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이별과 관계중독


 안전이별과 관계중독

정진아 고법판사(수원고법)

잇달아 발생하는 교제관계폭력
관계 단절에 대한 두려움도 한 요인
공동체와 연대의식 회복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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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또 무고한 한 생명이 사라지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3월에는 이별을 통보하는 여자친구를 흉기로 살해하고 그 모친에게는 중상을 입히는 사건이 발생하더니,
이번에는 ‘의대생 살인사건’이란다.
수능만점에 촉망받는 명문의대생이 이별을 요구하는 피해자를 흉기로 살해하였다는 것이다.
가해자는 학교생활이나 교우관계에서 별달리 특이한 사항이 없었다고 하니,
도대체 무엇이 그를 그토록 처참한 범행에 이르게 하였는지 정말 궁금하다.
한번 이런 사건이 생기면 여성들은 몹시 불안하다.
나도 언제든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젊은 여성들은 안전이별을 위해 방법을 연구하고 공유하기도 한다고 한다.
이별하기로 마음먹었으면 상대에게 “큰돈을 빌려 달라”고 하거나 “최대한 지저분한 모습을 보여” 상대가 먼저 이별을 고하도록 유도하라는,
반쯤은 믿기 어려운 조언들도 있다.

예전에는 ‘치정[癡情: 남녀 간의 사랑으로 생기는 온갖 어지러운 정(네이버 국어사전)]’이라 표현되었던 교제관계 또는 친밀관계 폭력은,
과거 또는 현재의 배우자나 연인 등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거나 맺었었던 파트너로부터 발생한 신체적,
성적,
정서적,
경제적 폭력 및 통제 행위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정의된다[세계보건기구(WHO) 발행 여성폭력에 관한 국제보고서(2021)]. 교제관계 중 또는 종료 후 공동체에서의 따돌림이나 축출,
피해자에 대한 직간접적인 모욕,
명예훼손,
흠집내기 등도 이에 포함될 수 있다.
이러한 폭력은 친밀한 상대방으로부터 일어나서 피해자가 신고를 꺼리는 경향이 있는 데다가 과거 오랫동안 사적 관계에 공권력의 개입을 자제하였던 기조로 인해 신고를 하더라도 처벌이 미미하기도 했다.
그러나 피해자에게 이러한 폭력은 일상의 밀접한 관계에 있는 사람에 의해 발생한다는 점만 확실할 뿐,
언제,
어디서,
어떤 이유로 발생할지 예측할 수 없어서 말 그대로 ‘공포의 일상화’를 초래하고,
신체적 안전뿐만 아니라 자존감,
인간으로서의 존엄감도 훼손되는 심각한 피해를 초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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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히도 이런 종류의 범죄는 과거에도 많았고 현재에도 여전하다.

요새 부쩍 보도가 많이 되기는 하지만 여성이 피해자가 된 살인사건들을 찾아보면 보도되지 않은 사건이 훨씬 많고,
보도되지 않은 사건의 경우 가해자에 대한 형량도 생각보다 그렇게 높지 않다.
교제관계 폭력의 경우 가해자-피해자의 구도가 남성-여성인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것도 세계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남성 및 동성 간 관계에서도 교제관계 폭력은 발생할 수 있지만 피해의 대부분이 여성에게 집중된다고 하는 연구결과를 보면,
교제관계 폭력이 불평등한 성별 위계에 기반한 젠더 폭력적 요소를 가지는 것은 명확한 것 같다.

다만 과거의 ‘치정’ 범죄들이 여성의 낮은 사회적 지위로 인한 구조적 위계를 바탕으로 열위에 있는 여성을 ‘소유’하고 ‘통제’하려는 왜곡된 남성성에서 비롯된 측면이 높았다면,
요새 교제관계 폭력은 관계단절에 대한 극심한 불안감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사건으로만 사회를 접하는 법관의 편협한 시각일 수도 있겠지만,
친구나 선후배관계에서도 ‘가스라이팅’을 당해 상대가 요구하는 것을 다 들어주려다 노예와 같은 지경에 이르는 사건들을 종종 접하다 보니,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관계에 집착하는지 의아한 사건들이 여럿 있다.
요즘 청년세대는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과 함께 자라서인지 SNS를 통해 타인의 삶을 엿보며 쉽게 관계를 맺지만 단절도 쉽다.
역설적이게도 온라인에서의 편리한 관계맺기로 인해 오프라인에서의 지속적이고도 친밀한,
안정된 관계를 맺는 것이 더 힘든 것 같다.
어떤 청년들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너무 힘들어해서 은둔형 외톨이가 되기도 한다.
관계에 상처받아 반자발적으로 인간관계를 단절하는 것과,
맺어진 관계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은 동전의 양면이다.
어느 한 가지로 원인을 찾거나 해결책을 제시하기는 어렵겠지만,
‘회복탄력성’의 근원이 되는 공동체와 연대의식이 조금은 나아지기를 바랄 뿐이다.
오늘 내가 서 있는 바로 그곳에서부터 따뜻한 미소와 공감을 실천하자고 다짐해 본다.

정진아 고법판사(수원고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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