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과 인근 아파트. 해당 기사와 직접적인 관계 없는 사진./조선DB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과 인근 아파트. 해당 기사와 직접적인 관계 없는 사진./조선DB

‘노후엔 어디에서 살까?’ 퇴직을 앞두면 누구나 해보는 고민이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평생 살 것인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이동할 것인지를 놓고 저울질해 보는 것이다.

실제로 대도시에 사는 예비 은퇴자 중 2명 중 1명은 ‘은퇴 이사’를 고민한다. 지난 8월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가 만 50~56세 대도시 직장인 2000명에게 ‘은퇴 후 주거지’에 대해 물었더니, “지금 집에서 계속 살겠다”와 “다른 집으로 이사하겠다”는 응답이 반반이었다.

직장에서 물러나고 나면 직주근접(職住近接)을 고려해야 할 필요성이 사라지며, 자녀 입시까지 끝냈다면 학군 프리미엄을 따지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면 노년기에 편안하게 살 집은 어떤 기준으로 골라야 할까?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서울 직장인 절반 “은퇴 후 이주 희망”

“외곽으로 이사 가서 여유롭게 살면 어떨까요? 지금 집에서 계속 살면 보유세랑 건보료로 연금 서너 달 치가 날아갈 텐데 퇴직 후가 고민입니다.”(서울 사는 중소기업 직장인 A씨)

서울에 사는 50대 직장인의 절반은 은퇴 이후 도심 탈출을 꿈꾼다.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의 ‘은퇴 이후 희망 거주지’ 설문 조사에 따르면, 만 50~56세 서울 거주 직장인의 47.3%만 서울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답했다. 오히려 서울을 떠나 경기·인천이나 지방 소도시로 옮겨서 살고 싶다는 비율이 48.2%로 더 많았다. 반면 경기·인천 거주민은 은퇴 후에도 해당 지역에 그대로 살겠다는 응답자 비율이 62%에 달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한유진
그래픽=조선디자인랩 한유진

이런 조사 결과는 지역별로 노후 생활비 격차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깊은 연관이 있다. 서울을 떠나면 노후 생활비 부담을 최대 22% 덜 수 있다. 국민연금공단 국민연금연구원이 지난해 실시한 실태 조사에 따르면, 50대 이상 중고령층이 생각하는 부부의 노후 적정 생활비는 서울이 월 330만원으로, 광역시(280만원)와 도 지역(259만원)보다 더 많았다.

김동엽 미래에셋 상무는 “65세 이상 노인들의 거주 형태를 살펴보면, 혼자(35%) 살거나 부부끼리(35%) 사는 경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면서 “노년기에 자녀들이 독립해서 떠난 이후에도 현재 집 크기를 유지하며 살 것인지, 아니면 주택 다운사이징으로 눈에 안 보이는 비용을 수익화할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한유진
그래픽=조선디자인랩 한유진

✅도심 아파트는 연금형 부동산

퇴직을 앞두면 집 규모를 줄이는 ‘주택 다운사이징’에 대한 궁금증이 커진다. 누구나 말은 쉽게 하지만, 나이 들어 주거 환경을 바꾼다는 것은 수명을 단축시킨다고 할 만큼 엄청난 스트레스이며 또한 모험이다. 이사하면 새로운 이웃을 사귀어야 하고 지리도 다시 익혀야 하는 등 불편한 점이 많다. (분명 동의하고 이사했어도) 작아진 집 때문에 가족이 우울해 할 수도 있다.

물론 노부부만 거주하는데 방 3~4개인 큰 집에 산다면, 세금·관리비·유지비 등 주거 관련 비용 때문에 부담이 된다. 특히 은퇴 자산이 부동산 위주로 구성되어 있는 가정이라면, 당장 가용할 수 있는 현금이 적기 때문에 마음이 불안하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퇴직 이후엔 아파트를 투자의 수단으로 재발견해 보라”고 말했다. 거주하고 있는 도심 아파트를 월세 받는 연금형 부동산으로 바꿔서 노후 버팀목으로 삼아 보라는 것이다. 가령 서울 아파트를 월 200만~300만원에 세를 놓고, 지방 아파트에서 전세로 살면 노후 생활비를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

