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과 행복의 상관관계, 과거의 연구는 틀렸다!

가지고 있어야 행복할까?

질문은 이제껏 많이 연구됐던 주제이다.
심리학자 다니엘 카네만과 경제학자 엥거스 디튼의 유명한 행복 연구에서는 행복이 소득과 비례하는데 연봉이 $75,000 (약 1억 350만원) 이상이면 그 이상의 금액에 대해서는 행복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연구에 많은 사람들이 의심을 해왔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미래를 위해 더 많이 투자하고 저금을 하는데 이 행동들이 행복에 영향을 안 준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와튼 스쿨의 '인간 행복을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를 연구하고 있는 매튜 킬링워스는 기존의 연구였던 소득과 행복의 상관관계와 일정 연봉이상에서는 금전이 무의미 하다는 것에 의문을 가지고 연구를 했고, 실제로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밝혔다.

매튜의 연구에 따르면, 일정금액 ($75,000) 이상에서 돈이 행복을 주지 못한다거나 삶에 만족을 못한다는 것은 없었다.
연봉이 올라갈수록 긍정적인 감정이 생기고, 부정적인 기분이 줄어드는 것을 발견했으며 또한 행복의 차이가 중산층-저소득층보다 부유층-중산층에서 더 큰 것으로 밝혀졌다.
이 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돈과 삶의 웰빙에 대한 긍정적인 연결고리가 계속해서 생기면서 경제적 차이가 점점더 커지게 된다" 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돈이 더 많으면 행복하다는 건가?

찰리 데이라는 기업가는 21살부터 사업을 했으며, 2021년 회사를 팔아서 약 26억을 벌었다.
더 많은 돈을 벌어서 찰리가 행복했을까? 찰리는 행복하긴 했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생각한 것과는 좀 달랐다.

"5성급 호텔에서 자고, 럭셔리 요트를 타서 행복한게 아니라 돈이 있어 매일매일의 삶이 쉽고 편해져요"

찰리는 런던에서의 바쁜 삶을 위해 한달에 £20,000 (3600만원) 정도를 쓰고, 찰리와 남편은 모두 풀타임으로 일을 하고 있다.
찰리는 보모, 가정부, 청소부 등을 고용하고, 필요한 서비스들을 이용하는데 돈을 쓰고 시간을 아낀다.
또 자폐아인 아들의 재활을 위해 비용을 쓴다.

"돈이 행복의 다는 아니다, 그렇지만 돈과 행복과의 관계성이 75퍼센트는 된다며, 사람들이 돈을 더 많이 벌수록 자신의 삶을 통제 할 수 있고, 결국 삶에 자유를 더 얻을 수 있다"라고 매튜는 말한다.
행복에 대한 연구를 했던 카네만과 디튼이 연구했던 것처럼 일년에 £50,000가량을 번다면 찰리는 아기 돌봄비와 재활치료비를 감당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2017년 부터 이어진 연구에 따르면 시간을 사기위해 돈은 쓰는 것은 사람의 심리적 웰빙을 증가시켜준다는 것이다.
행복을 살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것을 아마 올바르게 쓰지 않았을 것이라는데 과연 우리의 행복은 그 돈이 잘 치뤄지고 있는 것일까?


오르가슴을 연기하는 여자

남성이 여성을 만족시키는데 목을 맨다는 사실을 파악한 여성은 필요에 의해서 오르가슴을 연기하기 시작했다.

오르가슴을 연기하면서까지 잡아두고 싶은 남성은 뭔가 특별함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르가슴을 연기하는 여성은 팜 파탈형 권력자의 여인이나 매춘녀 등 특정 목적을 가진 여성에 한정되어 있었을 듯하다.

여성의 오르가슴 연기는 남자가 충분히 눈치챌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한 걸 보면 연기가 통했나 하는 생각도 든다.
발기유지, 사정 억제, 만족시켜야 된다는 강박에 오르가슴 연기를 구분할 수 있는 감각이 남아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과장된 오르가슴 연기는 생각지도 못한 부작용을 가져왔다.
남자 입장에서 관계 중의 비명과 과장된 오르가슴 연기는 구분이 어려웠던 것이다.
여성이 비명의 고통이 커질수록 만족시키고 있다는 남자의 쾌감은 증폭되어 간다.
최근의 하드코어 성인물은 이런 부작용을 더욱더 부추기는 것 같다.

