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연·지연·혈연은 그만! 요즘 중년의 관계 맺기 트렌드

 


학연·지연·혈연은 그만! 요즘 중년의 관계 맺기 트렌드

개인의 취향과 성향 중요시… SNS 활용 늘면서 일회성 관계 많아져

▲도움말 이명수 연세라이프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어도비스톡)

▲도움말 이명수 연세라이프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어도비스톡)

사실 인간관계의 본질은 같다.
1936년에 출간된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이 지금까지 자기 계발 분야 베스트셀러에 자리하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하지만 시대를 거듭할수록 사회적·문화적 변화와 함께 사람들 사이 소통 방식과 관계의 범위 등 많은 것이 달라졌다.

새로운 사람과 만났을 때 어색하고 불편한 분위기를 한 번에 완화할 수 있는 한국 사회 속 ‘필승 전략’이 있다.
학연, 지연, 혈연이다.
우연히 같은 학교 출신이라는 걸 알았을 때 주변 맛집, 교내 명소, 동아리 등으로 대화의 물꼬를 트다 보면 금세 친해진 기분이 든다.
지연이나 혈연은 말할 것도 없이 서로를 이끄는 매력 중 하나다.

속상한 일이지만, 적지 않은 사람이 세 요소 중 하나도 해당되지 않는 상대와 거리를 좁히긴 쉽지 않다고 여긴다.
공통점을 찾거나 재미있을 만한 주제를 꺼내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 내다 결국 출신 성분으로 다시 돌아가고 말 때도 있다.
그러나 최근 인간관계의 지평이 흔들리고 있다.
흐름을 파악해 또 다른 필승 전략을 찾아 적용해보는 건 어떨까.

◇취향을 통한 ‘모임 속 모임’

전염병이 도래하면서 3여 년 동안 사람들의 교류가 일시적으로 단절됐다.
서로 간 소통의 빈도와 강도는 단박에 복구되기 어려웠다.
그 사이 취향을 중심으로 인간관계가 재편되기 시작했다.
‘2023 트렌드 모니터’에 따르면 나이, 사회적 지위, 의례 강요와 같은 견고한 전통적 기준을 통한 관계 맺기를 탈피하고자 하는 정서가 짙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크로밀 엠브레인이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조사한 결과, 취향이 비슷하면 관계가 더 돈독해질 수 있다고 말한 비율이 84.7%에 달했다.

일부는 익숙한 관계와 개인의 취향이 결합한 모임을 선호하기도 한다.
자신의 과거를 고려한 동창회나 회사라는 익숙한 공간에서 취향 맞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려 한다는 의미다.
직장 내 살롱문화(책, 와인, 스포츠, 맛집)가 그 예다.
수평적 형태만 유지된다면 한 번의 모임으로 사내 인맥 관리와 취미를 동시에 취할 수 있다.
가벼운 경험 공유 소재 외에 자신의 가치관과 사회적 의미(비건, 환경보호, 정치 성향)를 공유하고자 하는 모임도 생기고 있다.

◇찐친과 겉친 사이

‘2024 트렌드 모니터’에 따르면 무조건 인맥을 확장하려는 욕구는 줄고, 좁고 깊은 관계를 통해 관계의 효율을 추구하는 추세다.
일부는 SNS도 폐쇄형식으로 운영한다.
최근 개인 SNS의 공개나 운영은 대체로 이미 ‘잘 아는 관계’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었고(65.8%), 해당 관계끼리만 소통을 시도하는 편이었다.
(65.3%) 반면, ‘찐친’ 외에는 필요할 때만 찾는 일회성 관계로 여기기도 한다.

‘티슈 인맥’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트렌드 코리아 2023’에서는 목적과 친밀도, 중요도에 따라 의도적으로 색인을 붙여 분류하는 ‘인덱스 관계’를 소개했다.
이명수 연세라이프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은 “온라인 만남이 익숙해진 만큼 다양한 관계를 맺게 될 기회도 급격히 늘었기 때문에 목적을 기반으로 인맥을 관리하는 경우가 나타난 것이라며 “다만 활동 기록이나 메시지 답장 시기가 실시간으로 노출되기 때문에 서로 선을 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는 상식? MBTI

“MBTI가 어떻게 되세요?는 처음 본 사람에게 서먹함을 깨는 용도로 빠지지 않고 사용된다.
최근 온라인에 간이 검사법이 확산되면서 광풍이 불었다.
MBTI는 심리학자 칼 융의 심리 유형론을 토대로 개발된 성격 유형 검사다.
여러 문항을 통해 외향(E)과 내향(I), 감각(S)과 직관(N), 사고(T)와 감정(F), 판단(J)과 인식(P) 4가지 지표 중 각각 어떤 특성에 가까운지 분류한 뒤 해당 지표를 조합해 총 16가지 유형 중 하나로 성격을 구분한다.