박원갑 위원은 “요즘은 계약 갱신권을 쓰면 전세로 4년은 살 수 있으니 주거 안정성도 나쁘지 않다”면서 “살림을 줄이면 쓸데없는 지출도 줄기 때문에 노후 생활비 감축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한유진
그래픽=조선디자인랩 한유진

✅노후 이사 땐 ‘병품아’ 고려해야

노년기 이사는 실패하기 쉽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정보현 NH투자증권 부동산 수석연구원(NH WM마스터즈 전문위원)은 “거주 중인 1주택을 팔아서 무주택으로 가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누구나 살 집은 필요합니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주거 안정성이 더욱 중요해요. 집 한 채를 팔아서 다른 투자를 하겠다는 은퇴자도 있지만, 수익 여부와 상관없이 자칫 잘못하면 가장 중요한 삶의 기반이 흔들릴 수 있으니 추천하지 않습니다. 또 전원생활의 로망은 자산 가치와 반비례한다는 점도 꼭 기억하세요. 인구 감소 시대에 시골 주택은 개별성이 강하기 때문에 향후 가치 상승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일본에서도 새 소리, 물 소리 듣고 싶어서 시골로 이사갔던 노인들이 도시로 유턴했는데, 알고 보니 이유가 차(車) 소리를 듣고 싶어서였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그렇다면 생활비가 비싼 서울에서 벗어나 적정 수입으로 살기 위해 수도권으로 노후 이사를 가는 경우, 어떤 지역을 골라야 할까? 이상우 인베이드투자자문 대표는 “정부가 정답을 찍어준 상급지 아파트로 가라”고 조언했다. 이른바 ‘병품아’(병원을 품은 아파트)다<위 그림 참고>. 마치 젊은 부부가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를 선호하듯, 노부부는 ‘병품아’를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우 대표는 “나이가 들면 누구나 병마와 싸워야 하는데, 몸이 불편해 운전은 어렵고 자녀에게 매번 부탁하기도 힘드니 큰 병원에 인접한 곳에 사는 것이 좋다”면서 “서울 주변에 대학병원들이 첨단 의료시설을 갖춘 분원을 이미 세웠거나 설립을 추진 중인데 이들 지역의 신축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노후 주거 후보지를 찾는 것이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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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엽 상무도 “신축 아파트 단지는 조·중식도 제공하면서 다양한 커뮤니티를 갖추고 있어서 노후 생활에 만족하면서 사는 고령자들이 많다”면서 “젊은 세대와 어울려 살면 노년기 활력을 살리는 데에도 유용하다”고 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한유진
그래픽=조선디자인랩 한유진

✅日 노인 76% “지방 이주 만족”

우리보다 먼저 늙은 일본에서도 ‘시니어 이주’는 뜨거운 관심사다. 인구감소 위기에 직면한 지방 도시들은 다양한 우대 제도를 만들어 연금 생활자 유치에 나선다. 시니어 이주와 관련된 각종 설문 조사도 넘치는데, 건강한 노인이 살기 좋은 도시 베스트 10, 고령자에게 친절한 TOP10 도시, 고령 부부가 살기 좋은 지방도시 30선 등 구체적이고 자세하다.

은퇴 후 지방 이주를 고민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겠지만, 노후 생활비 절감이 목적인 경우가 많다. 일본 핀웰연구소가 지난해 지방으로 이주한 60대 은퇴자 44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이사하길 잘했다’고 응답한 사람은 전체의 76%에 달했다. 그리고 지방 이주에 만족한 이유는 ‘생활비가 줄어들어서’(43%)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핀웰연구소의 노지리사토시(野尻哲史) 대표는 “퇴직 이후의 삶을 수학 공식으로 바꿔 보면 ‘생활비>근로소득’으로 바꿀 수 있다”면서 “생활비가 소득보다 많은 시간이 길어지면 잔고가 금방 바닥나서 자산수명이 짧아지기 때문에 일을 계속 해서 소득을 만들지 않는다면 도시에서 지방으로 이주해 생활비 부담을 더는 것이 좋은 대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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