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의 공연 전문 아레나인 인스파이어는 최신 음향 설비와 과학적인 설계로 팝스타들의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
/인스파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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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정말 대단하다.
K팝은 미국에서 시작한 것을 더 크고 멋있게 키워냈다.
이 도시가 세계 엔터테인먼트의 중심이 되는 과정을 보는 건 정말 놀랍고 즐거운 일이다.
”
지난 18일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아레나를 찾은 록밴드 원리퍼블릭의 보컬 라이언 테더(사진)가 공연 중 던진 말이다.
이날 8000여 명의 관객과 110분 넘게 열창한 그는 세계적인 스타 프로듀서. 마룬파이브, 비욘세, 아델, 테이트 맥레이 등에게 곡을 써준 유명 작곡가인 그는 이날 무대에서도 피아노 한 대만으로 작업한 곡들을 화려한 보컬로 선보였다.
블랙핑크, BTS 지민, 트와이스 등 K팝 아티스트와 곡 작업을 함께한 이야기를 들려주던
테더는 “여길 노래방으로
만들어 보겠다”고
했다.
원리퍼블릭의 인기곡 중 하나인 ‘Apologize’의 후렴구 ‘투 레이트(too late~)’의 합창을 유도했다.
각 파트의 화음은 무대의 음과 어우러지며 아레나 전체에 풍성하게 울려 퍼졌다.
아티스트의 숨소리와 말 한마디 한마디, 고음과 저음 모두 선명하게 귀에 꽂혔다.
국내 다른 대형 공연장에서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음향. 문 연 지 1년밖에 안 된 인스파이어아레나에 세계적인 팝스타의 내한공연과 K팝 공연이 줄줄이 대기하는 이유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시야·음향·좌석 완벽…공연계 ‘게임체인저’
/인스파이어 제공
인스파이어는 2023년 11월 30일 문을 연 인천공항의
두 번째 복합리조트다.
1270여 개 객실과 카지노, 워터파크, 연회장, 쇼핑과 미식이 모두 모여 있다.
그 중 인스파이어아레나는 국내 최초의 공연 전문 아레나로 축구장 64개 규모(1만5000㎡), 관객 1만5000명을 수용하는 시설이다.
그동안 스포츠 전용 시설에서 열려 사운드 품질에 아쉬움이 많았던 음악 마니아들에게 가물에 단비 같은 존재가 됐다.
냉난방의 유속을 고려한 건축 음향 시뮬레이션 설계에 가장 많은 공을 들였다고. 무엇보다 좌석 간격이 84㎝, 좌석 단차가 25~48㎝로 편안한 좌석에서 시야 방해 없이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게 특징이다.
무대 끝에서 3층 끝좌석까지 거리가 70m여서 등급이 낮은 좌석에서 관람해도 아티스트의 표정까지 생생하게 읽을
수 있다.
가변형 무대 설비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지난해 마룬파이브, 웨스트라이프, 린킨파크 등의 공연을 인스파이어가 자체 기획했고 올해 원리퍼블릭에 이어 카이고(KYGO), 제드(Zedd) 등의 공연이 예정돼
있다.
공항에서
15분 거리인 장점 때문에 지난해에만 대규모 K팝 페스티벌이 다섯 차례 열렸고 샤이니, 데이식스, 신해철 헌정 공연 등이 줄을 이었다.
인스파이어 관계자는 “K팝 공연이 있는 날엔 인천공항에서 오는 셔틀버스가 새벽부터 하루 종일 만석으로 운행한다”며 “팬클럽이 리조트 내 카페나 일부 시설을 대관하기도 하고, 자체 이벤트를 여는 일도 많다”고 했다.
리틀 라스베이거스…“공연후 하룻밤 숙박을”
지난 1년간 관람객들이 꼽은 인스파이어아레나의 유일한 단점은 교통이었다.