SNS나 유튜브뿐 아니라 방송에서도 MBTI 유형별 연애·공부·관계법 등의 콘텐츠를 제공한다.
특히 주목받는 지표는 T와 F다.
같은 상황에서도 사고 흐름과 반응 양상에 큰 차이가 있다.
만약 친구가 “나 우울해서 미용실 가서 머리했어라고 말했을 때 T 유형은 “어떤 스타일로 했어?, F 유형은 “무슨 일 있는 거야?로 반응이 나뉜다고 한다.

이명수 원장은 “MBTI는 원래 팀 프로젝트를 할 때 서로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 협업 능력을 높이고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라며 “타인과 대화할 때 나라는 사람이 어떤 성향인지, 상대와 다른 점은 무엇인지 재미로 파악해볼 수는 있지만 그 특성 안에만 갇히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물건을 정리하니 일상의 소중함이 보여요

‘모델하우스 같다!’

김미희(61세) 씨의 집에 들어서며 받은 첫인상이다.
현관에 줄지어 있는 게 익숙한 신발도, 주방 아일랜드에 나와 있는 물건도, 거실 바닥에 늘어놓은 물건도 없었다.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고 있는 사례자를 찾아온 것이지만, 이렇게 심플할 줄이야. 본래 취향이 심플한 사람을 찾아온 건 아닐까, 번지수를 잘못 찾았나 싶었지만 아니었다.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고 있는 김미희 씨의 집에는 딱 필요한 물건만 있다.<BR> (사진=이연지 기자)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고 있는 김미희 씨의 집에는 딱 필요한 물건만 있다.
(사진=이연지 기자)

“40년을 쉬지 않고 사업을 했어요.
집으로 찾아오는 사람도 정말 많았죠. 그때는 남을 많이 의식했던 것 같아요.
그릇도 진열해두었고, 술이 가득한 진열장도 있었죠. 또 집에 찾아온 사람을 빈손으로 보낼 수 없어 들려 보낼 선물들도 한가득 쌓아뒀어요.

그 역시 물건으로 가득한 집에 살았더란 이야기다.
김미희 씨는 10년 전 서울에서 인천으로 이사했다.
당시 이사할 때만 해도 물건을 버리려니 마음속 갈등이 컸다고 한다.
‘비싼 물건이라서, 정이 들어서, 갖고 싶었으니까’ 등 갖은 이유가 맴돌았다고. 그러다 2년 전 더 작은 집으로 이사를 결심하고 물건을 비워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일상의 소중함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단다.

“어느 순간 물건들이 장소만 차지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쓰지도 않는 물건인데 먼지가 쌓이니까 청소할 것도 많고요.
꼭 필요한 물건만 남기고 다 버렸어요.
집이 작아졌으니 거기에 맞게 가구도 정리하고요.
처음에는 버리는 게 너무 아까웠는데, 집이 정리되니까 홀가분하더라고요.
이후에는 마음도 가벼워지고 인생이 심플해졌어요.

무엇보다 자신의 소중함을 느끼게 됐다.
김 씨는 과거를 회상하면서 돈 버는 기계처럼 희생만 하는 삶이었던 것 같다고 표현했다.
지금은 스스로 토닥여주면서 ‘그동안 열심히 잘 살았다’고 칭찬할 수 있게 됐다.
지나가는 꽃도 눈에 들어오고, 무거운 짐을 들고 있는 어르신을 돕는 오지랖(?)도 생겼다.
물건을 정리한 자리에 여유가 들어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청소를 잘 못한다고 느낀 김 씨는 지난해 청소 학원을 다녔다.
청소를 배우고 나선 정리수납과 방역·소독까지 배워 자격증을 취득했다.
40년간 쉬지 않고 달렸으니 쉴 법도 한데, 이번에는 블루클린이라는 청소·방역 회사를 차리며 새로운 도전을 선언했다.

김미희 씨의 미니멀 라이프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렇게 많이 비웠는데도 아직 버리지 못하는 게 있다.
바로 옷이다.

