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타운인데 왜 80대는 안 돼요?" 혼란 커지는 이유

[인생후반의 행복,

어디서-1부] 실버타운



[땅집고]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시니어타운 '삼성노블카운티' 가을 전경. /노블카운티


[땅집고] “실버타운은 당연히 죽을 때까지 살 수 있는 곳 아닌가요?
노인을 위한 곳이 실버타운인데,
최후에는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니 황당합니다.” (유명 실버타운에 입소했던 A씨)

“실버타운은 혼자 생활이 가능한
노인들이 오는 곳으로,
아픈 분을 모시는 곳이 아닙니다. 의료 시설도 아니에요. 보증금을 받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입니다.”(서울 유명 양로시설 관계자)


고령화로 인해 ‘실버산업’ 수요가 커지는 가운데 정작 ‘실버타운’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현장에선 혼란스럽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온다. 최근엔 작은 요양시설들이 너도나도 ‘실버타운’이란 명칭을 쓰고 있어 더욱 혼란을 부추긴다. ‘실버타운’이라는 말이 쓰인 지 30년이 지났으나,
아직 법이나 사전에는 없는 말이다. 사람들이 보고 들은 대로 아는 대로 ‘정의’ 내리는 이유다.

통상적으로 실버타운은 입주자에게 주거 공간과 식사,
의료 서비스,
건강 관리를 제공한다. 입주는 이곳에서 문화나 스포츠 등 여가 활동도 함께 누릴 수 있다. 면적과 서비스에 따라 비용이 책정되며,
대개 200만~500만 원의 월세·관리비를 내는 곳이 많다.

■ 머릿속 ‘실버타운’ 30년째 제각각…사전과 법에는 없는 말

‘실버타운’을 직역하면
고령자(silver)들로 이뤄진 소도시(town)다. 1960년대 조성된 미국 시니어타운에서 기인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한국에선 1990년대부터 널리 사용됐다. 이 단어는 한국에 들어온 지 30년이 넘었으나,
아직 구체적으로 의미하는 바가 정해지지 않았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오래전 일본에서
노인 주택을 ‘실버타운’으로 표현하던 것을 한국에서도 쓰기 시작한 게 ‘실버타운’ ‘실버주택’ 용어의 시작이었다”며 “전 세계에서
노인 주택을 ‘실버타운’이라고 하는 곳은 한국과 일본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관련 법에도 ‘실버타운’이라는 단어는 아직 없다.
노인복지법 31조에 따르면 ‘
노인주거복지시설’은 양로시설(유료/무료)과
노인공동생활가정,

노인복지주택으로 나뉜다. 즉,
실버타운은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적이 없는 말이다. 관용어로는 볼 수 있으나,
법이나 국어사전에는 없다.



[땅집고]
노인복지법에 따른
노인주거복지시설 종류 및 목적. /보건복지부


■양로시설,

노인복지주택의 차이점은? “글쎄”


관련 법에선 시설 종류와 입소 가능 연령,
설립 목적 등을 명시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양로시설은 ‘
노인을 입소시켜 급식과 그밖에 일상 편의를 제공’하고,

노인복지주택은 ‘
노인에게 주거시설을 분양 또는 임대해 일상생활에 필요한 편의를 제공’하는 게 목적이다.
노인복지주택은 분양형과 임대형이 있었으나,
2015년 분양형이 폐지되면서 현재는 임대형만 있다.

입소 가능 연령은 60~65세로 볼 수 있다. 양로시설과
노인공동생활가정은 65세 이상이면서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경우,

노인복지주택은 단독취사 등 독립된 주거생활을 하는 데 지장이 없는 60세 이상이면 입소 가능하다.



