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발굴 |
중산층이 위기를 맞았다고? ┃글 Hoa |
혹시 '중산층이 위기를 맞았다'는 이야기, 들어보셨나요? 중산층의 위기는 우리나라 언론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골 소재 중 하나예요. 중산층이 안정될수록 건강하고 안정된 경제라고 볼 수 있다는데, 최근 우리나라는 반대로 중산층은 쪼그라들고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으로 쏠리는 양극화가 벌어지고 있다고 해요. 언론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 지는 꽤 됐는데, 최근 들어 중산층과 관련한 흥미로운 연구가 몇 개 발표됐어요. 그래서 오늘은 한국의 중산층과 관련한 연구 결과를 소개해 드릴게요. 중산층이 뭔데? ‘중산층’이라는 개념은 누구나 알 듯하지만, 막상 정의하려면 애매한 개념이에요. 중산층의 사전적 의미는 ‘중간 정도의 자산을 보유한 계층’이에요. 대중적으로는 ‘부자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먹고 살 여유는 있는 보통 사람들’ 정도로 이해하면 무난할 것 같고요. |
그만큼 국가마다 중산층을 정의하는 방법이 전부 달라요. 중산층의 구분 기준에는 여러 방법이 존재하는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기준에 따르면 중산층은 중위소득의 75~200%인 가구를 의미해요. 우리나라 통계청은 중산층을 소득 3분위(소득 상위 41~60%)로, 상류층은 5분위(상위 20%)로 구분하기도 하죠. |
*중위소득: 전체 가구를 소득 순서로 나열했을 때 한가운데에 있는 가구의 소득을 이르는 말. |
*2024년 중위소득의 75~200% |
중산층이 왜 중요해? 중산층을 확대하는 건 역대 정부들이 공통으로 내세운 정책 목표 중 하나였어요. 중산층이 두껍게 형성돼야 경제성장의 동력이 생기고, 사회 통합도 더 잘 이뤄진다고 보기 때문이에요. 중산층이 두꺼울수록 상류층과 하류층의 비율이 줄어드는 셈이니, 전체적인 빈부격차도 약화한다고 볼 수 있고요. 중산층이 얼마나 경제적으로 안정됐는지가 나라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셈이에요. 그런데, 중산층이 위기라고? 최근 들어 언론에 우리나라의 중산층을 우려하는 기사가 자주 보이기 시작했어요. 언론에서 얘기하는 ‘중산층의 위기’는 한 마디로 ‘중산층이 사회적, 경제적 불안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예요. 또 언론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야기 중 하나는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다'는 건데요, 실제로는 중산층에 해당하지만 스스로를 하위층으로 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에요. NH투자증권이 2022년에 114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객관적 조건에서 중산층에 해당하는 응답자 중 절반 가까이(45.6%)가 스스로를 하위층으로 생각했다고 해요. 한국인 중에서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1980년대에는 70%에 육박했는데, 최근 들어서는 40%로 줄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고요.
그런데 실제 통계 지표를 살펴보면, 오히려 중산층 규모는 늘어나고 있다고 해요.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발표한 ‘한국의 중산층은 누구인가’라는 연구에 따르면, 지난 2011년 이후 우리나라의 중산층 비율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어요. 지금은 국민 10명 중 약 6명이 중산층이라고 할 수 있어요. |
자료=한국개발연구원(KDI) |
그런데 왜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보는 사람은 줄어들고 있을까요? 사실 국민의 60%를 중산층으로 보려면, 최저임금보다 약간 많은 소득부터 중산층으로 간주해야 해요. 그런데 최저임금보다 조금 더 버는 정도로는 일반적으로 '중산층'을 떠올렸을 때의 삶의 방식을 유지하기가 어렵죠.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여유 있고 안정된 상태를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이상과 현실 사이에 괴리가 있는 거예요. 심지어 최근 들어서는 상류층도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낮잡아 보는 경향이 관찰된대요. KDI의 연구에 따르면, 한 달에 700만원 이상을 버는 사람 중에서도 단 11.3%만이 자신을 상류층이라고 인식했고, 76.4%는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생각했다고 해요. 심지어 자신을 하층이라고 여기는 비율도 12.2%에 달했어요. 한 달 소득이 700만원 이상이면 통계상으로는 확실히 상류층에 해당하는데도 말이에요.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상류층을 구분하는 소득 기준은 연 7800만원(월 650만원) 수준이에요.) 