“만 원짜리 티셔츠에 구멍이 나도 버리지 못하고 잠옷으로 입게 되고 그렇더라고요.
어떤 계기가 생기면 정리를 더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한번 비워보니 더 비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인생 정리를 하는 것 아닐까 싶어요.
일상의 소중함을 알아가면서요.
이제 철드나 봅니다.
(웃음)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고 있는 김미희 씨(사진=이연지 기자)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고 있는 김미희 씨(사진=이연지 기자)


[1] 평생 현역 시대라는 ‘관계 전제 조건’

은퇴 후에는 비즈니스로 형성됐던 인맥이 자연스레 축소된다.
과거라면 섭섭한 마음은 들지언정 살아가는 데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100세 시대를 넘어 150세 시대까지 예견되는 요즘, 은퇴 후에도 경제활동은 계속돼야 한다.
평생 현역 시대를 사는 중장년에게 경제적 관계가 줄어드는 것은 단순히 감정적으로만 치부할 일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이며, 가급적 기존의 비즈니스 관계를 잘 유지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굳이 이러한 조언이 없더라도, 스스로 그 필요성을 체감하는 중장년이 적지 않을 것이다.

김동철 심리학 박사는 “최근 중장년들을 보면 가급적 직장 생활을 오래 하려 애쓰고, 은퇴 후에도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최대한 유지하려 한다.
이때 본업이 내가 좋아하는 쪽이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다면 또 다른 관계도 염두에 둬야 한다.
제2의 직업으로 전향한다 해도 또 다른 비즈니스 관계 형성에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이다.
어쨌거나 평생 현역 시대를 살아내려면 불편하고 힘들더라도 공적인 관계 확장은 꼭 필요하다.
다만 순수하게 나의 관심과 흥미에 따른 사적인 관계도 형성해둬야 한다.
노후에는 일과 즐거움을 두 축으로 균형감 있게 관계를 관리하는 것이 현명한 태도라고 말했다.


[2] 때때로 탈피하는 ‘관계의 알고리즘’

중장년이 애용하는 유튜브에는 ‘알고리즘’이라는 기능이 있다.
이는 원하는 콘텐츠를 맞춤형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편리하게 작용하지만, 자칫 한쪽으로 치우친 정보만 독식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이러한 알고리즘의 부작용이 바로 ‘확증편향’이다.
자신의 견해에 도움이 되는 정보만 취하고, 믿고 싶지 않은 정보는 외면하는 성향을 말한다.
이러한 알고리즘은 인간관계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오십의 기술'을 펴낸 이호선 한국노인상담센터장은 “우리는 흔히 편한 친구를 반복적으로 만난다.
나이 들수록 친구 관계는 줄어들고 압축적으로 변한다.
그렇게 나의 사고방식 또한 자주 만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나의 덩어리처럼 압착된다.
‘내가 맞구나’라며 안전하다는 착각 속에 확증편향이 생겨나는 것이다.
또 늘 비슷한 사람들과 치우친 생각만 이야기하다 보면 아무래도 지겨울 수밖에 없다.
긴 노후에는 삶의 영역, 특히 대인관계가 다채롭고 다양해야 한다.
안정적인 관계가 때로는 지루함을 준다.
때때로 제한된 관계의 알고리즘에서 탈피해보는 게 좋다고 제안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기존 관계의 알고리즘을 벗어날 수 있을까? 크게 손해 보지 않는 선에서 낯선 곳에 나를 던져보는 방법이 있다.
이를테면 늘 만나던 친구가 아닌 새로운 친구들을 사귄다거나, 정치적 성향이 반대인 사람들을 만나보는 것이다.
이 센터장은 “새로운 관계가 생겨나면 새로운 알고리즘이 만들어지고, 그렇게 새로운 인생도 열리게 된다.
사실 아주 낯선 사람들을 만난다는 건 위험한 면도 있다.
이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서 계속 새로운 관계에 도전하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어도비 스톡)

(어도비 스톡)


[3] 최대 수명 대비한 ‘최소 사회망’

나는 앞으로 얼마나 살게 될까? 예측하기 어렵지만, 분명한 건 수명의 최댓값이 날로 증가하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1인 가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데, 독거노인 수도 이에 비례하는 양상을 보인다.
결혼을 했더라도 이혼이나 졸혼, 사별 등으로 언젠가는 혼자가 된다.
즉 수명이 길어질수록 얼마나 홀로 살게 될지도 미지수인 셈이다.
이렇게 독거 신세가 됐을 때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성향을 보인다.
족쇄라도 풀린 듯 대인관계를 더 왕성하게 펼쳐나가는 이가 있는가 하면, 고립된 상태로 외톨이를 자처하는 이도 있다.

