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비 511배 증가에 의사수 7배 늘어?…통계의 함정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의과대학에서 의대증원과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를 논의하는 긴급 포럼이 열린 가운데 의대 교수들이 포럼장으로 향하고 있다.<BR> 연합뉴스 제공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의과대학에서 의대증원과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를 논의하는 긴급 포럼이 열린 가운데 의대 교수들이 포럼장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1977년 이래 우리나라 GDP는 116배, 국민 의료비는 511배나 증가했지만 이 기간 의사 수는 7배 늘어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의대 정원은 1380명에서 3058명으로 겨우 2.2배 증원됐다.
같은 기간 연간 배출된 변호사 수는 58명에서 1725명으로 30배 늘었다.

지난 6일 세종시에서 개최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대통령의 발언이다.
지난 45년 동안 의사의 집단이기주의 때문에 의사 수가 충분히 늘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통계의 힘으로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 너무 어설픈 보건복지부의 억지

물론 섣부른 의료개혁으로 정부와 국민을 궁지에 몰아넣고 의료 체계와 의학 교육을 뿌리째 뒤흔들고 있는 보건복지부가 허겁지겁 내놓은 황당하고 어설픈 억지 논리다.
'한강의 기적'이라고 알려진 GDP와 국민 의료비와 비교해서 의사 수와 의대 정원의 증가가 너무 적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겠다는 것이 보건복지부의 순진한 의도였을 것이다.
심지어 연간 배출된 변호사의 수도 의사의 경우보다 더 크게 늘어난 통계적 사실까지 들고 나왔다.

그런데 똑같은 통계의 힘으로 정반대의 해석도 가능하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의 인구는 3640만 명에서 5170만 명으로 1.4배가 늘어났다.
인구 증가와 비교하면 의사의 수는 5배나 너무 많이 늘어났고 의대 정원도 57% 더 많이 증가했다.

연간 배출된 변호사의 수 30배 증가도 한꺼번에 늘어난 것이 아니었다.
법학전문대학원 제도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졌고 그마저도 법대 정원 조정이 아니라 사법시험 폐지의 결과였다.
의사고시를 폐지해서 의사 수를 늘야 한다는 주장은 아무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변호사가 늘어나서 국민이 더 나은 법률 서비스를 받게 되었다는 주장도 일부 변호사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다.
변호사의 수가 늘어났다고 변호사 수임료가 저렴해졌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고질적인 '전관예우'도 여전하고 고위 관료로 임명되는 변호사의 천문학적인 '고액 수임료'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오히려 함량미달의 엉터리 '정치평론가'만 잔뜩 늘어나서 어지러운 정치판을 더욱 어지럽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어쨌든 보건복지부의 억지 통계 논리는 과일인 '사과'와 반찬으로 먹는 '김치'의 맛을 비교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시도였다.
미터 단위로 나타내는 '키'와 킬로그램 단위로 표시하는 '몸무게'를 비교하겠다는 엉터리 시도와 같은 것이기도 하다.
통계의 비교는 공통의 특성을 공유하는 경우나 인과성·상관성이 확실하게 확인된 경우에만 가능한 것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통계의 상식을 무시한 보건복지부의 억지 논리가 대통령 발언의 품격까지 떨어뜨렸다.

●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

통계는 본래 일확천금을 꿈꾸는 도박꾼에게나 유용한 개념인 확률에서 시작됐다.
도박이 확률에 의해 지배된다는 사실을 처음 인식했던 사람은 로마의 마르쿠스 키케로였다.
확률을 뜻하는 '프로발리스(probalis)'를 처음 사용한 사람도 키케로였다.
그러나 고대 사회에서 신의 섭리(攝理)를 부정하는 확률은 함부로 들먹일 수 없는 금기였다.

그런 확률을 수학 이론으로 정리해서 통계의 기반을 마련하기 시작한 것은 종교의 억압이 느슨해지던 16세기 무렵부터였다.
밀라노의 수학자 지롤라모 카르다노가 확률 이론의 선구자였다.
카르다노가 훨씬 더 작은 규모의 '표본'에서 얻은 확률로부터 실제 게임의 결과를 짐작할 수 있다는 놀라운 '통계적' 사실을 밝혀냈다.

