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늙기, ‘고체 콜라’ 끊고 ‘샐러드 김장’ 해보세요”


‘저속노화 전문가’ 정희원 교수 인터뷰

기자임재희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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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먹고 푹 쉴 수 있었던 연휴가 끝나고 다시 일상이 시작됐다.
열량 섭취가 많았기에 명절 뒤엔 으레 ’다이어트’를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잘 먹을 수 있을까. ’저속노화 식단’ 열풍을 이끌고 있는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에게 물었다.
지난 15일 서면 인터뷰에서 정 교수는 아침 식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해로운 음식부터 줄이자고 했다.

―저속노화 식단, 무엇부터 시작하면 될까요?

단순 당과 정제곡물, 식품 첨가물을 잔뜩 담고 있는 초가공식품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게 0순위입니다.
기전(작용 원리)상 가장 해로운 것은 콜라와 사이다, 주스 같은 액체 형태 탄수화물입니다.
시럽도 마찬가지고요. 제로(0) 제품을 시도해 볼 수도 있지만, 건강에 얼마나 이로운지는 아직 입증되지 않았습니다.
탄산수나 녹차, 보리차, 맹물 등 대체재를 선택해 보세요.”

―음료와 간식, 그리고 무엇을 줄여야 할까요? 

정제곡물로 만든 빵이나 국수, 과자, 아침식사용 시리얼 등입니다.
혈당이 빠르게 상승하는데, ‘고체 형태 콜라’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무언가를 더 먹는 것보다 ‘가짜 음식’을 제거할 때 이익이 훨씬 큽니다.
가짜 음식을 비워낸 공간을 진짜 음식으로 바꾸기만 해도 항상 배부르고 편안하고 머리가 맑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어요.”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정희원 제공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정희원 제공

―처음 식단을 계획할 때 점검해야 할 게 있을까요?

의외로 자신의 입맛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처음부터 많은 양의 재료를 사는 것보다 자신의 입맛을 먼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단기간 먹을 만큼만 신선 식자재를 샀다가 냉장고가 비어가면 다시 식자재를 구하고 있습니다.”

―매일 음식을 만들어 먹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저는 렌틸콩 통곡물밥과 바쿠테(돼지갈비탕과 비슷한 말레이시아·싱가포르 음식)나 삼계탕을 주말에 잔뜩 해 놓고 며칠 동안 계속 먹기도 해요. 주말에 1주일 치 샐러드를 미리 만들어 놓기도 하는데, 이걸 ‘샐러드 김장’이라고 합니다.
샐러드에 렌틸·병아리콩 통조림을 더하기만 해도 꽤 푸짐한 한 끼가 나옵니다.
정말 바쁠 땐 냉동 잡곡밥에 당분이 적게 들어간 인도식 카레를 부어 먹기도 합니다.
여러 가지를 실험해 보세요.”

―출근 시간에 쫓겨 아침 식사를 거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침 식사는 한마디로 저속노화 식사의 마지막 보루입니다.
충분한 채소와 양질의 단백질, 지방이 포함된 균형 잡힌 식사를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바쁜 직장인은 밖에서 그만큼 건강한 식사를 하기 어렵습니다.
여러 관찰 연구를 정리해 보면, 아침 식사를 거르는 것은 비만이나 제2형 당뇨병 발병 가능성 증가와 관련이 있습니다.
아침에 포만감을 얻지 못하면, 식욕 촉진 호르몬이 증가하고, 결국 점심과 저녁에 건강하지 않은 폭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겠지요. 아침 식사를 거르는 근본 원인도 고려해야 합니다.
아침을 거를 만큼 피로하고 가처분 시간도 부족한 것이지요. 이런 환경이 자기 돌봄을 어렵게 만들고 전반적인 생활습관이 왜곡되는 것과도 연관돼 있습니다.

