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복귀 설득해야 할 교수들이 삭발에 사직까지

5일 오전 강원 춘천시 강원대학교 의과대학 앞에서 의대 교수들이 대학 측의 증원 방침에 반발하며 삭발하고 있다.<BR> 앞서 강원대는 교육부에 현재 49명에서 140명으로 의대 정원을 늘려달라고 요청했다.<BR> 연합뉴스

5일 오전 강원 춘천시 강원대학교 의과대학 앞에서 의대 교수들이 대학 측의 증원 방침에 반발하며 삭발하고 있다.
앞서 강원대는 교육부에 현재 49명에서 140명으로 의대 정원을 늘려달라고 요청했다.
연합뉴스

의과대학 교수들이 정부의 의대 2천명 증원 방침에 반발하며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들의 복귀를 설득하기는커녕 되레 집단행동에 가세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전공의들에 대한 행정처분이 임박하자, 교수들이 사직 의사를 밝히는가 하면 삭발 투쟁에 나선 것이다.
응급·중증 환자 치료의 최전선에 있는 의대 교수들이 본분을 망각한 채 제자들의 안위만 걱정하고 있을 때인가.

충북대병원 심장내과의 한 교수는 5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면허 정지 처분을 하는 정부나 총장들의 무분별한 의대 정원 숫자 제출에 분노를 금할 길이 없다며 사직 의사를 밝혔다.
전날 ‘교수직을 그만두며’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한 경북대병원의 한 외과 교수도 “우는 아이한테 뺨 때리는 격으로 정부가 협박만 하고 있다며 항의했다.
강원대 의대 교수들은 같은 취지로 삭발식을 벌였다.
정부가 전공의에 대한 면허 정지 절차에 착수하는 한편, 전국 40개 의대의 증원 규모 배정에 속도를 내자 강하게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가뜩이나 전공의·전임의 이탈로 의료진이 부족한데 교수들마저 가세해 의료 공백 우려를 키우겠다는 것인가. 의대 교수들은 학교 강의와 임상 진료를 함께 맡고 있다.
일부 병원에선 교수들이 강의만 하는 방식으로 겸직 해제를 신청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제자를 지키겠다’는 교수들의 격앙된 모습에 국민들은 우려를 금치 못한다.
더군다나 교수들은 ‘의대 증원은 의사와의 합의를 통해서만 정할 수 있다’는 고압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정부가 각 대학을 대상으로 총 3401명의 의대 증원 신청을 받자, 비전공자인 대학 총장 등이 자신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밀어붙였다고 반발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대표들은 의대 증원과 후속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까지 냈다.
하지만 의대 학장들은 지난해 정부 수요조사에선 최소 2151명을 늘려달라고 해놓고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에 들어가자 ‘350명이 적절하다’고 입장을 바꾼 바 있다.
350명은 2000년 의약분업 사태 때 정부가 의사단체 요구로 의대 정원을 10% 감축해준 규모를 회복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의대 교수들이 진정 제자를 지키려면 전공의들이 돌아오도록 설득해야 한다.
그리고 의대 증원을 포함한 의료개혁 과제를 놓고 정부와 머리를 맞대야 한다.
2천명 증원에 따른 의학교육 부실 우려도 정부와 함께 해결책을 강구할 일이다.
정책 반대만 외치기엔 교수들이 서 있는 자리의 무게감이 크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란다.

김윤은 왜 의사들의 ‘공적’이 됐나 [김영희 칼럼]

최근 의대 증원에 찬성하거나 전공의들의 병원 이탈에 반대하는 의사들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지만 대부분 익명이다.
‘배신자’를 낙인찍는 의사들의 집단문화가 그만큼 강고하고 폭력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달 20일 문화방송 ‘100분 토론’에 의대 증원 찬성 쪽 패널로 출연한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왼쪽)와 반대 쪽 패널인 이동욱 경기도의사회 회장이 토론하는 모습. 유튜브 갈무리