많은 수의 임의적 개체로 이뤄진 집단에서 발견되는 통계적 특성도 확률과 깊은 관계가 있다.
예를 들어 개인의 신체적 특징이나 수명은 합리적인 분석·예측이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대규모 집단에서는 사정이 달라진다.
작은 집단에서 볼 수 없는 '큰 수의 법칙'이 적용되면서 통계적 '평균'과 '분포'가 수학적 의미를 갖게 된다.

통계는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강력한 주장을 앞세운다.
실제로 숫자와 그래프로 표시되는 통계의 위력은 대단하다.
백 마디 말보다 하나의 통계 숫자가 복잡한 현실을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중구난방(衆口難防)처럼 보이는 복잡한 현실도 통계로 분석하면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분명한 특징이 드러나게 된다.

17세기 영국의 윌리엄 페티가 처음 주장했던 '정치산술'에 의해 시작된 통계적 분석이 이제는 복잡한 사회·경제 현상을 분석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를 잡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실제로 오늘날 통계는 개인의 차원에서는 절대 확인할 수 없는 경제 상황을 진단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가장 유용한 사회과학적 분석 수단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현대 국가들은 대부분 통계청의 독립성을 보장해주기 위해 노력한다.
잘못된 통계가 엉뚱한 진단으로 이어져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통계가 자연과학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19세기 말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루트비히 볼츠만에 의해 정립된 통계열역학은 물론이고 현대 과학의 가장 중요한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양자역학도 근본적으로 통계적 해석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양자론의 정립에 누구보다 중요한 역할을 했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에르빈 슈뢰딩거는 끝까지 물리 현상의 통계적 해석을 인정하지 않았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아인슈타인의 명언이 바로 그런 뜻이었다.

그런 통계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기도 한다.
'톰 소여의 모험'으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은 100여 년 전의 자서전에서 '세상에는 세 가지 거짓말이 있다.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라고 했다.
빅토리아 시대의 벤저민 디즈데일리 총리도 통계 조작의 유혹에 시달리던 자신의 심정을 같은 말로 표현했다.
통계가 만들어낸 숫자가 거짓말이나 새빨간 거짓말보다 더 심한 속임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통계를 생산하는 일부터 쉽지 않다.
이론적으로는 전수조사에 의한 통계는 불가능하다.
자료를 수집해서 통계적으로 분석하는 과정에 무한히 많은 비용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통계는 제한적인 표본 조사에 의존해서 생산할 수밖에 없다.
표본의 규모와 구성, 그리고 수집하는 자료의 정확도에 따라 통계의 품질이 달라진다.
그래서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온다(Garbage in, garbage out)'는 것이 통계의 철칙이다.

지난 정부에서의 '부동산 통계 조작'이나 '재정 통계 논란'은 그런 원칙을 무시했기 때문에 발생한 논란이었다.
이제라도 국가 통계를 문란하게 만든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제한적인 표본에 대한 자의적인 질문으로 생산되는 '여론조사'에 대한 신뢰도가 높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다.

통계를 생산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이 통계의 해석과 활용이다.
통계가 언제나 우리가 원하는 결론을 제시해주는 것은 아니다.
어떤 자료를 어떻게 수집해서 어떻게 분석했는지에 따라서 통계에 포함되는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통계의 정체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면 엉뚱한 해석이 가능해진다.
경제 현실을 분석한 통계를 두고 경제 전문가들이 각양각색의 해석을 쏟아낼 수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통계가 만능의 수단은 아니라는 뜻이다.
통계를 근거로 '사과'와 '김치'의 맛을 비교하겠다는 보건복지부의 억지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 사교육 시장의 배만 불려주는 의료개혁

의대의 입학정원을 한꺼번에 65%나 증원하겠다는 시도는 의료 체계와 의사 양성 제도의 현실을 통째로 무너뜨리는 비현실적인 폭거다.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그런 폭거를 시도하지 않는다.
2025학년도 입학정원의 증원은 확실한 관행으로 굳어진 '대학입시 4년 예고제'를 명시하고 있는 '고등교육법'을 무시한 불법적인 시도이기도 하다.

