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 대신 집에서 케어받을 수 있도록... 법은 통과됐지만

[소셜 코리아] 지역돌봄 통합지원법 기대와 우려... 시행령·규칙 제대로 만들어야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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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말>문재인 정부에서 국정과제로 추진한 '지역사회 통합돌봄' 관련 법률이 지난 2월 29일 국회를 통과하면서 결실을 맺게 되었다.
지역사회 통합돌봄은 노인, 장애인, 정신질환인 등이 시설에 입소하지 않고 최대한 본인이 살던 집과 지역사회에서 돌봄을 제공받으면서 생활할 수 있는 실질적인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이번에 통과한 법률은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지역돌봄 통합지원법)로서, 앞으로 전국의 모든 기초지자체는 향후 2년 이내에 돌봄이 필요한 대상자의 발굴, 조사, 종합판정, 개인별 지원계획 수립 등 통합지원의 컨트롤타워로서 실질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통합돌봄 관련 법을 제도화하는 것은 분명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돌봄체계는 전반적으로 서비스 품질이 낮고, 요양보호사와 간호사 등 서비스 제공 인력이 부족하다.
또, 지역의 여러 기관들은 서로 협조가 이뤄지지 않는 등 심각한 과제가 산적해 있다.
지난해 하반기에 국회에서 논의가 이뤄질 때만 해도 이렇게 조속히 법안이 통과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지역사회 통합돌봄은 앞으로 우리 돌봄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데 여야 의원들 간에 큰 이견이 없었다.
야당인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로서 적극 지지하는 입장이었고, 여당인 국민의힘은 이번 법률안을 통해서 통합돌봄을 잘 발전시키면 윤석열 정부의 실적이 될 수 있다는 정부의 설명을 지지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전문가와 이용자, 제공기관, 인력 등 현장의 의견 수렴이 매우 미흡하게 이뤄졌다는 것이다.
공청회가 국회에서 1번 개최됐을 뿐이다.
지역사회 통합돌봄과 관련한 보건의료와 복지, 주거 등 현장의 다양한 주체와 전문가들의 참여와 논의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기초지자체에 전반적인 지역돌봄 책임 부여 

▲  지역돌봄 통합지원법 제정으로 지자체가 돌봄을 체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 셔터스톡

 이 법의 목적은 "노쇠, 장애, 사고 등으로 인해 일상생활 수행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살던 곳에서 계속해서 건강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의료와 요양 등 돌봄지원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국민의 건강하고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하고 증진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5년마다 통합지원 기본계획을 수립·시행해야 한다.
기초자치단체장인 시군구의 장은 매년 기본계획에 따라서 지역의 통합지원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아래 그림처럼 기초지자체인 시군구가 돌봄이 필요한 대상자를 발굴하거나 통합지원 신청을 하면, 지자체나 관련 기관에서 대상자에 대한 욕구 조사 및 판정을 하고 개인별 지원계획을 수립한다. 

▲  의료 요양 돌봄의 통합지원 체계도

ⓒ 장민선

이번 법은 기초지자체에 지역돌봄의 전반적인 과정에 책임을 부여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물론 지금도 읍면동 주민센터에서 주민을 지원하기 위한 '사례관리' 기능을 수행하지만 주로 저소득층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중심이다.
즉,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등의 저소득층을 위한 소득 보전이나 물품 제공 등의 빈곤문제 대응이 주요 사항이었다.
고령과 장애 등으로 인해 일상생활이 어려워서 돌봄이 필요한 주민을 위한 지원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제 지자체가 일상생활을 스스로 돌보고 관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지역주민에 대한 돌봄을 체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사실 문재인 정부에서 지역사회 통합돌봄사업에 대한 선도사업을 실시했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관련 예산이 80% 삭감돼 크게 축소되면서 좌초 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인구고령화로 인해 돌봄의 필요성이 국회에서 적극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기사회생했다.
그러나 앞으로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통해서 세부적인 사항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중요한 사회적 논의와 제도화의 과정이 남아있다.
특히 윤석열 정부는 사회복지에 대해 '약자 복지'가 우선이라는 식의 협소한 인식에, 복지예산 확대에 인색한 보수정부이기 때문에 과연 제대로 된 방안이 마련될지 지켜볼 일이다.
앞으로 지역돌봄 통합지원법이 돌봄의 기본법이자 핵심 법률로서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 다음 사항에 대한 사회적인 논의와 개선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의료 요양 등 지역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의 명칭은 국민들이 이해하기 어렵고 길어서 개정할 필요가 있다.
복지 분야의 법률은 국민건강보험법,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사회보장기본법처럼 법의 대상이 분명하고 명칭이 간결하다.
그러나, 이번 법률의 명칭은 길고 어색하다.
'지역돌봄'을 '통합지원한다'는 말은 주어와 서술이 상통하지 않는다.
이같은 명칭은 현 윤석열 정부에서 실시한 '노인 의료·돌봄 통합지원' 시범사업의 명칭을 의도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영국이 돌봄법 명칭을 'Care Act 2014'로 정한 것처럼, 우리나라도 향후에 '지역돌봄법'과 같이 간결하면서도 분명한 것으로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정부는 이 법이 '기본법'으로서 각종 돌봄과 관련된 다른 법률보다 우선적으로 적용된다고 밝혔지만 그 범위가 매우 모호하다.
기본법으로서 구체적으로 어떤 법과 사업보다 우선 적용할지, 범위를 명시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통합지원 대상자 넓혀야  장차 사회보장기본법과 보건의료기본법과 같은 기존의 '기본법'과의 관계와 함께 노인, 장애인, 정신질환, 노숙인, 아동 등 대상별로 적용되는 각종 법률과의 관계와 범위도 명시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기존 사업과 변화가 생길 경우에는 관련 법률을 개정하는 등의 작업도 수반되어야 한다.
가령, 노인을 위한 지역 돌봄서비스로 새롭게 작동되려면 기존의 노인장기요양보험법과 노인맞춤돌봄서비스와 재가노인지원서비스 등의 관계도 새롭게 설정해야 한다.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 주요 내용

