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생각하기로 하자”…감정 다스리는 세가지 방법

[한겨레S] 조민진의 꿈꾸기 좋은 날
감정과 마음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1893). 위키아트 제공

“결국 모두가 죽지 않아? 그것도 너무 빨리? 말해봐, 당신은 이 하나의 소중한 야생의 삶을 어떻게 살 작정이지?”

자연을 즐겨 노래했던 미국 시인 메리 올리버의 ‘여름날’ 마지막 대목입니다.
이미 뜨거운 여름이 한창이네요, 여러분. 조민진입니다.
지금 계절과 같은 제목의 시를 떠올리자니 시인의 물음이 귓전에 맴돕니다.
빨리 가고 소중한 삶이라니, 짧은 답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낙관적으로 살고 싶습니다.
사전적으로 조금 더 길게 풀어보자면 ‘인생이나 사물을 밝고 희망적으로 보는’ 겁니다.
물론 제가 늘 기쁘고 만족스럽다는 뜻은 아닙니다.
기쁠 때도 있지만 슬플 때도 있고, 만족스러울 때도 있지만 불안하고 화가 날 때도 있지요. 하지만 때때로 부정적 감정에 휩싸일 때면 벗어나기 위해 노력합니다.
감정은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이란 걸 이젠 알고 있거든요. 게다가 감정 조절이야말로 자기관리의 기본이자 시작임을 살면서 거듭 깨닫고 있습니다.
성향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낙관에도 노력이 필요합니다.
아… 정말 좋은 건 거저 주어지지 않는 걸까요?

 뭉크 ‘절규’ 속 태연히 걷는 친구들

최근 개봉한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영화 ‘인사이드 아웃 2’를 봤습니다.
주인공 라일리가 13살 사춘기 소녀가 되었더군요. 그리고 라일리의 머릿속에 있는 감정 컨트롤 본부에 예전에 없던 감정들이 들어왔습니다.
전편(‘인사이드 아웃’, 2015년)에선 11살 라일리를 지배하는 감정이라곤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이 전부였죠. 그런데 두살 더 먹으면서 낯선 감정들이 찾아온 겁니다.
이른바 ‘불안’, ‘당황’, ‘따분’, ‘부럽’. 그러니까 라일리가 자라면서 부정적 감정들이 더 많아진 거네요. 라일리는 새로 찾아온 감정들에 이리저리 이끌리며 성장통을 겪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새삼 생각했습니다.
아이가 어른이 된다는 건 결국 더 까다롭고 복잡한 감정들을 알게 되는 것이란 걸요. ‘기쁘면서도 슬프고’, ‘좋으면서도 싫고’, ‘시원하면서도 섭섭한’ 미묘하고 모호한 감정들까지 차츰 학습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른은 아이보다 복잡해지는 거겠지요. 다만 그만큼 성숙해졌다면 다양한 감정에 대처하는 방법들도 나름대로 익히게 됩니다.
경험상 기쁨과 즐거움, 행복감 같은 긍정적 감정에 대해선 굳이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냥 만끽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다른 한편으로 따라다니는 슬픔과 권태감과 불행감 따위의 부정적 감정들은 되도록 빨리 떨쳐버리는 게 좋았습니다.
안 좋은 감정을 컨트롤하는 데 도움 되는 해법들을 나눠 보겠습니다.

먼저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그저 ‘감정은 변한다’는 사실을 의식적으로 떠올리는 겁니다.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달라지거나 사라집니다.
예컨대 ‘화를 식히다’, ‘마음을 가라앉히다’ 같은 표현이 있지요? 감정이 변하기에 가능한 말들입니다.
2300년 전 아리스토텔레스도 “분노에는 세월이 약”(‘수사학’)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불안이나 두려움 같은 부정적 감정이 엄습할 때는 속으로 ‘괜찮아진다는 걸 알고 있어’라고 되뇌면서 그냥 할 일을 하는 겁니다.
그럼 어느새 정말 괜찮아지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더불어 우리가 감정에 따라 상황을 왜곡할 수 있다는 사실도 함께 떠올리면 좀 더 차분해질 수 있습니다.
음, ‘절규’(The Scream, 1893년)라는 제목으로 잘 알려진 에드바르 뭉크의 그림을 보실까요? 19세기 말~20세기 초에 활동했던 노르웨이 국민 화가 뭉크는 대상에 감정을 이입해 그렸던 ‘표현주의’ 선구자였는데요, 해골 같은 얼굴로 두 귀를 막고 선 자신을 중심으로 주변 풍경이 마치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요동치게 그렸습니다.
해 질 무렵에 두 친구와 함께 길을 걷다가 혼자만 극도의 공포에 빠져 뒤처졌던 경험을 표현했대요. 실제로 그림 왼편에서 태연하게 가고 있는 친구들이 보입니다.
감정에 사로잡히면 우리는 상황을 실제와 다르게 해석하기도 합니다, 뭉크 그림처럼요. 이 사실을 자각하는 것만으로도 평정심 회복에 유리해진답니다.

