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에 드리운 슬프고 놀랍고 섬뜩한 죽음의 표정들

한국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죽음을 거부 혹은 부인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
‘죽을 사(死)’ 자와 발음이 같다는 이유로 아라비아 숫자 ‘4’를 기피하는 문화가 이를 잘 대변한다.

그래서 병원을 비롯한 건물들에 숫자 ‘4’ 대신 알파벳 ‘F’를 쓰곤 한다.
당연히 죽음을 주제로 한 미술작품도 거의 만들어지지 않았다.
반면 서양에서는 일찍부터 죽음이 미술의 중요한 주제로 자리 잡았다.
그 바탕에는 무엇보다 기독교 문화가 자리하고 있다​. 기독교의 핵심 교리는 부활과 구원,
영생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죽음을 전제로 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그 교리를 처음으로 구현했고,
이후 많은 순교자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자연히 순교자들은 서양 기독교인들이 가장 존숭(尊崇)하는 삶을 산 존재가 되었다.
그들의 죽음을 표현하는 것 또한 매우 의미 있고 소중한 예술적 시도가 되었다.

이런 문화적 토대 위에서 전염병과 전쟁 같은 재난으로 많은 사람이 죽는 경험을 빈번히 한 것도 유럽인들로 하여금 죽음의 표현에 강하게 집착하게 만들었다.
특히 중세 말 가공할 전염병의 위력이 준 충격은 매우 컸다.
14세기만 해도 유럽 인구의 1/3이 흑사병의 제물로 사라졌다​. 이런 경험은 죽음에 대한 서양의 관심과 표현을 급격히 확장했다.
근대에 들어서는 무엇보다 ‘개인’의 관념이 발달해 실존에 대한 의식이 고조된 것이 죽음의 예술적 표현에 큰 기여를 했다.
낭만주의 이후 죽음은 개인의 정념과 실존을 표현하는 데 있어 가장 효과적인 예술적,
극적 장치가 되었다.
​ 죽음만큼 비극적인 사건이 어디 있겠는가. 이 사건을 놓고 벌어지는 인간의 감정적 전개는 그 어느 것보다 강렬하고 호소력이 클 수밖에 없다.

자연스레 다양한 죽음의 표정과 그만큼 다양한 정서적 반응이 화포를 수놓게 되었다​. 이렇게 죽음은 미술을 비롯한 서양 예술 전반을 관류하는 핵심적인 주제로 자리매김해 왔다.
죽음을 주제로 한 수많은 작품 가운데 인상적인 작품 몇 점을 함께 감상해 보자.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조셉 라이트 오브 더비,

노인과 죽음,
1773,
캔버스에 유채,
101x127cm,
하트퍼드,
워즈워스 아테니움 미술관

영국 화가 조셉 라이트(1734-97)가 그린 이 그림은 이솝 우화 ‘노인과 죽음’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인간은 삶을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이 우화는,

무거운 나뭇짐을 나르던 한 노인이 자신의 비루한 삶을 한탄하는 데서 시작한다.
이렇게 힘겨운 삶을 사느니 차라리 죽음이 자신을 데리러 와 주었으면 좋겠다고 외쳐 버린 것이다.
그러자 정말로 죽음이 그 앞에 나타났다.
죽음은 “방금 나를 불렀지? 나더러 뭘 해달라고?”라며 노인에게 되물었다.
그러자 노인은 언제 그랬냐는 듯 “나리,
이 나뭇짐 좀 어깨에 지는 걸 도와주셨으면 해서요”라고 화제를 옮긴다.
라이트는,
죽음이 해골의 형상으로 나타나자 자빠질 듯 기겁을 하는 노인의 모습을 그렸다.
햇빛은 화사하게 내리쬐고 풀들은 짙푸르며 공기는 맑다.
이 좋은 세상을 두고 노인은 결코 황천길로 떠나고 싶지 않다.