김동철 박사는 “본래 기질이나 성향이 대인관계에 소극적이고 불편해하는 분들이 있다.
노후 관계가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직접적으로 나서는 게 쉽지 않은 것이다.
타고난 성향을 바꾸기 어렵기 때문에 억지로 관계를 맺으려 했다가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럴 땐 직접적인 일대일 관계가 아닌, 상대적으로 관계망이 느슨한 모임의 일원이 되어볼 수 있다.
이마저도 어렵다면 강연이나 공연을 보러 가는 등 다수 속에 섞이는 경험을 해나가면 도움이 된다.
특별히 누군가와 인맥을 쌓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이런 방식의 간접적인 사회 관계망이라도 형성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자칫 고립이 일어나고, 노인성 우울증이나 고독사 등의 위험에 노출될 우려가 있다고 염려했다.


[4] 더할수록 즐거운 ‘친구들의 집합소’

이호선 센터장의 조언대로 기나긴 노후를 함께할 친구가 기왕이면 여럿 있는 게 나에게도 도움이 된다.
기존에 친구들을 함께 볼 수 있는 모임이나 동창회 등도 있겠지만, 앞서 언급한 관계의 알고리즘을 벗어나고자 한다면 새로운 공동체 관계망을 찾아봐도 좋다.
더욱이 요즘에는 블로그나 카페, SNS 등을 이용하는 중장년이 늘어 관심사나 취향에 따라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는 게 어렵지 않다.
독서, 여행 같은 취미 동호회도 많고, 소셜 다이닝이나 자원봉사 등 사회 관계망을 이어주는 공동체 모임도 상당하다.

이 센터장은 “꼭 참여하길 추천하고 싶은 건 학습 공동체다.
오십 이후에 노는 것도 좋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의미가 사라진다.
반면 배움은 늘 우리를 새롭게 한다.
때문에 학습 공동체는 가장 건전하고도 발전적인 모임 형태라 할 수 있다.
지식만 습득하는 게 아니라 거기서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과 관계가 형성된다.
시험과 과제를 거치면서 서로 성취를 확인하고, 나와 공동의 목표를 바라보는 이들과 토론해가며 상호 돌봄 과정도 경험하게 된다.
학습은 과정만으로도 성숙을 이루고, 학습 공동체는 성숙을 통한 자아실현을 가능케 한다.
노후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고 싶다면 학습 공동체에 참여해보길 바란다고 권했다.


도움말 김동철 심리학 박사(김동철심리케어 원장), 이호선 한국노인상담센터장(숭실사이버대학교 기독교상담복지학과 학과장)

참고 '오십의 기술'(이호선 저, 카시오페아)

우리나라 직장인 실질 은퇴 나이

“정년은 무슨… 마흔 이후도 잘 그려지지 않아.

친구는 말했다.
친구의 불안은 통계와 궤를 같이 한다.
사람들은 주된 직장에서의 은퇴 시점을 법적 정년인 60세 전후로 인식하고 있지만, 실질 은퇴 나이는 그와 큰 괴리를 보이고 있다.

실질 은퇴 연령*

49.3세

*2022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

실제 은퇴 나이는 예상 은퇴 나이보다 15년 이상 빠르다.
아직 은퇴하지 않은 가구의 희망 은퇴 나이도 현실과 10년 이상 차이를 보인다.
2023년 실제 은퇴 나이는 50대가 49세, 60대가 57세, 70대가 63세로 연령대별 희망 은퇴 나이보다 10년 이상 일렀다.

KB금융지주 경영보고서의 희망 은퇴 나이 VS 실제 은퇴 나이

50대: 희망 65세, 실제 49세

60대: 희망 70세, 실제 57세

70대: 희망 77세, 실제 63세

노후 자금 상황은 이런 현실에 발맞추지 못하고 있다.
경제적 노후 준비를 시작하지 못한 비중이 50%를 웃돌고 있다.
그 시기는 평균 45세로 5년 전 조사에 비해 1년여 늦어졌다.

