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의 시대

 

 

[여성조선] 미식의 시대

작년 한 해 TV를 가장 뜨겁게 달군 키워드는 ‘음식’이었다.
맛집, 먹방, 먹스타그램 그리고 판까지 먹을 것을 빼곤 이야기할 것이 없을 정도로 느껴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먹는 것에 관심이 많고 즐기는 것에 비해 맛을 선택하는 기준에 있어서는 취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미식이란 무엇일까?

‘미식(美食)’의 사전적인 의미는 ‘좋은 음식. 또는 그런 음식을 먹음’이다.
때문에 미식의 뜻은 참으로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입에 좋은 음식, 몸에 좋은 음식 또 마음이 행복해지는 음식까지 사람마다 미식의 기준은 다르기 때문이다.
무엇이 미식이다 명확한 기준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프랑스의 법률가이자 의 저자인 브리야 사바랭의 말처럼 좋은 음식에 감동을 받고 이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미식 아닐까.

먹방에 의존하며 맛집을 탐방하기 보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맛을 찾고 분위기를 즐길 줄 아는 셀럽 4인의 미식에 관한 생각을 담았다.
정답은 없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미식’의 정의를 통해 삶에서 음식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를 배우고, 잊고 있던 나만의 맛과 취향을 찾는 방법을 알아보는 것은 어떨는지.

조희경 가온소사이어티 대표
미식은 마음을 담는 것이다

물론 레스토랑에서의 음식은 맛이 제일 중요하다.
그러나 균형과 감동, 의미를 가진 맛을 만들어내기까지의 철학을 담은 레스토랑은 흔치 않다.
앞서 말한 세 가지 특별함을 담아내 별 3개를 받은 가온과 별 1개를 받은 비채나를 이끌고 있는 조희경 대표이기에 그녀가 생각하는 ‘미식’이란 무엇일까 더욱 궁금해진다.

조희경 대표는 미국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이후 일본과 미국에서 동서양 조리&스타일링을, 이탈리아에서 슬로푸드 식품경영과 식문화 마케팅을 전공했다.<BR> 현재는 광주요 그룹의 외식사업부인 가온소사이어티의 대표로 가온과 비채나를 이끌고 있다.<BR>

조희경 대표는 미국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이후 일본과 미국에서 동서양 조리&스타일링을, 이탈리아에서 슬로푸드 식품경영과 식문화 마케팅을 전공했다.
현재는 광주요 그룹의 외식사업부인 가온소사이어티의 대표로 가온과 비채나를 이끌고 있다.

“다이너의 입장에서 미식가는 보다 전문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맛있다, 좋다’라는 느낌 외에도 별도의 공부를 통해 지식을 갖춘 뒤 그에 따른 식사 문화와 분위기까지 제대로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음식의 맛과 공간을 즐기는 것은 물론 서비스까지 오감으로 즐길 수 있어야죠.
무엇보다 셰프의 요리를 남다르게 평가 할 수 있고 정확하게 본인의 의견을 가질 수 있어야만 전문가로서 진정한 미식가가 아닐까 싶어요.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품격 있는 테이블 세팅을 선보이고 있는 가온.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품격 있는 테이블 세팅을 선보이고 있는 가온.

조희경 대표는 반대로 음식을 업으로 삼지 않는 평범한 사람의 입장이라면 미식은 어디에나 존재한다고 말한다.
가장 가깝게는 엄마의 음식에서 찾을 수 있고 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만든 요리도 미식이 될 수 있다.

바쁜 워킹맘이 아이의 건강을 생각해서 인스턴트 음식 대신 반찬가게에서 맛있고 건강한 찬을 구입해 상에 올린다면 그것 역시 미식의 범주에 들 수 있다고.

“어떤 이들은 음식의 맛과 모양, 영양소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만, 음식에 담긴 마음을 발견하고 그 의미를 헤아리는 데 집중해야 해요.
정성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지만 그런 마음으로 만들면 상대방에게도 충분히 전달됩니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음식을 고르고 또 분위기를 즐기며 한 끼 한 끼 의미 있게 식사를 해야 하는 이유 아닐까요.

제주 금태를 화요누룩으로 만든 누룩소금에 재서 직화로 구워낸 금태구이. 유자생각즙과 황금향, 연근초절임, 산초장아찌를 곁들여 매콤한 맛과 상큼한 맛, 그리고 부드럽게 짠맛을 낸다.<BR>

제주 금태를 화요누룩으로 만든 누룩소금에 재서 직화로 구워낸 금태구이. 유자생각즙과 황금향, 연근초절임, 산초장아찌를 곁들여 매콤한 맛과 상큼한 맛, 그리고 부드럽게 짠맛을 낸다.

또한 음식마다 사람에게 주는 에너지가 있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몸과 마음의 컨디션에 따라 음식이 줄 수 있는 감동도 다르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품격 있는 식문화를 일상에서 누리고 있는 그녀지만 아구찜을 먹을 때의 감성은 확실하다.
스트레스 받고 이것저것 격식을 따지거나 신경 쓰고 싶지 않을 때, 강렬한 맛의 메뉴를 딱 하나만 먹고 싶을 때 그녀는 가로수길에 위치한 현대낙지를 찾는다.
아버지와 어린 시절 함께 다니던 곳인데 지금까지 단골이다.
매운 아구찜에 화요 한 잔을 곁들이면 그날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

“음식이 주는 진정한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면 스스로 본인의 감성을 잘 알고 있어야 해요.
자신의 감성에 알맞은 음식을 찾았을 때 비로소 평범한 음식이 미식이 될 수 있어요.

사진 이종수, 가온 제공

수카라 대표 김수향
미식은 식재료에서 시작된다

친환경농법과 공정무역, 도시농부가 만든 재료를 이용해 홍대 앞에서 가장 먼저 오가닉 메뉴를 실현해온 수카라. 그런 수카라의 대표인 김수향 대표가 생각하는 미식이란 무엇일까.