남성은 시각자극에 강하게 반응하지만, 여성은 시각자극은 약한데 반해, 후각, 청각, 촉각은 발달했다.
남성이 여성을 만족시키기를 원한다면 여성 입장에서의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남성들은 성장하면서 대부분 하드코어 성인물을 보면서 성을 배운다.
의심 없이 남성 배우처럼 하면 여성에게 만족감을 선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여성 배우의 행위에 로망을 가진다.
청소년기에 성인물에 과몰입하면, 성인물의 시각적 이미지가 내면화된다.

이런 남성은 정상적인 관계에서는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점차 가학성, 변태적 행위를 추구하게 된다.

하드코어 성인물을 보고 성을 배운 남자들은 강한 피스톤 운동으로 일관하고, 고통스러운 신음을 오르가슴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도 젊을 때는 고통을 참을만하고 남성이 좋아하는 것 같으니 받아준다.
하지만, 갱년기에 접어들어 민감하고 고통이 심해지면 관계 자체를 거부하기 시작한다.

여성을 만족시키고자 하는 사람은 여성이 후각, 청각, 촉각은 발달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좋을 듯하다.
가볍고 향긋한 바디로션이나 향수는 후각을 자극하고, 감미로운 음악은 청각을 자극할 것이다.
여성의 촉각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레즈비언 성인물을 권고한다.
레즈비언 성인물은 여성이 촉각에 어떻게 반응하고 만족해하는지에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을 제공할 것 같다.
보지는 못해서 단언할 수는 없지만 영화 등을 보면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간혹 보면, 이혼이나 헤어지는 마당에 "난 평생 한 번도 느낀 적이 없어"라고 선언하는 여성이 있다.
파트너를 만족시켜주고 있다는 프라이드로 살아왔는데, 오르가슴을 연기한 것이라니. 남성에게는 참으로 가혹한 일인 것 같다.
여성이 이런저런 요구사항을 냈더라면 남성은 노력하고 변화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오르가슴 연기는 남자에게 변화와 발전의 가능성을 자르는 가혹한 행위인 것이다.
아울러, 남성도 여성을 만족시키고 싶다면 여성의 후각, 청각, 촉각에 집중해서 방법을 찾으면 좋을 것 같다


섹스를 두려워하는 남자 

이번 글은 쓸까 말까를 많이 망설였다.
글 내용이 읽는 사람에 따라 오해의 소지도 있고 뭐 이런 글을 쓴 거야? 하는 불편한 마음도 들을 수 있어서다.
하지만, 용기를 내기로 했다.
남녀 오해와 이로 인한 갈등의 근원이 여기서 시작된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남자는 섹스를 두려워합니다" 이 말을 듣는 여성들의 반응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라고 하면서도 무척이나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이야기에 집중한다.

정확히 표현하면 "남자는 섹스를 욕망하지만, 섹스를 두려워한다"이다.
여성들은 남자를 섹스에 환장한 동물쯤으로 생각하지, 남자가 섹스를 두려워한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듯하다.
남녀 간 오해와 갈등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남자는 젊고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
"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긍하는 말이다.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유전자를 후손에게 물려주고 싶은 욕망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욕망만 있는 것일까? 나는 이점이 궁금했다.

사실 젊은 여성은 남성에게 성적 만족감을 주기 어렵다.
성적 만족감만 생각한다면 젊은 여성보다는 경험과 기술을 겸비한 중년 여성이 더 매력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독 남자들이 젊은 여성을 선호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 T.V에서 소아 성범죄 관련 뉴스를 보다가, 소아 성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의 대부분이 성적 불능 또는 무기력이 있다는 사실을 접하게 된다.
남자들이 젊은 여자에 집착하는 이유와 소아 성범죄자와 연관성이 있어 보였다.
남성의 성 심리에 대한 책을 좀 더 찾아보다가, 남자의 마음 깊은 곳에 섹스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내재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섹스를 욕망하면서 왜 섹스를 두려워할까?

새로운 궁금증이 들었다.
섹스를 두려워하게 된 이유가 필요했다.
다시 인류진화학과 연결이 필요한 지점이었다.
고릴라와 초기 인류는 알파 수컷을 중심으로 일부다처제를 이루는 공동체 생활을 오랜 기간 이어왔다.
알파 수컷은 성적 독점이란 지위도 주어졌지만, 모든 암컷에게 자신의 성능력을 증명해야 하는 부담을 가지게 된다.
호시탐탐 알파 수컷을 노리는 경쟁자로부터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면 다수 암컷의 인정과 동의가 필요하다.

알파 수컷이 젊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나이를 먹고 늙게 되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알파 수컷의 성능력을 의심하는 암컷이 생겨나고 암컷 무리가 이에 동의하면, 암컷들은 경쟁자를 알파 수컷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고 알파 수컷은 비참한 상태로 공동체에서 쫓겨나게 된다.

