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부터 신경외과 진료실에 앉아 뇌 MRI 사진을 봤다.
작년부터 이름이나 명사가 기억나지 않아 정확한 단어 대신 ‘그거,
저거’ 같은 대명사를 쓰는 순간이 반복되면서 혹시 치매가 아닌가 하는 불안이 몰려왔다.
결론적으로 뇌에는 이상이 없었다.
상태가 좋으니 10년 후에나 점검차 다시 찍자는 의사에게 “그런데 왜 이러죠?”라는
말을 반문했다.
MRI 사진이 걸려 있는 진료실에서 50대 중반의 의사는 내게 자신도 멀쩡한 척 앉아 있지만 어젯밤 아내와 대화 중 와인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버벅였고,
콘퍼런스에서도 말이 꼬이기 일쑤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도파민 범벅의 과도한 정보에 노출되는 20~30대에서도 엿보이는 현상이라고 했다.
그의 처방은 나쁜 음식을 줄이고,
기억나지 않는 단어가 있으면 바로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는 대신 스스로 생각해내고,
인터넷 사용을 줄이라는 것이었다.
‘하라’ 대신 ‘하지 말라’에 방점을 둔 의사의 처방을
곱씹다가 도파민 중독,
가속 노화,
단순 당처럼 내가 진료실에서 사용한 단어 중에 불과 몇 년 전이라면 쓰지 않았을 말이 수십 개가 넘는다는 걸 깨달았다.
정보가 쏟아져 들어오는 이 세계에서 선택 장애는 개인이 아닌 구조적 문제이며 나아가 기억력 감퇴로까지 확장된다.
오죽하면 도쿄 같은 대도시에 책이 딱 한 권 밖에 없는 서점이 인기를 끌까. 사물로 꽉 들어찬 방에서
원하는 가구를 들여놓을 수 있는 가장 빠른 법은 비우는 것이다.
무한대의 가능성이 종종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든다.
가끔 선택의 옵션을 아예 없애는 게 답일 때도 있다.
뇌의 과부하를 줄이기 위해 인터넷을 줄이는 것보다 주말에는 디지털 기기를 아예 끊는 쪽이 낫다.
담배를 줄이는 것보다 끊는 게 쉬운 것처럼 이럴 땐 100퍼센트 이행이 50퍼센트 이행보다 더 쉽다.
내가 보기에
더 심각한 문제는 과잉 정보로 파생되는 ‘의견의 과부하’다.
알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이 점점 더 많아지는 현실에서 더 중요한 건 할 것이 아닌 ‘하지 않을 것’을 결정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임대 문의’가 잔뜩 붙은 상가에도 최근 눈에 띄게 늘어나는 상점이 있다.
다양한 펫숍과 반려동물의 간식이나 장난감,
옷 등을 파는 상점들이다.
친구에게 고양이 스케일링을 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놀란 게 5년 전인데,
한 동물 유튜브 채널에서 강아지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카시트를 봤다.
백화점 한 팝업 스토어에서 유명 디자이너와 컬래버한 80만원대 강아지 명품 패딩도 봤으니 말을 말자. 요즘은 발랄한 견생과 묘생을 위한 24시간
무인 점포도 늘고 있다.
이제 인권뿐만 아니라 동물권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멸종 동물과 지구 기후 위기’에 대한 영어 토론 수업에서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질문을 들었다.
약대에 다니는 한 친구가 학교에서 2011년에 발생한
가습기 살균제 사고로 인한 동물들의 피해 상황과 관련된 동물권 수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보고되기 전인 2000년대 중반부터 일부 동물병원에서는 원인 미상의 급성 호흡곤란 반려동물이 집중적으로 발생했다는 보고가 있었다.
사람에 비해 몸집이 작고 약하니 그 피해가 어떠했을지는 상상하고도 남는다.
반려동물을 ‘우리 집 막내’라 부를 정도로 아끼는 집이 늘고 있다.
하지만 펫숍의 조명등 아래 진열되어 있는 아기 강아지들을 볼 때마다 귀엽지만 한없이 슬픈 건 어쩔 수가 없다.
하루가 다르게 팽창하는 관련
사업을 보면서 개 농장이나 유기견 안락사 같은 문제들도 늘 마음을 짓누른다.
작업실이 있는 오피스텔의 복도를 걸을 때,
되도록 발소리를 내지 않으려 노력한다.
나를 퇴근하는 보호자로 오해해 짖는 강아지에게 실망을 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언젠가 다큐멘터리에서 이런 질문을 본
적이 있다.
당신의 반려견은 어떻게 그렇게 당신을 빨리 반겨줄 수 있나? 정답은 반려견이 온종일 문 앞에서 당신을 기다렸다는 것이다.
혼자 사는 사람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어떤 존재는 더 외로운 시간을 견디기도 한다.
서럽게도 서로의 외로움에 기대어 살아가는 21세기적인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