죽음만큼 평등한 것도 없다

카를로스 슈바베(1866-1926),

무덤 파는 이의 죽음,
1890년대,
종이에 수채,
구아슈,
75x55.5cm,

파리 루브르 박물관

흰 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버렸다.
그림의 배경이 된 공동묘지도 흰 눈으로 순결하게 덮여 있다.
이 적막한 풍경 속에서 한 노인이 땅을 파고 있다.
묘지기인 그는 오늘같이 적막한 날에도 새로운 주검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오랜 세월 이 일을 해온 노인은 그저 무심히 오늘도 삽을 들었다.
하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고,
이 자리도 특별한 자리다.
왜냐하면 그가 파고 있는 이 구덩이는 오늘 그가 묻힐 곳이기 때문이다.
그의 마지막을 알리려고 죽음의 사자가 무덤가에 내려앉았다.
우아한 자세로 그녀가 말한다.

“노인이여,
수고했소. 이제 이곳에서 영원한 휴식을 취하시오.”

그녀의 오른손에 들린 작은 불빛은 노인의 영혼이다.
노인의 영혼이 그녀의 손에 들린 이상 그도 이 상황을 면할 도리가 없다.
죽은 이들의 안식을 책임지며 죽음에 충성해온 노인이지만 그 역시 죽음을 피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죽음은 이렇듯 모두에게 평등하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예고되지 않는다.

낫 가는 소리가 들릴 때

야체크 말체프스키(1858-1929),

타나토스 I,
1898,
캔버스에 유채,
124.5x74cm,
포즈난 국립 미 관

서양미술에서 그려지는 죽음은 보통 해골이나 낫을 든 노인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말체프스키의 그림에 등장하는 죽음은 다부진 육체를 가진 젊은 여인이다.

다만 그녀의 살빛은 생동하는 사람의 그것이라기보다는 흙빛에 가깝다.
그리고 그녀가 가진 날개는 거대한 녹슨 낫처럼 보인다.
죽음의 이런 모습은 다소 낯설어 보이지만,
지금 벌어지는 사건은 결코 낯선 것이 아니다.
바로 죽음의 호출이라는 사건이다.
날개가 달린 죽음은 운명의 상징물인 고깔 통을 앞에 차고 지금 시간의 낫을 갈고 있다.
낫 가는 소리에 잠에서 깬 노인이 겉옷을 걸치며 소리가 나는 곳으로 걸어 나오고 있다.
그 홀로 낫 가는 소리를 듣고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으니 이제 그의 날은 다했다.
화가는 노인의 이미지로 바로 이 그림을 그리기 몇 해 전에 죽은 자신의 아버지를 그렸다.

젊은 예술가의 죽음

지그문트 안드리셰비츠(1861-1943),

예술가의 죽음 – 마지막 친구,
1901,
캔버스에 유채,
103.5x125.5cm,

바르샤바 국립 미술관

경사진 창문으로 보아 그림의 공간은 다락방으로 보인다.
구석에 침대가 있고 그 위에 젊은 남자가 이불을 덮고 누워 있다.
이젤과 화구가 있는 것으로 보아 젊은이는 화가 같다.
흩어져 있는 종이가 보이는 등 방이 다소 지저분한데,
아마도 그림 작업을 하다가 피곤해 침대로 가서 누운 것이리라. 여기까지만 보면 이 그림은 젊은 화가가 고투하며 보내는 일상을 조명하는 그림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에 큰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존재가 침대 옆에 그려져 있다.
바로 해골이다.
양복을 깔끔하게 차려 입고 의자에 앉아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해골은 당연히 죽음을 상징한다.
그가 젊은이의 곁에 있다는 것은 침대에 누운 저 젊은이가 이제 죽음을 맞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죽음은 일반적으로 낫을 들고 있는 존재로 그려지지만,
이 그림에서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뮤지션으로 그려졌다.
그런 점에서 이 그림은 매우 감상적이고 서정적이라 하겠다.
예술과 창조에 모든 것을 걸었으나 채 피어나기도 전에 모든 사람의 무관심 속에서 쓸쓸히 죽어가는 젊은 예술가. 그에 대한 마지막 예우로 죽음은 그만을 위한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한다.

