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서 뇌 시상하부 뉴런의 섬모 길이가 짧아진 것이 중년 비만의 원인으로 밝혀졌다. Sean S/Unsplash
나이가 들면서 뇌 시상하부 뉴런의 섬모 길이가 짧아진 것이 중년 비만의 원인으로 밝혀졌다. Sean S/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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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하게 식사량이 늘어난 것도 아닌데 중년이 되면 갑자기 살이 붙는 경험을 하는 이들이 많다. 미국의 경우엔 50살 때의 체중이 젊은 시절보다 평균 15kg 더 나간다는 국립보건원 통계가 있다. 노화로 인해 기초대사량이 저하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근육량과 활동량이 줄어드니 똑같은 양의 식사를 하더라도 에너지가 소비되지 않고 몸 안에 지방으로 축적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년 비만을 초래하는 생리적 과정이 과학적으로 규명된 것은 아니다.

나고야대가 중심이 된 일본 연구진이 생쥐 실험을 통해 뇌의 시상하부 뉴런(신경세포)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중년 비만의 핵심 고리라는 사실을 밝혀내 국제 학술지 ‘셀 메타볼리즘’에 발표했다.

아몬드 크기만 한 시상하부는 신진대사와 식욕을 조절하는 뇌 영역으로, 대뇌 안쪽 좌우에 나란히 있는 시상의 아래쪽에 있다. 연구진은 시상하부 뉴런 말단에 더듬이처럼 나 있는 일차섬모에 주목했다. 이 섬모에는 영양 과잉을 감지하고 신진대사와 식욕을 조절해 비만을 예방해 주는 ‘멜라노코르틴4 수용체’(MC4R)라는 단백질이 있다. 모든 세포에는 섬모가 있는데, 뉴런에는 1개씩의 일차섬모가 있다.

뇌 시상하부 뉴런의 섬모가 짧아져

연구진은 실험 결과, 생쥐의 나이가 들수록 일차 섬모가 짧아지면서 이 수용체의 기능이 약해지고, 이것이 체중 증가를 유발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일차섬모가 비만에 관여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일차섬모의 길이가 나이가 들면서 짧아지는 것을 확인한 것은 처음이다.

연구진은 우선 생쥐의 뇌에 이 수용체 단백질 어떻게 분포해 있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이 수용체가 시상하부 뉴런의 특정 부분에만 집중적으로 존재한다는 걸 알아냈다.

연구진은 이어 생후 9주가 된 어린 쥐와 6개월 된 중년 쥐의 뇌에 있는 일차섬모의 길이를 측정했다. 그랬더니 중년 쥐의 섬모가 젊은 쥐의 섬모보다 훨씬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중년 쥐의 신진대사와 지방연소 능력이 젊은 쥐보다 떨어지는 것과 일치하는 결과다.

연구진은 다음으로 생쥐에게 다양한 영양 구성의 식단을 공급하면서 쥐의 섬모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살펴봤다. 그 결과 고지방 식단을 섭취한 쥐의 섬모는 더 빠른 속도로, 열량이 적은 식단을 섭취한 쥐의 섬모는 더 느린 속도로 짧아진다는 걸 발견했다.

열량 줄인 식사 공급하자 섬모 다시 살아나

연구를 이끈 나카무라 가즈히로 교수는 “우리는 사람한테도 비슷한 기제가 작동한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발견이 근본적인 비만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흥미로운 건 나이가 들면서 사라졌던 섬모가 2개월 동안 열량을 줄인 식단을 섭취한 뒤 다시 나타났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또 유전공학 기술을 이용해 섬모가 더 짧은 생쥐를 만들어 실험한 결과, 생쥐들의 음식 섭취량이 증가하고 신진대사가 감소하는 걸 발견했다. 연구진은 이어 이 생쥐의 뇌에 렙틴 호르몬을 투여해 봤다. 렙틴은 식욕을 떨어뜨리는 호르몬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쥐의 식욕이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섬모가 짧아지자 렙틴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논문 제1저자인 미나미 오야 박사는 “렙틴 저항성이라고 불리는 이 현상은 비만 환자들한테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오랫동안 그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비만 환자의 경우 지방 조직이 렙틴을 과도하게 분비해 포식 신호분자인 멜라노코르틴의 작용을 만성화한다. 연구진은 이것이 노화와 관련한 섬모 길이 단축을 촉진해 멜라노코르틴이 제 기능을 못하도록 하는 비만의 악순환을 초래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연구진은 종합적으로 노화와 함께 섬모 길이가 짧아지는 것이 생쥐의 중년 비만과 렙틴 저항성을 유발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연구진은 바로 이 대목에 비만 예방 또는 치료의 돌파구가 있다고 본다. 나카무라 교수는 “적절한 식습관으로 섬모가 짧아지는 것을 방지하면 나이가 들어도 뇌의 항비만 시스템을 정상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또 노화에 따른 퇴행은 다른 일차섬모에서도 일어날 수 있으며, 이것이 다양한 질병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