김수향 씨는 재일교포로 벌써 한국에 적을 둔 지 20년이 되었다.<BR> 한국 문화잡지 <수카라>의 편집장이었으며, 도시장터 마르쉐@ 기획·운영자이자 홍대 산울림극장 1층에 위치한 유기농 카페 수카라의 대표이다.<BR>

김수향 씨는 재일교포로 벌써 한국에 적을 둔 지 20년이 되었다.
한국 문화잡지 <수카라>의 편집장이었으며, 도시장터 마르쉐@ 기획·운영자이자 홍대 산울림극장 1층에 위치한 유기농 카페 수카라의 대표이다.

“제게 미식이란 농부의 얼굴이 떠오르는 식재료로 만든 음식입니다.
단순히 ‘유기농’에만 얽매여 있지는 않아요.
6년 전 후쿠시마 방사능 유출 사건을 겪고 나서 식재료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어요.
가장 안심하고 식재료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생산자와 직접 얼굴을 맞대고 거래하는 것이지요.
여성환경연대가 주최하는 한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 직접 조사한 일본의 파머스마켓과 멕시코의 오가닉마켓 사례를 소개했어요.
그러면서 뜻이 맞는 이들과 함께 생산자와 소비자, 요리사를 연결하는 직거래장터 마르쉐@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김수향 대표가 단순히 안전한 또는 몸에 좋은 식재료를 위해 마르쉐@를 시작한건 아니다.
그보다는 정말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서가 더 먼저다.

지금껏 김수향 대표가 모은 토종 씨앗으로 만든 리스가 수카라의 대문을 지키고 있다.<BR> 특히 손바닥 길이보다 작은 토종 옥수수가 인상적이다.<BR>

지금껏 김수향 대표가 모은 토종 씨앗으로 만든 리스가 수카라의 대문을 지키고 있다.
특히 손바닥 길이보다 작은 토종 옥수수가 인상적이다.

“어떤 흙에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 작물을 키웠는지 알고 난 뒤에는 그 식재료를 이용해 음식을 할 때 떠오르는 누군가가 있고 풍경이 있어요.
그렇게 완성된 음식의 질은 그렇지 않은 식재료로 만든 음식과는 완전히 다른 맛이 되지요.
미식의 시작은 결국 식재료에서 시작된다고 봅니다.
제철 노지에서 생산된 식재료야말로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출발지점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제철에 내 몸이 필요로 할 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생태계와 사람이 유기적인 관계를 이루며 섭취할 수 있는 음식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미식이 아닐까요.

수카라 안의 작은 채소가게. 대형마트에서 판매되고 있는 것들처럼 크지도 예쁘지도 않지만 농부들의 정성스러운 손길이 깃들어 그 맛만큼은 최고다.<BR>

수카라 안의 작은 채소가게. 대형마트에서 판매되고 있는 것들처럼 크지도 예쁘지도 않지만 농부들의 정성스러운 손길이 깃들어 그 맛만큼은 최고다.

김수향 대표는 이 밖에도 자신이 생각하는 미식은 ‘토종 씨앗’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토종 종자는 처음부터 우리나라에서 시작되어 자라온 것만 뜻하는 것이 아닌, 외국에서 들어왔다 하더라고 그 씨앗이 우리 땅에서 토착화되어 채종이 가능한 씨앗을 이야기한다.
모든 종자가 토종 종자 같지만 사실 농사 형태가 대형화되면서 대다수는 직접 씨앗을 채종해 쓰지 않고 대형 종자회사의 수입 개량종을 구입해 쓴다.
토종 작물들은 그 맛과 개성이 조금씩 다르다.
개성이 강하고 맛이 진해 요리사의 영감을 자극하기에 더없이 좋은 식재료다.

“똑같은 브로콜리라고 하더라도 대형마트에서 판매되는 브로콜리와 토종 브로콜리는 그 맛이 달라요.
어떤 씨앗인지 누가 재배했는지 어떻게 재배했는지에 따라 집에서 담그는 가양주처럼 그 맛이 다양하거든요.
그 브로콜리로 만든 음식에서는 조금은 원시적인 맛이 느껴지면서 재료의 생명력이 느껴지고 존재감이 확실하지요.
별다른 양념이나 조미료 없이 그 자체만으로도 입과 몸을 즐겁게 해주기에 충분하고요.
진정한 미식의 출발은 모든 식물의 근원인 좋은 씨앗에서 시작된다고 봅니다.

공공빌라 김겨울 셰프
미식은 때로 고독하게 즐기는 것이다

‘맛있는 음식은 함께 먹어야 더 맛있다’라는 통념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의 저자 후쿠다 가즈야는 반대로 ‘미식을 즐기기 위해 꼭 여럿일 필요는 없다.
무리가 되면 함께 있음에 우선적인 의미를 두고 개인의 취향이나 주장은 무시되기도 쉽다’고 조언한다.
그런 의미에서 공공빌라나 취향저격 요리연구소는 혼자 혹은 두 명의 인원이 음식을 즐기기에 최적화된 곳이라 할 수 있다.

작년 말 이태원에 오픈한 공공빌라는 4~6주마다 양식, 한식, 디저트 등 다양한 요리를 하는 셰프들과 팝업 레스토랑을 열고 있다.
‘셰프 인 레지던스’라는 콘셉트로 이루어져 반지층은 주방과 작은 홀, 1층은 레스토랑 홀, 2층은 해외에서 온 셰프가 묵을 수 있는 레지던스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공공빌라에 최근 3번째 셰프로 입주한 김겨울 셰프는 제철 식재료를 이용한 합리적인 가격의 이탤리언 요리를 4주간 선보일 예정이다.