하얀 셔츠와 칼 그리고 피

안토니오 만치니(1852-1930),

결투 뒤,
1872,
162x105cm,
토리노 시립 근현대미술관

검은 옷을 입은 소년이 가까스로 몸을 추슬러 벽에 기대어 서 있다.
두려움에 찬 소년이 내려다보는 시선을 따라가 보면 검은 의자에 흰 셔츠와 칼이 놓여 있는 게 보인다.

셔츠에는 핏자국이 명하게 나 있다.
그 흔적으로 보아 방금 전에 결투가 있었던 듯하다.
아버지인지 혹은 형인지 모르겠지만,
저 셔츠는 분명 소년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이 입었던 것일 터이다.
그는 스러졌고,
그 사실을 아는 소년은 어찌할 바를 모른다.
너무나 슬프고 두려운 나머지 자신의 몸조차 제대로 가눌 수가 없다.
스러진 남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화면 왼편으로 설핏 누군가의 그림자가 보인다.
조용히 다가오는 느낌으로 보아 그 그림자의 주인은 소년에게 무언가 차분히 설명하려는 듯하다.
그 말의 내용이 무엇인지 짐작이 가기에 소년은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다.
그림자가 다가오는 것을 알면서도 소년은 그에게로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죽음은 때로 이렇게 예기치 않은 순간에 사건이나 사고의 형식으로 찾아온다.

인류 최초의 애도

부그로,
최초의 애도,

1888,
캔버스에 유채,
203x250cm,
부에노스아이레스 국립 미술관

어떤 종류의 사별이건 당하는 이의 가슴에 큰 상처를 남기지만,
자식을 잃은 부모의 상처만큼 큰 상처는 없을 것이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가 바로 그 상처를 입었다.
그것도 자식이 자식을 죽여 겪게 된,
지극히 고통스러운 경험이었다.
윌리엄-아돌프 부그로(1825-1905)가 그린 ‘최초의 애도’는 바로 그 슬픔을 표현한 그림이다.
아담의 무릎 위에는 지금 죽은 아벨의 시신이 뉘여 있다.
하와는 아담 곁에서 무릎을 꿇고 흐느끼고 있다.
낙원에서 쫓겨나 원시인들처럼 살아가던 신세이지만 그래도 가족이 하나 되어 사랑으로 오순도순 살면 세상은 살 만한 곳이라 생각했는데,
이리도 끔찍한 일이 일어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고통으로 아득한 그들의 마음을 대변하듯 하늘에는 먹구름이 몰려와 있고 세상도 잿빛으로 물들어 있다.
아벨의 죽음 주제는 보통 카인과 아벨의 격투 끝에 벌어지는 사건으로 묘사되는데,
이 그림에서는 특이하게도 죽은 아들의 시체를 발견하고 슬퍼하는 부모의 모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이 그림을 그리기 직전에 부그로가 둘째 아들을 잃는 경험을 한 탓으로 보인다.
그 아픔을 표현하려다 보니 최초로 이 일을 겪은 인류의 조상이 생각났고,
그래서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춰 인류 최초의 애도를 형상화하게 되었다.

순결한 심장

엔리크 시모네트(1866-1927),

심장의 해부-그녀도 심장이 있었네!,
1890,
캔버스에 유채,
177x291cm,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현재는 말라가 미술관에 임대 중)

이 그림은 보기에 따라 다분히 감상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고 다소 끔찍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젊은 여인의 시신이 놓여 있는 해부대 곁에 의사가 서 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오로지 살아 있고 죽어 있는 단 두 사람이 수직과 수평으로 만나고 있다.
이 공간은 부검실이다.
보통 이런 주제의 그림이 그려지면 렘브란트의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처럼 주위로 의사들이나 의학도들이 둘러서 있는 모습이 함께 그려진다.
그러나 이 그림에는 오로지 의사와 주검 둘뿐이다.
시간은 한낮으로 환한 빛이 실내로 비쳐들어 온다.
의사가 왼손에 든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는데,
붉은빛의 그것은 바로 죽은 여인의 심장이다.
이곳이 부검실이므로 죽은 여인의 사인을 찾는 과정에서 저렇듯 심장을 꺼내어 보게 된 것 같다.