공연이 있는 당일 인천공항 두 개 터미널에서 시간당 3~4회의 셔틀버스를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운행하고 서울의
거점에서도 하루 4회 운영하지만 여전히 “공연 끝나고 빠져나가는 게 일”이라는 후기가 지배적이었다.
인스파이어의 숙박동은 오션타워, 썬타워, 포레스트타워 등 세 개의 건물로 나뉘는데 각각 다른 호텔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명확히 다른 콘셉트를 갖고 있다.
모던 내추럴을 선호한다면 오션을, 화려한 인테리어의 파티 모드를 원한다면 썬을, 아기자기하고
편안한 캐주얼 콘셉트가 낫다면 포레스트가 좋겠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방에서 산책 나가듯 공연을 보러 갈 수 있다는 얘기다.
조던 스테이크하우스 등 11개 시그니처 레스토랑과 1000명이 동시에 입장할 수 있는 대규모 푸드코트 오아시스고메빌리지 등 미식 경험도 결합돼 있어 공연 관람 전후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
개츠비가 좇았던 것은…성공이었을까, 사랑이었을까
인간은 거울 속 비친 이미지나 그런 기능을 하는 타인의 육체 이미지를 통해 비로소 내가 된다고 한다.
철학자 자크 라캉의 말이다.
그는 인간의 욕망은 타인의 욕망이라고 주장한다.
경제학에도 포모, 베블런 효과, 스놉 효과, 밴드왜건 효과처럼 많은 용어가 있다.
네트워크 효과는 타인과 분명히 관련이 있다.
우리는 혹시 다른 사람이 건네준 이상과 꿈을 좇으면서 그것이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착각하며 사는 것은 아닐까.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스콧 피
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영화로 만나보자. 영화는 도덕이 해이해지고, 재즈가 유행하고, 불법이 난무하며 주가는 끝없이 치솟았던 1922년 미국 뉴욕이 배경이다.
가난한 농업노동자의 아들인 개츠비는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며 첫사랑 데이지와 멀어진다.
그녀는 결국 개츠비를 기다리다가 35만달러짜리
진주 목걸이를 선물한 톰 뷰캐넌과 결혼한다.
개츠비는 자괴감을 느끼고 종전 이후 종적을 감춘다.
그동안 데이지는 뷰캐넌과 딸을 낳는다.
개츠비는 억만장자 댄 코디의 비서가 된 후 그가 죽자 한 유대인과 사업을 해 큰돈을 만진다.
밀주 제조와 금융 사기 등의 온갖 불법 수단으로 거부가 된다.
금주법이 발효되자 밀주는 큰 돈벌이가 됐다.
1차 세계대전 승전으로 엄청난 돈이 유럽에서 밀려왔다.
라디오 등 각종 신기술은 속속 산업화됐다.
주가는 기록적으로 폭등했다.
월가는 호황을 누렸다.
개츠비의 화려한 저택에선 밤마다 광란에 가까운 파티가 열린다.
초대받은 누구나 공짜인 이 성대한 파티를 개츠비가 연
이유는 오직 한 가지였다.
옛 연인
데이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는 오직 그녀와의 재회를 꿈꾼다.
그렇게 파도에 휩쓸리면서도 계속 노를 저어가며, 끊임없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파티장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혹시 방문했을지도 모르는 데이지의 모습을 찾는다.
그 빛이 달아났어도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내일 우리는 더 빨리 달려서 다시 양팔을 내뻗으면 되는 것이다.
마침내 개츠비는 5년이란 시간이 흘러 데이지를 만나고 그녀의 사랑을 확인한다.
데이지는 바람둥이
남편과의 결혼 생활에
회의를 느낀 지 오래고(데이지의 갑부 남편 뷰캐넌은 정비공의 아내와 은밀한 사이였다), 개츠비의 마음속에는 오래전부터 데이지뿐이었다.
개츠비의 집에서 밀애를 즐기던 데이지는 돌연 힘겨운 표정으로 시간이 멈추면 좋겠다고 중얼거린다.