공공빌라는 반지층은 주방과 작은 홀, 1층은 레스토랑 홀, 2층은 해외에서 온 셰프가 묵을 수 있는 레지던스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BR>

공공빌라는 반지층은 주방과 작은 홀, 1층은 레스토랑 홀, 2층은 해외에서 온 셰프가 묵을 수 있는 레지던스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공공빌라’도 그렇지만 오너셰프로 있는 ‘취향저격 요리연구소’ 역시 아주 작은 식당이에요.
특히 취향저격 요리연구소는 바 형식으로 요리사와 손님이 마주 보며 음식을 먹고 조리를 하죠.
맛을 즐기기 위해 때로는 고독한 미식가가 되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일본 드라마 에는 소박하거나 오래된 식당들을 홀로 찾아다니면서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혼자서 느긋이 요리를 먹고 즐기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드라마 속에서 그는 요리의 깊은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오감으로 느낀 자신의 감성을 이야기하며 스스로를 치유한다.

허브 새우 파스타, 트러플 크림 뇨끼, 연어 까르토치오는 공공빌라에서 김겨울 셰프가 선보이고 있는 메뉴다.<BR>

허브 새우 파스타, 트러플 크림 뇨끼, 연어 까르토치오는 공공빌라에서 김겨울 셰프가 선보이고 있는 메뉴다.

“혼자서 식사를 한다는 건 요리 그 자체 그리고 레스토랑과 대면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처음엔 누구나 혼자라는 것이 어색하고 부담스럽습니다.
하지만 타인에게 취향을 강요하지 않고 온전히 나의 취향을 반영하고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또한 즐겨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용기를 내어 혼자서도 미식을 즐겨보세요.
미식의 즐거움은 스스로가 느끼는 오감만족에 있습니다.

사진 이종수

의 저자 송영미·김정현
미식은 요리를 직접 만드는 것이다

‘미식’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은 생각보다 꽤 크다.
식재료나 조리법에 대해 뭔가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야 할 것 같고 뭔가 특별한 격식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런 선입견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한 권의 책이 있다.

쉬운 조리법, 새로운 맛, 집에서 즐기는 소박한 미식을 알려주는 다.
책의 저자인 송영미 선생은 한때 미식가들 사이에서 유명했던 청담동의 '시즌스', '슈슈', 통영의 '중국요리 이선생' 등을 운영했던 요리연구가다.

송영미 선생은 시집오자마자 소문난 미식가였던 시어머니 입맛에 맞춰 아침식사를 시작으로 점심 도시락과 저녁식사, 특별한 안주상을 준비해야 했다.
하지만 25년간 그렇게 고민하며 요리를 한 덕분에 많은 것을 배웠고, 같은 메뉴라도 더 맛있게 먹는 법을 터득했다.
할머니의 까다로운 입맛과 엄마의 손맛을 이어받은 딸 정현 씨 역시 범상치 않은 요리 솜씨로 책을 함께 만들었다.

방울토마토와 올리브에 고소한 바질페스토와 새콤한 발사믹식초를 더해 치즈와 함께 구워낸 '토마토 올리브그라탱.'

방울토마토와 올리브에 고소한 바질페스토와 새콤한 발사믹식초를 더해 치즈와 함께 구워낸 '토마토 올리브그라탱.'

“신선한 제철 식재료를 가지고 발상의 전환만 해도 소박한 미식을 만들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삶은 달걀을 반으로 썬 다음 노른자에 파마산치즈 가루와 다진 마늘, 레몬즙, 마요네즈, 디종 머스터드, 우스터소스 등을 넣고 조금 강하게 양념한 다음 다시 흰자에 채우면 데빌드에그를 만들 수 있어요.
평범한 식재료인 달걀을 멋스럽게 즐길 수 있게 해주죠.

혹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식재료들을 매칭해 새로운 맛을 내기도 한다.
낙지나 주꾸미를 홈메이드 바질소스에 버무리고 올리브오일과 소금으로 무친 세발나물을 곁들이면 익숙하면서도 이국적인 메뉴가 된다.

풍성한 맛과 향이 매력적인 브리치즈와 상큼한 사과의 조합이 훌륭한 '브리치즈 사과샌드와 올리브 크림치즈를 채운 자두.'

풍성한 맛과 향이 매력적인 브리치즈와 상큼한 사과의 조합이 훌륭한 '브리치즈 사과샌드와 올리브 크림치즈를 채운 자두.'

모녀는 맛있는 음식을 제대로 즐기는 것은 직접 장을 보고 요리를 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조언한다.
거기에 요리를 돋보이게 하는 테이블 스타일링과 술 그리고 이것을 함께 즐길 구성원까지 완벽한 조화를 이룰 때 소박하지만 진정한 미식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사진 이이종수, 레시피팩토리(박건주) 제공

미식을 위하여!

쉬운 듯 어려운 미식의 세계에서 이제부터 음식의 맛을 음미해보고픈 이들을 위한 아주 쉽고 친절한 미식 팁을 담아보았다.

광주요의 한결 시리즈는 도자 표면에 전통 삼베 문야이 적용된 것이 특징이다.<BR>

광주요의 한결 시리즈는 도자 표면에 전통 삼베 문야이 적용된 것이 특징이다.

음식의 맛을 더해주는 그릇

프로와 아마추어의 요리 실력 차이는 물론이거니와 조리도구까지 감안하면 그 둘의 요리를 질적으로 비교하는 건 잘못된 일이다.
그렇다면 집에서 하는 식사의 묘미는 외식에서는 맛볼 수 없는 식기에서 찾을 수 있다.
아름다운 식기는 음식의 맛과 품격을 높여준다.
또 구입한 그릇은 직접 사용해봐야 그릇의 맛이나 미관을 본질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릇의 무게, 감촉, 젓가락이 닿았을 때 나는 소리, 뜨거운 음식을 부었을 때 퍼지는 온기 등 늘 반복하는 일상 속에서 다양한 음식을 담아보고, 그것이 어떻게 비치는지를 본다.
그릇끼리의 궁합을 살피는 것 역시 중요하다.
또한 가능하다면 외국 브랜드보다는 우리의 식문화 정신이 깃든 한식기인 도자그릇이면 더욱 좋겠다.