경제적 노후 준비 시작한 시기

평균: 45세

아직 시작하지 못했다: 52.5%

주된 일자리 퇴직 연령 49.3세. 법적 정년과 큰 괴리를 보이고 있다.

에디터 조형애 디자인 이은숙


퇴직 이후의 삶이 길어지며, 노후 대인관계가 중요하다는 건 두말할 것도 없다.
다만 원활하고 지속적인 관계 형성을 위해서는 자신과의 관계를 다지는 것이 우선이다.
‘나는 매일 은퇴를 꿈꾼다’, ‘은퇴의 말’, ‘은퇴의 맛’ 등의 저서를 펴내며 수많은 베이비붐 세대 은퇴자들을 만나온 한혜경 전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은퇴 후 얼마나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느냐는 자신과의 관계에 달렸다고 언급했다.
그는 “직장 생활로 생겨난 공적 관계망은 보통 퇴직 후 6개월 이내 소멸된다.
특히나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명성을 얻은 분일수록 이러한 변화에 취약하다.
‘그동안 나를 잘 따랐던 부하 직원들이 연락하겠지’ 같은 기대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어 “기대가 클수록 실망이 크고, 실망이 쌓이면 절망하게 된다.
점점 위축되고 예민해지기 시작한다.
작은 일에도 버럭 하고 화를 내는 등 이른바 ‘앵그리 올드’가 되기 십상이다.
그런 모습을 보이면 주변에서는 회피하고 멀리하게 마련인데, 결국 대인관계가 더 나빠지는 악순환이 생긴다고 덧붙였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누군들 좋아할까

한혜경 교수의 경험에 의하면 은퇴 후 화가 많아지고 이를 표출하는 중장년이 적지 않다고. 겉으로는 타인을 향해 화를 내는 것 같지만, 이는 결국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것과 같단다.
스스로에게 답답하고 불만스러운 심정을 그러한 방식으로 토로하는 것이다.
반대로 자신과의 관계가 평온하고 긍정적인 이들은 타인과의 관계 또한 순조로운 편이다.
한 교수는 “최근 뇌과학 분야 연구 중에 흥미로운 결과가 있었다.
나에 대한 정보처리와 타인에 대한 정보처리가 동일한 뇌 신경망을 통해 이뤄진다는 것이다.
풀어 설명하자면 나를 좋게 보는 사람이 남도 좋게 보고, 나를 존중하는 사람이 남도 존중한다는 얘기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어떻게 타인을 좋아할 수 있겠는가. 어쩌면 당연한 이치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나와의 관계, 자기 내면과의 소통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것이 곧 타인과의 관계에도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위와 같은 맥락에서 나와의 관계가 편안하고 능숙한 사람들은 웬만한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회복탄력성 또한 높다.
반대로 자신에게 불만이 많고 소통이 어려운 이들은 사소한 일도 크게 힘들어하고, 회복에 어려움을 호소한다.
한 교수는 “살다 보면 유난히 사람들이 미워지거나 괜히 무시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땐 혹시 내가 나를 미워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아닐까 의심해봐야 한다.
마치 거울처럼 누군가에게 갖는 나의 마음이 알고 보면 나를 향한 마음은 아닐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어도비 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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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중독에서 벗어나 ‘셀프 칭찬’ 필요해

경쟁과 성취를 강조해온 한국 사회에서 현재의 중장년 세대는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는 편이다.
어떤 이들은 타인에게 인정받아야 잘 사는 삶이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가령 어느 대학과 직장을 다닐지, 얼마만큼의 집을 사고 무슨 차를 타야 할지 등 자신보다 타인의 인정이나 평가를 따르는 경향이 적지 않다.

한혜경 교수는 “이러한 삶이 계속되다 보면 인정중독에 빠지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거부당할까 봐 두려워하고, 타인 때문에 상처받으며 그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누군가에게 인정받았을 때만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는 것이라며 “30~40대에는 타인의 관심과 인정이 성장의 디딤돌이 되기도 하지만, 50대 이후까지 이에 얽매이는 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와의 관계를 더 행복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주파수에 나를 맞추지 말아야 한다.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한 ‘이상적인 나’와 ‘현실의 나’ 사이엔 차이가 존재한다.
그 사실을 먼저 받아들이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한다.
나아가 잘난 척, 괜찮은 척이 아닌 솔직한 나를 드러낼 수 있을 때 개인적으로도 더 성장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한편으로는 타인의 인정에 목말라하면서도 실제 자신을 향한 칭찬에는 의구심을 갖거나 거부감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이는 자신에 대한 평가가 엄격하고, 스스로의 능력과 장점을 이해하지 못한 것에서 비롯된 반응이다.
한 교수는 자신의 좋은 점과 강점 등을 발견하는 과정이 매우 가치 있기에, 때때로 스스로를 칭찬해보는 시간도 마련해보길 권했다.


