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A 드라마 ‘남남’에는 아들에게 의절당한 노부부가 등장한다.
이 부부는 고등학생 아들이 미혼부가 될 상황에 처하자 대입을 염려해 황급히 이사를 떠나버렸다.
그로 인해 남겨진 여친은 고등학생의 몸으로 혼자 딸아이를 낳아 기르게 되었다.
아들은 부모의 바람대로 의사가 됐지만 부모와 왕래도 별로 하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았다.
결국 30년 만에 재회하게 된 두 사람은 결혼하려는 마음을 먹고 딸아이를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인사시키는
자리를 갖게 된다.
그런데 경찰로 근무하고 있는 손녀에게 할아버지는 유학비를 대주겠다며 손녀의 의사와 상관없이 자꾸만 유학을 권한다.
이 일로 입씨름을 하게 된 아들은 급기야 부모에게 의절을 선언하고야 만다.
드라마에서 그 노부부는 “왜 그렇게 (자녀들을) 손아귀에 넣고 흔들려 하느냐?”는 아들의 절규를 정말이지 의아해한다.
다 자손들 위하는 일인데 뭐가 잘못됐다는 것인지를 도무지 모르겠는 얼굴이다.
자녀들 모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노부부만 진수성찬의 밥상에 앉아 있는 모습이 쓸쓸하고 안타까웠다.
이 드라마를 보며 품격있는 어른이 되는 데에는 철학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새삼 다시 하게 됐다.
자신의 경향성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채 딸려가기만 하다 보면 결국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
나이와 재력이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부족함을 지적해주는 말을 듣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경우는 드물다.
당사자들은 실패감이 없다보니 자신의 삶에서 잘못된 부분을 생각해보지 않게 된다.
더군다나 옆에는 심기를 살피는 사람만 있고 심기에 거스르는 말을 하는 사람은 없게 된다.
그러니 스스로를 돌아보려는
노력을 특별히 하지 않으면 자신만의 우물에 갇히게 된다.
리더들이 참모를 옆에 둬 쓴소리를 듣는 것이나 철학 강의를 들으려 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그리고 사회적 영향력이 있을수록 관성에 따른 생각에 안주하지 않고 조금은 낯선 생각을 해볼 줄 알아야 한다.
자녀가 부모를 자꾸만 벗어나려 한다면 그만큼 부모가 불편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을 줄이려는 자녀를 원망해봐야 관계만 소원해질 뿐이다.
‘내가 편하면 내 옆에 있지 말라고 해도
내 옆에 있겠지’ 하는 생각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의무만 강조하는 관계에서 제대로 된 웃음꽃이 피기는 어렵다.
인간에게는 끊임없이 자신의 우물을 벗어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이가 들수록 내 생각과 다른 생각을 접해보려는 노력을 하면서 뇌를 다른 방식으로 쓰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철학은 다른 게 아니라 무엇에 대해서든 타당할 가능성과 타당하지 않을 가능성을 동시에 생각하는 것이다.
내 생각이 타당할 가능성에만 매몰되지 않고 타당하지 않을 가능성도 생각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의 생각이 타당하지 않을
가능성에만 매몰되지 않고 타당할 가능성도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철학은 치매도 막아준다는 제목의 책을 써야 하나?’ 하는 우스운 생각을 해보곤 한다.
박은미 철학커뮤니케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