음식과 술의 마리아주

음식을 즐기는 미식가들치고 술 싫어하는 이들이 없는 것 같다.
음식과 어울리는 술은 음식의 맛을 극대화시키기도 하고 혹은 느끼하거나 비린 맛을 상쇄해주기도 한다.
요즘은 음식과 술을 마리아주한 콘셉추얼한 집이 늘고 있다.

사우어퐁당 비어퐁당, 퐁당크래프트비어컴퍼니, 메이드인퐁당에 이은 이승용 대표의 네 번째 매장으로 아시아 최대의 비어 바를 표방한다.
이태원에 위치해 있으며, 국내 브루어리 맥주와 함께 세계 유수의 브루어리에서 온 맥주들을 맛볼 수 있다.
서울 용산구 녹사평대로54길 6

작酌 역삼동에 위치한 국내 최초 전통주 바. 위스키 바를 떠올리는 모던한 인테리어가 눈길을 끈다.
안동소주, 화요, 문배주, 이강주 등의 전통 증류주와 프리미엄 탁·약주 약 40가지를 만나볼 수 있다.
전통주와 함께 마리하주하면 좋을 문어초회, 연어사시미 등의 메뉴를 선보인다.
02-501-2342

백곰막걸리&양조장 180여 종의 우리 전통주와 약주, 막걸리를 판매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우리 술 전문점. 지하에는 국산 크래프트 맥주 전문점까지 갖추고 있다.
매달 바뀌는 제철 해산물과 식재료로 만든 안주도 그 맛이 일품이다.
압구정에 위치해 있다.
02-540-7644

(오른쪽 위)보니 오라 셔크, 살아있는 도서관, (오른쪽 아래) 송전동, 제 3자의 부엌

(오른쪽 위)보니 오라 셔크, 살아있는 도서관, (오른쪽 아래) 송전동, 제 3자의 부엌

음식을 통해 재발견하는 삶과 예술

미식에 관심이 있다면 꼭 한번 가볼 만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전에서는 음식문화를 중심으로 예술가, 디자이너, 건축가, 문화활동가들이 도시 삶의 문제를 어떻게 성찰하고 또 어떻게 변화를 이끄는지 살펴볼 수 있다.
전시는 ‘도시 생동(Food×Urban Mobility)’, ‘음식과 공동체(Food×Community)’, ‘음식을 통한 공유와 나눔(Food×Sharing Culture)’이라는 3가지 주제로 구성됐다.
디자이너, 아티스트, 문화활동가, 요리사, 건축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13팀의 작가들은 예술과 삶의 문제를 의식문화와 연계해 고민하고 건강한 삶을 모색하는 실천들을 전시 기간 동안 선보인다.
2017년 3월 19일(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제8전시실. 문의 02-3701-9500

아주 소박한 미식 레시피 북

별다른 조리 없이 색다른 재료와 양념의 조합으로 완성하는 초간단 미식요리부터 술맛을 더욱 좋게 해줄 미식 안주요리, 간단하면서도 폼 나는 한 그릇 미식요리, 시판 재료와 제철 과일로 빠르게 만드는 심플한 미식 디저트까지 총 92가지의 다양한 미식 레시피가 소개되어 있다.
 (송영미·김정현, 레시피팩토리)

초보 미식가를 위한 가이드북

(후쿠다 가즈야, MY) 음식에 대한 미학과 문화에 관한 흥미로운 고찰을 담은 책. 먹는다는 것의 의미를 한번쯤 사색하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주영하, 휴머니스트) 지난 100년간 한국인의 식탁 위에 오른 메뉴를 통해 본 한국의 음식문화사를 담았다.
한국인의 식문화 변화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어 한식을 이해하고 즐기는 데 많은 도움이 될 듯하다.

(허영만·송철웅, 가디언) 먹는 것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허영만 작가의 을 한 번쯤은 읽어봤을 터. 의 번외편 같은 이번 책은 강화도를 시작으로 해안선을 따라 서해, 남해, 동해를 올라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장장 19개월을 자전거로 달리며 탐미한 맛을 담아냈다.

새롭게 조명받는 미식가들의 거리

요즘 대세 망리단길 경리단길, 서래마을, 연희동에 이어 요즘 핫한 동네는 다름 아닌 망원동이다.
망원동은 재래시장이 있고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은 찾아보기 힘든 정겨운 동네로, 요즘 혼밥 하기 좋은 맛집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방송 '망리단길 편'이 방송되며 동네 자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긴 했지만 아직은 한적해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음식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다.
대표적인 곳은 주오일식당, 도마뱀식당, 브로콜리식당, 태양식당 등 대부분 작은 식당이다.
파인다이닝이나 레스토랑은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줄서서 먹는 시끌벅적한 맛집은 싫은 고독한 미식가들에게는 충분히 매력적일 만 하다.

도산공원 근처 스타 셰프 레스토랑 명품 브랜드 매장의 개장이 줄을 잇는 도산공원 근처에 스타 셰프들이 모이고 있다.
강남이지만 도산공원 덕에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경기가 좋지 않아 손님이 없다는 다른 레스토랑과 달리 이름을 걸고 운영되는 스타 셰프들의 레스토랑은 늘 만원이라고. 서호영 셰프의 '옮음', 김지운 셰프의 '볼피노', 송훈 셰프의 '에스테번', 김신 셰프의 '가드너' 등으로 가격은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으나 음식과 공간 그리고 플레이팅까지 오감을 만족시킬 수 있지 않을까.

 

[미식(米食)시대] ① 해외에서도 소문났던 조선의 밥짓기 솜씨

중국 淸나라 학자 조선사람이 지은 밥, 윤기있고 부드럽고 향긋
식당가에 온장고 보급, 스텐레스 밥그릇 확산되며 밥맛 나빠져

갓 지어 김이 무럭무럭 나는 밥.

갓 지어 김이 무럭무럭 나는 밥.

'조선사람들은 밥짓기를 잘한다.
밥알에 윤기가 있고 부드러우며 향긋하고 솥 속의 밥이 고루 익어 기름지다.
중국 청(淸)나라 때 학자 장영(張英)이 쓴 '반유십이합설(飯有十二合說)' 즉 '맛있는 밥을 짓기 위한 열두 가지 조건'이란 글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처럼 우리 조상은 외국에 소문 날 정도로 '밥 짓기의 달인'들이었다.

