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응답과 정중한 거절, 혹은 쌩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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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특징을 한 마디로 설명하면? 이상적이거나 당위적(當爲的)인 것 말고. 내가 저절로 고개를 끄덕인 것은, 사기 치기 쉬운 대상이라는 평가다. 요즘은 교사들도 좀 약아서, 또는 인터넷 정보가 다양해서 사기를 덜 당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다른 직업에 비하여 사기꾼의 '최애 먹잇감'임을 부인하기 쉽지 않다. 
   
모든 교사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순진해서 사기를 당한다고 할 수 있다여기서 순진이란 무슨 뜻일까. 도대체 무슨 의미길래 교사는 사기를 잘 당하는 집단에 속할까. 내 생각에는 다른 사람의 말을 잘 이해하고, 될 수 있으면 믿어주려고 노력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특징은 교사의 현실적 필요와 관계있다. 이해의 대상은 주로 학생이다.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수업할 수 있다.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것은 좋은 태도다. 그런데 교사 가운데는 학생 아닌 다른 상대도 은연중에 피교육자 취급해서 문제가 되기도 한다. 
   
믿어주려는 것은 당위성에 밀려 형성된 태도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렸을 적에 타인을 의심하는 것은 나쁘다고 배웠을 가능성이 높다. 교사는 어렸을 적 그 가치를 순결처럼 지키려는 집단에 속하기 쉽다. 성선설의 입장에서는 가급적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타인을 믿는 것이 미덕이다. 그러나 세상이 변했다. 상대를 무조건 덜컥 믿다가는 언제 뒤통수 맞을지 모른다. 현실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무조건 상대를 믿으면 폭망하기 쉽다. 결혼 대상자에서 우선 배제해도 된다. 
   
오늘날에는 타인의 제안을 덥석 물지 말고, 일단 꼼꼼히 검토하는 자세가 필수다. 그런데 교사들은 믿어야 한다는 당위에 밀려서, 꼼꼼한 검토가 혹시나 상대를 의심하는 것은 아닌지, 지나친 자기 검열을 하기도 한다. 이런 지경이면 뻔하다. 사기꾼의 '최애' 먹잇감이 된다.   
   
교사의 또 다른 특징은 '답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학생에게 문제를 내고, 답을 요구하고, 답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역으로 누군가 교사에게 문제를 내면, 가급적 모범 답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교사의 또 다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의 문제란 무엇일까. 부탁이나 요구다. 그 부탁이나 요구를 이해하고, 믿고, 부응하려는 태도가 교사 생리다. 직업병이다. 그러니 교사는 타인의 부탁이나 요구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기 어려워한다. 별로 답할 가치가 없는 것에도, 최대한 자세하고 꼼꼼하게 정답을 말하고자 노력한다. 무리한 혹은 무례한 부탁에도 그렇다.

교사에게 이런 요구를 하는 집단은 누구일까. 첫째는 교육청이다. 좀 과장하면, 순종적이고, 능력 있고, 거기다 최대한 꼼꼼하고 자세하게 응답하려는 교사 특성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노예처럼 부려 먹는 재미에 빠진 집단에 가깝다. 어떤 단위 학교 관리자는 그것을 그대로 교사에게 패쓰하는 파이프에 불과하다. “이걸 왜 학교에서 합니까?”라고 반문하는 교장은 존경받아야 한다. 
   
둘째는 학부모들이다. 어떤 학부모는 손님 입장에서 교사를 종업원 대하듯 한다. 그런 분위기를 교사들이 모를까. 안다. 그래도 상당수 교사는 무리한 고객님의 요청을 이해하고, 믿어주고, 해결해 주려고 노력한다. 직업병 때문이다. 속으로 화가 치밀어 올라도 대부분 참는다. 그 결과는? 화병으로 이어지기 쉽다. 
   
해결책은 무엇일까. 학부모를 학생과 동일시 하지 말아야 한다. 학부모를 가르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가르친다고 쉽게 변하는 건 별로 없다. 변화는 아주 천천히 이루어진다.

과장되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원효가 해골에 담긴 물을 떠먹고 ‘모든 것은 자기 마음에 달렸다’는 깨달음에 대해서는 많이들 않다. 그 깨달음이 갑자기 이루어졌을까. 아니다. 원효는 그 깨달음을 얻기 위해, 당나라로 가는 고행과 동반한 시간을 비용으로 지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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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교사가 학부모를 가르친다고, 학부모가 '쉽게' 변화되리라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리석다. 학부모가 나빠서가 아니다. 배움이란 본디 그런 것이다. 학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성급한 기대는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하게 한다. 병을 키운다. 인간관계를 최악으로 몰고 간다. 해결책은? 성급한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다. 
   
또 다른 해결책은 무엇일까. 학생과 학부모는 동일체가 아니라고 했다. 그렇기에 학생에게 답을 해줘야 하듯, 학부모에게는 일일이 답할 의무가 없다. 일과 시간 중이라도 그렇고, 일과 이후에는 더더욱 그렇다. 
   
어떤 것은 ‘성실’하게 대해야 한다. 정중한 '거절'도 필요하다. 어떤 요구는 ‘건성’으로, 어떤 것은 ‘무시’, 어떤 것은 ‘쌩까’도 된다교사라는 직업병에 빠져서, 학부모의 모든 요구를 일일이 이해하려 하고, 믿어주고, 성실하게 답하는 것은, 교사 스스로 자신을 질식시키는 것과 같다.

본질 아닌 요구에 답하려 목메지 않아도 된다. 학부모가 욕하면 무시하거나, 쌩까도 된다. 심하면 모욕죄로 고소하면 된다. 무시할 것과 아닌 것 구분하기. 교직 수행을 위한 필수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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