나를 위한 삶, 건강한 자기중심성 갖기

은퇴 후 또는 자녀 출가 후에도 끊임없는 희생을 감수하는 부모들이 있다.
가령 노후자금이 부족한데도 자녀에게 금전적인 도움을 준다거나, 몸이 아프고 힘든데도 손주 육아를 돕는 등 자신보다는 자녀를 중심으로 노후를 살아가는 것이다.
타인 중에서도 자녀가 주는 기쁨이 상당하지만, 결국 자녀와의 관계에서도 지속적인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자신을 지키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자녀의 요구를 다 들어주면서 정작 자신의 인생을 누리지 못하고, 나를 돌보는 일을 게을리한다면 행복한 노후를 가꿔가기 어렵다.

한혜경 교수는 “초고령사회, 수명은 길어지고 1인 노인 가구가 증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에게 ‘어떻게 혼자 잘 살 수 있을까’, ‘누가 끝까지 나를 돌봐줄까’, ‘누가 내게 삶의 기쁨이 남아 있다고 말해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꼭 해봐야 한다.
경제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독립돼야만 자신을 스스로 돌보며 잘 지낼 수 있고, 자신을 잘 돌볼 수 있어야 자식이나 가족을 포함한 타인과도 건강한 관계를 오래오래 유지하면서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결국 나를 위하고 사랑해줄 사람, 내게 기쁨과 즐거움을 선사할 사람은 곧 나 자신이다.
스스로를 위하고 사랑해야 하는 이유다.
인본주의 심리학자로 유명한 로저스(C. Rogers)는 말년에 나이가 들수록 자신을 더 많이 돌보게 됐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는 ‘나는 나를 좋아한다.
나 자신의 욕구가 무엇인지 알아보았고, 그것을 충족시키려고 했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 자신의 삶을 살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아내가 매우 아프지만 내 삶을 사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한 교수는 “로저스의 글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결국 나이 들수록 ‘건강한 자기중심성’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건강한 자기중심성은 본인의 가치와 독특성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돌보는 태도다.
스스로를 홀대하고 혹사하는 건 짧고 굵게 살던 시대의 논리다.
100세 넘게 사는 요즘 시대에 필요한 건 자기중심적인 삶이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스스로의 고유한 가치와 개성을 존중하고 사랑할 때, 타인도 나를 그렇게 존중하고 사랑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어도비 스톡)

(어도비 스톡)


‘나의 역사 쓰기’로 회복하는 나와의 관계

교수 은퇴 후 현장에서 중장년을 대상으로 ‘나의 역사 쓰기’를 운영하고 있는 한혜경 교수는 글쓰기를 통해 과거의 자신과 화해하고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나의 역사를 쓴다고 해서 유명인이 자서전을 내듯 거창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
글쓰기가 어렵다면 나의 삶을 한 권의 책이라 여기고 목차를 적어보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은퇴 후에는 대인관계를 비롯해 여러 문제에 봉착할 수 있다.
그러나 결국 내 인생의 해답 또한 내 안에 있는 법. 찬찬히 과거의 맥락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스스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도 발견하게 된다.

한 교수는 “나의 역사 쓰기란 내가 나에게 나에 대해서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다.
현역 시절 이력서에 보기 좋게 썼던 나의 모습과 달리,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적어보는 것이다.
퇴직 이후 인생 2막 또는 3막을 준비하려면 과거와 현재의 나를 잘 이해해야 한다.
나를 헤아리는 과정 속에서 자신과의 갈등 고리를 풀어내기도 하고, 과거의 나와 화해하는 경험도 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나의 역사 쓰기도 너무 말년에 했다가는, 과오를 발견하고도 ‘이제 와서 달라질까’, ‘너무 늦었구나’라며 개선할 시간이 없다고 여겨 절망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나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 나의 역사를 꼭 한번 써보시길 바란다고 권했다.


도움말 한혜경 전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기꺼이 오십, 나를 다시 배워야 할 시간' 저 , '나의 역사 쓰기'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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