◇ 조선 후기 성인들 한 끼 식사에 무려 밥 420ml 섭취

맛있는 밥 짓기에 심혈을 기울였을 뿐 아니라 밥을 워낙 좋아해 많이 먹었다.
대체 얼마나 먹었기에. 조선후기 기록을 보면 당시 한 끼 식사로 성인 남자가 7홉, 여자 5홉, 아동 3홉, 어린아이 2홉을 먹었다.
조선시대 1홉이 약 60ml이니까 남자 어른 한 끼 밥양이 무려 420ml나 된다.
요새 식당이나 가정에서 흔히 쓰는 밥 공기 용량이 290ml이다.
성인 밥 한 그릇이 조선후기 갓난아기의 그것보다 작다.

물론 당시에는 하루 두 끼를 먹었고 반찬이 별로 없었으니 밥을 요즘보다 많이 먹은 건 당연하달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시대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성인 남성이 2홉쯤 먹었다.
일본인과 중국인이 조선에 왔다가 밥 먹는 양을 보고 깜짝 놀랄 정도였다.
이익이 쓴 '성호사설'을 보면 유구국(琉球國·오키나와) 사람들이 '너희 나라 풍속에 항상 큰 사발에 밥을 퍼서 쇠숟가락으로 퍽퍽 퍼먹으니 어찌 가난하지 않겠냐'고 비웃었다는 구절이 나올 정도다.

밥을 맛있게 짓기란 쉽지 않다.
실은 무척 어렵다.
'요리사들의 요리사'로 추앙받는 프랑스의 세계적 셰프 피에르 가니에르(69)는 잘 지은 쌀밥 한 그릇은 절대 단순하지 않다.
엄청나게 정교하고 어려운 요리라고 했다.
한국음식문화사의 기틀을 세운 고(故) 이성우 교수는 밥 지을 취(炊)자를 설명하면서 '삶아서 수분이 줄고 다음은 뚜껑을 덮은 솥 속에 수증기가 가득하여 이것으로 뜸을 들이고 솥 밑바닥의 곡물은 약간 타기까지 하여야 제맛의 밥이 된다'며 '팽(烹)
·자(煮)·.소(燒)의 세 가지가 일체화하여 취가 된 것'이라 했다.
한마디로 밥이란 끓이고 찌고 굽는 3가지 요리법이 모두 제대로 이뤄져야 완성된단 말이다.

◇ 밥맛이 없어진 건 60년대 후반… 품종 개량과 스텐레스 밥공기 사용

더구나 조선시대 쌀은 오늘날과 달라서 맛있는 밥 짓기가 더 어려웠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영하 교수는 ‘껍질맛 가볍게 벗기고 속겨는 벗기지 않은 ‘매조미쌀’(현미)이었을 것이다.
당연히 밥맛은 지금과 달리 거칠었다.
또 알갱이가 지금의 쌀보다 훨씬 작고 붉은색이 도는 적미(赤米)도 밥 속에 많이 섞여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조선시대 사람들은 밥을 맛있게 지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밥맛이 이렇게 됐을까. 음식 관련 연구자들은 1960년대 후반부터 밥맛이 나빠지기 시작해 1980년대 지금처럼 됐다고 본다.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 한국 쌀농사는 생산량 확대가 목표였다.
쌀 품종은 맛보다는 수확이 많은 쪽으로 개량됐고, 질소비료가 다량 사용됐다.
쌀의 단백질 함량이 적을수록 밥이 맛있어진다.
단백질 함량이 높은 쌀로 밥을 지으면 금방 단단해진다.
단백질을 만드는 게 질소다.
질소비료를 사용하면 소출은 늘지만 단백질 함량이 높아진다.

1960년대 후반 한식당에는 스텐레스 밥공기 사용이 확산됐다.
정부는 부족한 쌀 소비를 줄이기 위해 스텐레스 밥공기 사용을 권장했다.
서울시는 1976년 음식점에서 스텐레스 밥공기만 사용할 것을 의무화한 규정을 요식협회에 내렸다.
스텐레스 밥공기 규격을 내면 지름 10.5cm, 높이 6cm로 정하고, 이 그릇에 밥을 5분의 4 정도 담도록 했다.
보건사회부는 1981년 이 서울시 규정을 전국으로 확대
·적용하는 행정조치를 내놨다.

◇ 공깃밥 온장고 출시되면서, 갓지은 밥의 찰진 맛 사라져

식당에서는 요즘도 1981년 보사부 권장 규격 밥공기를 대부분 사용한다.
탄수화물을 꺼리는 풍조가 확산되면서 2012년부터는 지름 9.5cm에 높이 5.5cm인 밥공기가 생산
·보급되고 있다.
음식점 주인 입장에선 스텐레스 밥공기가 밥양을 줄여 원가가 절감되는데다 미리 밥을 담아두면 손님이 몰리는 시간에도 빨리 식사를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1980년대 중반 공깃밥 온장고가 출시되면서 스텐레스 밥공기는 전국 식당가를 장악했다.

스텐레스 밥공기에 미리 담아두면서 한국의 밥은 편리함과 속도를 얻었지만 맛을 잃었다.
미지근하게 오래 보관된 밥은 윤기와 촉촉함을 잃는다.
쫀득하고 차진 식감이 사라지고 퍼석하고 불유쾌한 군내가 난다.
가정에서도 심지어 며칠 전 지은 밥을 전기밥솥에 보온 상태로 두고 먹기도 한다.
갈수록 밥을 적게 먹는 건 어쩌면 밥이 예전만큼 맛있지 않아서일 수 있다.
그래선지 요즘은 ‘밥맛’이 ‘밥의 맛’ ‘밥이 먹고 싶은 마음’이란 사전적 의미보다 ‘재수 없다’는 뜻으로 더 널리 쓰이는 듯하다.

