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돌봄의 시간
예상을 벗어나는 갑작스러운 상황은 항상 생기기 마련이죠. 돌봄이 필요해지는 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이를 먹으며 누구나 노쇠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돌봄이 필요할 때쯤엔 그에 관한 여러 준비가 되어 있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거든요.
가장 흔한 사례를 들어볼게요.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도 늘 정정해 보이기만 하시던 할머니께서, 겨울날 눈길에서 꽈당 미끄러지셨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당장 크게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았는데, 파스를 며칠 붙이고도 욱신거림이 멈추지 않아 결국 병원에 들르셨대요.
의사 선생님 말씀으론 엉덩이뼈가 살짝 부러졌는데, 어르신들은 뼈가 잘 붙지 않으니 한두 달 정도는 누워서 안정을 취하는 게 좋겠답니다. 잠깐 누워계시면 좋아지겠거니 생각했는데, 그렇게 2년 정도를 누워 계시다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가상의 예를 들었지만, 실제로 어르신들에게 종종 일어나는 일입니다. 거동을 못 하다 보니, 점차 몸이 쇠약해지게 되거든요.
평소에 돌봄에 대한 고민이나 대비 없이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면, 필요한 것들을 차근차근 알아보고 최선의 판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 보니 말 그대로 ‘잘 몰라서’ 조금 더 나은 선택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일이 닥쳤을 때 가장 먼저 결정해야 할 것’에 대해 미리 고민을 해 두어야 하는 이유죠.
갑작스럽게 돌봄이 필요한 순간, 우리가 가장 먼저 마주할 문제는 무엇일까요? 그건 바로 ‘도움을 받기 위해선 대체 어디로 가야 하냐’는 거예요.
요양병원? 요양원? 알쏭달쏭합니다
돌봄을 위한 장소라고 하면, 아마 ‘요양병원’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또 어떤 분들은 ‘요양원’을 떠올리시기도 할 텐데, 두 기관의 현황을 2022년과 2023년 기준으로 간단히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요양병원 - 전국에 약 1,400곳
- 연간 입원 환자 수 38~39만 명
- 월 60~80만 원 + 간병비* = 120~150만 원
* 간병비는 추후 더 상세히 설명해 드릴게요!
요양원 - 전국에 약 4,300곳
- 연간 시설 입소자 수 22~23만 명
- 월 40~50만 원 + 식사비·간식비 = 80~90만 원
큼직하게 비교했을 때, 요양병원이 요양원보다 돌봄을 두 배 정도 더 많이 수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체계는 사실 약간의 문제가 있어요. 요양병원은 엄밀하게 말하면 ‘병원’이기 때문이에요. 병원은 치료가 주 목적이지, 돌봄을 하는 곳이 아니거든요.
등급으로 운명이 나뉜다
불의의 사고로 팔이나 다리가 부러져 보신 분은 아실 거예요. 꿰매거나 소독하는 등의 급한 처치를 하고 난 다음엔 깁스(공식적으로는 cast라고 부릅니다)를 감고 퇴원하죠? 아직 뼈가 붙지 않고, 몸이 덜 회복되었어도 퇴원을 하는 이유는 ‘병원에서 더는 해줄 게 없어서’입니다. 그때부터는 의학적 처치가 필요한 게 아니라, 시간이 흐르며 몸이 자연스럽게 회복되길 기다려야 하죠. 그리고 그 과정을 혼자 하기 어려울 때 돌봄이 필요해요.
그렇게 따져 보면, 요양병원은 ‘병원’이 ‘돌봄’ 기능을 수행하는 이상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체의 노화를 ‘치료’할 수는 없어요. 치매와 같은 퇴행성 질환도 마찬가지이고요. 그런데 매년 돌봄이 필요한 40만 명 정도의 환자들이 의료기관에 입원해 있습니다. 대체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걸까요? 이유는 돌봄 시설에 들어가기가 요양병원에 가기보다 훨씬 어렵기 때문입니다.
