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발굴 |
시작은 참 거창했는데요 ┃글 June |
지난해부터 정부가 강하게 추진해 온 ‘국민연금 개혁’이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요. 그런데 국내 언론과 전문가들의 반응이 좋지 않아요. 정부의 연금 개혁 방침을 아주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이들조차 대부분 아쉽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죠. |
국민연금을 어떻게 바꿀 계획이기에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걸까요? 오늘은 초고령화 시대의 중요한 숙제인 국민연금 개편 이야기를 다뤄봤어요. 근데 연금 개혁 왜 하는 거였지? 국민의 노후 소득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가 운영하는 국민연금은 소득이 있는 국민으로부터 돈을 걷어서 잘 관리하는 제도예요. 이렇게 마련된 기금을 다양한 곳에 투자하고, 돈을 불려서 노후에 연금으로 지급하는 거죠. 하지만 경제 활동을 하며 국민연금에 돈을 낼 청년은 감소하고, 연금을 받는 노령 인구는 늘어나면서 문제가 발생했어요. 출생아 감소와 고령화가 워낙 빠른 속도로 이뤄지다 보니, 국민연금이 고갈될 것으로 예상되는 시기를 앞당긴 거예요. 그래서 1990년대 출생자부터는 한 푼도 못 받게 될 거라는 걱정 섞인 전망이 나온 지도 꽤 됐어요. 그래서 정부는 지난해 ‘국민연금을 대대적으로 손보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전문가들을 한데 모아서 9개월 동안 개선 방안을 검토했어요. 목표는 ‘70년 후인 2093년까지 국민연금 기금이 소진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고요. |
반년 전 발표한 18가지 시나리오 정부가 뽑은 전문가들은 지난 9월에 국민연금 개편안 후보들을 발표했어요. 현재 9%인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12%, 15%, 18%로 각각 올리는 세 가지 방안이 기본이었어요. 국민연금 가입자가 내는 돈을 늘리는 방안이죠. 이 세 방안에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나이(수급 개시 연령)를 조금 높이는 방안과 국민연금의 투자 수익률을 조금 높이는 방안을 조합했어요. 이렇게 ‘보험료율 인상 + 수급 개시 연령 상향 + 기금 수익률 제고’라는 세 가지 변화를 조합하면 18개 시나리오가 만들어져요. |
*적립배율 : 남아 있는 기금이 당해 연금 지급에 쓴 금액의 몇 배에 해당하는지를 나타낸 금액. 예를 들어 적립배율이 8.4라면, 남은 기금만으로도 8.4년 더 연금을 지급할 수 있다는 뜻. |
당시 18개 개편안 중 유력한 후보로 꼽혔던 건 보험료율을 15%로 올리면서, 수급 연령은 68세로 늦추고 국민연금의 투자 수익률을 1%포인트 높이는 5번 시나리오였어요. 현재 국민연금은 63세부터 받고, 2033년까지 이 시기를 65세로 조정할 계획인데요. 이걸 68세로 더 늦추면 2093년에도 기금이 고갈되지 않고 많이 남아있을 것으로 예상됐어요. 갈수록 힘 떨어지는 연금개혁 전문가들이 분석한 18가지 시나리오는 국회로 넘어갔어요. 국회는 지난 1월 말 ‘연금개혁특별위원회 공론화위원회’라는 걸 만들고, 이번 국회 임기가 끝나는 5월 말까지 연금 개혁안을 정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위원회는 지난 12일 연금 개혁안을 두 가지 시나리오로 압축했다고 발표했어요. |
위원회가 발표한 개편안은 연금 보험료율을 각각 12%, 13%로 올리고, 기존에 59세까지만 내던 연금 보험료를 64세까지 내도록 한 게 핵심이에요. 받기 시작하는 연령은 기존의 만 65세로 유지했어요. 작년에 공개된 18가지 개편안 중 가장 소극적인 변화에 해당하는 1번 시나리오와 유사한 수준이에요. 다만 보험료율을 13%까지 올릴 땐 ¹소득 대체율도 현재 40%에서 50%로 올리는 내용 정도가 새로 포함됐어요. |
¹소득 대체율 : 40년간 연금 보험료를 낸 국민연금 가입자는 만 65세부터 젊었을 때 벌던 평균 소득의 약 40%를 살아 있는 동안 매달 받을 수 있음. 이 비율을 소득 대체율이라고 부르며, 보험료를 낸 기간이 40년보다 짧으면 낮아짐. |
정리해 보면 1안은 ‘더 내고, 오래 내고, 더 받기’이고, 2안은 ‘더 내고 오래 내고, 지금만큼 받기’예요. 물론 어느 쪽이든 국민연금 고갈 시점을 현행 제도보다 7~8년 정도 늦추는 수준에 불과하다고 해요. ‘2093년까지 국민연금 기금이 소진되지 않도록 개혁한다’는 초기 목표는 어느새 사라지고, 국민이 내는 연금 보험료를 조금 올리는 조정에 그치는 분위기예요. 마지막 단계는 시민 대표 토론 공론화위원회는 이르면 다음 주까지 시민 대표단 500명을 선발해 최종 논의를 거칠 계획이에요. 시민 대표단에게는 보건복지부가 정리한 자료집이 전달되고, 이 자료를 공부한 대표단은 다음 달(4월)에 4회에 걸쳐 KBS가 생중계하는 TV 토론회에 참석하게 돼요.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는 이런 과정을 거친 뒤 가급적 21대 국회 임기가 끝나는 5월 29일 전에 연금 개편 법안을 통과시킬 방침이에요. 시민 대표단이 참여하는 최종 논의 과정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려요. 시민의 참여를 보장하고, 공개적으로 토론한다는 점에선 긍정적 평가를 받지만, 한편으로는 전문가들조차 쉽게 합의에 이르지 못한 문제를 시민 대표단이 결정하기란 어려울 거라는 지적도 나와요. 시민이 참여하는 논의 기간이 너무 짧다는 비판도 존재하고요. |