“과거를 되돌릴 수 없다고? 아니, 되돌릴 수 있어! 옛날과 똑같이 돌려놓겠어! 모든 걸 예전처럼 돌려놓을 거야. 당신과 나 둘이서.” 하지만 개츠비는 데이지의 사랑에 모든 것을 던졌다가 결국 파멸에 봉착한다.
데이지의 남편 뷰캐넌이 개츠비가 부정한 방법을 사용해 돈을 벌었다는 것을 폭로한 것이다.
데이지는 개츠비를 배신하고 자신이 속한 집단, 유한계급의 안락한 삶 속으로 돌아가 버린다.
이미 상류 사회에 익숙한 데이지에게 사랑 하나만을 갈구하는 개츠비는 크게 중요한 인물은 아니다.
머틀은 자신의 불륜을 눈치챈 남편 윌슨과 다투다 도망 중인 상황이었다.
뷰캐넌은 윌슨에게 머틀을 친 차가 자신의 차가 아니라고 하며 개츠비의 주소를 알려준다.
윌슨은 개츠비의 집을 방문하고 그를 죽인 뒤 자살한다.
그토록
많이 몰려오던 파티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데이지도 오지 않았다.
이런 질문을 해본다.
개츠비의 사랑은 순수했기에 돌을 던질 수 없는 것인가? 혹시 그에게 데이지는 진정한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이 들어가고 싶었지만 들어갈 수 없었던 그 유한계급의 상징인 것은 아닌가? 파멸은 개츠비와 같은 개인에게만 닥친 것이 아니었다.
광란의 1920년대는 결국 대공황으로 막을 내렸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부자가 된 청년 개츠비의 이름을 딴 ‘위대한 개츠비 곡선’을 생각해 보자. 가난했던 개츠비는 남의 여자가 된 여인을 만나려는 욕심에 ‘위로 더 위로’ 올라가려고만 했다.
그는 부자가 됐지만, 말로는 비참했다.
현대 사회에도 많은 사람이 개츠비처럼 부를 이뤄 계층 이동을 꿈꾸나 소득불평등이 고착화돼 계층 상승은 어려워졌다.
해도 안 된다는 무력감으로 활력을 잃은 사회가 되기에,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복원하려는 노력은 그래서 필요하다.
여하간 개천에서 용이 나기 어려운 시스템이라는 데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부모 소득에 따라 자식의 소득이 변화할 수 있는 계층 이동 가능성을 표시한다.
지니 계수는 소득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소득분배지표로, 0에서 1 사이의 수치로 표시한다.
지니 계수가 0이면 완전 평등한 상태이고, 1이면 완전 불평등한 상태를 의미한다.
중국을 포함한 개발도상국일수록 이 값이
높아져 부모 잘 만난
친구가
잘되는 경향을 보인다.
유럽 선진국일수록 이 값이 낮아 상대적으로 부모의 소득에 영향을 덜 받는다.
미국은 위대한 개츠비 곡선의 중간 정도에 있다.
‘아메리칸드림’이 사라졌다지만 실리콘밸리나 월가가 상대적으로 기회의 땅으로 인식된다.
부자의 저축 없이는 경제를 확장하게 할 자금도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개츠비처럼 가난한 자였다가 부자가 되는
길로
들어서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자 역할에 대해서도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4차 산업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기업가는 더 이상 우리의 적이 아니다.
혁신과 변화만이 유일한 살길인 급박한 상황에서 부를 일군 기업가에게 박수를 보내야 한다.
다만 개츠비처럼 부정한 수단으로 번 돈으로 파멸에 이르는 일만은 없어야 할 것이다.
'옹기'종기 모여앉아 겨울 간식 나눠먹던 옛 추억을 소환하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은 겨울을 거치며 자연의 채근과 격려 그리고 자연의 순환 주기, 법칙에 따라 살기를 종용받는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따뜻한 시기에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겨울 생존 위기에 처한다는 우화 ‘개미와 베짱이’의 교훈처럼 몸과 마음 그리고 생활에 필요한 여러 준비를 하지 않으면 혹독한 겨울을 나기 쉽지 않다.