의대 증원의 부작용은 매우 심각하다.
의학 교육만 부실해지는 것이 아니다.
6년 후에는 인턴·레지던트·펠로우의 수련도 불가능해진다.
현재 절반을 넘는 전국의 100개 수련병원의 전공의·전임의 비중이 90%에 가까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전문의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상급종합병원을 무작정 수련병원으로 전환할 수도 없다.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종합병원의 전문의 중심 운영'을 위해서는 의대의 입학정원의 증원이 아니라 오히려 큰 폭으로 줄여야만 하는 형편이다.

의대 쏠림이 심각한 상황에서는 이공계 교육도 위험할 정도로 흔들리게 된다.
신입생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최상위군 학생들이 몰려드는 의대의 규모를 키우면 상위권 대학의 자연대·공대·약대 등의 이공계 학과 재학생은 썰물처럼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
상위권 대학에만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입학시험이 끝난 후에도 전국의 모든 대학이 재학생들의 연쇄 이동으로 감당할 수 없는 몸살을 앓게 될 것이다.

사교육 카르텔의 배만 잔뜩 불려주는 보건복지부의 설익은 의료개혁은 손질을 할 수밖에 없다.
응급실 뺑뺑이와 소아과 오픈런을 해결하기 위해서 '의대 증원'을 할 수밖에 없다는 보건복지부의 주장은 처음부터 설득력이 없는 궤변이었다.

※필자소개

이덕환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 교육, 에너지, 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9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의대 증원 앞서 행위 아닌 ‘가치’ 기반 의료체계 갖춰야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제공.

홍윤철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가 13일 한림원회관 성영철홀에서 열린 ‘제220회 한림원탁토론회’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제공.

정부와 의료계가 의대 정원 확대 문제를 두고 갈등을 겪고 있는 가운데 의료계는 정원 확대에 앞서 의료수가 정상화, 법적 부담 완화가 먼저 진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행위가 아닌 성과 중심의 가치기반의료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김성근 가톨릭대 의대 교수는 13일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필수의료 해결을 위한 제도적 방안’을 주제로 주최한 제220회 한림원탁토론회에서전공의들은 목숨 바쳐가며 코로나19와 싸웠던 사람들이라며 이들이 현장으로 돌아올 수 있게 도와달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전공의 복귀를 위해서는 필수의료 개선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선 몇 가지 선결조건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필수의료를 해결하려면 선결조건으로 의료 수가 정상화, 법적 부담 완화, 인력 확보 정책, 취약지 의료기관 지원 확대 순으로 절차가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필수 인력 가산 수가, 고위험 및 고난도 수술 수가, 야간 휴일 등 정책 가산 수가, 소아 진찰료 등 공공정책수가 개선을 언급하며 전반적인 수가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강조했다.

의료 사고 안전망 구축에 대해서는 피해자 권리 구제에 대한 국가책임부담제가 빠졌다고 지적했다.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수련 비용 지원 시에는 인건비에 지도 전문의 등에 대한 수당을 모두 포함해야 한다는 의견도 냈다.

홍윤철 서울대 의대 교수는 ‘필수의료 해결방안’을 주제로 통계청의 국내 인구 추계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외래·입원 수요량, 의사인력 공급 현황 등에 대한 추계를 분석·발표했다.
홍 교수는 “의료 수요 증가는 인구 변화 때문에 생긴 것이라며 급격한 속도로 노령인구의 비율이 늘어나 적어도 단기간에는 의료 수요 늘어날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인구 감소로 의료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수가 문제에 대해서는 행위를 기반으로 한 수가 제도에서 의사는 과도한 노동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며 치료율 향상, 사망률 감소 등 성과와 질, 가치를 중심으로 한 가치기반의료체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홍 교수는 ”상급 병원 중심의 의료 체계에서 권역책임의료기관, 지역책임의료기관이 연결돼 같이 책임지는 네트워크 기반의 의료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며 “이를 통해 국민들이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으며 의사도 그 가치에 대해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 만족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큰 사람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필자는 몇 해 전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병문안을 온 친구에게 번거롭게 먼 길 오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냥 으레 아니라고 괜찮다고 할 줄 알았는데 친구의 반응은 그런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는 듯 “내가 오고 싶어서 내 발로 왔는데 왜 네가 미안해 해?”였다.

