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게 친절하기… 왜 그렇게 어려울까요?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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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목록에서 'OO님' 자기 자신은 빠져 있네요.
알아차리실 수 있나요?
심리치료를 시작할 때, 자기에게 중요한 사람이 누구인지 적어 보기를 환자에게 권하곤 합니다.
삶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나 대상을 떠올리고 발견하는 작업이 곧 치료가 나아갈 방향, 그리고 자신의 삶을 꾸려가고자 하는 방향을 알려주기 때문이죠.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의 대답은 저마다 다양하지만, 꽤 많은 사람이 그 목록에 자기 자신을 포함시키지
않습니다.
그 사실을 짚고 나면 진료실에는 짧은 정적이 감돕니다.
회한 섞인 표정이 스쳐 가기도 하고, 눈물을 글썽이시기도 하고, 그렇게 적는 사람이 실제로 있느냐고 반문하기도합니다.
네, 가끔 목록에 자기 자신을 곧잘 올리는 분들도 있지만, 이들도 이어지는 질문에서는 멈칫하곤 합니다.
매일 자기 자신에게 다가가는 삶을 살고 계신가요?
고개를 가로젓는 모습에 저는 이렇게 답하곤 하지요.
다행이네요, 저만 그런 게 아니군요 서로에게서 가볍게 새어 나온 웃음이 사라지고 나면 의문 한 가지가
남습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자신에게 친절해지기 어려운 걸까?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첫째로는 자신에게 친절한 것이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뿌리 깊은 통념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친절해지면 이기적인 사람이 될 뿐 아니라, 나태하게 살다가 무엇도 이뤄내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우리 대부분에게 단단히 심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연구 결과로 이 통념은 뒤집힌 지 오랩니다.
자신에게 친절한 사람이 타인에게도 친절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기꺼이 자신의 단점을 인정하고 더 많이 도전합니다.
게다가
실제로
더 많은 성취를 해내기도 하지요.
이 연구 결과는 자신을 채찍질하며 치열하게 살다가 번아웃이 온 환자들에게 '입에는 쓰지만 마음엔 좋은 약'으로 쓰일 때가 있습니다.
이제는 그 채찍을 내려놓아도 괜찮다는 의미이니까요.
두 번째 이유는 자신을 친절하게 대하고 싶어도 그 방법을 제대로 배울 기회가 드물었기 때문입니다.
건강하고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자신을 사랑할 방법을 알려줄 사람도, 배울 곳도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지요.
반대로 우리 자신의 부족한 면을 부각시키고, 무엇이 '문제'인지 지적하고 깎아내리는
순간들은
넘쳐나기에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차곡차곡 쌓여만 갑니다.
게다가 우리 뇌는 생존을 위해 부정적인 것들을 훨씬 더 잘 담아두기에, 누군가 우리의 좋은 점을 이야기할 때도 내면에서는 또 다른 단점거리들을 늘어놓으며 반박하지요.
결국 나를 초 치는 건 나 자신이라고 털어놓던 한 청소년의 말이 문득 떠오르네요.
그렇다면 우리가 힘들고 괴로울 때는 자신에게 조금이나마 친절해질까요?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내면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더 거세어입니다.

순간 괴롭고
힘든 것은 분명 나 자신인데도, 우리는 나를 힘들게 한 그 누구의 탓보다 '내 탓'을 하느라 더 괴로워집니다.
힘들어 하는 이유가 자신이 무능하거나 나약한 탓이라며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 수많은 정신건강 문제의 표면 아래에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와 믿음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놀랄 일도 아닙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러한 자기비난의 악순환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우리 자신에게 친절해질 수 있을까요?
현대 정신의학에서는 자기비난의 해독제로 '자기자비(연민)'를 제안합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자기자비란
힘겨운 그 순간 우리 자신이 괴롭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모양새는 각기 다를지라도 그 괴로움이 인간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겪어내고 있는 것임을 인식하며, 친절함을 담아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스스로 주고자 하는 실천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대척점에 있는 상태, 즉 자신의 괴로움을 부정하고 억누르거나 자신의 전부인 양 여기는 태도, 다른 이들과 연결되지 않고 고립된 생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주는 대신 자신을 비난하거나 건강하지 못한 방식으로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모습들을 떠올려 보면 자기자비가 무엇인지 더

