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 걷기를 말리고 싶은 이유

 


 맨발 걷기를 말리고 싶은 이유

고승덕 변호사 (한국청소년쉼터협의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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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맨발 걷기 열풍이 확산되고 있다.

지자체마다 황톳길 등 맨발길 조성에 나서고 있다.
맨발 걷기는 혈압과 심장에 좋고, 체중 감소와 당뇨에 효과가 있으며, 염증과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수면의 질을 높인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런 효능은 맨발의 효과라기보다는 걷기라는 운동의 효과이다.
미국의 족부의학협회는 “인터넷과 언론에 맨발 달리기의 효능에 관한 일화나 간증이 난무하고 있지만 현재까지의 연구결과로는 즉각적이나 장기적 효과에 대한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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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발 마니아들은 맨발에 특별한 효과가 있다는 근거로 ‘어싱 이론’을 제시한다.

지구 표면은 무한대의 자유 전자를 가지고 있고, 인체가 땅에 직접 접촉하면 자유 전자가 인체로 들어와 양전하인 활성산소를 중화시킨다는 것이다.
활성산소가 염증과 만성질환의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싱(earthing, 접지)에 치유 효과가 있다는 주장은 과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한 가설이다.
지표면이 음전하를 띠고 있다는 전제 자체가 과학적으로 사실이 아니다.
지각의 바위는 정공 전하운반체를 방출해서 양전하를 유발하기 때문에 지표면에는 양전하가 많다(2013 미국지구물리학회 발표 자료). 지표면의 전하는 날씨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번개 구름의 밑 부분은 전자가 많고 지표면은 양전하를 띠기 때문에 번개가 치는 것이다.

어싱 이론을 제창한 논문들(2007, 2012, 2015 논문)은 과학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어싱이 심혈관에 효능이 있다는 근거로 인용되는 2015년 논문은 성인 10명을 어둡고 조용한 방에 접지 상태로 2시간 쉬게 한 후 측정했더니 혈액 점도와 적혈구 군집이 감소했다는 내용이다.
이것이 어싱의 효과인지 휴식의 효과인지 구별할 수 없다.
논문들은 대부분의 저자가 어싱 사업을 하는 회사의 업자라고 공시한다.
따라서 논문의 공정성도 의심된다.

맨발 걷기가 발 건강에는 좋을까?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걸으면 지면에 닿는 위치와 하체 근육의 움직임이 달라진다(2014년 메타분석 등). 신발을 신으면 뒤꿈치가 먼저 닿지만 맨발로 걸으면 발의 중간이나 앞쪽이 닿는다.
맨발로 걸으면 무릎이 덜 펴지고, 보폭은 줄어들며 걸음 빈도는 늘어난다.
맨발 걷기는 발바닥에 과도한 부하가 걸리고 바닥 굴곡근 사용이 증가하기 때문에(2019 논문) 족저근막염(PF)을 유발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맨발 걷기로 인한 PF 환자가 늘고 있다.
특히 딱딱한 바닥은 PF에 나쁘기 때문에 황톳길을 걷다가 산길을 걷는 것은 피해야 한다.
맨발 걷기가 PF를 예방한다는 주장의 근거로 인용되는 2022년 논문은 PF 있는 사람이 풀밭 달리기를 했더니 증상이 완화되었다는 보고이다.
이것은 부드러운 바닥의 효과이지 맨발의 효과가 아니다.
맨발 달리기를 하면 발목에 충격이 커서 발목 부상의 위험도 있다.


인류가 수천년 전부터 신발을 신은 목적은 발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신발은 깨진 유리, 가시, 못 등 위험한 물체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박테리아, 바이러스 등 감염 요인을 차단한다.

미국당뇨협회는 (발의 감각이 둔한) “당뇨 환자는 항상 신발과 양말을 신고, 절대 맨발로 걷지 말라”고 경고한다.

별다른 건강 효능도 없는데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맨발을 고집할 이유는 없다.


고승덕 변호사 (한국청소년쉼터협의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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