26년 만의 개편, 결국 용두사미? 많은 전문가들은 국회에서 발표한 개편안을 두고 ‘용두사미’라고 비판하고 있어요. 미래 세대를 위한 개혁을 하겠다며 거창하게 시작했던 정책이 단순한 소폭 수정에 그칠 거라는 우려의 목소리예요. 특히 현재 연금을 납부하고 있는 기성세대를 의식해 모든 부담을 미래 세대에 떠넘겼다는 비판이 많이 나와요. 당장 반발을 피하기 위해 쉬운 길을 택했다는 거예요. 실제로 지난해 발표됐던 시나리오 중 비교적 국민연금 가입자들의 반발이 강할 것으로 예상됐던 방안들은 모두 이번 발표에서 빠졌어요. 보험료율을 15% 이상으로 올리는 시나리오가 모두 제외됐고, 연금 수급 시기를 68세로 늦추는 방안도 완전히 배제됐죠. 갑자기 돈을 더 많이 내거나 늦게 연금을 받게 되는 걸 반길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니까요. 결국 국회 공론화위원회의 선택은 국민연금 고갈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방향이 아니라, 비교적 도입이 쉬운 방향으로 이뤄진 모양새예요. 국민연금이 고갈되면, 그 부담은 모두 미래 세대가 떠안을 수밖에 없어요. 사실 우리나라는 예전에도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많이 높이려다가 거센 반발 탓에 실패한 적이 있는데요. 우리는 오랜 숙제인 국민연금 고갈 문제를 이번에도 해결하지 못하게 될까요? |
┃3줄 요약 ·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두 가지로 압축한 국민연금 개편안을 발표했음. 지난해부터 추진된 연금 개혁의 구체적 방향이 사실상 정해진 것. · 개편안은 연금보험료율을 각각 12%·13%로 올리고, 연금보험료를 64세까지 내도록 한 게 핵심. 보험료율 13% 안은 소득대체율을 50%로 상향. · 전문가들은 개편이 ‘용두사미’에 그쳤다고 비판하고 있음. 당장 반발을 피하려고 쉬운 길을 택했고, 미래 세대에 부담을 떠넘기게 됐다는 지적. |
편집자의 코멘트 |
어려운 길 두드리다
쉬운 길 택한 연금개혁
쉬운 길 택한 연금개혁
안녕하세요. 디그 에디터 JUNE입니다. 오늘은 국민연금 개편 이야기를 다뤄봤어요. 정부가 ‘3대 개혁(노동·연금·개혁)’이라는 말까지 붙여가며 강하게 추진했던 정책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주목해 왔던 이야기예요. 결론적으로 ‘개혁’이라 부를 만한 변화는 없을 것 같지만요. 정부와 국회에서 오랫동안 논의를 벌인 전문가들이 결국 쉬운 길을 택한 건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에요. 이미 26년간 국민연금 제도를 제대로 건드리지 못한 상황에서, 한 걸음이라도 떼는 게 더 급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누구도 당장 내가 금전적 손해를 보는 걸 반기지 않을 테고요. 하지만 ‘초고령화 시대’가 코앞인데도 수급 개시 연령을 조정하는 방안 등 여러 구조적 변화를 모두 포기한 건 아쉽다는 지적이 많아요. 앞으로 점점 일하는 노인이 늘어날 수밖에 없고, 일을 그만두는 정년 연령을 법적으로 높여야 한다는 논의도 이뤄지는 상황이니까요. 최근 정부 의뢰로 이화여대 연구팀이 작성한 보고서를 보면, 국민연금 수급 연령을 높이는 방안에 찬성한 응답자는 68.9%에 달했어요. 정년을 연장해 오래 일할 수 있게 하고 국민연금은 조금 늦게 받자는 의견이 34.7%로 가장 많았고, 연금을 늦게 받는 대신 복지 정책을 강화하자는 의견(20.5%)도 많았어요. 이화여대 연구팀은 보고서에서 “의학적·사회적 측면에서 현재 노인으로 분류되는 연령은 70~75세로 나타난다. 그러나 법적 정년은 60세,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은 60~65세에 머물러 있어 상당한 편차가 있다”고 지적했어요. 실제 노인으로 여겨지는 연령은 높아지는데, 수십 년 전 만든 여러 제도는 그대로 머물러 있다는 거죠. 청년이 점점 사라져가는 시대,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노령 인구가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시대가 찾아올 텐데요. 이번엔 연금 보험료를 조금 더 내도록 바꾸는 ‘개편’에 그치더라도, 미래 세대를 위한 진짜 ‘개혁’ 또한 함께 고민해 나갔으면 좋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