작은 희생에도 ‘내가 너를 위해 이런저런 희생을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고마워해라’ 모드가 되는 것이 보통인데 그렇지 않은 친구가 조금 신기하기도 했다.

자발적으로 타인을 위하는 행동을 하고서도 되돌려 받길 기대하고 그게 안 될 경우 금방 서운해하고 후회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비교적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이 차이는 뭘까.

암스테르담 자유대(Vrije Universiteit Amsterdam)의 심리학자 프란체스카 리게티(Francesca Righetti)는 약 130쌍의 커플들을 대상으로 일주일간 매일매일 두시간마다 한번씩 지금의 기분 상태, 파트너를 위해 희생적인 행동을 했는지, 그 행동을 얼마나 후회하는지 물었다.

그 결과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심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상대방을 위한 작은 희생에도 금방 후회하고 이때문에 좋은 일을 하고서도 기분이 나빠지는 경향을 보였다.

이렇게 파트너에게 사랑과 관심을 주고 금방 후회하는 경향은 1년 후 삶의 만족도와도 관련을 보이기도 했다.
사랑과 관심을 주고 금새 후회해 버릇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1년 후 삶의 만족도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누가 억지로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발적으로 일상적인 수준의 작은 도움을 준 것으로도 쉽게 후회하는 이유는 뭘까.

일반적으로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큰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싶고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큰 사람들이다.
따라서 상대방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남달리 많은 노력을 쏟는다.
이 사람이 원하는 게 뭔지, 내가 뭘 어떻게 해야 좋아할지이렇게 하면 나를 싫어하진 않을지 계속해서 신경 쓰고 딱히 상대방이 요구하지 않아도 뭔가 하려고 하는 등 과한 노력을 쏟는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실제’ 도움 행동이나 희생적인 행동에 있어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큰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클수록 잘 보이려고 많은 애를 쓰지만 그만큼 그 행동이 좋은 결과를 내지 않을 것에 대한 ‘걱정’과 ‘망설임’이 크기 때문이다.
속으로만 치열하게 고민할뿐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남들보다 많은 에너지를 쓰는 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노력이 과한만큼 기대 또한 크다.
(속으로) 많은 애를 썼으므로 상대방에게도 비슷한 수준의 노력을 기대하지만 노력이 상대에게 겉으로 보이지 않아서 잘 전달되기 어렵거니와 애초에 수준이 과해서 그만큼의 보답을 받기란 쉽지 않다.

결국 같은 수준의 희생을 해도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심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기쁨보다 서운함이 더 크다.
관계를 좋게 만들겠다고 애쓴 결과가 행복이 아니라 서운함과 후회, 상처받은 마음이라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또한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큰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타인을 잘 신뢰하지 못하기도 한다.
타인이 사랑과 감사 등 보답의 신호를 보내도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할리가 없다거나 다른 꿍꿍이가 있을거라는 둥 타인의 관심과 사랑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니까 타인이 보답을 해와도 이를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바람에 보답의 효과를 보지 못한다.

정리하면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클수록 과하게 애쓰는 바람에 그만큼 보답받지 못하거나 보답을 받아도 그걸 받아들이지 못해 서운함만 커진다는 것이다.

혹시 관계에서 이와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면 지나치게 애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만큼 애쓰지 않아도 사실 나의 파트너는 나를 꽤 좋아하고 있는 게 아닌지, 파트너를 향한 나의 신뢰가 낮은 게 문제는 아닌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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