지난달 20일 문화방송 ‘100분 토론’에 의대 증원 찬성 쪽 패널로 출연한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왼쪽)와 반대 쪽 패널인 이동욱 경기도의사회 회장이 토론하는 모습. 유튜브 갈무리

김영희│편집인

 지난주 뉴욕타임스는 미국 뉴욕에서 가장 가난하고 조기 사망률이 높은 자치구인 브롱크스에 있는 아인슈타인 의대의 무상교육 실시 소식을 전했다.
이곳 교수 출신의 93살 현 이사장이 형편이 어려운 이들로 학생층을 더 넓혀달라며 10억달러(약 1조3360억원)를 기부한 덕이다.
미국 사회의 저력을 느끼게 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부러워하다가, 이 학교 학생 절반이 20만달러 학자금 빚을 안고 있다는 대목에 눈길이 갔다.

한국 의대생은 어떨까. 3년 전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실이 입수한 한국장학재단 자료를 보면, 2020년 전국 의대 신입생 가운데 소득 1~8구간 해당자는 19.4%였다.
소득 9·10구간이 80%가 넘는 셈이다.
반면 미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미 의대생의 50% 정도가 소득 상위 20% 가구다.

부유하다고 의사로서의 사명감이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사교육을 비롯한 투자가 아무리 많았다고, 환자보다 돈을 앞세우는 의사가 많을 것이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의대 증원이 추진될 때마다 극단적으로 터져 나오는 의사들 반발이 돈벌이와 무관하다고 볼 국민은 거의 없다.
적어도 이번에 의사 집단이 비급여항목 끼워팔기를 막는 혼합진료 금지를 비롯한 필수의료 패키지의 백지화까지 요구하지 않았다면, 그나마 이해를 얻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전공의의 값싼 장시간 노동에만 의존하는 병원, 이런 희생을 당연시하는 정부와 사회,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의 2.6배인 1인당 외래진료, 필수과는 기피과가 되고 미용·성형 쪽만 성행하는 구조가 진짜 문제라고 생각은 하는 건가? 그랬다면 정부에 말만 하지 말고 필수의료 패키지를 뒷받침할 재정계획과 구체적 목표를 약속하라고 압박하는 게 상식이다.
‘2천명’을 신주단지처럼 모시며 강경으로만 치닫는 정부 대응과 당분간 더 심해질 의대 쏠림에 우려가 크지만, 단 하나의 기득권도 놓지 않겠다는 의사집단의 ‘민낯’을 본 여론이 좀체 의사들 쪽으로 돌아서진 않을 것이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는 의사들의 ‘밥그릇’ 문제를 적나라하게 지적해온 거의 유일한 의료계 인물이다.
지난달 문화방송 ‘100분토론’에선 의사의 공급 부족을 설명하면서 2019년 2억원 남짓하던 종합병원 봉직의 연봉이 최근 3억~4억원까지 올랐다고 말해 의사들의 반발을 샀다.
토론 직후 대한의사협회는 ‘교수님! 제자들이 왜 그러는지는 아십니까’ 제목의 신문 광고를 내며 그를 사실상 공개저격했다.
지난해 10월엔 선진국의 다양한 사회경제적 배경의 의사 선발노력을 언급한 뉴스1 칼럼에서 “성적 상위 1%만 실력 있는 의사가 된다는 주장은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가짜뉴스라고 써 의료계를 뒤집어놨다.
의협이 징계 방침을 밝히고 대한개원의협의회는 그가 참석하는 모든 회의체에 불참한다는 성명을 냈다.

사실 김윤은 응급실 문제나 의료전달체계 개선에 방점을 둬왔던 전문가다.
지금도 의대 증원보다 의사 배분과 전달체계 개선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본다.
‘전 정부 사람’으로 분류된 탓인지, 현 정부가 이번 정책 수립에 그의 의견을 들은 일도 없다.
왜 김윤은 정부를 지지해달라고 호소하며 의사의 ‘공적’을 자처할까.

