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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연천군 동이리에 있는 임진강 주상절리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등재된 지질 명소다.
25m 높이의 주상절리가 강을 따라 2km 가량 펼쳐진다.
2022년 방영한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는 출퇴근 4시간 거리에 사는 수도권 직장인의 애환을 다뤘다.
배경은 가상의 도시인 산포시. 아파트 한 채 보이지 않는 농촌 풍경은 경기도 연천에서 촬영했다.
연천군은 경기도이긴 하나 멀다.
서울시청에서 연천군청까지는 약 83㎞. 인구(약 4만명)가 경기도에서 가장 적고, 인구 소멸 위기 지역으로 분류돼 있다.
이런 조건은 걷기여행을 할 때 도리어 장점이 된다.
지난 6~7일 DMZ 평화의 길 연천 구간을 걸어보니, 적막하고
고혹한 가을이 내려앉아 있었다.
임진강 너머 북한이
아른거렸고, 이따금 우리 군의 사격 소리가 들렸지만 풍경만큼은 더없이 평화로웠다.
천혜의 요새 당포성
이달 7일 연천 숭의전지에서 만난 여행자들의 모습. 이들은 인천 강화를 출발해 강원도 고성까지 DMZ 평화의 길을 횡단하는 중이었다.
지난 9월 28일 개통한 DMZ 평화의 길은 인천 강화군부터 강원도 고성군까지 한반도의 허리를 관통하는 길이다.
510㎞에 이르는 횡단 노선은 10개 기초 자치단체를 지난다.
경기도에서는 연천 구간이 가장 길다.
4개 코스를 합한 거리는 64.4㎞. 11~14코스 중에서도 문화 유적, 빼어난 자연 풍광을 두루 갖춘 12‧13코스가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평화누리길, 경기둘레길 등 기존 길과 겹치기도 하지만 헷갈릴 수 있으니 한국관광공사가 만든 ‘두루누비’ 앱을 따른다.
숭의전은 고려의 네 왕과 공신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12코스는 숭의전에서 시작한다.
숭의전은 조선 시대에 고려의 네 왕과 공신들의 위패를 모셔 제사를 지냈던 사당이다.
사당을 짓기 전에는 태조 왕건이 자주 들러 기도했던 앙암사가 있었다.
이른 아침 걷기여행자 8명이 숭의전을 찾았다.
걷기 동호회 ‘인생길 따라 도보여행’을 운영하는 이의선(79)씨는 “이달 안에 강원도 고성까지 횡단을 마치는 게 목표”라며 “평화의 길은 해파랑길, 남파랑길보다 풍경은 못하지만 접경지를 걷는 의미가 남다르다”라고 말했다.
고구려 때 만든
당포성은
자연 지형을 활용한 천혜의 요새다.
요즘은 별 사진 촬영 명소로 통한다.
숭의전에서 2.2㎞를 걸으면 고구려가 만든 천연 요새 당포성이 나온다.
주상절리 절벽 위에 삼각형 모양의 대지가 형성돼 있어 동쪽에만 성벽을 쌓아 성을 완성했다.
요즘 당포성은 별 사진 촬영 장소로 인기다.
지난 9월 말에는 별 보기 체험, 야외 공연을 곁들인 ‘연천 당포성 별빛축제’가 열렸다.
인공 운하 같은 주상절리
당포성을 나와 남동쪽으로 이어진 마동로를 따른다.
숲길, 강변길과 달리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차로여서 주의가 필요하다.
당포성에서 약 1㎞를 걸으면 길 왼편에 유엔군 화장장이 보인다.
1993년 발견된 뒤 국가 지정 문화재가 됐다.
DMZ 평화의 길 12코스를 걷다보면 만나는
유엔군
화장장. 굴뚝이 오롯이 남아 있다.
화장장 면적은 1596㎡. 건물 대부분이 훼손됐지만 큼직한 굴뚝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발견 당시 주택으로 추정하기도 했으나 마을 주민의 구술을 바탕으로 화장장의 존재를 확인했다.
야트막한 산어귀에서 연기가 자주 피어올랐고 그때마다 구슬픈 나팔 소리가 울렸다고 한다.
전쟁 당시 연천의 한탄강, 임진강 일원에서는 치열한 고지전이 벌어졌다.
