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 정치사의 10가지 근본적 질문

 


1961년 5·16 당시의 박정희 전 대통령(당시 육군 소장).
한국 정치사에서 얼키고설킨 수많은 난제(難題)들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내놓았던 학자가 얼마나 될까요. 더구나 한 주제도 아니고 여러 주제에 대해서 말입니다. 최근의 일일수록 ‘평가는 후세에 맡긴다’는 진부한 말을 하는 것도 많이 봐 왔습니다.


그런데 그런 ‘명쾌한 답변’이 아주 없지는 않았습니다. 고려대 교수와 세종연구소장, 한국정치학회장을 지낸 원로 정치학자 한배호 유한양행 이사장이 그 주인입니다. ‘자유를 향한 20세기 한국 정치사’는 2008년에 그가 낸 책이니 세월이 꽤 흘렀습니다. 거기서 그는 한국 현대 정치사에 ‘10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했습니다.

한배호 이사장
지금 다시 들여다보니 곱씹어볼 만한 대목들이 많습니다.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번호 아래의 글은 긴 원문을 제가 요약한 것이고, 저자 본인도 당시 기사를 보고 대체로 흡족해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괄호 안은 지금 제가 다시 그 말을 생각해본 것입니다.
①식민 통치는 무엇을 남겼는가?

일제의 식민 지배는 우리에게 폭력적인 권위주의와 상하 위계적인 관료주의의 폐해를 남겼다. 일제의 근대화 개발은 조선인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조선인의 분열을 획책한 일제의 통치 방식은 반목과 불신의 유산을 남겼으며, 이미 극심한 이념 대립의 씨를 뿌렸다.


(이 간단하고 명쾌한 결론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부인하려는 생각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일제가 식민지 조선을 개발한 것은 조선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철저히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인 것도 사실이고, 그 결과 조선이 개발된 것도 사실입니다. 두 가지 사실은 모순되지 않습니다. 혹 그 때문에 마땅히 일본에게 고마워해야 한다는 말과 근대화 자체를 부정하는 시각 모두 납득할 수 없습니다.)


②38선은 왜 갈렸는가?


일본의 패망으로 극동 지역에 힘의 공백이 생겨나자, 이를 채우기 위한 미·소 사이의 각축 속에서 하나의 타협으로 38선이 그어졌다. 그것은 루스벨트와 미국 정부의 조선에 대한 무관심, 안이한 대소(對蘇) 정책의 산물이었다. 반면 스탈린은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를 너무나 잘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1950년 6·25 전쟁 발발과 트루먼 대통령의 참전 결정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은 한반도에 관심 자체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없던 관심을 한반도로 기어이 돌린 미국 측 입장에서의 ‘관종’은 누구였을까요. 이승만 말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독재자 이승만’이 싫다고 해도 이것만큼은 사실입니다.)


③해방정국, 무엇을 얻고 잃었는가?


해방 직후의 정국은 한반도의 분단과 전쟁을 낳았다. 그러나 이승만이 미·소의 대립 속에서 가장 실현성이 높다고 본 ‘남한 단독정부안’을 추구해 성공했다는 점은 평가 받아야 한다.


(이미 1946년 2월 북한에 사실상의 정부인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를 만들어 김일성 우상화를 하고 있던 판국에 선택지는 안타깝지만 두 가지 뿐이었을 겁니다. 남한만이라도 자유민주주의 정부를 세워 통일을 도모하느냐, 아니면 이미 세워진 북한 정권에 남한도 흡수되느냐.)


④6·25 전쟁은 왜 일어났나?


최근 공개된 소련·중국측의 자료는 ‘김일성이 계획하고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얻어 남침을 감행한 전쟁’이라는 것을 명백히 보여준다. 그것은 무력에 의한 ‘침략 전쟁’이었고, 스탈린과 마오쩌둥(毛澤東)은 한반도를 공산화해 아시아에서의 전략적 지위를 확보하려 했다.