인턴을 마치고 “약자들이 좀 나아지는 사회에 기여하고 싶어 택한 의료관리학에서 그의 첫 주요 관심은 응급의료체계였다.
1995년, 1997년 잇달아 연구 결과를 내놓으며 깨달은 건 “정부가 움직이지 않으면 좋은 정책 제안도 소용없다는 것이었다.
1999년 ‘예방 가능한 외상 사망’을 공동연구해 보건복지부에 제출했다.
골든타임 내 신속하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비율을 의무기록을 토대로 조사하니 50%가 넘었다.
“하지만 정부는 대외비로 보고서를 분류하더라.

다음해 한국방송이 이 자료를 입수해 취재를 더해 연이틀 9시 뉴스의 머리로 보도하자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국회가 나서 응급의료기금이 대폭 확대됐다.
“그런데 보도 당시 의사들의 첫 반응은 ‘누가 흘렸냐’는 것이었다.
이번이 기회니 고쳐보자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의사 집단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계기였다.
이후 주치의제도, 의료전달체계, 수가 같은 지불제도 개선 작업에 참여하면서 번번이 의사들의 강고한 벽에 부딪혔다.

의사들에 대한 설득을 ‘포기’한 그는 지난해 50편 가까운 칼럼을 각 매체에 기고하며 의료개혁의 필요성을 직접 국민에게 알리는 데 나섰다.
“정말 몇년 안에 의료체계가 무너질 것이라는 위기감 때문이다.
10년 뒤 고령화만 문제가 아니다.
당장 2026년께부터 세브란스·아산·서울대 등 수도권에 건설 중인 전체 6천여 병상 병원들이 예정대로 개원을 시작하면 그나마 남아있던 지방병원 의사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의대 증원은 어떤 정부가 들어서도 다시 추진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이번에 안되면 다음엔 3천, 4천이 될 거다.
이건 정치적 숫자가 아니라 사람들이 느끼는 심각성과 고통에 비례해 커지는 것이니까.

최근 의대 증원에 찬성하거나 전공의들의 병원 이탈에 반대하는 의사들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지만 대부분 익명이다.
‘배신자’를 낙인찍는 의사들의 집단문화가 그만큼 강고하고 폭력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에스엔에스나 댓글 등에서 그를 향한 공격과 비난은 일상이 됐다.
“동기나 선후배들과 대놓고 싸우는 건 피하려고 해왔다.
에둘러 말하거나 유보적 조항을 붙이고. 하지만 의사집단에 소속돼 있다는 생각을 벗어나자고 마음을 먹으니 정말 자유로움을 느끼게 됐다.

때론 그의 문제 제기 방식이 지나치게 거칠고 도발적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의사집단의 반대를 뚫지 않으면 의료개혁은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음이 분명해졌다.
김윤의 외로운 싸움을 응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편집인 dora@hani.co.kr

필수의료 공백 커지는데…의대 증원 ‘대치’ 어떻게 푸나

의대 증원 찬성 쪽 전문가들 제언
정부, 근무단축 등 명확히 제시해야
전공의들, 병원 돌아와 대화 응해야

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 앞에서 열린 전국의사 총궐기대회에 참석한 의사들이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반대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BR> 이날 대한의사협회는 전국에서 의사 4만명이 모였다고 밝혔다.<BR>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 앞에서 열린 전국의사 총궐기대회에 참석한 의사들이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반대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이날 대한의사협회는 전국에서 의사 4만명이 모였다고 밝혔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3일 전공의(인턴·레지던트) 집단행동이 2주 가까이 진행되면서 의료 공백 우려가 커진다.
그럼에도 정부는 대한의사협회(의협)가 대표성이 없다면서도 다른 대화 창구를 찾지 못하고 있고, 전공의들은 집단행동을 풀지 않을 태세다.
양쪽 모두 대치만 하는 상황에서, 의료 공백을 먼저 해소하고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겨레는 의대 증원에 찬성하는 전문가들에게 대치 국면을 풀 조언을 들었다.

