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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나의 행복'에 주변 사람들 안위도 포함된다
나의 어려움 뿐 아니라 타인의 어려움 또한 인지하고 측은지심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흔히 들을 수 있다.
이것이 옳고 그르다는 도덕적인 판단을 떠나서 이는 과학적으로도 사람을 꽤 정확하게 표현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심리학자들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인간을 이기적인 존재로 바라보곤 한다.
보통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안위보다 자기 자신의 안위를 가장 중시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하지만 이것이 완벽하게 성립하기 조금 어려운 이유가 있으니 바로 사회적 존재인 우리들에게는 ‘자기 자신의 안위’에 주변 사람들의 안위가 필연적으로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많은 영화나 소설 등에서 인간의 악한 본성을 보이겠다며 극한 상황을 만들어서 나 혼자 살겠다며 바둥거리는 모습들을 연출하곤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이와 매우 다르다.
실제 재난 상황에서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한 연구들에 의하면 대부분의 결론은 패닉에 빠져 혼자 살겠다고 뛰쳐나가는 경우는 의외로 드물다는 것이다.
수섹스대의 연구자 존 드루리에 의하면 긴박한 상황에서도 평소 흔히 관찰되는 사회적 행동들이 여전히 그대로 나타나는 편이다.
많은 재난 상황에서 “긴박한 상황에서도 약자를 도와주는 행동, 소중한 사람들과 가까이 붙어있으려고 하는 일상적인 사회적 행동들이 그대로 나타났다.
이러한 행동들이 사람들의 탈출을 늦췄지만 이와 같은 패턴이 흔히 관찰되었다.”고 한다.
이들 연구자들에 의하면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양육자와의 애착, ‘관계’를 통해 생존하는 동물인만큼 생존의 위협과 같은 큰 불안이 닥쳐왔을 때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친밀한 사람들을 통해 마음의 불안을 다스리려 한다.
따라서 재난 상황에서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혼자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나 친구, 아는 이들을 찾아 해매는 것이다.
또한 재난이 지나간 후에도 살아남았음을 기뻐하기보다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이 남는다.
재난이 지나가도 살아남은 사람들과 사회 전체가 함께 집단적인 트라우마를 겪는 모습을 보이고 이 과정에서도 원래는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서로를 위로하고 도움을 주면서 집단적 치유와 회복이 이루어지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렇게 사람들은 큰 재난일수록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함께 재난을 겪어가는 모습을 보인다.
이 과정에서 '같은 운명'을 지녔다는 깨달음에서 '우리'라는 새로운 정체성이 형성되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이 과정을 잘 겪어갈수록 회복력이 강한 사회가 된다.
자신이 겪은 일이 아니더라도 타인의 아픔에 함께 슬퍼하고 함께 연약함과 무력함을 느끼고 꽃 한 송이를 바치는 행동들이 실은 인간 사회를 지탱해온 가장 거대한 물결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힘들다는 인식에서 나아가 나 뿐만 아니라 타인들도 다양한 이유로 힘들다는 깨달음, 측은지심이 인간이 지금까지 무리를 이루어 생존해 온 비결일 것이다.
어차피 인간인 이기적인 존재일 뿐이라고 보는 냉소적인 시선이 다소 비논리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때로는 심하게 이기적인 것 같지만 때로는 그렇지 않은 소중한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좋고 혼자 있으면 외롭고 불안한 보통의 사람들이 사회를 떠받쳐 온 것일 테니까 이런 모습을 보더라도 서로 너무 미워하지 않고 또 냉소주의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혼자 이겨내는 고난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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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이겨낼 수 있는 고난이 존재할까. 불평등, 차별, 가난, 극심한 경쟁과 물질주의, 질병 등 삶에서 큼지막한 고통을 차지하는 문제의 다수가 쉽게 바꿀 수 없는 요소들, 예를 들어 태어난 가정 환경, 양육자의 소득 및 교육 수준, 사회적 구조, 타고난 건강함 등에 의해 큰 영향을 받고 있음을 고려해보면 여러 사람들이 함께 노력하지 않는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해 사회적 동물인 우리들의 건강과 행복에는 '사회적 지지', 주변에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개인적 차원의 문제인 것처럼 보이는 문제들, 예를 들어 다양한 질병이나 우울증 같은 경우에도 사회적 지지의 존재 여부에 따라 기존 건강상태와 상관 없이 예후가 다르게 나타난다.