(1990년대만 해도 북침을 주장하는 사람이 국내에도 그렇게 많았는데, 그리고 ‘남침이 맞냐 북침이 맞냐’고 교수님께 물어보면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버럭 화를 내기도 했는데, 소련 해체 이후 쏟아진 문서들에 의해 다시 남침이 확고한 사실로 굳은 것을 보니 진실은 결국 드러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⑤4·19는 누가 왜 일으켰나?


고등교육에 의해 형성된 학생들의 도덕적 기준이 위정자들의 정치 행위와 너무 거리가 멀었고, 교육과 신분의 불일치에서 생겨나는 좌절감도 커졌다. 여기서 의분을 느낀 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배후세력이 선동하거나 새로운 지배체제로 바꾸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지금 고등학교 교과서들에는 1950년대 남과 북이 모두 독재체제였다며 ‘그놈이 그놈’이란 서술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남북은 완전히 다른 체제였습니다. 자유민주주의 교육을 받은 4·19의 주역들은 결국 자유민주주의를 위반한 부정선거를 그냥 보고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런 일이 북한에선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⑥5·16은 왜 일어났나?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한 장교 집단의 불만이 팽배한 반면, 장면 정부는 부패한 상급 장교를 숙청하려는 군부 내의 정군운동을 반대했다. 여기에 정치·사회적 혼란이라는 외부적 자극이 생겨 5·16 쿠데타가 일어났다. 이후 3공화국 정부는 경제 근대화를 위해 국가의 자원과 능력을 동원하려는 ‘개발주의 국가’의 모습을 띠게 됐다.


(결코 우파라고는 할 수 없는 정병준 이화여대 교수는 최근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민당 세력은 이승만을 종이호랑이 정도로 생각했다가 정부 수립 뒤 배척당했는데, 그들의 후신인 민주당 세력이 5·16 때 권력을 잃은 가장 큰 이유는 ‘권력 의지의 부재’였다.”)


⑦박정희 개발주의 국가가 이룩한 것은?


박정희 정부는 단기간에 획기적인 경제 성장을 이뤄 냈지만, 국민의 요구를 무시하거나 억제한 채 이뤄진 경제개발이었다. 또한 무엇을 위한 경제개발인가에 대해 명확한 해답을 보여주지 못했고, 더 자유롭고 개방된 정치 질서의 창출에 실패했다.


(과연 1960~70년대의 대한민국 국민들이 ‘잘 살고 싶다’는 욕구 외에 ‘어떻게 잘 살고 싶다’ ‘어떻게 여가선용을 하고 싶다’는 구체적인 욕구가 얼마나 있었겠느냐는 반론이 가능할 것입니다. 파이를 일단 구워 놔야 어떻게 자를지, 토핑은 어떻게 할지 논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⑧유신체제는 왜 붕괴했나?


유신체제는 민주주의와 전체주의 양쪽에 모두 해당되지 않았던 권위주의 체제였고, 그 때문에 확고한 정당성이나 이념을 갖추지 못했다. 여기에 지식인층이 등을 돌리고 지배 연합 세력이 내분을 일으킨 결과 체제 말기에는 권력의 동맥경화증이 나타났다.


(그 비정상적인 유신체제가 그래도 중화학공업화를 달성하고 한강의 기적을 이뤘으니 그때 유신체제하에서 1972년부터 1981년까지 살았던 국민들은 후세를 위해 살신성인한 격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⑨한국의 민주화는 어떻게 달성됐나?


민주화는 1980년대 말에 정치 세력들이 협상을 토해 도달한 전략적 선택이었으나, 그 동안 한국 사회가 겪은 ‘근대화’ 과정이 한국의 사회구조를 바꿔 놓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산업화와 통신·교통의 발달, 중산층의 성장이 민주화의 요인들이었다.


(이전에도 한 번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제6공화국 헌법은 노태우·김영삼·김대중 3인이 차례로 대통령이 될 경우 마지막 순번이 임기를 마칠 시점이 만80세 이전이 되도록 ‘설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⑩21세기 한국정치의 과제는?