우선 정부가 처우 개선 등 전공의들이 체감할 만한 방안을 제시해 대화의 여지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전공의 법정 최대 근무시간(현 주당 최대 80시간) 축소, 전문의 중심 병원 구축 등을 줄곧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의 답은 부족했다.

보건복지부는 의대 정원 2000명 확대와 필수·지역의료 수가(진료비) 인상, 국립대병원 강화 방안, 인력 확충 등 필수의료 패키지를 제시했다.
하지만 근무시간은 ‘연속근무 시간 상한(36시간)을 단축하는 시범사업을 추진한다’ 수준에 그쳤다.
또 국립대 교수 1000명 증원 계획을 내놓았지만, 사립대병원 전문의 비중 확대 방안은 ‘공란’이었다.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교수(이비인후과)는 “입원 전담전문의, 중환자실 전담전문의 등 다양한 전문의가 대학병원에 충분히 있어야 수련 중인 전공의들의 업무 부담이 줄어든다며 “상급종합병원 지정·평가 때 전문의 채용 기준을 대폭 올리는 등 관련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짚었다.

재정 투입 방안도 의사들 사이에 의구심을 일게 했다.
필수·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해 5년간 10조원을 투입한다지만 예산 투입 없이 국민건강보험 재정만 쓴다고 했다.
이경수 영남대 의대 교수(예방의학)는 “(국민 반발이 큰) 건강보험료 인상은 건드리지 않은 채 건강보험 재정을 10조원 끌어 쓰겠다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고 말했다.
전공의들이 전문의가 돼 필수의료 분야에서 안정적으로 일하기 위해선 정부의 재정 투입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최명석 농어촌의료취약지 병원장협의회 총무는 “의료 취약지 병원들이 적자 부담 없이 필수과 의사를 채용할 수 있도록 정부 재정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윤석열 대통령 등 정부가 ‘2000명 증원’을 고집하는 상황이긴 하지만 정부와 의사 단체, 환자 단체 등이 협의체를 구성해 증원 규모를 논의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신영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정부·의협 외에도 여러 단체가 전문가를 추천해 추계위원회를 구성하고, 여기에서 나온 결론은 각계가 따르기로 합의하는 방식을 검토할 만하다고 제언했다.
이경수 교수도 “증원 규모를 6주 동안이라도 전문가들을 모아 집중 논의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동시에 전공의들은 ‘장외 투쟁’을 멈추고 의료 현장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0년 집단 진료 거부 때는 환자 생명과 직결되는 응급실·중환자실 등에선 진료를 유지했지만, 이번엔 구분 없이 떠났다.
독일에서 의사 노조인 ‘마르부르거 분트’가 2005년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대규모 파업을 하면서도 필수의료 진료는 유지하는 등 외국에서도 드물다.
정형 연세대 교수(보건행정학)는 “전공의들이 자기 업을 지속하는 상태에서 협상에 나서야 (정부와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녹색정의당은 기자회견을 열어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을 논의할 공론화위원회 구성을 제안하면서 “당장 (전공의) 전체 복귀가 어렵다면 2020년 투쟁 때처럼 응급실, 중환자실, 수술실부터 먼저 복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임재희 기자 limj@hani.co.kr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의대 증원 반대’ 거리 나선 의협, 국민 원성 안들리나

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 앞에서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반대하는 의사들이 모여 전국 의사 총궐기대회가 열리고 있다.

이날 대한의사협회는 전국에서 의사 3만명이 모였다고 밝혔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대한의사협회가 3일 오후 서울 여의대로 일대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정부가 추진하는 의대 정원 증원을 중단하라는 게 핵심 요구다.
의협은 이번에도 의사들의 동의 없이는 어떤 의료정책도 펴서는 안 된다는 오만한 태도를 드러냈다.
그동안 의료계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이 논의될 때마다 보여온 모습 그대로다.
의료정책은 의사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편협한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필요한 일이 뭔지 숙고하기 바란다.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주최로 이날 열린 ‘전국의사 총궐기대회’에서 김택우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사가 절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정책을 ‘의료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일방적으로 추진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수십년간 정부가 의사들이 원하는 정책만 펴온 결과가 공공·지역·필수의료의 붕괴라는 걸 몰라서 하는 말인가. 사회적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의 반대에 막혀 십수년째 의사 수를 못 늘리는 나라가 한국 말고 또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또 김 위원장은 “중생을 구하기 위해 자기 몸을 태워 공양한 등신불 운운하며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 움직임을 두둔했다.
전공의들이 대거 병원을 비우면서 환자들이 수술을 제때 못 받는 등 큰 고통을 겪고 있는데 감히 입에 올릴 소리인가.