임재희 기자 limj@hani.co.kr

늙는 속도 늦추기, 나이 상관없다…저속노화 식단에 빠진 2030

기자임재희,고나린

약 4년째 저속노화 식단을 실천하고 있는 직장인 이예림(25)씨가 만든 가지 닭가슴살 볶음. 식용유 대신 올리브유, 설탕 대신 알룰로스를 사용한다.<BR> 이예림 제공.

약 4년째 저속노화 식단을 실천하고 있는 직장인 이예림(25)씨가 만든 가지 닭가슴살 볶음. 식용유 대신 올리브유, 설탕 대신 알룰로스를 사용한다.
이예림 제공.

프라이팬에 식용유 대신 올리브유를 살짝 두른다.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가지와 닭가슴살을 가지 겉이 그을릴 정도로 중불에 볶는다.
굴소스로 간을 맞추고 설탕 대신 알룰로스를 넣으면, 직장인 이예림(25)씨의 저속노화 음식, ‘가지 닭가슴살 볶음’이 완성된다.
중화요리에 가까운 맛을 느낄 수 있어 병아리콩밥이나 잡곡밥을 먹을 때 반찬으로 곁들인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저속노화 식단’ 유행이 거세다.
노년 내과 의사인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교수가 지난해 초 엑스(X·옛 트위터)에 렌틸콩과 귀리, 현미로 만든 밥을 저속노화 식사법이라며 소개하면서 화제가 됐다.
정 교수가 지난달 만든 저속노화 식단 커뮤니티에는 두 달 새 2만5천여명이 참여했다.
커뮤니티 멤버들은 각자가 만든 저속노화 식단 사진을 찍고, 들어간 식재료 목록을 공유한다.
이씨는 건강한 식단 하면 예전에는 중년·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종합편성채널 먹거리 프로그램이 떠올랐는데, 최근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저속노화 식단은 인스타그램에 올라올 법한 사진이 많아 트렌디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밋밋한 ‘건강식’이, 자랑 삼고 싶은 2030의 ‘힙한 습관’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저속노화 식단은 노화를 촉진하는 음식을 ‘줄이는’ 데서 시작한다.
식단에서 줄여야 할 음식은 설탕과 같은 단순당, 흰 쌀밥과 빵 등으로 대표되는 정제 곡물, 붉은 고기와 동물성 단백질 등이다.
튀김류, 버터, 마가린, 치즈 등도 줄여야 할 식단이다.
대신 푸른 잎 채소와 통곡물, 콩류, 견과류, 베리류 등을 더 섭취할 것을 권한다.

다만 저속노화식단에 꼭 이런 재료만 써야 한다는 엄격한 규칙이 있는 건 아니다.
‘덜 엄격하다’는 점은 건강한 식사에 들어서는 문턱을 낮춘다.
저속노화 식단을 실천 중인 이들은 흰 쌀밥을 콩이 들어간 잡곡밥으로 바꾸거나, 당이 적은 그릭 요거트와 견과류 등을 함께 먹는 식으로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5월부터 저속노화 식단에 합류한 직장인 박상진(32)씨는 흰 쌀밥 대신 잡곡밥을 먹게 된 게 제일 큰 변화”라며 잡곡밥에 상추와 오이, 두부, 적양배추 등을 넣고 간장과 섞어 먹으면 편하다”고 했다.