(1)확고한 정당정치를 기반으로 한 책임정치 (2)장기적으로 존속할 수 있는 정부 형태의 확정 (3)자율성을 지닌 시민사회의 형성 (4)세계화·정보화 시대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선 국민이 적절한 능력과 자질을 갖춘 지도층을 배출해야 한다.
















“엄마·아빠, 부부 사이좋았다” 서울대·의대 보낸 집 공통점 [최상위 1%의 비밀 ⑥]

“특목·자사고, 나왔나요?” “부모님도 서울대 나왔어요?”

최상위 1% 학생들이 자주 받는 질문들입니다. 어떤 로드맵을 거쳤는지, 가정환경이 남다른지 궁금해하는 것이죠. 정말 그럴까요? 서울대·의대 가려면 특목·자사고 진학은 필수고, 부모 역시 최상위 1%여야 할까요? 헬로페어런츠(hello! Parents)가 3주년을 맞아 ‘최상위 1%의 비밀’을 파헤칩니다. 진로·진학 멘토링 서비스 ‘오디바이스’에서 활동하는 서울대와 의학 계열 재학생 102명에게 묻고, 이 중 20명을 심층 인터뷰했습니다.

이번 화에선 진로 전략과 가정환경을 분석해 공개합니다. 기사를 끝까지 읽고 hello! Parents가 특별 제작한 브랜드 키트도 받아가세요.

박정민 디자이너

 부모님은 대입의 ‘ㄷ’자도 모르셨어요. 

서울대 간호학과 21학번 박수연씨는 “부모님의 교육열이 높았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박씨 부모님은 그가 전교 1, 2등을 다툴 정도로 공부를 잘한다는 사실 정도만 알았다. 그가 원하는 게 있으면 적극 지원했지만, 학원 정보나 입시에 대해선 깜깜이였다.

전남 신안에서 할머니랑 단둘이 살다가 부모님을 따라 인천으로 이사할 때 전학할 고등학교를 정한 것도 박씨였다. ‘고등학교 선택권을 달라’는 게 그의 전학 조건이었다. 일찌감치 수시로 대학에 가기로 마음먹은 그는 인터넷에서 내신 받기 쉬운 일반고를 골랐다. 내신 성적이 모의고사 성적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순전히 혼자 힘으로 세운 진로 전략이었다. 결국 그는 전교 2등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서울대에 진학했다.

아이를 서울대·의대에 보내려면 ‘헬리콥터맘’이 되는 게 유리하다고들 생각한다. 아이 주위를 헬리콥터처럼 맴돌며 하나부터 열까지 관리하는 엄마가 무심한 엄마보다 나을 거라는 생각이다. 입시 컨설턴트처럼 대입 정보를 줄줄이 꿰고, 아침부터 밤까지 촘촘히 학습 스케줄을 짜는 매니저 역할을 자처한다. 핵심은 남다른 교육열과 정보력이다. 사실 엄마의 정보력이 명문대 진학의 필수 요건이 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대입 전형이 다양해지면서 정보는 곧 권력이 됐다. 사교육 업체에서 하는 입시설명회마다 양육자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컨설팅이 필수가 된 건 그래서다.

지난 7월 21일 오후 서울 광진구 세종대학교에서 열린 종로학원 2025 대입 수시·정시 지원전략 특집 설명회에서 학부모들이 강사의 발표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최상위 1%를 만들려면 헬리콥터맘이 돼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hello! Parents가 만난 최상위 1% 중에 “부모님이 극성이었다”는 사람은 없었다. “교육 정보를 전문가 수준으로 알았다”는 경우도 많지 않았다. 오히려 “부모님은 입시에 관심이 없었다”거나 “공부하라는 잔소리 한 번 안 들었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식으로 입시 전략을 세웠을까? 최상위 1%를 만든 가정환경은 뭘까? 출신 지역 등 개인정보가 포함돼 있어 심층 인터뷰 참여자 이름은 가명으로 처리했다.

