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국이여, 어디로 가시나요

필자의 모친이 지난 신정에 차리신 떡국. 사진=안승현 기자

필자의 모친이 지난 신정에 차리신 떡국. 사진=안승현 기자[파이낸셜뉴스] 

안승현 기자

안승현 기자 TALK

설날이면 으레 떡국을 끓인다.
흰 가래떡이 동그랗게 썰려 맑은 장국에서 춤을 추고, 그 위로 계란 지단과 김가루가 고명처럼 얹힌다.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의례이자 세시 음식이지만, 요즘 설날 아침 풍경은 예전 같지 않다.
1인 가구가 늘면서 혼자 포장된 떡국 떡을 사다 끓이거나, 배달앱으로 완성된 떡국을 시키는 일이 흔해졌다.
왕십리 근처 재래시장에서 떡집을 하는 지인의 모친이 하던 말씀이 생각난다.
전엔 설 일주일 전부터 떡국 떡을 만들어도 모자랐는데, 언제부터인가 쑥쑥 줄어들더니, 이젠 하루 이틀 치만 만들어놔도 다 파는 게 녹록지 않다는 것이다.
배달앱으로 주문하는 고객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그마저도 예년만 못하다.
대형마트까지 안 가더라도 동네 중소형 마트에만 가도 이미 썰어 진공포장된 떡국 떡이 산처럼 쌓여있다.
편리하고 깔끔하지만, 시장 떡집 특유의 쫄깃한 식감을 기대하긴 어렵다.
기록에 정확히 나온 바가 없어 추측하긴 쉽지 않지만, 대체로 학자들은 떡국의 유래에 관해 '동국세시기'(1849)를 인용해 말한다.
여기에 나온 설명을 보면 '흰떡을 엽전과 같이 썰어 간장국에 섞어 쇠고기와 꿩고기를 섞어 익힌 것'이라고 묘사돼 있다.
누가 봐도 지금의 떡국을 원형으로 봐도 무방한 모습이다.
사실 떡국은 오래전부터 전해온 만큼 지역별로 여러 갈래 다르게 발전해왔다.
과거엔 벼농사가 어려운 북에선 만둣국, 남에선 떡국을 먹는 것으로 구분됐던 시절도 있었다.
평양냉면집에 가면 항상 만두와 만둣국 메뉴가 나란히 있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 비롯된 것으로 봐야 한다.
안타까운 건 떡국 하나를 가지고도 지역별로 뚜렷하게 달랐던 색깔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통영 굴떡국이나 강릉 두부떡만둣국 같은 향토색 짙은 세시 음식들은 점점 찾아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이젠 일부러 만들어 전시하는 민속축제에서나 맛볼 수 있는 '전시 음식'이 돼가고 있다.
전라도의 닭장떡국이나 충청도의 날떡국 같은 독특한 요리법은 젊은 세대에겐 그저 향수 어린 '할머니의 레시피' 정도로만 기억된다.
우린 지난 수십 년간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왔다.
설날 아침이면 떡국을 끓이면서도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사 먹는 게 어색하지 않은 세대가 됐다.
그러나 우리가 잃어가는 건 단순한 '맛'이 아니다.
떡집 아주머니의 손맛이 사라지고, 시장 골목의 정취가 희미해지는 건 우리 삶의 결이 조금씩 메말라가는 것과 같다.
물론 모든 변화가 나쁜 건 아니다.
1인 가구도 편하게 설날 음식을 즐길 수 있게 된 건 분명 긍정적인 변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역마다 특색 있는 설날 음식을 발굴하고 보존하는 건 단순한 '전통 지키기'가 아니라, 우리 식문화의 다양성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설날이면 떡국을 끓이던 어머니의 분주한 손길, 시장 떡집에 줄 서서 기다리던 설렘, 이웃과 나누어 먹던 세시 음식의 정겨움. 그것들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우리 삶의 결을 이루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천편일률적인 배달 음식과 즉석식품이 범람하는 시대에, 우린 과연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꿔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설날이 찾아왔다.
떡국을 먹으며 한 살을 더하는 풍습은 여전하지만, 그 맛과 정서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편리함 이면에 숨은 상실의 그림자를 돌아보며, 우린 과연 어떤 설날 풍경을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하얀 떡국 그릇에 비친 우리의 미래가, 단순한 배고픔을 채우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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