이예림씨는 푸른 잎 채소를 제철 과일과 같이 먹는 식으로 식단을 구성한다”고 말했다.<BR> 이예림 제공

이예림씨는 푸른 잎 채소를 제철 과일과 같이 먹는 식으로 식단을 구성한다”고 말했다.
이예림 제공

저속노화 식단을 시작한 20∼30대들은 건강에 대한 관심이 많다.
직장인 지현주(26)씨는 7월 건강검진 결과를 보니, 공복 혈당이 약간 높게 나와 식단 관리의 필요성을 느꼈다”며 요즘 20대도 당뇨병에 걸릴 확률이 이전 세대보다 높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 주변에서도 혈당 조절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 20∼30대 만성질환 환자는 갈수록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보면, 2022년 20대 당뇨 환자가 2018년보다 47.7% 늘어 전체 연령대에서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지씨는 아침에는 그릭요거트에 시중에서 파는 견과류 한 봉을 잘게 부숴 섞어 먹는다.
점심과 저녁은 양배추 안에 주먹밥과 쌈장을 넣은 ‘양배추 참치 쌈밥’, 잡곡밥에 야채와 오리고기 정도를 넣는 ‘오리고기 포케’ 등을 주로 먹는다.
채소는 ‘어글리 어스’라는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업체가 정기적으로 보내주는 못난이 채소 목록 가운데 필요한 것들을 골라서 받아 보는 서비스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못생겼지만 건강한 채소를 구할 수 있다.

지난 5월부터 저속노화 식단을 실천하고 있는 박상진(32)씨는 흰 쌀밥을 잡곡밥으로 바꾼 게 가장 큰 변화”라고 말했다.<BR> 박상진 제공

지난 5월부터 저속노화 식단을 실천하고 있는 박상진(32)씨는 흰 쌀밥을 잡곡밥으로 바꾼 게 가장 큰 변화”라고 말했다.
박상진 제공

식단을 바꾼 이후 몸에 변화가 나타났다.
직장인 최재훈(37)씨도 음료수나 빵 등 가공식품과 흰 쌀밥을 줄이는 비교적 단순한 방식으로 저속노화식단을 실천하고 있는데, 그것만으로도 몸의 변화는 컸다.
최씨는 가족력으로 당뇨가 있어 혈당 조절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유튜브에서 미국과 한국 의사들 영상을 보고 (저속노화 식단을) 시작하게 됐다”며 흰 쌀밥을 안 먹으면서 낮 시간대 식곤증이 사라졌다.
저속노화 식사를 멈췄다가 해보니 그 차이를 더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간의 여러 건강 식사법에 견줘서도 저속노화 식단이 특히 인기를 끄는 배경엔 ‘공유’가 있다.
이예림씨는 친구와 ‘원물(가공을 많이 거치지 않은 음식) 모임’을 꾸려 서로 식재료를 선물하거나 새로운 조리법을 시험해 본다고 했다.
박상진씨는 블로그에 식단 일기를 올린다.
다른 사람이 뭘 먹는지 구경하는 걸 좋아하는데, 내가 먹고 맛있었던 걸 다른 사람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이렇게 한 달 동안 뭘 먹었는지 기록하고 공유해두면 추억하기도 좋은 것 같고요.”

박상진씨는 아침에는 샐러드에 과일을 올리고, 올리브유와 발사믹 소스를 뿌려 차린다”고 말했다.<BR> 박상진 제공

박상진씨는 아침에는 샐러드에 과일을 올리고, 올리브유와 발사믹 소스를 뿌려 차린다”고 말했다.
박상진 제공

비교적 간단한 조리법에 다양한 요리가 가능한 저속노화식단에도 벽은 있다.
각자의 저속노화 레시피를 소개한 청년들이 전한 가장 큰 어려움은 ‘현실’이다.
일과 약속에 쫓기다 보면 식재료를 사서 조리하거나 끼니를 챙기는 행위 자체가 쉽잖다.
최대한 애쓰고 있긴 한데 매번 지키지는 못해요. 약속 있으면 술과 고기도 먹고요.” 박씨가 말했다.
질병관리청의 국민건강통계를 보면, 아침 식사를 거르는 결식률은 2013년 23.9%에서 2022년 34%까지 올라갔다.
특히, 2022년 조사에서 20대(19∼29살)는 10명 중 6명(59.2%)이 아침 식사를 하지 않았다.