▲(대상) 기존 선도사업('19~'22)에서 불명확했던 지원 대상을 요양병원·시설 입원·입소 경계선상에 있는 노인, 장애인 등으로 구체화*노인:  장기요양 재가급여자, 노인맞춤돌봄 중점돌봄군, 급성기(요양) 병원 퇴원환자 등
▲(제공방법)
 의료·요양 욕구에 대한 통합적 조사를 통해 예방적 건강관리, 재택의료, 재가 요양·돌봄 등 적정 서비스를 연계해 제공
▲(기반)
 서비스 신청·조사, 대상자 정보관리 및 모니터링 등 전달체계를 시·군·구 중심으로 개편하여 서비스 간 실질적 연계 강화자료: 보건복지부(2024)

둘째, 지역돌봄 통합지원법은 대상자에 전 국민을 포괄하지 못한다.
지역돌봄은 노인, 장애인, 정신질환, 노숙인, 아동뿐만 아니라 청년, 중장년 등을 아우르는 돌봄서비스로 작동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법률은 주로 노인과 장애인을 대상으로 삼는다.
 이 법 제2조 2항에는 "통합지원 대상자란 노쇠, 장애, 질병, 사고 등으로 일상생활 유지에 어려움이 있어 복합지원을 필요로 하는 노인, 장애인 등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제10조를 보면 주로 노인장기요양보험과 장애인활동지원에 관한 법률을 명시하고 있고, 실제로 보건복지부가 최근에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지원 대상을 "요양병원·시설 입원·입소 경계선상에 있는 노인, 장애인 등으로 구체화"했다고 밝혔다.
노인인구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장애인의 지역 거주가 어렵기 때문에 시급한 측면이 일부 있다.
그러나 최근 급증하는 정신질환자나 노숙인, 아동 등은 명시적인 대상으로 제시하지 않아 돌봄의 사각지대에 놓일 가능성이 있다.
더욱이 최근에 지역돌봄의 새로운 대상자로 등장한 청년과 중장년 고립가구 등도 포함시켜야 하는데 대상자로 논의되지 않는 것 같다.
보건복지부 각 부서 간의 높은 장벽 때문이다.
현재 한국 사회를 살펴보자. 돌봄이 과연 노인과 장애인에게만 필요한가? 저성장 구조가 고착화하면서 청년과 중장년의 구조적인 실업문제가 심각하다.
이는 장기간의 빈곤, 이혼과 같은 가족해체, 사회적 관계망 축소 등으로 인한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진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외로움'은 '사회적 질병'이라며 사회적 연결이 부족한 사람들은 조기 사망의 위험이 훨씬 더 높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한국 사회는 아동, 청년, 중장년, 노인 등 전 연령대가 우울증을 비롯한 각종 정신질환으로 고통을 겪거나 신체적 건강이 나빠진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1인가구의 증가와 가족 및 지역과의 교류 감소 등으로 인해 외롭거나 고립된 사람이 매우 많다.
국민통합위원회는 전국적으로 고립인구가 무려 28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사회적 고립자는 일반인보다 우울증세나 자살 충동이 약 4배에 달하는 등 정신건강 약화 문제로 연결돼 사회적 비용도 매우 큰 상황"이라며 "특히 코로나19 이후 고립 은둔 청년 등 사회적 고립문제가 우리 사회의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청년과 중장년 등은 지금까지 경제활동을 바탕으로 셀프케어를 비교적 잘하는 집단으로 상정했지만 실제는 정반대다.
그러나 이들을 위한 사회적 돌봄 체계는 사실상 부재하다.
이번 법률에서 청년과 중장년의 고립자와 정신질환인 등을 적극 포함시켜야 하는 이유다.
셋째, 지역에서 돌봄이 필요한 사람을 위해 보건의료와 복지, 주거 등의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기관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서비스들을 어떻게 확대 제공할 것인지에 대한 방안이 법률에는 제시되어 있지 않다.
돌봄 인력 양성 방안 없어 

