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면 잠 없어진다더니…" 노인 건강 '뜻밖의 결과'

노년기 수면시간 길지만 수면질 떨어져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나이가 들면 잠이 준다고 한다.
누구나 쉽게 하는 말이지만 결론은 사실과 다르다.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노인의 하루 평균 수면시간은 9시간 정도다.
성인들의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이 7~7.5시간인 것을 고려하면 오히려 긴 편이다.
다만 노인들이 하루 평균 1시간20분 정도 낮잠을 잔다는 연구 결과를 고려하면 밤 수면 시간은 성인 평균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노인들은 수면의 질이 떨어져 잠이 줄었다고 느낄 가능성이 높다.
최윤호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신경과 교수는 26일 "잠을 3~4시간만 자도 숙면을 취해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다면 병이 아니다"라며 "반면 8~9시간 자는데도 개운하지 않고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만큼 피곤하고 낮 시간에 졸리고 집중력이 떨어진다면 수면장애일 수 있다"고 했다.
노년기 수면 질이 떨어지는 수면장애가 흔하다는 것이다.
수면장애는 건강한 수면을 취하지 못하거나 충분히 잠을 자도 낮 동안 잘 깨어 있지 못하고 졸림을 호소하는 상태가 이어지는 것을 말한다.
수면 리듬이 흐트러져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것도 마찬가지다.