이 와중에, 그나마 꾸준히 건강한 밥을 챙길 수 있는 각자의 비법은 뭘까. 박씨는 직장과 집이 가깝고 퇴근이 늦지 않다”는 ‘축복 같은 상황’을 전제로, 냉장고에 1주일 치의 식재료만 넣어두는 것을 추천했다.
냉장고에 일주일 치 식재료만 넣어두고 오늘은 뭘 해먹고 내일은 뭘 해먹고 하는 계획이 머릿속에 들어오게 한다.
이렇게 먹어서 냉장고 식재료를 다 소진해야겠다고 계획을 짠다”며 그렇게 일주일 치 식재료를 딱 해치우면 미션을 성공한 기분이 든다”고 했다.
지현주씨에게도 식단의 단위는 일주일이다.
일주일 치 먹을 양을 준비해 소분해 놓고 (2가지 메뉴를) 월·수·금과 화·목 식으로 번갈아 가며 식단을 짜는 게 식단을 지속하는 데 좋은 것 같다”고 했다.

임재희 기자 limj@hani.co.kr 고나린 기자 me@hani.co.kr

먹으면서 다이어트하는 ‘헬시 플레저’…칼로리·당·지방 낮춘 식품 인기

기자박지영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199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난 ‘잘파세대’(Z세대+알파세대) 사이에서 즐겁게 건강관리를 한다는 이른바 ‘헬시 플레저’ 인식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식품업계 전반에서 칼로리·당·지방 등을 낮춘 제품들을 출시하고 있다.

지에스(GS)25를 운영하는 지에스리테일은 26일 설탕 무첨가로 당류를 낮춘 간편식 2종(제로밥상 옛날떡볶이·제로밥상 최강제육덮밥)을 오는 31일 출시한다고 밝혔다.
지에스리테일은 최근 10대부터 3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에서 칼로리, 당, 지방 등을 낮추면서 맛은 유지하는 로우스펙푸드에 대한 관심이 계속됨에 따라 편의점에서도 관련 상품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자 간편식으로까지 제품군을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7월 지에스25가 요거트 아이스크림 브랜드 ‘요아정’과 협력해 출시한 저당 아이스크림 ‘요아정 딸기초코쉘요거트바’는 두달 만에 판매량 50만개를 돌파했다.

코로나19 이후 다이어트·건강 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젊은층 중심으로 저당 식품 소비가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먹고 싶은 것 먹으면서 즐겁게 건강관리 하자’는 헬시 플레저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저당 식품 품목은 식품업계 전반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최근 다이어트를 시작했다는 직장인 ㄱ(27)씨는 다이어트를 하면 무조건 아이스크림 같은 디저트를 끊고, 떡볶이 간식을 먹지 말아야 한다는 압박에 금방 포기할 때가 많았는데, 저당 식품들을 접하기 시작하면서 나름 먹고 싶은 것 다 먹으면서 다이어트를 지속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지난 2022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발간한 ‘글로벌 글루텐프리식품 시장현황 조사’를 보면, 최근 5년간(2017~2021) 글로벌 글루텐프리 식품 시장 연평균 7.7%로 꾸준히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글로벌 시장조사회사 유로모니터는 국내 저당 시장 규모가 2016년 903억원에서 2022년 30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했다.

오뚜기 제공

오뚜기 제공

오뚜기는 밀가루 대신 쌀가루로 만든 글루텐프리 카페 ‘비밀카레’를 선보였다.
기존 카레 대비 지방 함량을 30%, 당 40%가량 줄이고(카레 시장 매출 상위 3개 품목 평균 기준), 강황 함량을 44.1%(오뚜기카레 ‘약간 매운맛’ 기준) 증량했다고 한다.
오뚜기는 최근 지속되는 건강 트렌드를 고려해, 국내 카레 리딩 기업으로서 밀가루를 사용하지 않은 신제품 출시로 카레 시장 활성화에 앞장 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소비자들의 요청에 지난 23일 웅진식품은 기존 아침햇살에 당류를 뺀 ‘아침햇살 제로슈거’를 새롭게 출시하기도 했다.

지에스리테일 제공

지에스리테일 제공

박지영 기자 jy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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