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노래

 

베를렌 ‘가을의 노래’에 얽힌 사연 [고두현의 아침 시편]

 

가을의 노래폴 베를렌
가을날바이올린 가락긴 흐느낌하염없이내 마음 쓰려라.
종소리가슴 메여나 창백히,
지난날 그리며눈물 흘리네.
쇠잔한내 신세모진 바람 몰아치는 대로
이리저리 불려 다니는낙엽 같아라.



프랑스 시인 폴 베를렌(1844~1896)의 시 중에서 가장 유명한 ‘가을의 노래(Chanson d’automne)’입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갑작스레 잃고 썼다고 하지요.
가을날의 쓸쓸한 마음을 부드럽고도 비애 섞인 리듬으로 잘 표현한 시입니다.
이 시는 그가 스물세 살 때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썼다고 하는데,
그녀는 어릴 때 함께 자란 사촌 누나였습니다.
금지된 사랑이었으므로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사연. 그녀가 다른 사람과 결혼했기에 더욱 그랬습니다.
첫 시집 <우수시집(憂愁詩集)>의 출판 비용을 대 준 것도 그녀였죠.
그러나 시집이 나온 이듬해인 1867년 그녀는 산고 끝에 병을 얻어 31세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충격을 받은 그는 폭우 속을 뚫고 장례식장으로 달려갔지요.
눈물과 빗물 범벅이 된 그는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술만 마셨습니다.
몇 달 뒤 그곳을 다시 찾은 그는 무덤 앞에서 생과 사의 경계를 생각하며 이 시를 썼습니다.
바이올린 가락의 ‘긴 흐느낌’과 종소리의 ‘가슴 메는’ 아픔이 영혼의 밑바닥을 건드립니다.
인간 내면의 바닥을 음악적인 상징으로 끌어낸 솜씨도 탁월하지요.
종소리의 ‘가슴 메는’ 느낌은 아스라한 옛날의 추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 같은 청각적 심상과 시각적 이미지가 가을이라는 계절과 어우러져 더욱 깊은 울림을 주지요.
베를렌은 근대 언어 음악의 선구자이자 상징주의 시의 주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첫 시집에서부터 상징주의 경향을 보였지요.
그를 비롯한 상징주의자들은 낱말의 음악성을 중시하면서 의미보다는 암시를 통해 시적 성취를 이루려고 했습니다.
단어의 소리를 바탕으로 일상적인 의미보다 더 강한 ‘마법의 주문’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지요.
그는 위대한 작품을 썼지만,
세속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이른바 ‘저주받은 시인들’ 중의 한 명이기도 합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온갖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으나 때로는 고집불통에 사고뭉치였죠.

결혼 후에도 안주하지 못했습니다.
매일같이 술에 취해 지냈고 툭하면 고함을 질러댔지요.
시인 랭보와의 파멸적인 동성애로 가정 안팎의 지탄까지 받았습니다.
결국 랭보에게 총을 쏘는 비극으로 둘의 관계는 끝났지만,
그의 정신적 공황은 이후 계속됐지요.
영화 ‘토탈 이클립스’에 나오듯이 그의 고통은 극단의 외로움과 맞물려 있습니다.
그의 시에서 느껴지는 아픔과 고독은 많은 독자의 공감을 얻었습니다.
불운한 인생에서 피어난 꽃이기에 시의 울림도 남달랐지요.

그의 시는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김소월의 스승이자 시인·번역가인 김억(金億)은 1920년 간행한 문학동인지 <폐허>에 베를렌의 시 20여 편을 번역해 실었습니다.
그는 특히 ‘가을의 노래’에 내재된 음악성을 번역어에 담기 위해 고심했지요.
나중에도 여섯 차례나 이 시를 여러 출판물에 실었습니다.
그때마다 문장을 손질하며 더 나은 번역을 모색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번역시집 <오뇌의 무도>에도 베를렌의 이 시와 함께 보들레르 등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들의 작품을 85편이나 수록했지요.
그가 원문의 풍부한 음악성을 얼마나 잘 담아내려 했는지 다음의 번역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가을의 날/ 비오론의/ 느린 오열(嗚咽)의/ 단조(單調)로운/ 애닯음에/ 내 가슴 압하라.// 우는 종(鐘)소리에/ 가슴은 막키며/ 낫빗은 희멀금,
/ 지나간 넷날은/ 눈압헤 떠돌아/ 아아 나는 우노라.// 설어라,
내 영(靈)은/ 모진 바람결에/ 흐터져 떠도는/ 여긔에 저긔에/ 갈 길도 몰으는/ 낙엽(落葉)이러라.’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유심작품상,
김만중문학상,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