인천성모병원 신경과 최윤호 교수

인천성모병원 신경과 최윤호 교수

국내 65~84세 인구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57.7%가 불면 증세를 호소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최 교수는 "사람은 인생의 3분의 1이나 되는 긴 시간 잠을 자면서 지내는데 이를 통해 몸과 정신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회복시키고 생체리듬을 유지하게 된다"며 "제대로 잠을 못자면 활력이 떨어지고 면역기능 저하를 호소할 수 있다"고 했다.
수면장애 탓에 만성질환 위험이 높아지기도 한다.
노년기 수면장애 중 가장 흔한 것은 불면증과 일주기 리듬 수면장애다.
불면증은 잠들기 힘들거나 잠이 들어도 자주 깨는 것을 말한다.
새벽에 너무 일찍 일어나 수면 부족 상태를 호소하기도 한다.
낮 동안 피로감과 졸음, 의욕상실 등을 겪게 된다.
일주기 리듬 수면장애는 생체리듬과 관련이 있다.
노인이 되면 생체리듬을 관장하는 뇌신경 기능이 떨어진다.
생체시계에서 일주기 리듬이 젊을 때보다 조금 앞당겨진다.
이 때문에 수면 양상에도 변화가 생긴다.
대부분 오후 7~9시 사이에 일찍 잠이 들어 오전 3~5시 사이에 깨게 된다.
최 교수는 "숙면을 취하도록 돕는 수면 유도 물질 멜라토닌은 해가 진 후부터 생성되기 시작해 새벽 2~4시 사이에 가장 많이 분비된다"며 "노인은 일주기 리듬이 달라지는 데다 멜라토닌 분비까지 원활하지 못해 시간이 갈수록 수면의 질이 떨어지게 된다"고 했다.
과다수면증과 기면증, 코골이와 수면무호흡증, 하지불안증후군, 렘수면행동장애 등도 수면장애 증상이다.
과다수면증은 밤에 최소 7시간 이상 수면을 취했는데도 낮에 과도한 졸음을 호소하는 증상이다.
기면증이 있으면 졸음을 이겨내지 못해 갑작스럽게 잠에 빠져든다.
먹고 말하거나 걷다가 잠이 들기도 한다.
코골이가 있는 사람의 75%는 수면 중 호흡이 멈추는 수면무호흡증을 동반한다.
수면 중 호흡 이상이 시간당 5회 이상 나타나면 수면무호흡증으로 진단한다.
수면무호흡증이 심하면 자주 깨고 체내 산소 공급이 어려워진다.
낮 동안 심한 피로감과 자도 잔 것 같지 않은 느낌, 아침 두통, 무기력감, 집중력과 기억력 저하, 우울감 등을 호소하게 된다.
수면무호흡증을 장기간 방치하면 치매 등 인지장애, 뇌혈관 질환, 심장 질환, 당뇨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불안증후군은 잠들 무렵 다리 등 특정 부위에 불편감이 느껴져 잠들기 힘든 상태다.
전기가 흐르는 느낌, 벌레가 기어가는 느낌 등 환자마다 불편감은 다르게 나타난다.
움직임이면 나아진다.
심한 환자는 통증을 호소하기도 한다.
렘수면행동장애는 꿈을 꾸게 되는 렘수면 단계에서 비정상적으로 근육 긴장도가 증가해 꿈과 관련한 이상행동을 보이는 질환이다.
나이가 많을수록, 남성일수록 흔하게 발생한다.
파킨슨병 등 퇴행성 신경질환과 관련이 크다.
최 교수는 "노년기에 수면장애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치매와의 연관성 때문이다"이라며 "수면장애가 있는 환자는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치매 원인 질환인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위험이 49%나 높다는 조사결과도 있다"고 했다.
불면증 원인은 다양하다.
노인은 젊은 사람보다 낮 동안 활동이 적기 때문에 밤 시간 수면장애가 생기기 쉽다.
우울과 불안 등 심리적 요인 탓에 불면증이 생기기도 한다.
만성 호흡기질환, 역류성 식도염, 위궤양, 만성 통증, 빈뇨나 요실금, 고혈압, 심혈관계 질환 등 다양한 신체 질환도 수면장애 원인이다.
노인들은 젊은 사람보다 약물을 많이 복용한다.
이런 약물 부작용 탓에 불면증이 나타나기도 한다.
노인시설이나 병원에 입원하면 환경 변화 탓에 수면장애가 생기기도 한다.
최 교수는 "노인에게 불면증은 그 자체로 힘들 뿐 아니라 건강에도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며 "하루 7시간 미만으로 잠을 자는 노인은 8시간 이상 충분히 수면을 취한 노인보다 건강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불면증 예방을 위해선 수면을 방해하는 생활습관을 개선해야 한다.
커피 홍차 등에 많이 함유된 카페인 섭취를 줄이고 늦은 오후 이후로는 카페인을 섭취하지 않는 게 좋다.
자기 전 흡연이나 음주도 피해야 한다.
술은 처음에는 수면을 유도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잠을 자주 깨게 하고 수면무호흡증을 악화시킨다.
복용 중인 약이 수면과 연관됐는지 확인하고 바꿀 수 있다면 다른 성분으로 대체하는 게 좋다.
낮 시간 동안 햇볕을 충분히 쬐면 생체시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해 숙면에 도움이 된다.
규칙적인 운동도 마찬가지다.
낮잠은 최소한으로 줄이는 게 좋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안락사냐 영생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10분 내 행복하게 죽는 안락사
육체·정신이 기계와 합쳐져 영생 기대하는 미래도
삶과 죽음, 선택의 영역 되나