초기 인류의 젊은 암컷을 만족시키는 전략이 우리 마음 깊숙한 곳에 내재되어 있는 듯하다.
"중년 남성은 부인의 샤워 물소리에도 놀란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남자의 마음 깊은 곳에 파트너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퇴출당한다는 불안감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자신의 성적 능력을 증명하지 못하는 남자는 자존감이 바닥을 친다.

중년 남성에게 사랑 후에 만족하지 못하는 부인의 눈을 보는 것보다 곤욕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만족시킬 수 없다는 불안감에 관계 자체를 거부한다.
피곤하다.
일이 많다.
모두 핑계다.
이런 경우가 발생하면 괜한 오해가 생긴다.
여자는 나를 사랑하지 않나? 다른 여자가 생겼나?를 의심하지만 남자는 솔직하게 이야기 하기보다는 그냥 핑계를 대고 회피하기 일쑤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남자는 자신이 성적 건재함을 확인받고 싶어 한다.
어디에서? 젊은 여자에게서. 젊은 여자가 젊고 예뻐서가 아니라 자신이 만족시킬 수 있는 대상을 찾고, 그 대상으로부터 자신을 증명하고 싶은 것이다.
남자는 관계가 끝난 후에 "오늘 어땠어? 좋았어?"라고 하면서 상대방이 만족했는지 수시로 확인한다.
자신의 만족감을 챙길 여유도 없이, 불안감 가득한 마음으로 상대가 만족했는지 만을 챙긴다.
파트너를 만족시킬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감과 두려움이 관계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남자들이 참 안쓰럽고 불쌍해 보인다.

좀 더 본질에 접근하기 위해 민망함을 감수하고 이야기를 진전시켜보자. "삽입하기 전까지만 남자가 갑이고, 삽입한 후에는 완전히 을이 된다.
" 이 말도 여성들이 알고 있는 일반적인 상식과 다르다.
남성은 발기가 되지 않으면 섹스 자체가 안된다.
그런데 발기라는 게 엄청 예민해서, 컨디션이나 심리적인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한번 발기에 실패하기라도 하면 다음번에 관계에서는 발기가 안될까 봐 불안감이 몰려온다.

어떤 이유에서건 특정인과의 관계에서 발기 실패가 지속되면, 편도체에 불안감이 장착되어 습관적으로 발기부전이 오게 된다.
다행히 발기가 되어 정상적인 관계가 진행되면 남자는 상호 배타적인 두 가지 난제에 부딪친다.
하나는 발기유지이고 다른 하나는 사정 억제이다.
남자들은 발기유지를 위해 지속적인 피스톤 운동을 한다.
가만히 있으면 발기가 사그러드는 것이다.

그런데 발기유지를 위한 지속적 피스톤 운동은 사정감을 증폭시켜 사정에 이르게 한다.
남자들은 빠른 사정을 치욕스럽게 생각한다.
빠른 사정은 파트너를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사정을 지연시키자니 발기유지가 안 되고, 발기유지를 하자니 사정 억제가 안 되는 것이다.
죽을 맛이다.
관계 내내 발기유지와 사정 억제 외에 다른 것은 생각하기가 어럽다.

대부분의 남성은 두 가지 선택 중에서 그래도 발기유지를 선택한다, 발기 지가 안되면 관계 자체가 어려우니

빠른 피스톤 운동으로 발기를 유지하면서 사정을 한다.
그래서 관계 지속 시간이 짧아지는 것이다.
남자는 발기유지, 사정 억제, 파트너 만족감이라는 세 가지 난제에 온갖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서 정작 자신의 감각은 챙기지 못한다.
동양 철학에 신생기란 말이 있다.
마음(의식) 이 에너지를 만든다는 이야기다.

자신의 페니스의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남자는 파트너에게 자극(에너지)를 주지 못한다.
즉, 자신의 감각을 챙기지 못하면 파트너에게 자극을 줄 수 없어서 파트너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파트너의 만족이 나의 만족에 달려있는 것이다.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타인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는 이야기와 유사한 것 같다.

지금까지 조금 민망한 감도 있지만, 남성이 섹스를 두려워하는 이유, 섹스 중에 남자들이 얼마나 절치부심하는지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을 했다.
아울러, 파트너에게 만족감을 선사하려면 남성 본인의 만족감 먼저 챙겨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누었다.
이 정도 문제의식과 문제 해결에 대한 힌트 정도만 언급하면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세부적인 해결 방법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 놓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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