와닿을 겁니다.
필요한 순간에 부드럽고 따뜻하게 자신을 위로하고 돌보는 것도, 동기를 부여하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두렵지만 용기를 내는 것도 모두 자기자비라 할 수 있지요.
열심히 살아가다 넘어졌을 때 아픈 무릎을 어루만지며 잠시 쉬는 여유도, 눈물 콧물 쓱 닦아내고 훌쩍이면서도 다시 걸어가게 하는 배짱도 자기자비로부터 비롯합니다.
나의 '쓸모'를 애써 보여주지 않아도 언제든 내 곁에 있어줄 존재를 우리는 늘 바라왔기에, 치료 작업에서 자기자비를 만나는 순간은 참 특별합니다.
자기비난이라는 엄청나게 크고
시끄러운
목소리 때문에 듣지 못했던 내면의 진실하고 자비로운 목소리에 처음 귀 기울일 때, 낯설어 하면서도 반짝이던 눈빛들과 깊은 안도감에 흘리던 눈물들을 기억합니다.
때로는 자기비난의 목소리가 다시 귀를 따갑게 하기도 하지만, 자기자비를 만난 이후에는 적어도 그 날이 선 목소리에 휘둘리는 일이 줄어든다고 입을 모아 전해주시기도 했지요.
다행스럽게도 국내에도 자기자비를 다룬 서적과 프로그램들이 하나 둘 소개되고 있어, 앞으로는 더 많은 이들이 자기자비라는 내면의 좋은 친구를 만나볼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그리고
만약
상담이나
심리치료를 받고 있거나 염두에 두고 계신다면, 특히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비난하며 애써 끌고가는 하루에 지쳐 있다면 치료자와 함께 자기자비를 만나는 시간을 계획해 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나이 지긋한 환자들께서 자기자비를 어릴 적에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아쉬워하시는 모습을 종종 봅니다.
하지만 관점을 살짝 바꾸어 본다면, 우리는 남은 인생 중 제일 어린 순간에 자기자비를 만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느 때 속상하고 힘든 순간이 찾아오거든 내가 힘들다는 것을 누구보다 먼저 이해해 주고, 지금 이
순간 나와
함께 어디선가 고군분투하고 있을 모든 존재와 잠시 마음으로 연결되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런 다음 진정으로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천천히 발견해 보세요.
온전히 나를 위한 시원한 물 한 모금, 긴 심호흡 한 번에서부터 내면의 친절하고 자비로운 목소리를 만날 가능성은 하나 둘 열릴 것입니다.
[본 자살 예방 캠페인은 보건복지부 및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대한정신건강재단·헬스조선이 함께합니다.]​

“역시 호구였습니다” [편집장 레터]