▲  '요양보호사의 날'을 맞아 1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동상 앞에서 열린 '전국요양보호사협회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장기요양보험법 개정과 최저임금 인상을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역돌봄 통합지원법 제2조 1항에 따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보건의료, 건강관리, 장기요양, 일상생활돌봄, 주거, 그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분야의 서비스를 직접 또는 연계하여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통합지원'이다.
돌봄이 필요한 대상자들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가 다양하기 때문에 각종 서비스를 지역에서 구비해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보건의료 분야만 보더라도 지역에 기반한 각종 체계는 이제 시작단계다.
지역의료, 지역간호, 지역재활, 지역영양 등 기본적인 체계도 걸음마 단계다.
대부분의 병원과 방문간호 기관 등은 영리적인 동기로 움직이기 때문에 이동거리가 먼 지방이나 농어촌 지역에는 제공기관 자체가 부족하다.
즉, 수익성이 창출되지 않는 곳에는 제공기관이 부족해서 주민들에게 기본적인 보건의료 욕구도 충족시키지 못한다.
여기에는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역에 기반한 보건의료체계를 적극적으로 양성하지 못한 원인이 크다.
가령 재활서비스(rehabilitation service)는 대상자의 신체적·정신적 기능을 다시 활성화시키는 데 효과적인데도 그간 정책적인 노력이 매우 미흡했다.
서구 복지선진국에서는 재활서비스를 대상자의 기능의 중증화를 예방하는 핵심서비스로 적극 활용하고 있어 대조적이다.
우리나라는 수도권에도 지역 기반 재활기관이 미흡하다.
따라서 정부는 그저 시장에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재정 지원과 정책 실행을 통해서 지역에 기반한 신뢰할 수 있는 제공기관을 활성화 해야 한다.
사회서비스원을 이념적인 프레임으로 무참히 해산시키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같은 과오를 범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사회서비스원과 같은 공공인프라를 확대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회적경제와 법인 등을 양성해서 책임성을 가지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공급주체를 적극 키워야 한다.
넷째, 지역돌봄 통합지원법은 돌봄 인력에 대한 방안을 전혀 제시하지 않는다.
돌봄 서비스는 결국 돌봄 인력의 안정적인 수급과 품질 좋은 서비스 제공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 돌봄 제공 인력에 대한 정교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이 법은 제24조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통합지원에 필요한 전문인력의 양성·확보 및 자질의 향상에 필요한 시책을 강구하여야 한다"는 식으로 원론적인 언급에 그치고 있다.
돌봄 서비스의 품질은 인력의 능력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돌봄에 대한 인력 정책은 선진국에 비해 매우 뒤처져 있다.
최근 진통을 겪는 의사 증원도 사실 더 이상 지연시킬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서 겨우 실시한 것이다.
돌봄의 핵심 인력인 간호사도 매우 부족하고, 요양보호사의 공급도 어려워서 지방으로 갈수록 인력 부족이 극심하다.
돌봄이 필요한데도 적절한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돌봄 공백'(care deficit) 문제가 심각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간호사,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등을 저비용의 돌봄 인력으로 규정하고 예산만을 우려해서 제대로 된 급여와 처우를 제공하지 않는다.
이는 고스란히 인력 부족으로 이어져 돌봄 대상자를 사실상 방임상태에 처하게 만들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문기관 내세워서 지자체 역할 훼손시킬 우려 

▲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4월 26일 오후 정부세종컨벤션센터 대연회장에서 개최한 ‘2024년 의료돌봄 통합지원 정책포럼’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보건복지부