여인은 아마도 몸을 파는 일을 하던 사람인 듯하다.
그런 그녀의 심장도 다른 이의 심장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그녀의 심장 또한 누군가에 대한 사랑으로,
삶에 대한 열정으로,
또 순수하고 순결한 자신만의 소망으로 힘껏 뛰었을 것이다.
누구의 것과도 다를 바 없는 그 심장은 이제 차갑게 식어 멈추어 버렸다.
인상적인 소품은 화면 오른쪽에 보이는 물그릇이다.
전통적으로 물이 담긴 그릇이나 병은 성모 마리아의 순결을 상징하는 표지로 많이 그려졌다.
이 그림의 물그릇은 그지없이 깔끔하고 깨끗해 보인다.
사람은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창부로 살다가 죽은 저 여인은 신이 보기에 누구보다 깨끗한 삶을 산 사람일 수 있다.
제아무리 공격하고 비판하던 사이라도 망자 앞에서 우리가 지극한 예의를 차리는 것은 누구도 다른 누구의 삶을 함부로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주헌

이주헌은 미술평론가이자 대중에게 미술을 쉽게 전하는 아트 스토리 텔러다.
최근 저서로는 <혁신의 미술관>(아트북스),
<신화의 미술관>(아트북스) 등이 있다.


죽음에 대처하는 철학자들의 사유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자유인은 결코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며,
그의 지혜는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한 성찰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공자가 제자들의 물음에 “삶을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 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죽음은 사유할 수는 있지만 누구에게도 경험될 수 없다.
결코 경험될 수 없는 것에 매달려 있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에 대한 사유에서 떠날 수 없다.
죽음은 ‘나’라는 주체의 완벽한 종말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언제나 두려움이었고 그 두려움은 종교와 정치와 문화를 낳았다.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그 두려움을 뛰어넘거나,
회피하거나,
혹은 그 두려움에 굴복하였다.

모래시계

 

“만물은 한계가 없다.
어찌 보지 않았다고 하여 없다고 단언하는가? 또한 선인에 대한 기록은 과거의 문헌에 얼마든지 있다.

어찌 불사(不死)의 도가 없다고 하는가?”

《포박자》의 저자 중국의 갈홍(283-343?)은 도교(道敎)의 영향을 받아 신비의 환약으로 신선이 되고 불로장생하고자 하였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승에서의 ‘변신’으로 해결하고자 한 도교의 해법은 현재에도 존재한다.
태반 주사,
비타민 주사,
신데렐라 주사 등은 신비의 환약과 비슷하다.
그러나 죽음에 대항하는 보다 보편적인 방법은 죽음이나 어떠한 혼란으로부터 흔들리지 않도록 스스로를 단련하는 것이다.

“죽음이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에 익숙해져라.”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기원전 341~270)는 죽음이 감각의 사라짐이라는 것을 우리가 인식하게 되면 불사에 대한 헛된 욕망을 제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죽음은 어떤 체험된 경험 대상일 수 없기 때문에 죽음과 결부된 걱정은 문자 그대로 대상이 없는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감각과 이성에 대한 강조점에서 에피쿠로스학파와 조금은 결이 다르지만 스토아학파도 동일하게 절제를 통해 죽음에 대한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고자 하였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기원전 4?~기원후 65)는 철학이 우리에게 약속할 수 있는 영원성이란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오직 현재를 살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라지고 없는 것은 미래의 시간일 뿐,
시간은 오직 지금 존재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철학자란 항상 시간을 내는 자’라고 하였다.
미래에만 자신을 던져 바삐 걸어가는 사람에게는 삶도 죽음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또 한 명의 스토아주의 철학자인 고대 로마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21~180)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라. 초조해하지 말라. 무감각해지지 말라. 태연한 척하지도 말라. 이것이야말로 인격의 완성이다.

길 위의 사람

 

우리가 잘 아는 장자(기원전 365?~기원전 270?)는 자신의 죽음을 맞이하면서,
스승을 들판에 던져놓느냐 아니면 매장하느냐 논쟁하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유머를 날렸다.