[땅집고]
노인복지법에 규정된
노인복지주택,
양로시설 제공 서비스 관련 내용 /법제처

그러나 양로시설과
노인복지주택의 규모나 운영 주체 등은 사실상 같다.
노인주거복시시설은 국가나 지자체뿐 아니라 개인도 가능하다. 위치도와 평면도,
입소보증금 등을 명시한 사업계획서를 지자체에 제출,
신고하면 설립할 수 있다.

유명 실버타운들의 법적 종류가 다르지만,
소비자가 볼 때는 큰 차이가 없는 이유다. 국내 최고가 시니어타운으로 알려진 ‘더클래식 500’은 유료양로시설이고,
VL르웨스트와 삼성노블카운티,
라우어는
노인복지주택이다. 이들은 모두 주거공간을 빌려주고,
식사와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같은 기능을 한다. 이러한 실버타운 일원화는 2015년 분양형
노인복지주택이 사라지면서 더욱 가속화됐다.



[땅집고] 서울 광진구 유명 실버타운 '더클래식500' 야경. /더클래식500



노인주거시설엔 80세가 이렇게 많은데?


현장에선 이로 인해 종종 혼란스러운 일이 벌어진다. 예컨대 대표 최고급 실버타운 ‘더클래식500’은 최근 입소 가능 연령을 75세로 낮췄다가 ‘
노인 차별’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네티즌들은 “
고령자를 위한 곳이 실버타운인데
고령자가 입소를 하지 못하면 누가 들어갈 수 있다는 건가” “실버타운이라는 목적이지 않나,
나이로 자르는 건 앞뒤가 안 맞다” “실버타운에 실버가 못 들어가네” 등의 의견을 보였다.

더클래식500을 비롯,
유명 실버타운들은 이러한 오해를 종종 받는 이유는 많은 이들이 ‘실버타운’이라고 하면 인생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모습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노인주거시설 사용자 중 60대 비중이 적은 점도 이러한 의견을 뒷받침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
노인주거복지시설의 현황과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양로시설 198곳과
노인공동생활가정 79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입소
노인(2022년 기준) 중 66.3%는 80세 이 상이었으며,
60대는 8.9%에 불과했다.

강은나 보사연 연구원은 “현재
노인주거복지시설 입소자는 일상생활이 가능한 건강한
노인으로 명시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건강한
노인이 입소하기보다는 일상생활이 다소 어려운 허약
노인 그리고 80세 전후의
노인이 주로 입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업계에선 실버타운 의미를 정립하고,

노인복지주택과 유료 양로시설 법적 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지희 수원여대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전국
노인주거복지시설협회 사무국장)는 최근 “실버타운 등 시니어타운은 법적 용어가 아니기 때문에 법적 정의가 없고,
따라서 정확한 통계를 낼 수가 없다”며 “더 늦기 전에 현재 운영되고 있는 시니어타운들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
관련 부처와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서경 땅집고 기자 westseoul@chosun.com


실버타운에 가시렵니까?

김은형 | 문화부 선임기자

2주 전 외출에서 돌아온 집 현관에 광고 전단이 붙어 있었다. 경기도 외곽의 실버타운 분양 정보였다. 소오름. ‘방충망 교체해야 하나’ 따위의 말로도 꺼내지 않았던 내 머릿속을 뒤져 온라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만족하지 못하고 이제는 오프라인으로까지 직접 서비스를 하시겠다 이거지, 이 무서운 인공지능아!(인공지능과 뭔 상관인데)

옆집에도 같은 전단이 붙어있던 건 알아보지 못한 채 ‘요새 호텔식 컨시어지 어쩌고 하는 호화 실버타운도 많다는데 내가 좋아하는 ‘가성비’만을 이토록 강조하다니 이제는 광고 전단도 커스터마이즈하나, 소름 끼치는 인공지능 세상 같으니라구’ 망상의 나래를 펼치며 광고전단을 숙독하기 시작했다. 파닥파닥. 다섯살만 더 먹었으면 당장 뛰쳐나가 계약할 뻔했다.