요양원은 ‘노인장기요양보험’이라는 공공재원에서 돈을 지원 받습니다.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면 건강보험이 일정 부분 돈을 대신 내주는 것처럼, 요양원에서 돌봄을 제공받으면 장기요양보험에서 일부 비용을 대신 내주는 식이에요. 그렇다 보니 까다로운 등급 규정을 만들어 놨습니다. 나라에서 지원해 주는 돌봄은 누구나 받고 싶을 테니, 정말정말 아프고 거동이 어려운 사람들한테만 돌봄을 지원해 주겠다고 ‘등급’을 매기고 있거든요. 이걸 ‘장기요양등급’이라고 부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면요. 내가 내 발로 걸을 수 있으면, 등급 심사에서 바로 탈락입니다. 당장 등급 심사원이 집을 방문한 상태에서 걷지 못하는 걸 보여줘도 마찬가지예요. 6개월 이상 걷지 못하는 상태였다는 걸 입증해야 하므로, 6개월 뒤에 다시 확인하거나 아예 다리 골절에 대한 진단서를 받고 6개월 뒤에 다시 심사받아야 하는 식이예요. 가장 빠르게 등급을 받는 방법이 ‘치매’ 환자임을 입증하는 것이라, 어르신들이 치매를 연기해 의사에게 진단서를 받으려 한다는 웃지 못할 상황이 생길 정도죠.
심사가 이렇게나 엄격하니, 등급을 받지 못한 분들은 마땅히 갈 곳이 없습니다. 그러니 형식상 질병을 ‘치료’하는 것으로 하고, ‘병원’에 장기간 입원하며 요양병원이 돌봄기관이 된 거예요. 이런 상황은 여러 가지 문제를 만들어요.
돌봄이 요양병원으로 쏠리며 생긴 문제 세 가지
첫 번째 문제는 ‘의료’에 쓸 돈이 ‘돌봄’에 쓰이고 있단 점입니다. 건강보험 재정은 의료에만 쓰기에도 점점 위태로워지는 상황인데, 명목상으론 병원인 요양병원에서 돌봄을 받으니 여기도 건강보험 재정이 쓰여요. 건강보험 재정 고갈이 심해지면 정말 목숨이 위협받는 질환을 치료하는 데 쓸 돈이 부족해지는 상황이 올 수 있어요.
두 번째 문제는 ‘돌봄’이란 영역이 제대로 성장하질 못하고 있단 겁니다. 다른 선진국들은 돌봄을 전문적으로 하는 시설이 커지며, 돌봄의 전문성과 질이 계속 상승하고 있어요. 먼저 고령화를 겪은 이웃나라 일본만 봐도 그런데, 우리나라는 돌봄이 병원에 종속되다 보니 그런 발전이 무척 더딘 상태입니다. 돌봄을 독립적인 영역으로 키우려면 이런 상황을 해결해야만 해요.
세 번째 문제는 돌봄대상자의 삶의 질입니다. 병원은 모든 환자들이 침대에 누워지내는 게 원칙이예요. 원래는 거동을 못 할 정도로 아픈 환자만 입원하는 곳이 병원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보조를 받아 걸음을 걸을 수 있는 환자들은 누워 지내면 건강이 더 나빠지게 돼요. 처음 소개한 가상 사례의 할머니 같은 분들은 재활운동을 병행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건강이 더 나빠진 경우에 해당하죠. 돌봄을 별도의 영역으로 독립시켜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지 않으면, 돌봄대상자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셈입니다.
돌봄 시설은 앞으로 어떻게 바뀔까?
해외 선진국에서는 돌봄을 ‘시설’에 입소해서 받는 게 아니라, ‘가정’에서 받는 게 보편적으로 자리 잡고 있어요. 내가 살던 내 집에, 돌봄을 도와줄 인력이 잠시간 방문해서 생활을 보조해 주는 방식이에요. 이런 형태의 돌봄 제공을 지역사회 통합돌봄 혹은 커뮤니티케어라고 부릅니다. 시설을 벗어나 자유롭게 사회에서 생활하도록 보조하는 형태라 할 수 있어요.
우리나라는 이렇듯 가정을 방문하는 형태의 돌봄이 그렇게 활성화되진 못한 상태입니다. 방문요양이라는 서비스가 제공되긴 하지만 우선 까다로운 장기요양 등급 심사를 통과해야만 하는 건 마찬가지라서, 받을 수 있는 사람 자체가 그리 많지 않거든요. 게다가 대부분의 돌봄이 요양병원에서 제공되니 대상자는 더 적어집니다. 그러니 시장도 작고, 발전도 느린 상태예요.
장기요양등급을 받아야만 돌봄을 이용할 수 있는 상황이 개선되고, 병원에서 명목상으로만 치료인 ‘돌봄’을 받는 상황을 해결한다면, 언젠가는 우리 사회의 돌봄도 선진국을 닮은 형태로 바뀔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들께서 꾸준히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셔야 하는 이유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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