만리포 홍시 같은 노을 속 당신! [고두현의 아침 시편]

만리포 사랑고두현
당신 너무 보고 싶어만리포 가다가
서해대교 위
홍시 속살 같은저 노을
천리포백리포십리포
바알갛게 젖 물리고옷 벗는 것보았습니다.


서해대교 위에서 홍시 속살 같은 노을을 만났습니다.
부드러운 안개를 보듬은 노을이 산등성이를 어루만지며 천천히 익어가는 풍경. 늦게 떠난 여행길을 행복하게 색칠해준 첫 번째 화폭이었지요.
‘만리포 사랑’ 노래비가 서 있는 해변에 닿았더니 ‘똑딱선 기적 소리’는 들리지 않고 저녁 백사장에 파도 소리만 잘브락거리고 있었습니다.
캄캄한 바다를 바라보며 오래 생각했지요.
여기까지 나를 밀고 온 그리움과 결핍,
겨울 바다보다 더 쓸쓸한 외로움,
모래밭에 남아있는 연인들의 발자국,
어린 날 파래를 뜯으러 혼자 갔던 기억….
밤바다에 서면 언제나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삶의 높낮이와 세월의 옹이들. 이럴 땐 눈 앞에 펼쳐진 수평의 바다를 잡아당기듯 마음의 보자기를 평평하게 펼쳐 봅니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마음들이 점차 평온해집니다.
밤바다가 주는 제일 큰 선물은 바로 이 순간이지요.
그렇게 가라앉은 마음으로 밤을 지내고 나면,
아침 해가 말갛게 다림질하며 바다 위로 지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새벽까지 뒤척이던 물결도 싱그러운 안개를 피워 올리며 다림질을 돕지요.
한나절을 보내고 나서 길을 되짚어 개심사로 향합니다.
호수를 끼고 한가로운 목장을 지나 오솔길을 돌면 고즈넉한 숲속에 닿지요.
‘세심동(洗心洞)’이라는 표지석을 발견하자 마음이 겸허해집니다.
개심사(開心寺)의 ‘개’자가 ‘고칠 개(改)’가 아니라 ‘열 개(開)’라는 것도 알게 되고요.
마음을 연다는 건 고친다는 것까지 아우르는 선경이죠.

마음을 씻고 5분 남짓 산길을 오르는 동안 발걸음이 느려집니다.
해탈문을 지날 때쯤엔 안과 밖을 구분하는 ‘마음의 문’조차 없어집니다.
경허 선사가 거처하던 곳을 지나 언덕배기를 오르면 발그레한 미인송 사이로 절집 전경이 내려다보이고 멀리 내포 땅이 아늑하게 다가오지요.
조금만 더 깨금발로 서면 만리포 물소리까지 들릴 듯합니다.
내려오는 길에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났는데,
10여 년째 세심동에서 커피며 라면이며 말린 산나물을 팔고 있는 분입니다.
얼마나 맑고 어리게(?) 보이는지 얼굴만 보면 동자승 같습니다.