요새 부쩍 실버타운 광고가 눈에 띄길래 내 눈에만 그런 줄 알았더니 실제로 실버타운 분양이 엄청나게 늘고 있었다. 노인들만 모여 사는 실버타운 선호도가 높지 않을 줄 알았는데 웬걸, 인기 있는 곳은 2년 이상 대기타는 게 기본이란다.

긴 줄에는 일단 서고 본다는 마인드로 실버타운에 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일주일은 걸릴 줄 알았던 실버타운 탐험은 십분 만에 끝났다. 수도권 실버타운 관리비를 보니, 그림의 떡이었다. 국민연금과 한달에 십만원씩 적립하는 노후연금과 지금부터 아무리 모아도 억 단위가 쌓일 가능성은 희박한 내 통장으로는 꿈도 꾸지 못할 금액을 다달이 내야 한다. 아니 이런데도 몇년 동안 줄을 서야 할 정도라고?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오길래, 오십년동안 난 뭘 하면서 산 건가, 그때 집만 안팔았어도…. 컴퓨터 앞에 앉아 홀로 지하수를 파다가 요즘 트렌드에 맞게 자괴감을 분노로 승화시켰다. 실버타운, 너의 문제점을 내가 샅샅이 파헤쳐주겠어.

아니나 다를까 기사만 검색해도 주르륵 뜬다. 실버타운은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이 아니기 때문에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큰 병에 걸리면 거주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보통 집과 비슷하다. 무엇보다 치매에 걸리면 다른 주민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어 퇴소해야 하는데, 일부 실버타운은 재계약 때마다 치매 검사를 한단다. 이 부분에서 약간 섬뜩해진다. 실버타운의 결정적인 신포도는 커뮤니티에서 찾았다. 부모가 고급 실버타운에 있는 사람들의 반응 중 가장 흔하고 재미있던 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자식자랑 배틀이었다. 경제적으로 윤택하니 상당수가 자식들에게 투자를 아끼지 않아 사회적으로 성공시키고 은퇴한 노인들 사이 배틀이 엄청나게 치열하다는 것이다. “우리 아들이 요 근처 대학교수인데”로 포문을 열면 “우리 딸은 스카이 대학교수” “첫째 스카이 교수 받고 둘째 종합병원 과장”식으로 이어지는 응접실 담소에 적응하지 못하면 실버타운 라이프도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자식자랑을 하기 위해 실버타운에 입주하는 것은 아니다. 매 끼니를 차리기도 힘들고 식욕도 떨어지는 나이에 삼시세끼 누군가 차려주는 영양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게 실버타운을 찾는 가장 많은 이유였다. 실버타운에서 3년 만에 나온 이야기를 담은 ‘초보 노인입니다’의 저자도 편리한 끼니 해결이 실버타운에 들어가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고 썼다. 저자가 입주 6개월 만에 나오고 싶어진 이유는 실버타운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육십대 초반에 십년 이십년 뒤 미래를 굳이 미리 경험하는 듯한 분위기가 편치 않았던 탓이다. 반면 네살 많은 남편은 기타동아리에 들어가 전임 회장이 세상을 떠났다는 이유로 곧바로 회장까지 맡는 등 커뮤니티에 어울리면서 실버타운 생활을 즐겼다고 한다. 이처럼 사람마다 경험은 다르지만 나 역시 아직 젊어서(!)인지 열심히 돈을 모아 좋은 실버타운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은 도무지 들지 않는다.

고령화 사회에 노인 주거복지는 더욱 중요해지겠지만 좋은 노인촌(실버타운)과 후진 노인촌으로 양 갈래뿐인 선택지만 주어지지 않았으면 한다. 최근 일본에서 추진 중인 세대 혼합형 실버타운이나 싱가포르에서 시행하고 있는 가족 근접주거 지원정책 같은 것도 도입되면 좋겠다. 어쩐지 내 아들이 제일 반대할 거 같긴 하지만 말이다.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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