의협은 개원의들의 집단 휴진도 배제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의협 비대위는 지난 1일 브리핑을 열어 “(의대 정원 증원 반대 과정에서) 국민 여러분께 불편을 끼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의사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선 국민 불편쯤은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의협은 지난해 정부와 의대 증원 관련 논의를 할 때부터 ‘총파업’(집단 진료 거부)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수시로 내비친 바 있다.
그동안 집단 휴진 투쟁을 통해 번번이 정부를 굴복시켰기에 의협의 뇌리에는 집단 휴진의 ‘효능감’이 각인돼 있을 것이다.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과 의대생들의 동맹 휴학 사태에도 ‘선배 의사’인 의협의 이런 태도가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의대 증원에 찬성하는 일부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소셜미디어에 ‘다른 생각을 가진 전공의/의대생’ 계정을 만들어 병원과 학교로 돌아가자고 호소했다.
정부 정책에 비판할 부분이 없지 않지만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명을 다루는 의료인이라면 응당 가져야 할 태도다.
‘의대 증원 백지화’만 내세우며 외곬으로 치닫는 의협 등 의료계가 귀담아들었으면 한다.

‘의대생 추첨제’ 네덜란드 의료, 한국보다 낫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

편집자주 중증 응급, 소아, 분만 등 필수 의료가 무너지고 있다.
의사 수 부족이 원인으로 거론되나 의료 현장에서는 보다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관리학 교수는 의사 배출을 늘리는 것과 함께 '나쁜 의료제도'를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료계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고 때로는 '논쟁적 존재'가 되는 김 교수가 앞으로 '김윤의 메디컬인사이드'를 통해 의료계 문제를 진단하며 해법을 제시한다.

28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BR>  2022.12.28/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28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황기선 기자

우리나라는 의과대학생 중 고소득층 출신, 수도권 출신이 차지하는 비중이 심각하게 높다.
국회 국정감사 자료에 의하면 2020년 기준 의대생의 81%가 소득 상위 20% 고소득층 출신이었다.
나머지 소득 상위 20% 출신 고등학생이 나머지 80%에 비해 의대에 입학할 확률이 16배 높은 셈이다.

수도권 출신 비중도 높다.
지방 의대생 중 47.6%가 수도권 출신이었고, 이들 중 80%가량은 졸업 후에 다시 수도권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지방 의대가 수도권 출신 의대생으로 대부분 채워져 있으니, 가뜩이나 의사가 부족한 지방에 의사가 더 부족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고소득층 출신, 수도권 출신이 의대생이 대부분인 이유는 성적만으로 신입생을 뽑기 때문이다.
수시 입학에서는 성적 이외의 면접이나 논술 등으로 평가하지만 '스카이캐슬'을 방불케 하는 대한민국 사교육을 당해낼 순 없다.
결국 정시뿐만 아니라 수시도 좋은 학원이 많은 곳에 살고 한 달에 몇백만원씩 하는 학원비를 부담할 능력이 있는 수도권 고소득층에 유리하다.

하지만 선진국은 성적만 가지고 의과대학 신입생을 선발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처럼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지원자의 사회경제적 배경을 고려해 선발한다.
다양한 사회경제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의사가 되고, 교수가 돼야 환자를 더 잘 진료하고, 학생들을 더 잘 교육할 수 있고, 연구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에서 이뤄진 연구에 의하면 환자들이 자신과 같은 인종인 의사의 처방에 1.3~1.5배 더 따르고, 소수 인종 의사가 백인 의사들에 비해 저소득층과 소수 인종 환자를 2배 더 많이 진료한다고 한다.