 마지막으로, 이번 법의 가장 독소조항 중의 하나는 '전문기관'을 내세워서 지자체의 역할과 기능을 크게 훼손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지역돌봄 통합지원법 제25조와 29조에 따르면, 보건복지부 장관과 지방자치단체장은 통합지원 대상자의 특성과 유형 분석을 비롯해서, 시군구의 역할인 대상자 발굴, 조사, 종합판정, 개인별 지원계획의 수립 등 사실상의 전반적인 역할을 전문기관을 지정해서 위임할 수 있다.
가령 A구청은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국민연금공단 지사와 같은 '전문기관'에 지역의 노인이나 장애인의 발굴, 욕구사정, 서비스 제공계획 수립 등의 업무를 위임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노인장기요양보험과 같은 제도는 통일된 욕구사정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맡아서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처럼 기초지자체가 수행해야 할 핵심 역할을 직접 수행하지 않고 공단에 포괄적으로 이양할 경우 지역 돌봄에 대한 책임성과 전문성은 담보하기 어렵다.
오히려 지역 돌봄 이슈를 사실상 방기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공공에서 직접적인 사회서비스의 제공과 관리의 역할을 수행하지 않고 민간에 위탁해서 그저 재정을 제공하고 규제자로서의 역할만을 수행하는 방식에 오랫동안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더욱 우려스럽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노인장기요양보험에 관한 대부분의 역할을 수행하지만 노인 입장에서 필요한 자원의 연계와 제공은 손을 놓고 있었다.
지역 제공기관과 적극적으로 연계해서 통합 돌봄을 제공하라는 역할을 요구받았지만, 그저 부정수급 적발을 통해서 재정 누수를 방지하고 지자체가 수행해야 할 지도감독 권한을 사실상 행사하는 '갑'의 특권을 오랫동안 누려왔다.
지자체가 지역돌봄의 컨트롤타워로서 책임성과 전문성을 가진 주체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시급하다.
그러려면 지역에 별 관심이 없는 전문기관에 위탁을 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실시해서는 안 된다.
이 법의 도입취지가 크게 훼손될 것이다.
이번 지역돌봄 통합지원법을 통해서 전국적으로 지자체를 중심으로 제도적인 돌봄 체계를 구축했다는 점은 의의가 크다.
그러나 향후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통해서 세부사항을 '제대로' 만들어야 할 중요한 기로점에 있다.
돌봄의 기본법으로서 이번 법률이 구조적인 난맥상으로 보이는 한국의 돌봄체계를 획기적으로 바꾸는 실질적인 계기가 되도록 시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
돌봄은 우리 가족과 이웃의 삶이기 때문이다. 

▲  전용호 /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전용호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전용호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소셜 코리아> 편집위원이며 비판과 대안을 위한 사회복지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노인복지정책, 노인돌봄, 장기요양, 사회서비스 전달체계 등입니다.
저서로 <영국의 사회보장제도>(공저), <복지국가 쟁점 2>(공저)가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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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호

병원, 학교 그리고 공중화장실의 공통점 [소셜 코리아] 

[소셜 코리아] 운 따라 엇갈리는 생명·미래...공공영역 늘려 더 공평해지길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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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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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말>

▲  의정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응급실 인근에 구급차가 주차돼 있다.
자료사진.

ⓒ 연합뉴스

얼마 전 출산을 했다.
임신 기간 내내 문제가 없었고 워낙 건강 체질이라 크게 걱정하지 않았는데, 출산 직후 출혈이 너무 심해 위험한 상황이 생겼다.
다행히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전원을 빠르게 할 수 있었고, 산부인과 교수가 당직으로 있어 바로 응급수술을 했다.
어느 하나라도 어긋났다면 죽은 목숨이라고 했다.
중환자실에서 이틀을 보낸 후 처음 본 뉴스는 공교롭게도 <한국일보>의 '돌아오지 못한 산모들' 시리즈였다.
지난 11년간 출산하다 사망한 산모들과 그녀들을 진료한 산과 의료진을 취재한 기사였는데, 의료 시스템의 붕괴를 심층적으로 다뤘다.
사례 중에는 나와 똑같은 경우도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그분은 돌아가셨다.
전원할 수 있는 병원이 없어 처치가 늦어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었다.
조금씩 무너지고 있는 의료 시스템 때문에 점점 더 우리는 천운이 따라야만 겨우 살아남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생명과 관련한 일이 운에 따라 달라져도 괜찮은 것일까. 문득 몇 년 전 중학생 아이들과 함께 학교에서 일어나는 차별에 대해 토론한 것이 생각났다.
성, 성적, 외모 등에 대한 차별이 주로 많았는데, 한 학생이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일이 행운이어야 하는 것이 차별"이라고 말했다.
단순히 선생님 개인에 대한 좋고 싫음이 아니라, 모두가 평등하게 존중받으며 질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많은 학생이 공감했다.
그들은 "학교 내에서 선생님에 따라 교육 내용이 차이가 크게 나는 것도 있지만, 어느 지역에 살고 어떤 학교에 가느냐에 따라 교육의 질 차이가 너무 많이 난다"고 했다.
"그 공백을 사교육으로 메우다 보니 소득에 따른 교육 격차가 심각해진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부산에 있다 보니 방학 때 서울의 유명 학원에 가서 수업을 듣는 학생들을 종종 만난다.
기숙학원에 가거나 보호자까지 방학 내내 서울살이를 해야 하기 때문에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경우에만 가능한 일이다.
문제는 서울에 다녀온 학생들과 그렇지 못한 학생들 사이에는 실제로 성적 차이가 꽤 난다는 점이다.
본인이 의지가 있어도 서울에 갈 형편이 되지 않는 아이들이 느끼는 좌절감과 패배감은 누가 치유해 줄 것인가. 공교육은 모든 아이들이 삶의 기술을 배우고 자신의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데,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주는 공간이자 시간이 되고 있다.
인간이 존재하기 위한 3가지 조건 