감기를 2주간 앓아서 기력이 떨어진 몸에 장염과 위염이 한 번에 덮쳤다.
열이 오르고 복통·두통·근육통이란 삼중고에 잠을 설친 어느 새벽, 가까스로 정신을 차려 24시간 약국을 검색했다.
걸어서 20분 거리에 약국이 있었다.
차마 70세가 넘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새벽 세 시 약국행을 부탁할 순 없었다.
끙끙거리며 눈을 질끈 감자 머리가 어지러웠다.
약국 생각에, 부모님 생각에 어느덧 70대가 됐을 때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앞으로 신상에 변동이 없다고 가정할 때 혼자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이야 감기나 장염 정도로 고생하지만 그땐 더 큰 병에 걸릴 수도 있다.
호흡이 곤란해지거나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상황이 발생하면 몸에 차고 있는 스마트 시계·반지와 같은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병원에 연락이 갈 것이다.
그 후에도 의식이 없거나 거동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 혼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는 게 가능할지, 치료를 받은 뒤 아프기 전처럼 생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 큰 문제도 있다.
치매에 걸린 독거 노인의 일상은 도무지 가늠이 가질 않는다.
초기 치매 증상을 자각했을 때 제 발로 요양병원에 들어가야 할까. 그곳에서 먹고 자며 목숨을 이어 간들, 그렇게 보내는 시간을 온전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노화와 함께 맞닥뜨릴 수 있는 온갖 질병과 고통에 대해 생각하다가 그날 오후에 본 ‘안락사 캡슐’ 기사가 떠올랐다.
지난 18일 AFP통신에 따르면 안락사 단체 ‘더 라스트 리조트’는 곧 스위스에서 조력 자살을 위해 ‘사르코’가 사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사르코는 캡슐 내부 산소를 질소로 바꿔 저산소증으로 죽음에 이르게 한다.
버튼만 누르면 30초가 채 되지 않아 공기 중 산소량이 21%에서 0.05%로 급격히 떨어지고 그 후 사망 전 약 5분 동안 무의식 상태에 머물게 된다.
심지어 무의식 상태에 들어가기 전 약간의 행복감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진통제를 들이부어도 이길 수 없는 고통에 육체와 정신이 너덜너덜해질 바엔, 치매 독거 노인이 되어 인간이 아닌 무생물과 같은 존재로 취급받을 바엔, 사르코에 몸을 뉘이는 것도 나빠 보이지 않았다.
사르코는 석관을 뜻하는 ‘사르코파구스’에서 따왔다.

극심한 고통에 이르는 병이나 치매에 걸릴 경우, 어떻게 사르코가 있는 스위스까지 갈 수 있을지 궁리하고 있을 때 최근 테크 전문지 와이어드에 실린 레이 커즈와일의 인터뷰가 생각났다.
신시사이저 키보드 브랜드로 유명한 커즈와일은 우리 시대의 발명가이자 천재이고 괴짜다.
‘특이점이 온다’(2005)는 베스트셀러로도 잘 알려졌는데, 지난달 ‘특이점이 더 가까이 왔다’라는 신간을 냈다.

커즈와일은 인간이 아직 발명되지 않은 의료 기술을 활용해 더 오래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특이점에 다다르면 기계와 합쳐지고 초지능이 되어 무한히 살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사람들이 99세까지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하지만 막상 99세가 되면 생각이 달라진다”며 120세, 아니 300세까지 사는 인생에 대해 이야기했다.
AI의 발전에 따라 신약과 치료제 개발 속도는 비약적으로 빨라질 것이고 40~50년 후 보편화될 반려 로봇이랑 함께라면 노인 혼자여도 안전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르코에 들어가려고 했던 늙고 병든 나의 육신은 어느새 AI와 한 몸이 되어 생의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사르코와 커즈와일 사이를 수없이 오간 밤을 보내자, 동이 트고 열이 식었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을 때 둘 다 잊어버린 채 앞으로 술을 줄이고 운동도 시작하자는 결심만 떠올랐다.
안락사도 영생도 선택할 수 있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지만, 일단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는 게 최선이다

초식동물과 아파트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면 얼룩말, 영양, 가젤 같은 초식동물은 군집 생활을 한다.
반면 호랑이나 사자 같은 맹수는 가족 단위거나 혼자 초원을 누빈다.
초식 동물들은 왜 집단 생활을 할까. 안전에 대한 본능 때문이다.
사자가 가젤을 공격해 무리에서 가장 느린 가젤 하나가 희생되면 무리의 생존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전쟁 같은 극한 상황이 닥치면 아이와 여성, 노약자들이 먼저 희생되는 것과 비슷하다.

‘스프링복의 비극’이라는 말이 있다.
스프링복(springbok)은 수천 마리가 무리를 이루며 시속 88km로 달릴 수 있는 아프리카 영양의 일종이다.
스프링복은 신선한 풀을 찾아 수시로 이동하는데 문제는 수천 마리가 무리 지어 사는 데서 발생한다.
선두 그룹은 신선한 풀을 먹을 수 있지만 뒤쪽은 더 이상 먹을 풀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기에는 풀이 많아 평화롭지만 풀이 부족한 건기가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때부터 이들은 자신들의 장기인 달리기로 극한의 속도 경쟁을 벌인다.