한 메타분석 결과에 따르면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은 관상동맥 심장질환 위험을 29% 증가시키고 뇌졸중 위험을 32%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우울증의 주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인간관계에서 다수의 거절과 갈등을 경험하는 것이다.
수십년 간의 행복 연구가 내린 결론 또한 행복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가장 큰 차이는 '좋은 인간관계'의 여부이다.
이렇게 겉으로는 간단해 보이는 문제도 속에는 항상 다양한 사회적, 관계적 층계의 문제들이 엮여 있어서 실제로는 절대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배우고 나니 사람이 스스로 온전히 이겨낼 수 있는 문제가 과연 존재할까 싶은 의문이 든다.
다소 극단적으로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순전히 환상이라고 보는 시각들도 있지만 그것과 별개로 우리가 삶에서 겪는 대부분의 굵직한 문제들은 내 손 안에서 굴리기에는 이미 너무 크고 복잡하다.
자수성가하여 가난을 이겨냈다고 하는 흔한 스토리들도 사실은 가난 자체를 해결했다기보다 혼자 '탈출'한 것에 불과하고 여기에서도 좋은 운과 좋은 사람들의 도움이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결과가 좋지 않았던 일은 외적 귀인(운이 나빴음)을 하는 반면 좋았던 일은 내적 귀인(자신의 능력과 노력 덕분)을 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렇게 스스로는 지각하지 못할지언정 분명히 존재했을 주변의 도움을 무시한 채 자신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른 사람을 돕기는 커녕 "나는 혼자 해냈는데 너는 왜 못하냐"고 비난을 던지고 만다.
정말 주변의 도움 없이 혼자 해낸 것이든 아니면 도움이 있었는데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이든 고난을 혼자 이겨내는 데에도 공감능력이 떨어진다고 하는 큰 부작용이 존재하는 것이다.
또 비교적 사소해 보이는 문제들 예를 들어 어질러진 방을 정리하는 것에 있어서도 집에 에너지 넘치는 아이가 있다거나 혹은 우울증이 심해서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도 힘든 상황이라고 하면 방이 지저분하다는 문제는 표면에 드러난 증상일 뿐이고 그 이면에 훨씬 큰 진짜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는 셈이다.
최근 노숙인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그 인식들이 도움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접했다.
여기에서도 노숙인들이 그 상황에 처하게 된 이유가 단순히 '게으름' 같은 개인적이고 내적인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원인이 이보다 더 복잡할 거라고 생각한 사람들에 비해 노숙인들을 위한 봉사활동이나 도움 행동에 참여할 의향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인들이 특히 사랑한다는 소설 '데미안'을 보면 초반부에 유복한 가정환경에서 자라고 있는 주인공 싱클레어가 그렇지 않은 환경에 처한 다른 소년들을 바라보며 동일한 시공간에 서로 완전히 다른, 빛과 어둠의 세계가 아슬아슬하게 공존함을 잘 보여준다.
조금 다르지만 나 역시 청소년기에 가출의 유혹에 잠시 사로잡혔던 적이 있었다.
만약 내가 조금이라도 더 운이 나빴거나 주변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지금과 완전히 다른 세계를 살아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종이 한 장 차이 같은 작은 요소들이 모여서 커다란 나비효과를 만드는 법이다.
공감하고 말고의 여부를 떠나서 노숙인들 역시 '게으름'보다는 분명 더 복잡하고 다양한 각자의 사정에 인해 그런 상황에 처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내 사정이 복잡한 만큼 다른 사람들의 사정도 비슷하게 또는 더 많이 복잡한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