 

② 스타 요리사들, 과학실험하듯 밥을 짓다

파인 다이닝의 최대 화두는 '밥', 밥 짓기에 혼신의 힘 기울여
밥심 살린 정교한 솥밥, 밥전 등 창작 요리 봇물

모던 한식당 ‘가온’에서 내는 솥밥. 김병진 셰프는 “솥밥은 가온 대표 요리라고 했다.<BR>

모던 한식당 ‘가온’에서 내는 솥밥. 김병진 셰프는 “솥밥은 가온 대표 요리라고 했다.

요리사 장진모씨의 밥 짓는 과정 설명은 정교하고 과학적이었다.
이것이 과연 밥에 대한 것인지, 아니면 화성 무인탐사선에 대한 것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쌀은 백진주와 골든퀸 두 품종을 7대3 비율로 섞어요.
쌀을 체에 받쳐 흐르는 물에 빠르게 1차 세척합니다.
그런 다음 볼(bowl)에 담고 물 받아서 2차 세척합니다.
물이 탁해지지 않는 수준까지, 쌀 표면에 묻은 전분을 완전히 제거합니다.
쌀을 냄비에 넣고 물을 마른 쌀 기준 1.2배 부어요.
뚜껑을 연 채로 인덕션 레인지에 올립니다.
와트(watt)수(쉽게 말해서 화력)가 조절되는 인덕션 레인지를 씁니다.

일반 가스 불은 화력이 그때그때 다르거든요.
반면 인덕션은 균일하고 미세한 조정이 가능합니다.
처음에는 2000와트(가장 센불)에 올려서 끓기 시작하면 젓습니다.
밥물이 액상풀 농도가 되고, 밥알이 알알이 따로 움직이다가 합쳐져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나면 그만 젓고 200와트(가장 약한 불)로 줄입니다.
뚜껑을 닫고 완전히 익히고 2분 뜸 들여 검은 도자 밥솥으로 옮겨 담고 1~2분 더 뜸 들여서 손님에게 나갑니다.

레스토랑 ‘묘미’에서는 메인코스로 정성 들여 지은 밥을 국, 8가지 김치·장아찌와 함께 낸다.<BR>

레스토랑 ‘묘미’에서는 메인코스로 정성 들여 지은 밥을 국, 8가지 김치·장아찌와 함께 낸다.

장씨가 쌀밥 짓기에 이토록 정성 들이는 건 그가 널리 알려진대로 ‘공대 출신 요리하는 뇌섹남’이라서가 아니다.
지난 1일 서울 논현동에 문 연 그의 레스토랑 ‘묘미’에서 밥이 메인코스이기 때문이다.
파인다이닝(고급)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 등 육류가 아닌 밥이 메인인 경우는 드물다.

한식의 역사를 조사해보니 옛날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게 밥과 국, 김치였어요.
그중에서도 밥은 한식의 중심이고요.
한식을 기본으로 음식을 한다면 밥을 중요하게 다뤄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가장 맛있는 밥 짓기를 궁리했습니다.

◇ 쌀 소비량 줄어들지만, 맛있는 밥을 향한 욕구 늘어

더이상 ‘밥심’으로 살지 않는 시대다.
쌀 소비량과 밥 섭취량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미식의 최전선에 서있는 요리사들에게 밥은 오히려 최고의 화두가 됐다.
밥이 주식의 위치에서 밀려나는 위기를 맞은 동시에 미식의 중심에 다가서는 분위기다.

밥에 대한 관심은 소위 ‘모던 한식’을 하는 요리사들 사이에서 유독 크다.
모던 한식이란 전통 한식을 기반으로 하되 오늘날의 소비자와 요구에 맞춰 재해석한 한식을 말한다.
가온(별 3개), 라연(별 3개), 권숙수(별 2개) 등 세계적 레스토랑 가이드 ‘미쉐린’ 서울편에서 높은 평가(최고 3개)를 받은 모던 한식 음식점에서는 밥이 코스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그만큼 최고의 밥맛을 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고 있다.

서울 신사동 ‘가온’ 김병진 셰프는 솥밥은 가온을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라고 했다.
이 식당의 솥밥은 계절마다 바뀌는데, 지금은 등심구이 솥밥과 버섯 솥밥이 나간다.
등심구이 솥밥은 소 사골과 사태 육수를 각각 우려 섞은 뒤 콘소메(프랑스 수프)처럼 맑게 뽑는다.
여기에 그날 도정한 쌀을 넣고 지은 밥에 소고기를 얇게 저며서 딱딱하게 말리고 가루 낸 다음 조선간장과 같이 끓여낸 파평윤씨댁 내림음식 ‘천리장’을 얹어 낸다.
버섯 솥밥은 버섯 육수를 뽑아서 밥과 세 가지 버섯을 넣고 짓는다.

한식 상차림은 ‘밥을 어떻게 하면 더 맛있게 먹을까’에 대한 해답으로 발전해왔다.
35년간 한식을 조리하고 연구해온 요리사 조희숙씨는 서양식 코스로 한식을 내되 제맛을 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왔다.

 

③ “자주 못 먹는 밥, 먹을 땐 제대로 지어 먹고 싶어요

'대관도' '버들벼' 등 50종 넘는 쌀 전문점, 매일 도정한 쌀로 밥짓는 식당 인기
프랑스 르크루제 '고메밥솥' 출시··· 도자기밥솥, 일본 여행 필수 구매 아이템으로

프랑스 르크루제가 내놓은 밥짓기 전용 주물냄비 ‘고메밥솥’

프랑스 르크루제가 내놓은 밥짓기 전용 주물냄비 ‘고메밥솥’

서울 서교동 ‘동네정미소’ 진열대에는 ‘대관도’ ‘버들벼’ ‘흑갱’ 등 수십 가지 품종의 쌀이 진열돼 있다.
대관도(大關稻)는 오랫동안 충청도와 경기도, 경북 일부 지방에서 재배됐고 조선시대 궁궐에 진상되거나 양반에게 바치던 쌀, ‘버들벼’는 이삭이 능수버들처럼 휘어지는 쌀, 흑갱(黑粳)은 까락(낟알 껍질에 붙은 깔끄러운 수염)이 검지만 낟알은 작고 하얀 찹쌀이다.
알기는커녕 이름을 들어보지조차 못한 토종 쌀들이다.