누군가 선두를 위해 달리기 시작하면 모두 광란의 질주를 시작한다.
그 질주의 끝은 절벽에 이르러야 끝난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가속도가 붙은 질주는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모두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것이다.
스프링복의 비극은 신선한 풀을 먹기 위해서지만, 본래의 목적을 잊은 의미 없는 경쟁은 공멸로 다가온다.
축구 경기장의 앞 관중이 일어나면 뒤에 관중들도 일어나 모두가 불편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며칠 전, 공원에서 앞서가던 젊은 부부의 대화를 들었다.
사려던 아파트 가격이 전 고점을 넘었다며 대출을 받아야 한다고 옥신각신 중이었다.
누군가를 뒤따르며 돈을 버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그 어려운 길을 걷겠다고 서로 설전을 벌이는 건, 보통의 대한민국 국민들에겐 초식동물처럼 대단지 아파트에 오순도순 모여 살고 싶은 꿈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기억해야 한다.
고삐 풀린 가계 대출 기사가 쏟아지는 지금이 스프링복의 교훈을 떠올려야 할 때라는 걸.

백영옥 소설가

백영옥 소설가

달동네에 에스컬레이터를 놓자

일러스트=이철원

일러스트=이철원

부자는 높은 곳을 좋아한다.
높이는 권력을 주기 때문이다.
높은 곳에서는 멀리까지 볼 수 있다.
더 넓은 공간을 시각적으로 소유할 수 있다는 뜻이다.
위에서는 나보다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관찰하기 쉽다.
반면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높은 위치의 사람을 보기 어렵다.
예를 들어 아파트에서 10층에 사는 사람은 해가 지고 나면 건너편 동의 9층, 8층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하지만 9층, 8층 사람은 10층을 볼 수 없다.
높이 차이는 정보의 비대칭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회장님 방은 꼭대기 층이고, 펜트하우스가 가장 비싼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달동네의 옥탑방도 높은 곳이어서 내려다보는 시야가 좋다.
그런데 옥탑방은 저렴하다.
그 이유는 펜트하우스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지만 옥탑방은 걸어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높은 곳까지 올라가는 것은 중력을 거스르는 행위여서 힘들다.
달동네 옥탑방은 버스 정류장이나 지하철역에서 몇백 미터를 등반해야 갈 수 있다.
장을 본 물건을 들고 올라가면 더 힘들다.
그런데 화석 에너지를 이용하는 자동차나 엘리베이터를 타면 힘들이지 않고 올라갈 수 있다.
달동네와 비슷한 언덕 위 주택이어도 성북동, 평창동, 한남동은 부자 동네다.
자동차를 타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도로와 주차장이 확보되지 않은 야산은 저소득층 주거지인 달동네가 된다.
달동네에서는 출퇴근 시간도 길어진다.
그러다 보니 일자리를 얻기 힘들어지고 소득 격차는 더 벌어지는 사회적 문제가 생긴다.
이런 주거지의 높이차가 만드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한 좋은 사례가 있다.

남미 콜롬비아에서 둘째로 큰 도시인 메데인은 마약 소굴로 유명한 도시다.
이곳은 파블로 에스코바르라는 마약왕의 근거지였다.
이 도시의 높은 고지대에는 저소득층이 모여 사는 달동네가 밀집해 있었고 치안이 나빴다.
그곳에서는 도심으로 출퇴근하는 데 4시간이 넘게 걸려서 도심 내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이런 사회적 문제를 해결한 것은 곤돌라였다.
우선 달동네 꼭대기에 해외 건축상을 받을 정도로 멋있는 마을 도서관 하나를 건축했다.
그리고 그 도서관과 저지대에 위치한 대중교통 역 사이를 연결하는 곤돌라를 설치했다.
곤돌라는 하나하나의 크기는 작지만 연속적으로 순환하기 때문에 사람을 실어 나르는 데 아주 효과적이다.
곤돌라의 승객 운반 효율성은 버스보다 높고 지하철보다 조금 낮다.
곤돌라 덕분에 달동네 주민은 30분도 안 되어서 저지대에 내려와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출퇴근 시간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
도심 내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게 되었고, 달동네의 치안과 환경이 점점 좋아졌다.

