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인상이 완벽한 사람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


얼마 전 친구들과 최신 개봉 영화 얘기를 했다.

나는 보지 못한 영화였다.
몇 년 전만 해도 나는 신작 영화와 신간을 거의 다 챙겨 보는 편이었다.
일종의 직업적 강박인 셈이다.
하지만 넷플릭스 같은 OTT 서비스와 함께 콘텐츠의 양에 압도되면서부터 곧 길을 잃기 시작했다.
가끔 스스로 너무 많은 음식이 적힌 메뉴판 앞에서 뭘 골라야 할지 몰라 당황한 외국인 여행객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보르헤스의 말’에는 나처럼 압도적인 양에 질려 갈 곳 잃은 사람에게 주는 지혜가 있다.
“책 읽기보다 훨씬 좋은 건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것!”이란 말이다.
양을 압도하는 건 깊이라는 현자의 시각이다.
그렇게 매해 1월 1일이 되면 나는 쉼보르스카의 시 ‘두 번은 없다’를 두 번씩 소리 내어 읽고, 10년마다 ‘안나 카레니나’를 읽으며 달라진 밑줄을 확인한다.
세월을 통과하며 내가 얼마나 바뀌었는지 가늠하는 나만의 의식이다.
종종 댐이 무너지듯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의 흙탕물 속에서 무엇을 읽고, 보고, 들어야 할지 헤맬 때가 있다.
‘오메가3′ 섭취가 몸에 좋다는 뉴스와 나쁘다는 뉴스 사이에서 그렇게 길을 잃는다.
그때마다 등대의 불빛을 찾듯 오랫동안 반복해서 본 책과 영화를 떠올린다.
가령 그냥 기쁨이 아니라 ‘고집스러운 기쁨’ 같은 제임스 길버트의 시 구절은 여기저기 구겨진 나를 펴준다.
집에 있는데도 집으로 퇴근하고 싶은 마음. 이 동어반복의 모순 속에 쉬고 있는데도 여전히 쉬고 싶은 현대적 피로와 불안의 실체가 숨어 있다.
그때마다 만화 ‘빨간 머리 앤’을 멍하게 본다.
목청껏 주제가를 부르며 ‘빨간 머리 앤’을 보던 어린 시절의 따뜻함이 나를 보호해 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안전함을 찾아 나서는 방법은 저마다 다르다.
하지만 읽은 책, 본 드라마를 다시 보며 풍요와 행복을 느낀다면 그것이 나의 안전지대란 뜻이다.
많은 것이 빠르게 바뀌고 허물어질 때 우리가 되새겨야 할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그렇다면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바뀌지 않을 나만의 것은 무엇인가.

자신의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예전에 함께 일했던 사람 중에 자신이 보통 어떤 생각을 강하게 품게 되면 대체로 자신이 맞다고 이야기했던 사람이 있다.
자신이 생각이 대체로 옳다고 확신하는 정도가 강해서 충격 받았던 기억이 있다.
왜냐하면 그렇게 자신하기엔 인간은 다양한 자기 고양적 편향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다수가 잘 되면 자기 탓 안 되면 남탓을 하는 귀인오류를 보이고 원래 그럴 줄 몰랐으면서 결과를 알고 난 후에야 자신은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후견지명 효과를 보이며 뭘 잘 모를 때 잘 알 때에 비해 더 자신감이 높은 더닝-크루거 효과를 보이는 동물이다.
자신이 정말 옳다는 확신이 들 때야 말로 어쩌면 가장 자신이 틀렸을 가능성이 높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이 무조건 옳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추상적이고 어려운 문제에 대해 잘 생각하지 않고 탐구심이 덜 하며 과학적 사고방식이나 올바른 근거에 기반해서 생각해 버릇 하지 않는 편이라는 연구들도 있었다.
또한 먼 과거의 최신 지식 중 지금은 완전히 그른 것으로 판명된 것들이 많은 것처럼 우리가 지금은 옳다고 생각하는 많은 지식들이 먼 미래에는 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주어진 근거에 의하면 이런 저런 생각이 맞는 것 같다고 이야기할 수는 있어도 내가 반드시 옳다고 이야기 하는 것에는 많은 위험부담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자신의 생각에 대해 과도하게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보면 신뢰가 되지 않곤 한다.
함께 일을 해야 해서 반대 의견을 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본인이 틀린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해서 또는 존중하지 않아서'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을 보고 당황했던 적도 있다.
최근 펜실베이니아대의 지잉 렌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이 부정당하면 자신이 틀린 것이 아니라 상대가 자기 말을 '잘 듣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상대가 실제로 자신의 이야기를 얼마나 잘 경청했는지와 상관 없이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면 그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잘 경청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보였다.
반대로 자신과 의견이 같다면실제로는 경청하지 않았지만 경청했다고 평가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제대로 들었으면 나와 달리 생각할 리 없다'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 연구를 보고 나니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곤 했던 사람들의 경우 상대방이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마음이 상했을 가능성이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경향이 꽤 많은 사람들에게서 나타난다는 점에서 나 또한 여기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안다.
앞으로 더 조심해야겠다.
특히 주변 사람들이 내 말을 잘 듣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내가 틀렸거나 또는 그냥 서로 의견이 다를 가능성을 생각해 봐야겠다.

‘타타타’와 ‘탓탓탓’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오래전 겨울 산행을 한 적이 있다.
옛 직장의 신년 단합대회 행사였는데 모두 처음 가는 산이었다.
그중 한 명이 유독 기억에 남는 건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그녀가 “지금 가는 길이 맞아요? 우리 제대로 가는 거 맞죠?”라고 물었기 때문이다.
처음 몇 번은 모두 “아마 맞을 거예요”라고 답했다.
생각해보면 질문을 하는 그녀도, 우리도 모두 초행길이었고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누구도 정확한 길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등반 내내 재촉하듯 이 길이 맞느냐고 되물었다.
앞서 가는 일행의 얼굴에 점점 짜증이 번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우리가 목적지로 가는 길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발생했다.
한 번도 앞서며 길을 찾지 않던 그녀에게 “아까는 이 길이 정확하다고 했잖아요!”라는 원망이 나왔다.
선두의 잘못으로 벌어진 일이라는 불평이었다.
같이 일하면 도무지 어떤 책임도 감당하지 않으려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는데 그녀가 꼭 그런 사람이었다.
살다보면 꽉 막힌 답답한 구간을 만날 때가 많다.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의 결정적 차이는 그 시기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달려있다.
옛 직장 선배 중 한 명은 프로젝트가 난관에 봉착하면 자신이 잘못 판단했다고 인정하며 말끝에 꼭 ‘우리’라는 말을 덧붙였다.
“우리 같이 고민해 봅시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훌륭히 완수하면 반드시 “**씨 수고했어요!”라며 팀원의 이름을 부르며 성공의 공을 돌렸다.
일하는 방식부터 태도까지 배우고 싶은 게 많은 리더였다.
리더는 책임지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산스크리트어로 ‘타타타’는 있는 그대로의 것, 꼭 그러한 것을 의미한다.
인생에서 고난은 있는 그대로의 것, 즉 ‘타타타’의 세계이다.
인생이 곧 고난의 바다이기 때문이다.
고난의 시기에 남 탓하는 건 쉽다.
하지만 ‘때문에’를 ‘덕분에’라고 말할 줄 아는 리더는 얼마나 희귀한가. ‘타타타’와 ‘탓탓탓’ 사이는 이처럼 멀고도 가깝다.
남의 잘못부터 찾는 사람에게 좋은 미래는 멀다.

백영옥 소설가

백영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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