우리 공예품에는 삼한사온 주기로 겨울을 미리 준비하고 현명하게 살아온 한국민의 겨울나기 지혜가 절기마다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제공=황인성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시작되는 입동(立冬). 팥죽을 쑤어 붉은 팥의 기운으로 몸을 따뜻이
하는 날이다.
건강을 지키려는 한국인의 지혜로운 겨울 채비가 붉은 동지팥죽 한 그릇으로부터 시작한다.
불가에서는 붉은 팥은 광명을 상징하며, 반야 지혜를 의미하기도 한다.
양의 기운을 상징하는 팥죽을 그릇에 담아 장독대, 부엌, 헛간, 우물, 대문 옆 등에 놓은 다음 남은 팥죽을 들고 집 안을 돌아다니며 숟가락이나 솔가지로 떠 담벼락과 문짝에 뿌리는 관습이 근거 없는 일이 아니다.
땅 깊숙이 파묻어 두었던 옹기 독 속 맑은 동치미 국물
요즘에는 비닐하우스와 과학적 재배로 사시사철 샐러드와 나물, 과일을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예전 우리는 김치나 찬 바람에 걸어 둔 시래기 무청과 황태, 가을부터 겨우내 말린 곶감, 밭에서 거둔 감자와 고구마 등을 준비하지 않으면 겨울에 비타민과 미네랄을 섭취하기 쉽지 않았다.
땅 깊숙이 파묻어 둔 옹기 독을 열어 살얼음 낀 동치미를 꺼내 무를 숭덩숭덩
썰고
톡 쏘는 사이다 같은 맑은 동치미 국물에 국수도 삶아 만다.
뜨끈한 군고구마, 구운 가래떡과 같이 먹으면 겨울 진미가 따로 없다.
입 안이 얼얼하게 차갑고 미간이 찡긋해져도 겨울이 아니면 느끼지 못할 강력한 시원한 맛이요, 감성이다.
입동(立冬) 이후 김장하는 날, 아무리 바빠도 돼지고기를 삶아 만든 수육이나 보쌈을 즐겨 먹는 것도 알고 보면 한국민이 터득한 겨울나기 지혜다.
김장 김치와 함께 보쌈을 먹는 것은 발효된 김치의 유산균과 돼지고기의 단백질을 함께 섭취하는 방법이다.
돼지고기는 한방으로 따뜻한 기운이 있어 몸을 따뜻하게 해주니 맛과 건강을 한 번에 얻는 일거양득이다.
선인들로부터 내려온 절기별 식문화를 살펴보면 그중에 지혜롭지 않고 근거 없는 것이 하나도 없다.
숨을 쉬는 ‘옹기’의 효능이야 익히 알려진 바다.
우리나라 식문화에서 빠지면 안 될 3대 필수장인 된장, 간장, 고추장의 제조와 보관뿐 아니라 김치로 대변되는 한국 식문화는 과연 옹기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아무리 김치냉장고 성능이 뛰어나고 편리하다고 해도 대기업이 지속해서 옹기를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플라스틱을 대신할 보관 용기를
옹기로
개발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면 신기술로도 대체 불가한 옹기 특유의 맛과 정서의 힘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백자는 깨끗해도 왠지 재미가 없는 반면 옹기는 …
백자는 발색과 강도가 우수해 사용성이 좋고 상차림을 환하게 해준다.
형형색색 식재료와 붉은 양념이 많은 한식의 배경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그러나 백색은 깨끗해도 왠지 재미가 없다.
옛 어머니들은 옹기를 독뿐 아니라 일상의 다양한 기물, 식기로 사용했다.
요즘은 옹기를 현대화해 새로운 생활에 맞게 예술화하려는 작가의 시도가 많다.