달동네를 개조한 또 다른 사례는 홍콩의 에스컬레이터다.
홍콩은 대부분의 일자리가 해안가 저지대에 있고 주거는 높은 경사 지대에 있다.
부자들은 차를 이용하지만 대부분의 시민은 걸어야 했다.
출퇴근 시간을 줄이기 위해 홍콩은 저지대 도심과 높은 곳의 주거지를 연결하는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했다.
한 개의 라인으로 구성된 이 에스컬레이터는 출근 시간에는 위에서 아래로, 퇴근 시간에는 아래에서 위로 운행한다.
이를 통해서 사람들은 짧은 시간에 출퇴근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70%가 산지로 되어있다.
도시라고 하더라도 산과 언덕이 많다.
서울과 부산이 대표적이다.
이런 도시에는 고지대에 저소득층 주거가 형성된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걷기에 좋은 도시를 만들려면 대중교통으로의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대중교통 이용률이 높아질수록 자동차의 이용이 줄어들고 도시는 더욱 쾌적해진다.
걷는 사람은 길을 걷다가 가게에 들어가 소비를 할 가능성도 커져서 소상공인의 경제도 활성화된다.
자동차를 많이 타는 도시에서는 자동차회사, 석유회사, 온라인 쇼핑의 매출만 늘어난다.
우리의 대도시에는 이미 지하철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다.
달동네에 에스컬레이터나 곤돌라 같은 높이차를 극복할 수 있는 기반 시설이 들어가면 기존의 대중교통을 더욱 잘 이용할 수 있다.
적절한 에스컬레이터는 높이가 만드는 사회계층의 분리를 평준화시키는 장치다.
한의원에서 잘 놓은 몇 개의 침은 병을 치유한다.
도시 내 적절한 곳에 놓인 에스컬레이터는 도시의 사회적 경제적 문제를 치유할 수 있다.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운동권 잔당 정청래는 왜 빌런이 됐나

권력 향배를 읽는 그의 안목은 탁월했다…
임종석·송갑석 등 운동권 본류들이 공천 학살당해도
그가 살아남은 비결이었다

이재명민주당 대표 후보와 정청래 법사위원장이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웃으며 대화하고 있다.<BR> /뉴시스

이재명민주당 대표 후보와 정청래 법사위원장이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웃으며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개원 즉시 전면전이 벌어진 22대 국회에서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이 민주당 4선 정청래 의원이다.
이재명 전 대표의 호위 무사를 자처하는 그는 법사위원장에 기용되자마자 법사위를 화약 연기 자욱한 정권 공격의 전투 현장으로 만들었다.
국회 상임위를 탄핵 분위기 띄우고 검찰 겁박하는 무대로 활용하면서 이 전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방어하는 방탄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정 위원장이 논란을 부른 것은 그의 거침없는 폭주 때문이다.
합의의 관행, 품격과 절제 따위는 개나 주라는 식의 일방적 회의 운영으로 법사위를 매번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다.
증인을 조롱하고 비아냥거리고 인격을 후벼 파는가 하면 동료 의원에게까지 독설을 퍼부으며 22대 국회 최고의 뉴스 메이커로 떠올랐다.

법사위원장으로서 그의 행태는 질서 파괴자에 가깝다.
국회가 시행착오를 겪으며 쌓아온 관행의 규범을 무너트리고 내 맘대로 한다는 식의 독주를 거듭하고 있다.
여야 간사 선임조차 건너뛴 채 방송3법을 통과시키고, 위법 논란을 뭉개며 대통령 탄핵용 청문회를 강행했다.
국민 청원을 이유로 청문회를 여는 것부터 의정 사상 처음이다.
대중 압력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청원인 요건을 채워도 자제하던 그간의 관행을 하루아침에 뒤집었다.

그의 언동은 저질 시비를 부를 만큼 고압적이고 폭력적이다.
증인을 윽박지르고 호통치고 인격적 모욕을 서슴지 않고 있다.
증인들이 반박하면 “위원장이 그렇게 생각한다는데 토 달지 말고”라거나 “어디서 그런 버릇을 배웠냐”는 식의 막말을 퍼부었다.
태도가 불성실하다며 회의실 밖 복도로 ‘10분간 퇴장’ 명령까지 내렸다.
교사가 초등학생 벌주는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아무리 국회 갑질이 심하다지만 구악도 이런 구악이 없었다.