정확한 유엔군 희생자 수는 알 수 없지만 16개 전투부대 파견국이 모두 연천에서 싸웠다.
임진강 주상절리는 가을이면 돌단풍이 붉게 물들어
'적벽(赤壁)'이
된다.
화장장에서 약 2㎞를 걸으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지질 명소로 지정된 ‘임진강 주상절리’가 나온다.
동이대교 앞에 서면 인공 운하처럼 직선으로 쭉 뻗은 절벽이 보인다.
연천군 송중섭(68) 한탄강지질공원해설사는 “27만년 전 화산 폭발 당시 용암이 쌓인 뒤 강물의 침식으로 생겨난 지형”이라고 설명했다.
25m 높이의 주상절리가 임진강을 따라 약 2㎞ 펼쳐진다.
가을에는 돌단풍이 절벽을 붉게 물들인다.
해 방향 때문에 오후 3~5시께 방문해야 장관을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생태계 교란종인 가시박이 주상절리를 덮고
있어서 골칫거리라고 한다.
임진강 윤슬 눈부신 고갯길
겨울이면 연천에는 두루미가 1000마리 이상 찾아온다.
사진은 두루미 모형이 있는 두루미 테마파크.
12코스 종점이자 13코스 시작점은 군남댐 인근 두루미 테마파크다.
이곳에는 실물 크기의 두루미 모형이 전시돼 있지만 진짜 두루미는 잘 안 보인다.
11월 말께면 시베리아에서 두루미가 1000마리 이상 연천으로 날아들어 임진강 여울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DMZ 평화의 길 13코스는
임진강을
곁에 두고 걷는다.
멀찍이 휴전선 너머의 북한 산들도 보인다.
16.2㎞에 이르는 12코스는 완만한 평지에 가깝다.
13코스는 다르다.
길이도 19.8㎞에 이르고 해발 100~200m 산길을 오르내려야 해서 난이도를 ‘어려움’으로 분류한다.
가파른 경사가 부담스럽다면 대광리역에서 군남댐 방향으로 걷는 게 낫다.
두루미 테마파크에서 미라클 타운까지 이어지는 약 6㎞ 길은 걷는 맛이 남다르다.
산길인데도 시야가 확 열려 있어서 윤슬 반짝이는 임진강을 보면서 걸을 수 있다.
연천 특산물인 율무와 콩밭이 많아서다.
올해
4월 완공한 O자형 개안마루 전망대에 서면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강과 북한 쪽 산자락이 한눈에 들어온다.
북한 장풍군의 마량산 쪽을
보고
인사하는
그리팅맨. 석양 물들 무렵 찾아가면 좋다.
13코스를 걷는다면 코스를 살짝 벗어나서 옥녀봉(205m) 정상에 설치된 ‘그리팅맨’을 보러 가야 한다.
2016년 유영호 조각가가 설치한 작품으로, 10.8m에 이르는 거인이 북한 방향으로 허리를 15도 숙여 인사하고 있다.
애초 유씨는 휴전선 너머 마량산 정상에도 남쪽을 보고 인사하는 그리팅맨을 설치하려 했단다.
옥녀봉 정상 가는 길은 주중에 자주 통제된다.
군부대 사격 연습 때문이다.
이달 6일에도 오후 내내 총소리가 울리다가 5시께나 길이 열렸다.
“허리를 15도 굽힌 인사는 자존감을 지키면서도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라는 유영호 작가의 말이 계속 생각났다.
여행정보
정근영 디자이너
12코스 숭의전 인근 ‘새둥지마을’이 DMZ 평화쉼터로 지정돼 있다.
걷기여행자를 위한 숙소도 운영 중이다.
13코스 미라클 타운 인근에 자리한 평화누리길어울림센터도 평화 쉼터다.
화장실, 휴게실을 이용하고 기념품도 살 수 있다.
큰 숙소를 찾는다면 백학자유로리조트를 추천한다.
㈔길만사에서 연천 함께 걷기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달 17일 14코스, 24일 13코스, 12월 1일 12코스를 걷는다.
서울(합정역)~일산~연천 버스 이동과 점심을 포함한 참가비는 3만원이다.
두루누비 앱이나 홈페이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