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이번이 세 번째 출마잖아. 달라진 점이 있어? 사람은 안 변하고, 말하는 것, 특히 거짓말하고 독설 내뱉는 것은 예전하고 같지 않나? 나이(78살)가 그 정도 됐으면 좀 진중해질 법도 하지만 전혀 그러질 않네.
️아, 그대로야? 연설은 횡설수설하는 게 많아졌어. 틀린 표현을 쓰는 빈도도 늘었고. 정신 능력이 쇠퇴한 것은 맞는 것 같아. 미국 주류 언론은 그걸 조명하기는 하던데, 사실 이렇게 보면 이렇고, 저렇게 보면 저런 측면도 있는 것 같아. 그 나이에 두 시간 정도는 소리 지르면서 연설할 수 있다는 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 대단한 거지.
️대단하긴 한 거 같아, 정말. 응. 트럼프 연설 때 가까운 곳에서 본 적이 있는데 좀 놀랐어. 상반신 아래로 다리가 아니라 단단하고 반듯한 쇠기둥이 두 개 박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야. 20대의 다리라고 해도 믿을 정도야. 그만큼 쌩쌩하고 꼿꼿해. ️트럼프가 대통령 할 때, 비판도 많이 받았잖아. 근데 왜 미국인은 또 그런 선택을 하려는 거야? 아, 트럼프가 된다면 말야. 이 매우 미스터리한 현상에 대해 긴 답변을 요구하는 것 같네. 여러 이유가 있겠지. 핵심 키워드는 배외주의(외국의 사람, 문화, 물건, 사상 등을 배척하는 주의), 백인 민족주의가 아닐까? 미국의 주인은 자기들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트럼프의 노골적 배외주의에 호응하는 거지. 제정신으로 보면 트럼프가 좀 이상하긴 하지. 거짓말 잘하고, 품위 없고, 너무 탐욕적이고.
️맞아. 지지자들은 그런 면이 안 보이나? 트럼프 지지자들 중 그런 거 충분히 안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아. 하지만 트럼프는 삶의 전망 없음에 좌절하는 이들에게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
좌절하는 이들? 한참 아래로 봤던 아시아인들이 대도시에서 좋은 일자리를 잡아 떵떵거리고, 기존 엘리트는 자기들을 신경 써주지 않으면서 무지렁이 취급하는 것 같고, 세금은 걷어서 군산복합체(군부와 대규모 방위산업체의 상호의존체제)의 배나 불려주는 것 같고…. 그런데 트럼프가 뭐라고 했어? 응징(retribution)해준다잖아? 딥스테이트(숨은 권력 집단), 내부의 적을 소탕한다고 하잖아?
️혹할 만하네. 응. 트럼프가 그들을 위해 신의 채찍이 돼준다는 거야. ‘아, 내가 못나서 이러나?’ ‘저 외국서 온 저것들 때문에 이렇게 된 것 같은데 쪽팔려서 말은 못하겠네’ ‘워싱턴에 있는 놈들, 아시아 놈들하고 짝짜꿍해서 우리를 등쳐먹네’라는 생각을 품었던 사람들이 분노의 출구를 찾은 거야.
️분노의 출구라…. 열등감을 정당한 분노로 포장해주고, 왠지 발설하기가 꺼려졌던 자신들의 말을 어엿한 중앙정치의 담론으로 인정해주고, 강력한 인물이 자신들과 똑같은 어법을 쓰고, 이런 것들이 트럼프를 그들의 대리인, 구세주로 만들어준 거 같아. 이제 그들은 비로소 정치의 주인이 됐다고 생각하겠지. 트럼프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건 사기라고 보겠지만.
️여러 의미에서, 놀랍네. 해리스가 요즘 트럼프를 파시스트라고 비난하는데, 실제로 트럼프가 대중을 끌어들이는 방식을 보면 일리가 있는 말 같아. 볼수록 히틀러의 방식과 흡사해. 또 트럼프의 특출난 능력들 중 하나는 지지자들이 원하는 거짓말을 잘한다는 거야.
️원하는 거짓말? 예를 들면? 트럼프가 아이티 출신 이민자들이 남의 집 개와 고양이를 잡아먹는다며 근거도 없는 거짓말을 해서 질타를 받은 적이 있지. 그런데 그건 지지자들이 원하는 거짓말이었어. 입증하기는 어렵지만 난 그 거짓말이 작은 전환점이 됐다고 봐.
️전환점? 응. 그전에는 언론이 해리스한테만 집중하고 트럼프는 외면했거든. 그런데 황당한 소리를 하니까 비로소 다시 쳐다보기 시작했어. 카메라가 다시 그쪽으로도 돌아가기 시작한 거지.
️효과가 있었네. 또 지지자들은 ‘거봐, 중남미 이민자들, 걔들이 그런 애들이라니까’라며 맞장구를 친 거야. 지지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고, 때로는 그들을 즐겁게 만들어주고, 노이즈 마케팅 효과를 보는 거짓말이 그의 주무기야.
️지금 현직 대통령이 바이든인데, 해리스한테 도움이 안 되나? 바이든이 도움이 안 돼도 한참 안 되지. 바이든 업무 수행 지지도가 40%가 될까 말까야. 미국에서 그 정도 업무 수행 지지도를 보인 대통령이 속한 당이 정권 연장한 적이 없다잖아. 해리스는 요즘 자기 행정부는 바이든 행정부의 연장이 아니라는 말을 자주 해.
️선을 긋네. 그렇다고 해서 바이든을 부정하지도 못해. 자기가 바이든 행정부 2인자였고, 또 함부로 비판하다간 바이든 지지자들이 반발하겠지. 그런 약점과 딜레마를 안고 선거를 치르는 거야.
️해리스에게 뒤집을 카드는 없을까? 그런 게 있으면 진작 쓰지 않았을까? 이 거대한 나라에서는 웬만한 일로 큰 흐름이 바뀌지는 않는 거 같아.
️쉽진 않겠구나. 혹시 ‘샤이 트럼프’처럼 ‘샤이 해리스’가 유의미한 수준으로 있다면 어떨까, 그런 생각도 드네. 아랍계, 히스패닉, 흑인 등 소수 인종들이 (해리스에게) 꽤 등을 돌렸다는 거잖아. 그 사람들이 여론조사 때는 고개를 젓다가도 실제 선거일에 ‘우리가 남이가’로 돌아서면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국은 이제 뭘 준비해야 해? 누가 되든 정신 바짝 차려야지. 그런데 이건 용산(대통령실)에 묻지 왜 나한테 물어? 그거 하라고 월급 주고 이런저런 대접을 해주는데 그 사람들이 책임감 갖고 해야지. 대접이 부족했는지 식구(김건희 여사)가 작은 가방 하나 챙겼다가 문제가 되긴 했지.
️그래도 누가 더 나아? 한국엔? 내가 보기에 트럼프와 해리스를 비교하면 이런 거 같아. 한쪽은 인상 쓰면서 우악스럽게 팔을 비틀고, 다른 쪽은 웃으면서 살살 비트는 사람들이랄까. 어느 쪽이 더 나쁘고 어느 쪽이 좀 나을까?
️글쎄….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고? 맞아, 좀 얘기 안 되는 질문 같지? 고통과 불쾌감의 정도는 분명히 차이가 있겠지.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세게 비틀든 살살 비틀든 꼼짝 못 하는 건 마찬가지란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