언어 폭력은 동료 의원에게까지 향했다.
여당 간사가 의사 일정 문제를 제기하자 “성함이 어떻게 되냐”며 시비 걸고, 기가 막혀 쳐다보는 의원에겐 “왜 째려보냐”며 발언권 정지로 협박했다.
여당 의원이 “존경하고픈 정청래 위원장”이라고 부르자 국회법을 들먹이며 “주의·경고나 퇴장도 시킬 수 있다”고 엄포 놓았다.
어쩌다 완장 찬 소아(小兒)가 칼을 휘두르고 싶어 안달 난 모습 같았다.
유치하고 치졸했다.

상식을 넘는 그의 폭주는 운동권 경력과 무관치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그가 몸담았던 1980년대 학생 운동권은 권위주의적이고 폭압적인 분위기가 지배했다.
상대를 악으로 모는 이분론, 나만 옳다는 정의의 독점, 독단적이고 과격한 폭력성 등으로 특징되는 ‘운동권 DNA’가 정치에 입문한 86 세대에게 고스란히 전수됐다.

그것은 정청래뿐 아니라 대부분의 운동권 정치인들이 마찬가지였다.
그중에서도 정청래가 독특한 것은 세월이 흘러도 변함 없었다는 점이다.
다른 86 정치인들이 연륜을 더해가며 청년기의 치기(稚氣)를 덜어냈지만 정청래는 4선이 되어서도 80년대식 거친 스타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건국대 84학번 정청래의 ‘훈장’은 1989년 미 대사관저 점거 사건이었다.
다른 대학생 5명과 함께 관저로 진입해 방화를 시도했다가 50분 만에 검거돼 징역 4년형을 받았다.
상급 조직인 서총련 투쟁국 지시에 따라 행동대 역할을 한 것이었다.
그는 운동권 주류는 아니었다.
전대협·한총련 간부 출신이 즐비한 정치권에서도 ‘건국대 조국통일위원장’ 명함은 높은 서열이 아니었다.
하지만 운동권 기질은 어느 86 정치인보다 강렬했다.

정청래는 피아를 갈라쳐 때리는 진영 싸움의 선수였다.
좌우, 여야로 맞선 이슈에선 늘 선봉에 서서 화력을 과시했다.
정청래 하면 거친 독설과 막말, 고함과 의사(議事) 방해부터 떠오르는 싸움닭 이미지였다.
그렇다고 신념과 가치를 중시하는 이념가는 아니었다.
자기 지역구에 서민용 공공 임대주택을 지으려는 것을 막아섰다는 일화가 그의 스타일을 상징해주었다.
가치보다 눈앞의 당선이 우선이란 뜻이었다.

권력 향배를 읽어내는 그의 안목은 탁월했다.
‘노사모’에서 출발한 정치 이력은 친(親)문재인을 거쳐 이재명에 줄 서면서 절정을 이루었다.
이재명 자서전을 “흐느끼며 읽었다” 하고 이 전 대표를 “손흥민” “민주당의 깃발”에 비유하며 친위대 대열에 끼었다.
이 전 대표가 피습 당하자 “수술은 잘하는 병원에서 해야 될 것”이라며 서울대 이송을 옹호한 것도 그였다.
임종석·송갑석 같은 전대협 출신 주류들이 줄줄이 공천 학살 당하는 와중에서도 ‘운동권 잔당(殘黨)’인 그가 살아남은 비결이었다.

그가 지금 좌충우돌하는 것도 계산된 정치 처세술일 것이다.
그렇게 해야 이재명 전 대표의 신임을 얻고 정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의 폭주에 ‘개딸’들은 환호하지만 많은 국민은 의회 민주주의를 조롱하는 악당 이미지를 떠올리고 있다.
지금껏 보지 못한 최강의 ‘국회 빌런(영화 등의 악역)’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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