아이와 공방에서의 한나절을 보내는 것이다.
아들과의 추억도 조금 늘었다.

이참에 ‘아이와 함께하는 목공체험’ 프로그램도 출시해볼까.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의미있는 물건을 만들어 보는 것이다.
아예 설계부터 함께하는 과정도 가능하겠다.
작은 소품뿐 아니라 본격적인 가구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뭔가 ‘물건을 만드는 일’은 아이도, 어른도 즐겁다.
함께하는 시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오랫동안 생활공간에 두고 쓰는 물건이라면 더욱 그 의미가 클 것이다.

글·사진 송호균 나무공방 쉐돈 대표

한겨레 기자로 일했다.
‘이대로는 도저히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내기 어렵다’고 생각해 2016년 온 가족이 제주도로 이주했다.
본업은 육아와 가사였는데, 취미로 시작한 목공에 빠져 서귀포에서 목공방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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