“묻지 않는다면 까마귀와 독수리 밥이 될 테지만 묻어봤자 개미 밥밖에 더 되겠느냐.

너희들은 까마귀와 독수리 부리에서 먹이를 꺼내 개미 입에 채워주려 하는 것이다.

너희들은 어찌하여 개미들 편만 드느냐?”

그러나 이것으로 우리는 죽음을 견뎌낼 수 있는가. 이것은 너무 엘리트적인 방법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스토아적 태도를 요구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삶을 견디는 것조차 힘겨워한다.

삶에서 치워진 죽음,
삶을 위한 죽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세균의 발견과 항생제의 발견,
위생학과 여러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수명을 비약적으로 연장시켰다.
현재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남자는 79세,
여자는 85세로 200여 년 전의 조선 시대에 비하면 30년,
40년 이상을 더 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기만 한 것일까?

직업상 나는 매일 늙어가는 사람과 늙은 사람,
죽어가는 사람과 죽은 사람을 보고 있다.
늙어가는 사람은 지금 자신의 몸이 지난달,
지난해,
10년 전과 다름을 한탄하고 그때처럼 몸이 돌아가기를 희망한다.
이미 늙은 사람은 나에게 지겹다고,
빨리 죽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죽어가는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가쁜 숨을 쉬고 있고,
그의 육체는 2~3일 후면 재가 되거나 땅에 묻힐 것이다.
죽은 사람은 차가운 냉장고에 들어가기 위해 내 눈앞에서 옮겨지고 있다.
나는 매일 이 장면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리고 우리는 정작 죽음이 무엇인지 모른다.

영화 〈아일랜드〉처럼 낡은 내 몸의 장기(臟器)를 대체할 새로운 육체가 존재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살 수 있을까? 그러나 우리의 몸은 각각의 장기들의 결합이 아니라 하나의 시스템 전체다.
함께 늙어가는 시스템 회로를 바꾸지 않는 한 불완전한 수명 연장일 따름이다.
그러한 수명 연장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할아버지 뒷모습

우리는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슬퍼하고 눈물 흘린다.
그 감정은 나도 언젠가 저처럼 죽을 것이라는 이유 때문은 아닐 것이다.
가까운 이라면 그와 보낸 삶의 추억 때문일 것이고,
모르는 이라면 죽어간 이들과 그를 지켜보는 가족의 아픔에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에 대한 애도는 비유하자면 삶에서 죽음이라는 낭떠러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낭떠러지에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행위이다.
앞서 인용한 것처럼 철학자 스피노자가 “자유인은 결코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며,
그의 지혜는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한 성찰이다”라고 말했을 때 그가 한 번도 죽음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일 것이다.

죽음은 삶을 비춰주는 거울이다.
죽음이 존재함으로써 우리는 삶을 살아가게 되고 그 의미를 찾아갈 수 있다.
그러나 현대는 이 죽음을 지워가고 있다.
죽음을 지움으로써 삶을 더 빛나게 할 수 있다는 신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언제나 우리 주변에 있던 공동묘지들은 저 멀리로 치워지고,
죽어가는 자들은 병원이나 요양원에 숨겨졌다.

독일의 사회학자 엘리아스는 이런 ‘때 이른 죽음’의 길 위에서의 상태를 ‘죽어가는 자의 고독’이라고 표현했다.
문명화는 죽음을 위생적으로 제거하면서 그 두려움과 고통과 죄의식을 문명화라는 이름 밑으로 포장해버린다.
죽어가는 자들은 치워지고 격리되어 살아 움직이는 이들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온다.
확률이 필요 없는 명백함이다.
명백하다면 우리는 이것을 우리 삶을 지탱하고 반성하는 거울 기둥으로 만들어야 한다.
죽음을 드러내고,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배워야 하지 않을까?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욕망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스스로의 삶을 기만하는 것이 아닐까?

아르스 모르엔디(Ars moriendi,
죽음의 기술)! 그것은 다름 아닌 삶을 살아가는 기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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