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저속노화 식사’ 전도사,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마라탕후루’ 대신 ‘저속노화 식사’. 최근 2030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이다. ‘저속노화 식사’란 정희원(40)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임상조교수가 2023년 X(구 트위터)에 “새해에는 남들보다 뇌 늙는 속도를 1/4로 만드는 식사를 해보자”라는 글을 올린 후 화제가 된 용어다.
100세 시대라지만 사람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9988234(99세까지 팔팔하다가 2~3일만 앓고 죽는다)’다. 식사법만으로 건강하게 심지어 천천히 늙을 수 있다니 귀가 솔깃해진다. 이런 대중의 심리를 반영한 듯 이달 출간한 정 교수의 『저속노화 식사법』(테이스트북스)은 저속노화 식사의 핵심과 실천법을 종합한 완결판답게 8월 첫째 주 예스24 건강·취미 분야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할까. 일명 ‘저속노화 쌤’으로 유명한 정희원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저속노화 식사를 ‘MIND 식사’라고도 하던데 기본 개념은 뭔가요.
- 핵심 내용은 아주 단순합니다.
노화속도가 4분의 1로 느리게 진행
저속노화 식사는 특히 인지기능 강화 및 치매 위험 감소에 초점을 둔 식단이다. 튀김류·버터·마가린·치즈·페이스트리와 단 후식 등의 초가공식품과 단순당, 정제곡물, 붉은 고기 섭취 제한을 권하는데 모두 인슐린 분비를 유발하고 노화의 가속페달인 엠토르(mTOR)를 활성화하는 음식들이다. 반면 섬유질이 많은 음식과 당지수가 낮은 베리류를 많이 먹도록 권한다. 혈당 변동성을 최소화해서 췌장의 인슐린 분비를 줄이고, 두뇌의 인슐린 저항성 발생과 알츠하이머 병변 축적 그리고 인지기능 저하를 예방하는 효과 때문이다. 한 연구에선 약 5년 동안 저속노화 식사를 실천한 사람들이 최악의 식습관을 유지한 사람들보다 노화속도가 1/4로 느리게 진행됐다고 보고됐다.
- 몸이 바로 느끼는 변화가 있나요.
- ‘밥’만 잘 먹어도 실천이 가능하다고요.
정 교수는 고교시절부터 20년간 ‘식단 유랑’을 했다. 재수시절 몸무게가 90㎏까지 나갔고 매일 헬스장에서 6㎞을 뛰고 계단 오르기를 하며 2개월간 드레싱 없이 양상추·오이·당근·토마토를 주식으로 먹고 10㎏를 뺐다. 대학 학부시절에는 탄수화물·가공식품·맥주 등 몸에 나쁜 음식들을 닥치는대로 먹으며 공부하다 시험이 끝나면 단기간 다이어트로 살 빼기를 반복했다. 30대 초중반 박사과정 때는 밤 9시 퇴근길에 떡볶이·순대·맥주를 사다가 급히 먹고 그대로 쓰러져 자는 날이 많았다. 박사과정 마지막해 체중은 첫해보다 10㎏ 증가, 체지방률도 20%를 돌파했다. 서른 다섯에는 고혈압 진단을 받았다. 시간제한 다이어트와 케톤식(저탄고지) 식사를 더해 몇 달만에 10㎏을 감량했지만 일상에서 케톤식 식사를 유지하는 건 어려웠다. 그리고 만난 게 저속노화 식사다.
- 다양한 다이어트와 식사법을 직접 경험한 후 정착한 게 저속노화 식사네요.
- 특히 렌틸콩 섭취를 강조하던데.
- ‘지구를 구하는 식단’이라면.
- 기후위기 속도도 느리게 가겠군요.
로컬 식재료 활용은 지구도 구하는 식사
- 방송이나 책에선 기후위기 언급을 안 하시던데요.
- ‘저속노화 십계명’ 중 10번째 ‘중용 지키기’는 어떤 의미인가요.
- 사실 직장인에게 고깃집 모임은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정 교수는 “노 페인, 노 게인(No Pain, No Gain·고통 없이 얻는 것은 없다)”도 이야기했다. “마라톤도, 글쓰기도 노력하는 과정에서 도파민을 얻는 건데 우리는 늘 과정보다 빠른 결과만을 원하죠. 돈으로 살 수 있는 영양제나 약을 더 믿고. 근력을 위해서는 근육 운동을, 뇌 기능을 좋게 만들려면 꾸준히 뇌를 움직여야 해요. 이런 노력들이 축적돼서 노화 속도계를 천천히 가게 하고 그동안 생을 농밀하게 즐기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