지난해 12월 문 연 동네정미소는 와인이나 커피처럼 쌀도 품종과 생산지에 따라 골라서 구매하고 맛볼 수 있는 쌀 전문점 겸 식당이다.
토종 쌀을 포함 50가지가 넘는 쌀을 갖췄다.
손님이 쌀을 선택하면 즉석에서 도정(搗精)해준다.
도정 정도, 즉 쌀겨를 얼마나 벗겨낼지도 선택할 수 있다.
갓 도정한 쌀을 신선할 때 다 먹도록 하려고 밥 4~5공기 분량인 450g 종이팩과 1.5kg짜리 페트병 위주로 팔았다.
하지만 쌀을 대량구매하는 중장년층과 식당 손님들이 늘면서 요즘은 5·10kg 단위로도 판매한다.

동네정미소 김동규 이사는 쌀 품종이 이렇게 다양한 줄 모르다가 알게 된 손님들이 처음에는 놀라워하다가 갓 도정한 쌀로 밥을 지어 먹어보곤 그 맛에 반해 단골이 된다며 아직은 젊은 손님들이 많지만 나이드신 방문객도 차츰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얼마 전 서교동 2호점에 이어 내년 봄에는 수원에 3호점을 낼 준비 중이다.

◇주식 지위 위태로워지며 미식의 대상 된 쌀밥

한국인은 더이상 밥심으로 살지 않는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요즘 한국사람은 쌀밥을 일주일에 평균 여섯 번 먹는다.
밥을 한 끼도 먹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뜻이다.
젊은층에는 ‘빵심’ ‘파스타심’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많고, 중장년층도 탄수화물이 건강에 좋지 않다며 밥 섭취량을 확 줄였다.

주식(主食)으로서 쌀밥의 지위가 위태로워진 지금, 아이러니하게도 쌀밥이 미식(美食)의 대상이 되고 있다.
쌀과 밥에 대한 관심은 밥을 덜 먹는 요즘 오히려 커졌다.
쌀 시식회가 여기저기서 열리고 있다.
사람들은 어떤 쌀 품종이 있고, 짓는 방식에 따라 어떻게 밥맛이 달라지는 지, 쌀로 할 수 있는 요리가 밥 말고 뭐가 있는지 알고 싶어 이런 행사에 몰린다.

경기도 고양시 벽제동 ‘우보농장’은 동네정미소에서 판매하는 토종 쌀을 재배하는 곳이다.
이 곳 대표 이근이씨는 요즘 전국으로 강연하러 다니느라 농사철만큼이나 바쁘다.
이 대표는 올해 강연을 30회 넘게 한 것 같다며 토종 쌀에 대한 관심이 예전보다 확실히 커졌다고 했다.

동네정미소는 50여 가지 쌀도 팔지만 매일 도정한 지은 쌀을 중심으로 한 식사도 할 수 있다.<BR>

동네정미소는 50여 가지 쌀도 팔지만 매일 도정한 지은 쌀을 중심으로 한 식사도 할 수 있다.

쌀밥을 식탁의 주인공으로 복권시킨 식당들도 등장했다.
서울 신사동 ‘현대카드 쿠킹라이브러리’에서는 매일 아침 도정한 쌀 3가지 중 하나를 고르고 백미와 오분도미(五分搗米·쌀겨층을 절반만 벗겨 쌀눈이 남도록 도정한 쌀) 중 선택하면 개인 밥솥에 밥을 지어준다.
‘동네정미소’는 쌀을 팔기만 하지 않고 갓 도정한 쌀로 지은 밥이 얼마나 맛있는지를 체험할 수 있도록 식당도 함께 운영한다.
종로구 내수동 ‘미학 상차림’은 매일 아침 도정한 쌀로 1인용 돌솥에 지은 밥을 생선구이 등 밥맛 돋우는 반찬들과 함께 낸다.

◇밥맛 좋은 밥솥 인기··· 프리미엄 전기밥솥 매출 오히려 상승

쌀 소비량은 줄었지만 국내 밥솥업체는 매출이 오히려 늘고 있다.
국내 1위 밥솥업체 쿠쿠는 올해 역대 최고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예상 매출이 8500억원으로 작년(7577억원)보다 1000억원 가량 많다.
쿠쿠전자측은 프리미엄 밭솥에 대한 소비자 수요가 늘고, 1~2인 가구 증가 추세에 맞춰 3·6인용 등 다양한 소형 밥솥이 인기를 얻으며 매출을 견인했다고 분석했다.
쿠쿠의 '트윈프레셔'는 무압이라는 국내 최소 신기술을 적용해 모든 종류의 밥을 완벽히 지을 수 있는 프리미엄 압력밥솥으로 인기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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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米食)시대] ① 해외에서도 소문났던 조선의 밥짓기 솜씨

프랑스 주물냄비업체 ‘르크루제’의 밥짓기 전용 ‘고메밥솥’은 일본, 홍콩에 이어 한국이 세 번째 출시 국가다.
기존 르쿠르제 주물냄비보다 바닥 모서리가 둥그렇고 뚜껑이 더 높다.
한국인에게 이상적인 밥맛의 기준인 가마솥밥을 만드는 무쇠 가마솥과 비슷한 형태다.
본체와 뚜껑 사이에는 ‘수분 커버’가 있어서 냄비밥 지을 때 가장 큰 걸림돌인 밥물 넘치는 현상을 방지할 수 있다.

또한 도자기 밥솥은 최근 ‘일본 여행 필수 구매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압력솥에 지은 밥처럼 떡지지 않고 고슬고슬한 밥을 지을 수 있다고 소문 났다.
밥물이 끓으며 들썩이는 뚜껑 소리, 밥이 익는 냄새 등 밥짓기의 ‘아날로그적 체험’을 극대화한다는 점도 매력으로 다가온다.