▲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한 장면

ⓒ 마스터 마인드

 의료와 교육, 그 무엇보다도 공공의 영역으로 지켜야 할 두 부분이 그 어느 때보다 위태롭다.
그리고 이 공공의 영역을 지키고 만들어가야 할 정치는 더욱 위태롭다.
벌써 반년 가까이 지속하고 있는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갈등은 이 문제의 본질에 대한 논의로 전혀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의료라는 행위가 가진 공공성에 대해서 함께 더 깊게 고민한다면, '의대 증원'이라는 단순하고 일차원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필요한 의료 정책을 도출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교육은 어떠한가. 물수능이니 불수능이니 한동안 시끄러웠지만, 이제 어디에서도 교육 정책에 대한 논의조차 볼 수 없다.
모두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중요한 것들에 대한 논의보다 누가 더 잘났고 누가 더 뛰어난지 처절한 경쟁만이 남은 듯하다.
그 속에서 개인 각자의 능력으로 살아남아야 하고, 뒤처진 것은 오로지 자신 탓이다.
경제력, 학력, 권력이 없는 자에게는 한없이 냉정하고 위험한 사회, 과연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 것일까.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인간이 존재하기 위한 조건으로 첫째, 생명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하고, 둘째, 자연의 필연성에서 벗어난 자신의 세계가 있어야 하며, 셋째, 말과 행위를 통해 이 세계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며 함께 살아야 함을 꼽았다.
이것들이 가능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공공 영역'이다.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의료, 자신의 세계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교육, 그 세계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치다.
아렌트의 철학에 따르자면 우리는 인간으로 살아갈 조건을 모두 잃어가고 있다.
곧 국내 개봉 예정인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 히라야마는 끝없이 공중화장실을 청소한다.
그의 직업인데, 청소에 필요한 모든 장비를 직접 구비할 만큼 최선을 다한다.
공중화장실이니, 이곳을 쓰는 사람은 외국인, 남자, 여자, 어린이, 장애인... 그야말로 모든 사람이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어진 공간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을 하는 주인공은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것들을 최선을 다해서 성실하게 해내는 사람이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것 같고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이지만 그의 삶은 '퍼펙트 데이즈'다.
그런 그의 삶 덕분에 많은 사람이 또 하루를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아간다.
영화의 주제는 그것이 아니었겠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가 쓸고 닦아 가꿔야 할 공공 영역에 대해 생각했다.
돌아서면 금방 더러워질 것이지만, 열심히 노력해도 크게 티가 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누가 오더라도 가장 존엄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켜내야 하는 것, 공공 영역을 사수하는 일은 그런 것이지 않을까.누군가에게만 허락된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열린 영역이 더 많아져 생명에 필요한 모든 것에 대한 공평한 기회가 모두에게 주어지는 우리의 '퍼펙트 데이즈'를 상상한다.
더 이상 운에 우리의 목숨과 미래를 맡기지 않아도 되는, 그런 충만한 삶을 말이다. 

▲  이윤영 / <인디고잉> 편집장

ⓒ 이윤영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이윤영은 부산에 위치한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서점 인디고 서원에서 발행하는 인문교양지 <인디고잉>의 편집장입니다.
청소년기부터 인디고 서원에서 활동하며 인문·문화·교육 활동을 하고 있으며,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들이 세계와 소통하는 세계를 꿈꾸는 시민이고자 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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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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