지역별 기후와 식문화, 그 땅-흙의 성질에
맞게 연구를 거듭하고
디자인 감각을 더해 새로운 옹기를 만들고 있다.
생산성을 높이고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 반짝거리게 만든 광명단 옹기는 옛말이다.
요즘은 건강에 좋은 재료와 제작법으로 옹기를 만든다.
천연 유약을 고온의 불로 구워 예전보다 단단함도, 색채도 좋아졌다.
요즘 도예가들은 불을 때는 과정에서 벗겨지지 않는 그을음(탄화·炭化)을 입혀 전통 옹기와 비교해
색이 좀 더 어둡고 다소 금속과도 같은 표면을 도출한다.
작가들이 뜻을 모아 명맥이 끊어진 제주 지역 옹기를 복원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한다.
이 모두 장독에 국한하지 않고 우리 시대의 새로운 예술, 쓰임으로 옹기를 제작하려는 의미 있는 창작이다.
같은 음식이라도 담아내는 그릇에 따라 맛과 향 달라
옹기의 좋은 점에도 불구하고 요즘은 대부분 아파트 생활이라 집 안에 옹기 독을 놓고 살기가 어렵다.
그러나 장독 말고도 식탁 위에서
부릴 옹기의 장기는 무궁무진하다.
전을 노릇노릇 큼지막하게 부쳐 내놓을 때 질그릇 특유의 갈색빛만큼 노란 전을 한층 맛깔나게 돋우는 것이 드물다.
명창의 노래에 추임새 잘 넣는 고수 같다.
동치미에 말아낸 냉국수, 떡국, 만둣국 등 백색 음식에도 옹기가 뒷배 역할을 제대로 한다.
어두운 배경이 화려한 고명과 함께 뽀얗게 우러난 국물의 색과 질감을 안아주고 맛깔스럽게 한다.
덤벙덤벙 썬 수육에 김치를 곁들인 고기 한 상에도 질그릇 특유의 두툼하고 투박한 미감이 잘 어울린다.
모름지기 같은 음식이라도
담아내는
그릇에 따라 맛과 향은 물론 건강 효과까지 달라지는 법이다.
장류나 김치와 같이 발효해 만든 식품이 아니더라도 대체로 옹기는 한식과 궁합이 좋다.
나는 유독 겨울에 옹기그릇에 음식을 담을 때 그에 어울리는 추억과 정서를 함께 식탁에 내어놓는 기분이다.
시골 출신이 아니라도 겨울 많은 눈이 내리는 날 옹기그릇을 보면 어느 집 장독대 위에 눈이 소복하게 쌓인 풍경이 떠오른다.
생각만 해도 포근하고 친근하다.
어릴 적 나의 어머니는 눈이 와서 바깥에 나가지 못하는 날, 그해 수확한 감이며 고구마, 밤, 옥수수 등을 항아리에 보관해 두었다가 겨울 간식으로 내주셨다.
한겨울에 맛보기 힘든 지난 계절의 수확물을 형제와 경쟁하며 허겁지겁 맛있게 먹느라 미처 깨닫지 못한 어머니의 살뜰함과 수고로움, 마음을 뒤늦게 가늠한다.
그립다.
그 옛날 독 안에 쟁여둔 먹거리와 살림 채비가 동날 즈음, 겨울을 보내고 봄을 기다리는 어른들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그 대신 한겨울 각자의 겨울나기에 분투할 식구들을 위해 테이블 위에 옹기 채반을 꺼내고 감과 귤을 넉넉하게 담아둔다.
용처와 사물의 모양이 달라도 그 안에 담는 인간의 마음이 다르지 않다.
틈만나면 배낭 메고 떠나던 직장인…도시 유목민 위한 베이스캠프 짓다
21세기는 꿈의 사회였다.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면서 세상의 모든 정보가 국경 없이 공유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장벽 없는 소통의 장이 열린 세상을 만들고, 다원화된 세상에서 해묵은 갈등이 치유될 것이라 믿었다.