르크루제 관계자는 집에서 식사하는 경우가 줄어들수록 먹을 때는 제대로 된 밥을 먹고싶어하는 욕구가 커지고 이에따라 밥의 품질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했다.

 

④ 한식 일식 중식 ‘밥짓기 달인’이 공개하는 맛있는 밥 비법

너무 빡빡 씻으면 밥맛·밥향 사라져요
초밥용 밥, 마른 불림 후 냄비에 가스불로··· 중식당 볶음밥은 2시간 따로 수분 날려

찰떡처럼 차진 압력솥밥보다 고슬고슬한 솥·냄비밥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차츰 늘고 있다.<BR>

찰떡처럼 차진 압력솥밥보다 고슬고슬한 솥·냄비밥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차츰 늘고 있다.

한민족의 밥짓기 솜씨가 해외까지 알려졌던 과거만은 못할지라도 여전히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 역삼동 ‘민이한상’은 밥이 맛있기로 소문 난 한식당이다.
이 식당 이화영 대표는 우리 집 밥에는 특별한 게 없다며 가장 평범하게 지은 밥이 가장 맛있다고 했다.
그 평범해서 비범한 밥짓기는 이랬다.

도정한 지 일주일 내 쌀을 쓴다는 게 특별하다면 특별할까? 찬물에 쌀을 3번 정도 씻어요.
뿌연 쌀뜨물이 나오지 않도록 여러 번 씻어야 맛있다는 식당도 있는데, 그렇게 빡빡 씻으면 맛도 향도 사라지는 것 같아요.
그렇게 씻어서 물에 담가 2시간 정도 불렸다가 1인분씩 압력솥에 지어요.
물과 쌀은 1대1을 기본으로 하되 계절이나 쌀 상태에 따라 가감하세요.
밥을 퍼서 곧바로 먹기보단 5분 정도 놔두면 수분이 날아가고 밥알도 꼬들꼬들하니 가장 맛 좋아요.

한민족이 방심한 사이 세계적으로 ‘밥짓기 달인’ 타이틀을 거머쥔 건 일본인이다.
서울 신라호텔 일식당 ‘아리아께’에서 일본식 밥짓기 노하우를 들었다.
일반적으로 먹는 밥과 초밥용 밥은 그 조리법이 달랐다.

신라호텔 일식당 ‘아리아께’ 초밥.

신라호텔 일식당 ‘아리아께’ 초밥.

공기밥은 차진 식감이 필요한 반면, 초밥용 밥은 찰기 없이 고슬고슬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공기밥은 물로 깨끗이 씻어서 30분 물에 담가 불린 뒤 건져서 다시 30분 ‘마른 불림’을 합니다.
그런 다음 일반 전기밥솥에 짓습니다.
초밥용 밥은 물에 씻은 다음 건져 물기를 뺀 뒤 30분 마른 불림을 하고 난 다음 찬물에 담가 30분 더 불립니다.
가스불로 냄비에 짓고요.
매일 도정한 쌀을 사용하고 밥과 물은 1대0.8 비율로 하는 건 같습니다.
쌀뜨물이 나오지 않도록 여러 번 씻는데 처음 1~2회는 흐르는 물로 빠르게 씻어서 좋지 않은 냄새가 쌀에서 빠지고 밥에 배지 않도록 하는 것도 같고요.

중식당에서는 볶음밥용 쌀밥 준비에 공을 들인다.
미쉐린 가이드로부터 별 1개를 획득한 서울 연희동 중식당 ‘진진’ 왕육성 대표는 볶음밥용 밥을 따로 짓지는 않지만 별도의 준비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백반용과 볶음밥용 밥을 큰 밥솥에 함께 짓습니다.
그런 다음 볶음밥용 밥은 대광주리에 퍼담고 얇고 고운 소창으로 만든 행주를 물에 적셔서 2시간쯤 덮어둡니다.
오전 10시에 지은 밥을 이렇게 해두고 정오에 만져보면 수분이 날아가 표면은 고슬고슬하면서 온기가 있는듯 마는듯 하죠.
볶음밥 하기 최고 좋은 상태의 밥이죠.

밥을 얼려서 수분을 제거하는 중식당도 있다.
왕 대표는 쌀 조직이 약해지고 깨지는 듯해서 개인적으로 권장하진 않는다고 했다.
공기법 1개당 식용유 2~3숟갈로 볶으면 알맞다.
프라이팬을 센불에 달구고 기름을 두른 후 댤걀 물을 부으면 거품이 일어나면서 꽃처럼 커다랗게 부풀어올라요.
중간불로 줄이고 밥과 다진 채소, 새우 등 해산물을 더해 볶으면 밥알 하나하나 기름으로 코팅돼 고슬고슬하면서도 느끼하지 않은 맛있는 볶음밥이 완성됩니다.
다 먹고 나서 그릇 바닥에 기름이 남아있지 않으면 아주 잘 볶은 거예요.

요리책 ‘수퍼레시피’ 이수민 편집장은 맛있는 밥은 쌀 고르기가 핵심이라며 도정일자가 가장 최근인 쌀을 택하라고 했다.
좋은 쌀은 물질이 없고 광택이 나면서 투명하고 깨끗합니다.
깨진 부분이 있으면 전분이 흘러나와 밥맛이 떨어지니 골라내면 더 맛있는 밥이 됩니다.
보리, 흑미 등 잡곡이나 퀴노아, 렌틸 등 요즘 인기인 ‘수퍼 곡물’을 더해 잡곡밥을 지을 땐 3~4대1(불린 쌀과 잡곡 기준)으로 섞으면 좋습니다.
잡곡밥을 지을 때는 기존 물 양에서 1/4컵(50ml) 더 넣으세요.
모두 냄비나 돌솥에 지을 때 기준. 압력밥솥에 지을 땐 제품별 설명서를 따라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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