Intro. 최상위 1% 만드는 환경
Part1. 고입부터 전략 필요하다
Part2. 헬리콥터맘은 없었다
Part3. 가정 분위기가 화목했다

🏫고입부터 전략 필요하다

4%. 전국 고등학교(2379곳) 중 특목·자사고(97곳)의 비율이다. 4%에 불과하지만, 이들 고교의 대학 진학률은 압도적이다. 올해 서울대 정시모집 합격생 1545명 중 33%를 차지했다. 초등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 사이에서 특목·자사고 진학이 명문대 합격의 필수코스로 여겨지는 이유다.

하지만 이는 반만 맞는 말이다. 특목·자사고에 진학한다고 모두가 좋은 성과를 내는 건 아니다. 아이 성향에 맞아야 효과를 볼 수 있다. 특목·자사고는 ‘양날의 검’이다. 밖을 향해 휘두르면 강력한 무기가 되지만, 잘못해서 안으로 휘두르면 자신을 해칠 수 있다. ‘우수한 학생이 많고, 면학 분위기가 좋다’는 특목·자사고의 장점은 ‘경쟁이 치열하다’는 단점으로도 작용한다. 멘털이 강하고 주변 분위기에 휩쓸리는 학생한테는 약(藥)이지만, 치열한 경쟁을 견디지 못하는 학생한테는 독(毒)이다.

hello! Parents가 만난 최상위 1%는 대부분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부터 공부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무턱대고 특목·자사고에 진학하지 않았다. 설문 응답자 102명 중 일반고 출신은 65.7%, 특목·자사고 출신은 34.3%였는데, 대부분 자신의 성향과 목표에 맞춰 최적의 선택을 했다.

일반고 졸업생은 ‘내신 성적을 잘 받기 위해(37.3%)’ ‘통학 거리 등 등·하교 편의를 고려해서(26.9%)’ 진학한 사람이 많았다. 특목·자사고 졸업생은 ‘면학 분위기가 좋아서(31.5%)’ 선택한 경우가 가장 많았고, ‘졸업생의 진학 실적이 좋아서(28.6%)’ ‘우수한 학생이 모여 있어서(17.1%)’가 뒤를 이었다. 특목·자사고 불합격으로 어쩔 수 없이 일반고에 간 학생은 11.9%에 불과했다. 고교를 선택할 때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대부분 스스로 결정했고, 자신의 선택에 만족했다. 설문 응답자 대다수(87.2%)가 ‘출신 고교가 대학 진학에 도움이 됐다’고 답했다.

대입 전략에 맞춰 고교를 고르는 건 심층 인터뷰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로 일반고를 선택한 사람들은 내신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목표를 가진 경우가 많았다. 충남 천안 출신인 임지연(서울대 수의학 21)씨도 그랬다. 당시 대입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던 수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내신에서 1등급 초반대 성적을 받는 게 중요했다. 그는 “일반고가 특목·자사고보다 면학 분위기가 안 좋은 건 사실이지만, 주변에 휩쓸리는 스타일이 아니라 상관없었다”고 했다.

충남 금산 출신 임서희(서울대 정치외교 24)씨는 자신의 예민한 성향을 고려해 일반고를 선택했다. 임씨는 “영어·중국어를 좋아해 외고·국제고 진학을 고려했는데 결과적으로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쟁이 치열한 환경에서 보통 사람보다 스트레스를 두세 배 더 받는 성향이라 못 견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특목·자사고에 진학한 학생들은 학교의 강점을 십분 활용했다. 정하준(연세대 의학 21)씨가 대전에 있는 지역 자사고에 들어간 것도 ‘우수한 학생들이 모여 있어서’다. 그는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어떻게 공부하는지 보면서 배울 게 많다고 생각했고, 이를 토대로 나만의 공부법을 확립해 나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비슷한 목표를 가진 친구들과 선의의 경쟁을 한 경험은 그를 한 단계 성장시켰다. 정씨는 “후배들한테도 자사고 진학을 추천한다”고 했다.