그 꿈의 세기를 앞두고 자크 아탈리 프랑스 사회학자는 “21세기는 디지털 장비를 갖고 지구를 떠도는 디지털 노마드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정주민이 깊게 뿌리내린 세상에서 유목민이 설 자리는
없었다.
자유로운 생각과 정보의 흐름은 알고리즘을 타고 분열돼 서로에게 장벽을 세우고, 풍족하게 자산을 확보한 정주민은 빈부 격차를 늘리며 정처 없이 떠도는 노마드를 더욱 불안하게 했다.
덜 가지고 더 많은 것을 나누려는 노마드적 사고는 마땅히 거주할 곳이 없는 사람의 철없는 생각으로 치부됐다.
책에서 새틴은 2008년 미국 노스웨스턴대
연구팀이 케냐 유목민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우리에게도 유목민의 유전자가 남아 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연구 대상이 된 케냐 유목민 중 ‘DRD4-7R’ 유전자를 보유한 사람들은 오랜 유목 생활에도 체력과 영양 상태가 좋았다.
그는 10년 가까이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틈만 나면 배낭을 꾸렸다.
백패킹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즐기고 싶은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방식이었다.
백패커들은 딱 자신의 몸뚱어리를 누일 수 있는 크기의 가벼운 텐트와 침낭, 전기와 불 없이도 먹을 수 있는 소량의 물과 먹거리만 배낭에 넣고 산에 오른다.
캡처드서울은 숲속에서 보내는 고요한 아름다움을 동경하다가 만든 백패킹 용품 쇼룸이자 카페다.
김은준은 커피회사와 유통회사를 두루 거치며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경량화에 집중한 캠핑 용품 브랜드를 선정해 유통망을 확보했다.
매장은 ‘서울에 사로잡힌’ 사람이 편하게 숨 쉴 수 있도록
파주에 자리를 잡았는데, 너른 잔디밭에서는 종종 백패킹을 체험할 수 있는 행사를 열기도 한다.
파빌리온은 박람회 등지에 세워지는 임시 가설물이나 텐트다.
이 때문에 파빌리온은 노마드적 성격을 지녔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
캡처드서울에는 전시 목적으로 세워진 백패킹 전용 텐트가 설치돼 있고, 그 옆으로는 목재로 만든 덱 위에 지어진 카페가 있다.
테라스는 얇은 목재 기둥과 슬레이트 지붕으로 이뤄졌는데, 구조물 비중을 최소화하면서도 다양하게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고민이 잘 녹아들었다.
필요한 재료만 알맞게 골라 욕심을 버리고 꾸린 이 공간은 모두 노마드가 머물 법한 파빌리온이 된다.
예컨대 영국 런던 하이드파크에 있는 서펜타인갤러리에는 매번
건축가를 초빙해 만든 파빌리온이 설치돼 세간의 이목을 끌곤 한다.
하지만 유명한 건축가가 짓지 않아도 파빌리온은 도처에 있다.
그 모습은 너른 잔디밭에 펼쳐놓은 텐트가 되기도 하고, 방부목 기둥과 슬레이트 지붕으로 지어진 쇼룸이 되기도 한다.
다만 세상이 필요 이상으로 풍요로워지고, 그 풍요를 누구보다도 더 많이 가지고 싶어 정주민이 됐을 뿐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갖춘 정주민의 삶은 숨이 턱턱 막힐 만큼 바쁘고 힘들다.
서로가 가진 것을 비교하고, 서로에게 더 욕심을 내라고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유목민은 넓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즐기며, 나와 한 몸이 돼 움직일 수 있을 만큼만 가질 줄 알았다.
풍요로운
삶은 상대적일 뿐이다.
정주민이 점령한 서울을 벗어나 찾은 작은 파빌리온에서, 한 줌의 짐만 배낭에 넣고 떠나는 백패킹을 만났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즐기고자 하는 이들의 소박한 취미를 엿보며, 노마드의 역사에 담긴 지혜를 마음에 한 움큼 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