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추를 채워 보니 알겠다세상이 잘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단추를 채우는 일이단추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단추를 채워 보니 알겠다잘못 채운 첫 단추,
첫 연애,
첫 결혼,
첫 실패누구에겐가 잘못하고절하는 밤잘못 채운 단추가잘못을 깨운다그래,
그래 산다는 건옷에 매달린 단추의 구멍 찾기 같은 것이야단추를 채워 보니 알겠다단추도 잘못 채워지기 쉽다는 걸옷 한 벌 입기도 힘들다는 걸―천양희(1940∼ )일 년 중에서
가장 밤이 긴 날이 다가오고 있다.
긴 어둠의 날은 ‘동지’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말한다.
올해가 이제 다 끝나간다고. 그러니 서둘러 정리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이 시기에 우리는 항상 무엇을 해왔던가. 돌아볼 것은 돌아보고 참회할 것은 참회하고 털어낼 것은 털었다.
그렇게 남길 것과 지울 것을 구분해야 할 때가 다시금 오고 있다.
돌아보면 매번의 12월은 기쁨과 환희,
후련함과 뿌듯함 쪽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후회,
미련,
자책에 가까웠다.
뭘 그리 잘못했을까. 명확한 이유가 없어도 어쩐지 아쉬운 것이
연말의 소회다.
더 잘 살았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맴돈다.
더 잘 하지 못했다는 자책이 마음을 떠돈다.
12월이 아니라 우리 인생 자체가 그런 편이다.
잘 살아보고 싶었고,
하루하루 충실했던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 잘 살기란 참 쉽지 않았다.
우리 잘못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나름 열심히 했던 것 같은데도 술술 풀리는 것은 휴지뿐이다.
이 시인도 삶의 단추 하나 제대로 채우기란 참 힘든 것이라 말한다.
단추를 채울 때마다 생각이 날 시다.
올해 얼마 남지 않았다.
인생의 단추야 제발 좀 잘
해보자.
열심히 일한 나에게 한 자락의 휴식을… 당신을 즐겁게 하는 다양한 방법,
음식ㆍ커피ㆍ음악ㆍ스포츠 전문가가 발 빠르게 배달한다.
호주의 한 골목 카페 풍경. 게티이미지 뱅크인류 최초의 커피는 ‘에너지 드링크’가
아닌 ‘에너지 볼’이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커피 세계사’(탄베 유키히로·황소자리)에 따르면,
오랜 옛날 에티오피아 오로모족 병사들은 전쟁에 나설 때 커피 가루에 동물 기름(버터)을 넣어 둥글게 반죽한 뒤 칼로리와 카페인 보충용으로 휴대했다고 한다.
지금도 그 풍습은 '부나 카라'라는 이름의 에티오피아식 독자 커피 이용법으로 남아 있다.
커피는 이렇듯 활기와 이성을 끌어올리는 에너지원으로,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 활약해 왔다.
영국에 커피하우스가 유행하던 17세기는 시민사회의 여명기였다.
커피하우스에서 정치적 의견을 활발하게 개진하며 각성한 시민들이 의회파를 꾸려 왕당파에 승리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커피 잔 사이로 넘쳐나는 정보,
무한하게 뻗어가는 논쟁과 실험은 학문과 산업 발전의 윤활유였다.
파리에서도 카페는 지식인들 간 만남의 장소였다.
다만 정부의 통제를 받은 탓에 런던만큼 자유롭지는 못했다.
당시 프랑스 통치자였던 루이15세는 왕정에 불만을 표하거나 반대 의견을 내는 지식인과 문인들을 색출해 즉각 투옥했다.
어쩌면 그래서 더,
깨어있는 시민들은 몇 명씩 ‘몰래’ 모여
커피를 마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곳곳에 들어선 카페에서 그들은 머리를 맞대고 학문과 예술을 논하며 썩어버린 정치판을 뒤엎을 방도를 궁리했다.
이뿐만 아니다.
빈과 이스탄불에도 정보 교류 및 사교장으로 기능하는 커피하우스가 성행했고,
미국에서도 런던과 비슷한 커피하우스가 유행한 시기가 있었다.
그러고 보면,
역사 속에서 커피하우스가 대유행할 때의 사회 상황은 한결같이 시민사회의 여명기이거나 변혁기였다.
왜 커피가 한국인에게 이토록 사랑받는 건지 이유를 찾고 싶었다.
이제는
명확하게 알 것 같다.
지금 우리는 역사의 변혁기를 뜨겁게 겪어 내는 중이다.
그래서,
깨어있는 이성의 상징인 커피가 그토록 필요했던 건 아닐까. 뜨겁게 타오르는 시민운동에서 커피야 한낮 엑스트라겠지만,
이 거리에 커피가 없었다면,
아니 인류사에 커피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현실은 또 얼마나 달라졌을까.커피 내리는 것으로 시작하는 나의 하루. 일상이라는 소중한 전쟁터에 서기 위해 에너지를 준비한다.
혹은 거리의 카페에서 에너지를 보충하며 평화로운 일상을 위해 오늘도 싸운다.