서울 대표 학군지인 목동 출신 남지현(서울대 노어노문학 24)씨는 자신의 적성에 맞춰 외고에 갔다. 초등학교 때부터 자신이 문과 성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영어를 좋아했지만, 비인기과인 러시아어를 선택했다. 생소한 언어라 좋은 성적을 받는 데 유리할 거라는 판단이었다. 그는 3년 동안 내신 3등급을 유지했고, 학종으로 서울대에 합격했다. 그는 “외고는 외국어에 특화된 학교인 만큼 적성이 중요하다”며 “부모 등쌀에 못 이겨서 온 친구 중에는 일반고로 전학한 경우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부모 욕심으로 특목·자사고에 진학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헬리콥터맘은 없었다

최상위 1% 중 ‘돼지엄마’나 ‘헬리콥터맘’처럼 극성 엄마를 둔 경우는 찾기 어려웠다. 설문조사에서도 부모가 학습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사람(58.8%)이 더 많았다. 학습에 관여했다고 답한 사람도 ‘학원·입시정보를 제공했다(45.2%)’거나 ‘공부하라고 독려했다(40.5%)’는 응답이 대부분이었다. 학원을 직접 골라주고, 학습 계획을 세워주는 ‘매니저형’ 부모(9.5%)나, 같이 공부하며 직접 지도한 ‘강사형’ 부모(4.8%)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경기 안산 출신인 김기주(연세대 치의예 24)씨는 부모님께 공부하라는 소리를 들은 기억이 없다. 목표를 세운 뒤 지키지 못할 때 ‘게을러서 어쩌냐’는 잔소리를 들었지만, 공부 압박을 받은 적은 없었다. 그가 공부를 잘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공부와 담 쌓고, 밖에 나가 뛰어노는 걸 더 좋아하는 5살 터울 여동생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님께서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라’는 조언은 할지언정, ‘공부하라’는 압박이나 강요는 없었다. 안현민(건국대 의예 23)씨도 마찬가지다. “학원을 빼먹거나 숙제를 안 하는 등 불성실한 태도나 생활습관에 대한 꾸중은 들었지만, 성적이나 공부 때문에 혼난 적은 없다”고 했다.

양육자가 학습에 거리를 두는 게 오히려 학습에 대한 의욕을 불러일으켰다. 교사인 서지수(연세대 의학 21)씨 어머니는 서씨가 고3일 때 고3 담임을 맡아 자기소개서 작성이나 학교생활기록부 관리를 도와줄 정도로 교육열이 높았다. 하지만 서씨 역시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서씨는 “부모님이 공부하란 얘기를 안 하니까 오히려 내 인생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위기감이 들었다”며 “부모님이 억지로 시키면 엇나가는 경우가 더 많다”고 전했다. 그는 또 “스스로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해야 요령 피우지 않고 제대로 공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울산 출신 이서연(경상대 의학 20)씨도 “부모님이 강압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공부를 더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그는 부모님께 ‘시험 잘 봐야 한다’는 말보다 ‘너무 열심히 하지 말라’는 말을 더 많이 듣고 자랐다. 덕분에 혼자 힘으로 공부하는 습관을 가졌다. 그의 어머니 김희정(50)씨의 허용적인 양육 태도는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김씨는 “학창 시절 성적에 따른 체벌이 있을 정도로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자랐지만,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며 “대입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인 만큼 스스로 하는 힘을 길러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학군지에서 자란 학생들 역시 부모 주도로 학습한 경우는 찾기 어려웠다. 이들의 부모는 아이를 억지로 끌고 가기보다, 아이 성향과 기질을 고려해 지원하되 적절한 선을 넘지 않는 모습이었다. 남지현씨는 “학군지에 살았지만, 수학학원을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갔다”고 말했다. 그만큼 부모님이 주변에 휩쓸리거나 불안해하지 않았던 것이다. 외고 진학 뒤 성적이 떨어져서 성적표를 안 보여줬을 때도 “보여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그는 “그만큼 부모님이 나를 믿어줬고, 그래서 더 엇나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