학원비 등 교육 물가가 12년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인 것으로 나타난 7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앞으로 시민이 지나고 있다.<BR> 2023.4.7/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학원비 등 교육 물가가 12년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인 것으로 나타난 7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앞으로 시민이 지나고 있다.
 © News1 박정호 기자

저명한 의학자로 구성된 미국 의학원과 미국 의과대학 협회는 의사 집단이 다양한 사회경제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돼야 의료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권고하고 있다.
1991년 미국 의과대학협회는 10년 동안 의대생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소수 인종 출신 신입생을 2배 이상 늘리겠다고 선언했고, 실제로 소수 인종 출신 의대생을 1.6배가량 늘렸다.
전 세계에서 가장 자본주의적인 미국이지만 다양한 사회경제적 배경을 가진 의대생을 뽑으려 노력하니 고소득층 출신 쏠림이 우리나라처럼 심하지는 않다.
미국 의대생 중 소득 상위 20% 출신이 차지하는 비중은 50% 수준이다.

네덜란드의 의대생 선발 방식은 가히 파격적이다.
다양한 사회경제적 배경을 가진 의대생을 선발하기 위해 전체 의대생의 30~50%가량을 추첨으로 선발한다.
추첨 선발 방식은 1972년 도입돼 50년 가까이 사용되다가 2017년 잠시 중단됐으나 2023년 다시 도입됐다.
추첨 방식이지만 성적이 좋으면 선발될 확률이 높다.
성적 상위 2% 학생은 하위 30% 학생에 비해 추첨 기회가 3배 더 많다.

지방 출신과 중산층 이하 출신을 더 많이 뽑아야 한다.
서민 출신 의사가 있어야 서민들의 삶과 병을 더 잘 치료할 수 있고, 지방 출신 학생을 의대생으로 선발해야 지역에서 일할 의사가 배출된다.
지방 의과대학의 지역 출신 선발 비율을 현재 20~40%에서 60~80%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
소득 상위 20% 출신이 전체 의대생의 50% 수준으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의대 학생 선발 과정을 개선해야 한다.
대학이 의대 진학을 원하는 모든 학생을 위한 다양한 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학생의 사회경제적 배경을 선발 과정에서 고려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의대 입시반을 운영하는 의대 광풍도 의대 입학을 매개로 한 부의 세습도 약화될 것이다.  

이쯤 되면 고장 난 녹음기 소리처럼 되풀이되는 의사들의 볼멘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성적은 한참 모자라지만 추천제로 입학한 의사에게 진료받고 싶으냐, 성적도 안 되는 학생 뽑아서 의료의 질이 떨어지면 결국 환자가 손해다.
" 등등. 네덜란드 사례에 대한 여러 연구에 의하면 성적으로 선발된 학생이 추첨으로 선발된 학생에 비해 반드시 의대 성적이 좋다고 할 수 없었다.
추첨으로 선발된 학생의 중도 탈락률이 10%가량 높기는 했다.

상위 1% 학생만 의대에 간다고 우리나라 의료 수준이 높은 것도 아니다.
세계적인 의학 학술지인 네이처가 선정한 전 세계 의학을 선도하는 100대 병원 중 대한민국 병원은 한 개도 없지만 네덜란드 병원은 8개 포함돼 있다.
네덜란드 의료체계는 2021년 미국과 유럽 10개국을 대상으로 한 평가에서 2위를 기록했다.
상위 1% 의대생만 뽑는 대한민국에 비해 추첨으로 의대생을 뽑는 네덜란드의 의료 수준이 훨씬 더 높다.
성적 상위 1% 학생만 실력 있는 의사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은 우리나라 의사들이 자기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 낸 가짜뉴스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

ksj@news1.kr

댓글 쓰기

Welcome

다음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