종합하자면, 우리나라에서는 실제로 중산층인 사람은 자신을 하층으로, 실제로 상류층인 사람은 자신을 중산층으로 본다고 볼 수 있어요. 즉, 객관적인 중산층과 주관적인 중산층 사이의 괴리가 넓은 상황인 거죠. |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① 벌어지는 소득 격차 최근 들어 하층과 중산층, 그리고 중산층과 상류층의 소득 격차가 벌어지면서 계층 간 상대적 박탈감이 커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와요. 실제로 상류층의 소득이 중산층보다 훨씬 빠르게 늘면서, 중산층과 상류층 간 소득 격차는 사상 최대로 벌어졌어요. 2022년 기준, 중산층으로 분류되는 소득 3분위 가구의 소득은 월평균 449만원인 반면, 상류층인 소득 5분위는 1300만원으로 조사됐다고 해요. 5분위와 3분위의 소득 격차는 851만원으로, 이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11년 이후 가장 높아요. |
중산층은 소득 3분위, 상류층은 5분위 가구 월평균 소득 기준. /자료=통계청 |
② 더 빠르게 벌어진 자산 격차 사실 최근 몇 년 사이 소득 격차보다 더 빠른 속도로 벌어진 건 자산 격차예요. 자산 격차의 크기가 확대되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증폭시켰다는 해석도 있어요. 우리 국민의 순자산 격차는 2011년부터 2015년까지 감소하다가 2018년 이후로 점차 확대돼 2020년에 절정을 기록했어요. 부동산 시장이 2018년부터 호황을 보이다가 2020년에 집값 거품이 절정을 이뤘는데, 부동산 가격 변동이 자산 격차 추이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여요. 아무래도 부동산이 순자산의 큰 부분을 차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에요. KDI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소득과 자산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중산층 내에서도 계층이 세분화됐다고 해요. 그렇기 때문에 중산층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중산층에도 다양한 층위가 있다는 걸 인지하고, 세부적으로 계층을 나눠 맞춤형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하죠. ③ 따라갈 수 없을 거라는 생각 소득과 자산 격차 자체보다 중요한 건, 이런 격차를 앞으로도 넘어설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이에요.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모으면 계층 이동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에 의구심을 품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는 말이에요. 통계청이 지난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자녀 세대에서 계층 이동이 어려울 것’이라고 답한 국민은 54.0%로, 지난 2009년 29.8%와 비교해 급증했다고 해요. 개인의 노력만으로 소득과 계층의 상승을 이룰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줄어들고 있다는 거예요. |
19세 이상 인구 대상 조사. 자료=통계청 |
④ 기타 요인들 그 밖에도 스스로에 대한 주관적 계층의식을 결정하는 데에는 개인의 성별, 연령, 교육 수준 등 다양한 요소가 영향을 미쳤다고 해요. 흥미로운 점을 몇 가지 소개해 드리자면, 여성과 청년층에서는 상대적으로 낙관적인 계층 인식을 보였고, 고학력자들은 실제로 상층이든, 하층이든 자신을 중산층으로 바라봤다고 해요. 또 인맥이 적을수록, 진보적인 정치 성향을 보일수록 자신의 계층 지위를 낮게 보는 경향이 있었대요. 종합하자면, 지난 몇 년 사이 소득이나 자산의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계층 이동에 대한 꿈을 포기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거예요. 서민들은 중산층으로 가는 게 어렵다고 보고, 중산층은 상류층으로 이동하려면 주식이나 코인 대박이 나거나 '로또 당첨' 같은 이변이 일어나야 한다고 본다는 거죠. 하지만 패자에게도 다시 도전할 기회가 주어지고, 노력한 만큼 더 나은 생활 수준을 누릴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건강한 국가라고 할 수 있어요. 모두가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도록, 정부의 정밀한 지원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네요. |
┃3줄 요약 · 최근 들어 언론에 한국의 중산층이 위기를 맞았다는 기사가 자주 나오고 있음. 중산층이 사회적, 경제적 불안을 겪으며 위축되고 있다는 것. · 실제 통계를 보면, 중산층 규모 자체는 늘어나고 있음. 그러나 중산층은 자신을 하위층으로, 상류층은 자신을 중산층으로 여기는 현상이 나타남. · 이러한 현상은 최근 소득과 자산의 양극화가 극심해지며 계층 이동 가능성에 의구심을 품는 사람이 늘어났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으로 보임. |
뉴스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