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을 좋아하는 필자의 온라인 콘텐트 추천 게시물에는 종종 고양이와 강아지를 같이 키우는 사람들의 에피소드가 뜨곤 하는데, 강아지가 고양이와 같은 자세로 그루밍을 하거나 고양이가 강아지처럼 주인과 함께 산책을 하는 놀라운 장면들이 보인다.
견묘지간(犬猫之間)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을만큼 흔히 개와 고양이는 사이가 좋지 않은 앙숙의 관계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로 새끼 때부터
합사한 개와 고양이는 밥도 같이 먹고 서로의 ‘종특’이 닮아 있을 정도로 친한 경우가 많다.
완벽하지 않아도 부딪혀봐야
창의력 샘솟고 혁신도 생겨나
기술 정교화, 신선한 발견 줄여
창의적 가치 찾는 기술 중시돼야
서로 다른 성향의 사람이 상호 작용하며 끌리는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보완성 이론(complementarity theory)’이라 한다.
반대로 자신과 유사한 사람들을 선호하고 그들과의 관계를 더욱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을 유사성-인가 이론(Similarity-Attraction Theory)으로 설명한다.
인간관계의 갈등은 이 두 가지, 너무 닮아서이거나 혹은 너무 달라서 생겨난다.
사랑에 빠질 때 역시 나와는
다른 모습에 매료되거나 반대로 나와 많이 비슷해서 급격히 가까워지듯 말이다.
조직에서는 어떨까. 상반되는 역량으로 융합이 될 때 혹은 유사한 집단에서 호흡이 척척 맞을 때, 어느 쪽이 더 큰 시너지가 날까?
시너지는 다르면 달라서 상호보완적으로, 같으면 같기에 의기투합해서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든 상호작용하는 사이 서로를 닮아가는 데서 시너지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서로 동등하게 닮아가거나, 한쪽이 다른 한쪽에 스며들거나 하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시너지가 났다는 것은 서로 닮음에 성공한 것이며 이 과정에는 엄청난 노력이 수반된다.
닮아가고 맞춰가는
과정이 힘들다 보니 요즘 사람들은 관계 맺기를 위한 지난한 노력 대신 효율성을 찾는다.
관계의 효율성 탓에 성행하는 MBTI는 맹신을 초래해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관계를 맺는 데 투입할 노력을 최소화하고자 16가지 대표성향을 맞춰보며 부딪쳐 겪기 전에 선부터 긋는다.
맞지 않을 거라고, 통하지 않을 거라고, 관계에 성공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시작도 하지 않으려 한다.
그렇다고 ‘케미’가 좋으면 항상 성공적인 관계에 도달하는가 하면 당연히 그렇지 않다.
닮음은 조율과 이해의 결과이고 진화의 또 다른 이름이다.
갓난아이는 엄마의 입 모양을 모방하며 말을 배우고, 막내는 형이나 누나를 모방하며 빠르게 성장한다.
롤 모델을 닮기 위한 부단한 노력으로 성공하는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항상 어떠한 대상을 향해 닮아가려는 노력이 진화를 이룩해왔다.
그리고 전혀 다른 둘이 서로 닮고자 애쓰는 사이에 생겨나는
에너지는 혁신의 원동력이 된다.
가장 거리가 멀 것이라 여겨졌던 예술과 기술이 대표적이다.
예술은 기술을 닮아가고, 기술은 예술을 닮아간다.
인공지능은 이름에서부터 그렇듯 인간을 닮아가고 인간은 로봇의 능률적인 완벽함을 추구한다.
트렌드 역시 미래와 과거의 사이에서 서로를 담으려 애쓴다.
뛰어난 역사학자는 미래를 예측하고, 훌륭한 예언가는 과거를 재발견함으로써 가장 먼 대척점에서 서로를 닮아간다.
누군가를 닮아가는 과정은 모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창의적이다.
나를 닮아가는 상대를 통해 나도 모르고 있던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 나를 볼 수 있다는 것, 자기인식(Self-awareness)으로 시작되는 메타인지를 경험하게 되는 흥분되는 일이다.
선택과 사용에 시행착오를 줄여주기 위해 맞춤화(customization)와 초개인화가 화두가 된 세상,
이를 해결해주는 것이 스마트한 기술의 절정으로 여겨진다.
시행착오를 줄여주는 효율성은 좋지만 이런 세상에서 개와 고양이는 영원히 친해질 수 없을 것이다.
시행착오로 인해 발생하는 예상치 못한 우연의 즐거움, 신선한 충돌로 인한 자극과 같은 ‘가치로운 것’을 찾아주는 기술이 더욱 중요해져야 하지 않을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완벽한 준비’다.
‘완벽보다 완성이 낫다’(Done is better than perfect)는 말이 있다.
시행착오 없는 완벽한 준비는 시작만 늦출 뿐이다.
완벽하지 않고 허술할지라도 시작을 해야 진화할 수 있고 끝을 볼 수 있다.
완벽의 마지막 조각은 ‘지금’이다.
주저할 시간이 없다.
미래는 멀리 보이지만 지금 시작된다.
이향은 LG전자 CX담당 상무
내가 시행착오를 경영하는 이유
조우성 변호사의 Think How(16)
업무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To Do List’를 작성하는 것은 이제 습관화됐다.
To Do List 중에서 완료된 일들의 목록을 정리하다보면 힘만 쓰고 제대로 결실을 맺지 못한 일들이 많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래서 따로 정리해봤다.
이름 하여 '실패 리스트'. 그동안 추진하다가 중간에 어그러진 일들, 또는 나의 판단착오로 시간만 낭비했던 일들의 목록과 그렇게 된 이유를.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 C사 프로젝트 : 첫 제안 이후 좀 더 치밀한 후속조치를 못해 중간에 김이 빠져 버렸다.
- 김00 대표건 : 실무자와의 작은 마찰과 오해를 제때 풀지 못해 일을 키웠고 결국 파국으로 치달았다.
빨리 대응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박00 팀장 프로젝트 : 사전에 충분한 판례 리서치 없이 무조건 될 거라고 낙관한 잘못이 있다.
공연히 큰 소리만 친 격이 되어 서로 민망해져 버렸다. - 최00 교수 프로젝트 : 너무 마음이 앞섰다.
나라도 상대방이 그런 식으로 나오면 경계를 했을 것이다.
왜 그리 급했던가.
적다보니 다시 속이 쓰렸다.
하지만 문제가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살필 수 있었기에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복기(復碁). 바둑에서 한 번 두고 난 바둑의 판국을 비평하기 위하여 두었던 대로 다시 처음부터 놓아 보는 것이다.
바둑의 고수들은 복기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재능을 가진 상대를 넘어서는 방법은 노력뿐이다.
더 많이 집중하고 더 많이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
승리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습관''을 만들어주고,패배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준비''를 만들어준다.
이창호의 <부득탐승>
또 피터 드러커 교수는 이런 말을 했다.
시행착오를 경영하라.시행착오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다.
시행착오 속에서 교훈을 얻자.
그래서 실패 리스트 작성은 나의 '시행착오 경영' 방식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