맹추위를 견뎌야 할
누군가를 위해 커피값을 선결제하는 마음,
착한 사람들 간 결속을 강화하는 이 커피는,
우리 기억과 역사에 새롭게 각인될 것이다.
윤선해 ㈜후지로얄코리아·와이로커피 대표
늙으면 왜,느려지는 걸까
“몸이 말을 안 들어요. 창피해 혼났네.” 진료실에 들어서는 70대 할아버지 얼굴에 멍 자국이 선명하다.
평소 걷던 길이고 미끄럽지도 않았는데도 넘어져 생긴 상처라고 했다.
“말도 버벅대기 일쑤고,
아주 답답해 죽겠어요.”매년 이맘때면 낙상이 걱정된다.
자칫 골절이라도 생기면 회복이 더디고 합병증으로 고생할까 두렵다.
일상에서도 몸이 말을 안 듣기는 마찬가지다.
사레가 쉽게 들리고,
음식물도 잘 흘리고,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이 칼럼을 쓰면서도 평생 다루던 자판이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오타가 작렬하고,
생각이 글로 매끄럽게 만들어지지 않아 서러울 때도 있다.
몸과 마음의 부조화 때문이다.
마음은 아직 청춘이라 뇌는 빠르게 명령을 내리는데,
몸은 늙어 명령에 따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근력이 저하됨은 물론이고,
도파민 감소 등 대뇌 생화학적 노화로 인해 운동 반응속도,
미세 운동기술,
그리고 균형감각이 떨어진다.
운전 중 사고의 가능성이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노인이 위험 가득한 시한폭탄 신세가 되는 것은 아니다.
속도를 줄이면 된다.
마음에 맞추어 몸을 서둘러 움직이지 말고,
몸에 맞추어 마음을 느긋하게 먹어야 한다.
여유있게 생각하고,
감정을 오래 느껴보고,
천천히 선택하자. 오히려 신중한 판단은 젊은이들보다 더 긍정적인 결과를 보여줄 수 있다.
늙으면 느려지는 것이 당연하다.
서럽지 않으려면,
당연한 것은 수용해야만 한다.
“휴지 좀 줘. 콧물이 멈추질 않네.” 초겨울 산행에 나선 친구가 자꾸 코가 흐른다며 성가셔한다.
하산길에 저녁 식사로 뜨끈하고 칼칼한 김치찌개를 먹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다른 친구가 연신 코를 풀어대며 겸연쩍어한다.
나이가 들면 비염에 쉽게 걸릴 수 있다.
코점막에서 분비되는 점액질이 줄어들고 세포가 위축되며 섬모운동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온도나 습도의 변화 또는 맵거나 뜨거운 음식 등의 자극으로 별다른 증상 없이 맑은 콧물이 나온다면,
노년에
흔한 ‘비알레르기성 비염’일 가능성이 크다.
콧속 혈관 운동을 조절하는 자율신경의 노화가 원인으로 여겨져 ‘혈관운동성 비염’으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재채기,
심한 코막힘,
간지럼 등이 장시간 동반되는 ‘알레르기성 비염’이 의심된다면,
전문의의 진료를 권한다.
알레르기 질환은 우리 몸 여러 곳에 염증을 유발하는데,
대뇌조직에도 악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국내 한 대학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알레르기성 비염을 앓고 있는 노인은 비알레르기성 비염의 경우보다 ‘경도인지장애’ 유병률이 18%포인트 높았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콧물이 흐르면 ‘혹시 코로나?’라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났었는데,
이제는 인지기능장애까지 걱정해야 한다니. 늙으면 신경 써야 할 귀찮은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 시간은 기본이에요. 어찌나 하고 싶은 말씀이 많으신지. 끊을 듯 끊을 듯 통화를 이어가셔서 전화할 때마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정도예요.” 70대 어머니가 통화를 시작하면 도무지 중단을 하지 않으셔서 갖은 핑계로 통화를 끝내고는 그런 자신이 불효자가 된 것 같아 속상하다는 따님. 늙으면 왜,
통화가 길어질까?당연한 현상이다.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가 줄어들 수밖에 없으니,
소외감에 감정적 소통의 욕구가 늘어나기 마련이다.
더구나 청력과 인지기능이
저하돼 말을 알아듣고,
이해하고,
반응하는 속도가 늦어진 것도 한 요인이다.
시간이 많아진 것도 또 다른 이유라면 이유다.
딱히 쫓길 일이 없으니,
수다만큼 시간을 보내기 좋은 놀이(?)도 없지 않은가. 젊은 사람에게 긴 통화가 노인에게는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정서적 측면 말고도,
노인에게 전화 통화는 인지기능에도 긍정적이다.
직접 대화하거나 전화 또는 문자 메시지 등 타인과 소통하는 일을 꾸준히 경험한 노인들의 인지기능이 그렇지 못한 노인보다 더 좋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보이스피싱만 아니라면,
어떤 내용의 통화라도 노인의 삶에는 긍정적인 셈이다.
인내와 경청이 노인들에게는 건강과 안정을 줄 수 있다.
공감과 배려는 서로를 행복하게 만든다.
김진세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