명문대 진학의 필수 요소로 꼽히는 정보력을 가진 부모도 많지 않았다. 설문 응답자 102명 중 ‘부모님이 입시 전문가 수준’이라고 답한 사람은 13.7%에 불과했다. ‘어느 정도 잘 알았다(36.3%)’ ‘기본적인 것만 알았다(35.3%)’는 경우가 많았고, ’교육 정보를 잘 몰랐다(9.8%)’거나 ‘아예 몰랐다(4.9%)’는 사람도 있었다.

👨‍👩‍👧‍👦집안 분위기가 화목했다

엄마의 정보력보다 중요한 건 정서적 안정이었다. 설문조사 응답자 대부분(93.1%)은 학창 시절 ‘부모님과 관계가 좋다’고 답변했다. ‘매우 좋다(48%)’가 가장 많았고, ‘좋다(45.1%)’가 뒤를 이었다. ‘나쁘다(4.9%)’거나 ‘매우 나쁘다(2%)’고 답한 사람은 10명 중 1명도 채 안 됐다.

화목한 가정 분위기는 대입이라는 장기 레이스를 버티는 힘이 됐다. 남지현씨는 “어렸을 때 가족과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만든 덕분에 학업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과 함께 주말마다 국내외로 여행을 다녔다. 학원 수업 시간과 겹칠 때는 과감히 학원을 포기할 정도였다. 엄마가 “학원을 빠지고라도 가족여행은 가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는 놀이공원 연간 회원권을 끊어서 다녔고, 중·고등학교 때도 종종 갔다.

부모님과 대화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은 사람도 있었다. 서지수씨는 고등학교 때도 매일 한 시간 이상은 부모님과 대화를 나눴다. 대입을 앞두고 1분 1초가 아쉬울 고교 시절 부모님과 한 시간 대화를 나누는 건 흔한 일도, 쉬운 일도 아니다. 하지만 서씨는 “덕분에 공부를 잘할 수 있었다”고 했다. 학업이나 친구 관계에 대한 고민이 있으면 책상 앞에 앉아 있어봐야 제대로 공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엄마한테 고민을 털어놓고, ‘괜찮다’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편해졌다”고 했다.

강은지(서울대 경영학 22)씨 역시 4남매 모두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등 명문대에 진학한 비결로 정서적 안정을 꼽았다. 법조인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좋은머리의 영향도 있지만, 화목한 환경으로 인한 정서적 안정 덕분이라는 것이다. 그는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회복탄력성이 높은 이유도 “부모님의 응원 덕분”이라고 했다. 시험을 앞두고 불안하거나 긴장될 때 부모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졌기 때문이다.

강씨뿐 아니다. 응답자의 77.4%가 자신의 회복탄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 중 자신의 회복탄력성이 ‘매우 높다’고 한 학생도 24.5%나 됐다. 높은 회복탄력성은 위기를 극복하는 힘으로 이어졌다. 응답자의 대다수(75.5%)가 슬럼프를 겪었는데, 대부분 이를 극복하고 최상위 1%가 됐다.

존 메디나 미국 워싱턴대 의과대학 생명공학과 교수는 그의 저서 『브레인 룰스』에서 학습에 있어 정서적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아이를 똑똑하게 만들려면 무엇보다 정서적 안정을 제공해야 한다”며 “아이를 하버드에 보내고 싶으면 배우자를 사랑하라”고 강조했다.

hello! Parents 특별기획 ‘최상위 1%의 비밀’ 다음 화에선 나만의 로드맵을 찾고, 남다른 가정환경에서 자란 3인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본다. 그들은 어떻게 자신만의 진로 전략을 세웠을까? 최상위 1%를 만든 양육자의 역할은 뭘까?

관련기사



댓글 쓰기

Welcome

다음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