그분은 ‘궂은일 안 하고 늘 이렇게 노니까’ 젊어 보인다며 환하게 웃습니다.
청량한 웃음소리에 산 아래 호수가 따라 웃고,
만리포도 덩달아 웃고,
여기까지 따라왔던 세속도시의 먼지들도 함께 웃으며 몸을 헹굽니다.
이틀 동안 이만한 그림을 화폭에 담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행복한 풍경화가 어디 또 있을까요.
할아버지 덕분에 ‘개심사에서’라는 시까지 한 편 더 건졌으니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개심사에서고두현
개심사 입구 세심동에어린 할아버지 한 분.지난 팔월에 팔순잔치 혔제여그서 한 십년취나물이며 은행 말린 거며
커피 사발면 같은 거,
대처에 나간 적 읎어할멈은 일흔 다섯,
살림하지건강 비결?평생 놀았지 센 일 안했어한량이여
아 취나물 안 살겨?


저 달빛엔 꽃가지도 휘이겠구나! [고두현의 아침 시편]

추석 전날 달밤에 송편 빚을 때서정주
추석 전날 달밤에 마루에 앉아온 식구가 모여서 송편 빚을 때그 속 푸른 풋콩 말아 넣으면
휘영청 달빛은 더 밝어 오고뒷산에서 노루들이 좋아 울었네.
“저 달빛엔 꽃가지도 휘이겠구나!”달 보시고 어머니가 한마디 하면대수풀에 올빼미도 덩달어 웃고달님도 소리내어 깔깔거렸네.달님도 소리내어 깔깔거렸네.


미당 서정주의 추석 시입니다.
한가위에 온 식구가 마루에 둘러 앉아 풋콩을 넣으며 송편을 빚는 모습이 따스하고 정겹죠.
단어도 모두 둥급니다.
달밤과 마루,
식구와 송편,
풋콩과 뒷산 노루,
대수풀과 올빼미가 휘영청 달님과 함께 깔깔거리는 정경이라니….
이처럼 한가위는 달빛이 가장 좋은 가을의 한가운데 달이자 팔월(음력)의 한가운데 날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천리길을 마다 않고 고향으로 향합니다.
“힘드니까 오지 마라”는 어머니 말씀은 해마다 꺼내 쓰는 사랑의 거짓말이지요.
선물 보따리를 들고 저마다 고향 집을 찾는 것은 그곳이 곧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의 품이기 때문입니다.
단풍 고운 길 가로 굴렁쇠처럼 보름달이 굴러가면 먼 산 능선 위로 그리운 얼굴들이 솟아오르고,
감나무 가지에도 주렁주렁 달이 열리는 곳.
고향 집이 ‘내 집’보다 ‘우리 집’인 것은 은은한 불빛 속에 장작 냄새가 배어 나는 우리들의 모태이기 때문이지요.
그 속에서 우리는 태중의 평화와 행복을 다시 느낍니다.
일찍 익은 벼로 떡을 찌고 햇것으로 속을 채운 올벼 송편의 맛은 또 어떤가요.
햇밤이며 대추,
콩,
팥의 풋풋한 향도 어머니 같습니다.
올해는 태풍이 없고 적당히 가문 데다 알맞게 비까지 내려서 알곡들이 더 잘 여물었다고 합니다.
온몸이 함박꽃인 어머니는 잘 익은 알곡처럼 손주들이 무럭무럭 자라라며 연신 손을 모읍니다.
쌀을 씻으면서도,
문밖을 내다보면서도,
하늘을 올려다보면서도 늘 그랬던 표정이지요.
추석을 지낸 다음에는 마디 굵은 저 손으로 땀 흘려 농사지은 고추,
참깨,
호박 등을 돌아가는 자식들 차에 또 바리바리 실어줄 것입니다.
올해는 추석 연휴 내내 날씨가 맑아 보름달을 잘 볼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넉넉하고 배부를수록 남을 돌아보는 것도 잊지 말 일입니다.
어디에서는 멀건 시래기국에서 달을 건져내는 사람이 있고,
달빛 가득한 빈 사발에 얼굴을 비춰보는 외로운 이도 있을 테지요.
서로를 찔러대던 가시 돋친 말들도 송편처럼 둥글둥글해지면 좋겠습니다.
어릴 때 잘못한 일들이 떠오를 때마다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달빛처럼,
탱자나무 가시 울타리를 노랗게 보듬어 안은 저 탱자와 유자처럼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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