아니나 다를까. 역시 호구였습니다.
‘귀차니즘의 대명사답게 하나하나 받을 수 있는 혜택을 깨알같이 찾아내서 누리지 못한 스스로를 탓해야지 누구를 탓하겠냐고요?
그래도 좀 많이 억울하기는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부자 회사 몇 개 꼽으라면 몇 순위 안에 들 것 같은 SK텔레콤에 저 같은 소시민이 매년
17만원
가까운 돈을 퍼주고 있었으니 말이죠. 그걸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는 SK텔레콤은 물론 일언반구도 없었죠. “너 같은 호구가 있어 내가 땅 짚고 돈 번다”면서 흥얼거리지 않았을까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과기부 대상 국정감사에서 선택약정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무약정자 현황이 알려지면서 시끌시끌합니다.
무려 1229만명. 혼자만 손해 본 게 아니라 1229만명이나 되니 맘을 달래라고요?
달래기에는 금액이 너무 큽니다.
노종면 민주당 의원은 “의원실이 파악한
결과로는
올해
8월 말 기준 1230만명이 무약정 상태다.
이들이 선택약정에 가입했다면 약 1조4000억원 정도 통신비 할인 효과를 봤을 것”이라며 “그 돈이 모두 통신사에 갔다”고 말했습니다.
선택약정이 뭐냐고요?
선택약정은 휴대폰을 구매할 때 기기값을 할인해주는 공시지원금을 받지 않았거나, 공시지원금을 받았더라도 가입 후 약정 기간이 지나면 요금의 25%를 할인받을 수 있는 제도입니다.
보통 24개월 약정을 하니 24개월이 지나면 누구든 선택약정제도 대상이 된다는 얘기죠. 이후 12개월, 24개월 선택약정을 하면 됩니다.
바로 휴대폰을
바꿀 거면 모르지만 보통 휴대폰을 3년은 쓰니 12개월 선택약정을 하면 되겠죠. 그런데 이게 말이 쉽지, 무약정자가 그리 많다는 것은 가입한 지 24개월이 넘었어도 내가 선택약정 가입이 가능해졌는지 아닌지를 꼼꼼하게 따지는 이가 많지 않다는 의미일 겁니다.
그럼 선택약정 가입 대상이 됐을 때 통신사가 가입자에게 알려주면 되지 않냐고요?
딩동댕!!! 그런데 말입니다~ 그 쉬워 보이는 일을 우리나라 통신사들은 왜 절대 하지 않는 걸까요?
노종면 의원이 “1년 동안 무약정 상태를 유지한 것은 이용자 의도가 없다고 판단되기에
1년이
지나면
(요금 할인 혜택을 받지 못한 금액을) 환급해주는 방안도 고민해달라”고 했는데 두 손 모아 짝짝짝~ 박수 쳐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통신 요금 따박따박 받아 챙겨 매년 엄청난 이익을 올리고 있는 통신 3사가 이처럼 꼼수 요금제로 질타를 받은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니죠(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는 올해도 지난해에 이어 합산 영업이익이 4조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굳이 옛날
일을 들먹일 필요도 없습니다.
요즘도 출고가 221만원 삼성 ‘갤럭시Z6폴드를 구매해 SK텔레콤에 가입하면서 공시지원금을 최고로 받으려면 12만5000원짜리 요금제를 선택해야 하는 등, 통신사들의 ‘소비자 등골 빼먹기 신공은 나날이 발전 중입니다.
그나저나 이제라도 알게 됐으니 하루빨리 선택약정에 가입하라고요?
휴대폰을 무려 4년 넘게 써서 이제 막 신형 휴대폰을 구입하려 하던 차인데, 그 나물에 그 밥이지만 통신사 바꾸는
걸로
호구된 울화를 달래봐야겠습니다(p.14~15 참조).[김소연 편집장 kim.soyeon@mk.co.kr][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0호 (2024.10.16~2024.10.22일자) 기사입니다]

흑백요리사는 리더십 경연이었다

최갑천 생활경제부장

최갑천 생활경제부장넷플릭스
'흑백요리사'가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달 17일 공개 이후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TV 비영어 부문'에서 1위를 질주 중이다.
'밤 티라미수' 등 경연에 등장했던 요리들은 식품·편의점 업계의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
흑수저 신분으로 우승한 '나폴리 맛피아(권성준 셰프)'를 비롯한 인기 요리사들은 팬덤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권 셰프가 운영하는 이탈리안 파스타 식당은 지난 10일 예약시간에 맞춰 11만명 넘는 이용자가 몰렸다.
20여분간 예약
앱이 마비
정도였다.
요리와 경연이라는 식상한 소재에도 대흥행을 거둔 비결은 뭘까. 우선 독특한 대결구도를 들 수 있다.
'흑수저'와 '백수저'라는 계급구조부터 신선했다.
상대적으로 무명인 흑수저 요리사들이 유명 백수저 요리사를 이기면 시청자도 쾌감을 느꼈다.
그동안 드라마에서나 볼 듯한 클리셰를 과감히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실험한 것이다.
권위나 서열에 도전하려는 프로그램의 의도는 적중했다.
공정성과 신뢰성의 확보도 빛을 발했다.
심사위원인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와 국내 유일의 미슐랭 3스타 오너
셰프인 안성재씨는
본선부터 눈을 가린 채 '블라인드' 심사를 진행했다.
여경래, 최현석 같은 기라성의 셰프들에 대한 선입견을 철저히 배제했다.
그러다 보니 결과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긴장의 끈이 마지막까지 유지됐다.
실력 중심의 경연 이미지에 집중한 것도 통했다.
예선부터 최종 결선까지 오로지 맛과 실력만으로 평가받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초반엔 백수저들의 우위 구도로 진행되는 듯싶더니 어느새 흑수저의 쿠데타가 여기저기서 속출했다.
인물 간의 갈등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를 선사했다.
미슐랭 3스타인 안성재
심사위원과
대중적 인기가 높은 최현석 셰프는 시종일관 보이지 않는 신경전으로 시청자를 긴장시켰다.
요식업의 대가 백종원과 파인 다이닝을 대표하는 안성재의 상반된 캐릭터도 심사마다 몰입도를 높였다.
개인적으로 흑백요리사의 최대 서사는 리더십 관전이었다.
흑과 백의 요리사가 뒤엉킨 팀전은 리더십 경연장이었다.
최현석 셰프는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발휘했다.
저를 믿으세요라는 특유의 말을 내뱉으며 명확한 비전과 방향을 제시했다.
경연요리 선정부터 업무 분담, 요리 완성까지 흔들림 없이 지휘했다.
물론
그의 대중적 인기도 한몫했겠지만 솔선수범과 빠른 의사결정은 팀원들의 신뢰를 단숨에 확보했다.
흑수저팀을 이끈 '트리플 스타' 강승원 셰프는 MZ 리더의 표본이었다.
30대 초반임에도 대선배들과 까다로운 셰프들의 조화를 이끌어냈다.
개성이 강한 팀원들의 역량부터 파악하고 적절한 역할을 나눠줬다.
개인전에서 보였던 우승의 욕심은 감추고 철저하게 팀원 중심의 '조율자' 역할을 자처했다.
또 중간점검과 빠른 피드백은 그의 전매특허였다.
명확한
목표 설정과
방향성 제시, 효과적 타임라인 관리, 동기부여와 인정. 효과적이고 체계적인 리더십의 답안지 같았다.
반면 조은주 셰프는 상대적으로 리더십의 한계를 보였다.
팀원들의 의견 경청에 치중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경청은 좋았지만, 명확한 방향 제시가 부족해 팀 전체의 의사결정은 매번 지연됐다.
이 때문에 팀 내 혼란이 발생하고 시간과 리소스는 낭비됐다.
리더십의 결과는 그대로 승리와 패배로 이어졌다.
세계적 경영 교육자이자 작가인 마셜 골드스미스는 미래의 리더는 동료들보다 더 유식한 전문가가 아니라
동료들의
성과를 이끌어내는 촉진자라고 정의했다.
또 조직 구성원 개개인의 독특한 공헌을 존중하고, 그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성공하는 리더의 최우선 조건이라고 규정했다.
그의 말을 빗대자면 트리플 스타, 강승원 셰프가 조건에 딱 들어맞는다.
지켜보는 내내 나는 어떤 리더십의 소유자인지를 성찰하게도 만들었다.
많이 바꿨다고 생각하지만 '꼰대'이자 '답정너'인 리더는 아닌지 모르겠다.
어쨌든, 모처럼의 웰메이드 작품 덕분에 눈과 귀의 호강뿐 아니라 자성의 기회까지 갖게 됐다.
cgapc@fnnews.com 최갑천 생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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