생각과 감정은 세트

책 ‘감정이라는 무기’에서 소개된,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이는 ‘메타뷰’ 사례. 조민진 제공

책 ‘감정이라는 무기’에서 소개된,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이는 ‘메타뷰’ 사례. 조민진 제공

이젠 조금 더 적극적인 대처법인데요, 생각을 통제해 감정을 조절하는 겁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하지요?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얘깁니다.
생각과 감정은 세트입니다.
세계적 신경과학자 앨릭스 코브가 쓴 책 ‘우울할 땐 뇌 과학’을 보면, 실제로 뇌에서 생각을 담당하는 전전두피질과 감정을 맡는 변연계가 밀접하게 상호작용한다는 설명이 나옵니다.
이 두 영역이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면 감정 상태를 조절할 수 없게 돼 우울증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죠. 제가 마거릿 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좋아한다고 말씀드린 적 있었는데요, 무엇보다 주인공 스칼릿 오하라의 강렬한 캐릭터가 맘에 듭니다.
장단점이 있는 인물이지만, 강인한 그녀가 부정적 생각을 멈추는 걸로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는 데 능하다는 점에 끌리지요. 근심·불안·고통·슬픔처럼 아픈 감정에 휩싸일 때면 스칼릿은 늘 이렇게 읊조려요. “지금은 아무 생각도 하지 말자”,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자”. 마치 효험 좋은 주문을 외는 듯 말입니다.
나쁜 생각을 끊어내고 눈앞에 닥친 일에 몰두하며 마음을 가라앉히는 법을 저도 스칼릿에게서 배웠습니다.
종종 따라 해보는데 꽤 효과가 좋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나와 거리두기입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메타뷰’(metaview)의 관점에서 보면 심각하게 여겨졌던 일들도 의외로 별게 아닌 경우가 많거든요.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 수전 데이비드는 저서 ‘감정이라는 무기’에서 메타뷰 기술이야말로 “자아성찰 능력의 핵심 요소”라고 말합니다.
책에는 관점이 변하면 전혀 다르게 보이는 재밌는 사례가 나오는데요, 예컨대 ‘A, l3, C’와 ‘12, l3, 14’의 차이입니다.
양쪽 모두 가운데 같은 이미지(l3)가 들어가 있죠? 하지만 아마도 전자에선 ‘알파벳 B’로, 후자에선 ‘숫자 13’으로 읽으셨을 겁니다.
상황을 보는 관점은 다양하고, 관점이 바뀌면 다르게 보인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지요.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보면 전편에서든 속편에서든 ‘기쁨’과 ‘슬픔’이 늘 함께 다니며 이야기를 끌어갑니다.
기쁨을 느끼려면 슬픔도 알아야 한다는 뜻이 아닐는지요. 어떤 감정이든 나름대로 제 역할을 하는 중일 겁니다.
다만 우리는 필요에 따라 스스로 감정을 제어할 수 있음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좀 괴로워도 내일은 즐거울 수 있습니다.
앞서 걱정하지 말아요, 내일은 또 다른 날이니까요!

늦었다 하지 말고 당장, 반응 말고 대응, 치료 전에 관리

[한겨레S] 조민진의 꿈꾸기 좋은 날
현명한 삶의 자세

포기·절망하지 말고 차근차근
즉자적 감정 통제, 침착하게
‘좋은 습관’ 잠재적 불행 방지
내 삶의 ‘버팀목’ 쌓아가기

미국의 생물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 위키피디아

미국의 생물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 위키피디아

안녕하세요, 여러분. 조민진입니다.
얼마 전 서점에 갔더니 미국 과학 전문기자 룰루 밀러가 쓴 논픽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과학 분야 베스트 코너에서 여전히 선두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국내 출간 2년이 넘은 책인데 말이죠. 베스트셀러 꼬리표를 의식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미 읽은 책이 보기 좋게 진열돼 있으면 왠지 뿌듯합니다.
‘그래, 나도 읽어봤다니깐… 무슨 내용인지 알고 있다고!’ 하는 차원에서요.

생물분류학자 조던의 물고기 표본

데이비드 스타 조던. 저자인 밀러를 제쳐 둔다면 이 책 속 주인공입니다.
마치 소설처럼 읽히는 에세이에서 밀러는 자신이 파고든 조던의 삶을 풀어놨습니다.
조던은 미국 스탠퍼드대 초대 총장이었고, 생물분류학자였고, 세상의 수많은 물고기를 발견했으며, 인류를 유전학적으로 개량하기 위한 우생학을 신봉했습니다.
밀러는 조던이 살았던 방식을 비판적으로 서술하고 있지요. 인물을 탐구하는 전기류를 좋아하는 제게 사실상 조던의 평전이기도 한 이 책은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삶의 어떤 방식과 그 연유를 꿰뚫는 저자의 통찰에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고요. 네, 이 책은 삶의 자세에 관한 책이기도 했습니다.

밀러는 조던에게서 빛과 그늘을 함께 보았죠. 사는 태도를 배우려 했던 사람에게서 배우지 말아야 할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밀러는 혼돈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중심을 잡고 나아가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 사는 동안 한번쯤은 비슷한 심정이지 않을까요? 이번 글에선 삶을 대하는 자세를 얘기하고자 합니다.
유용한 ‘애티튜드’(태도)에 대해서요. 마침 최근 몇 해 동안 많은 분이 애독한 책 속에도 제가 찾은 해답 중 일부가 들어 있는 듯해 이렇게 꺼내 봤습니다.

실용적으로 도움 되는 자세로 퍼뜩 세 가지가 떠오릅니다.
먼저 ‘이미 늦었는데 말고 지금이라도’입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이 진부하게 느껴지지만, 진리 같습니다.
학창 시절 시험 기간을 떠올려 볼까요? 내내 놀다가 시험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던 다급한 순간을요. 비슷한 처지라도 정신력 강한 친구는 ‘지금이라도’ 할 일을 합니다.
시험 직전 쉬는 시간까지 하나라도 더 공부해서 하나라도 더 맞히지요. 이미 늦었다고 포기하는 대신 지금이라도 한다는 자세는 희망을 줍니다.
늦었어도 다시 시작할 수 있고, 틀렸어도 다시 수정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게 하지요.

밀러가 일종의 동경을 품고 조던을 탐구하기 시작했던 이유도 그에게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싶어서였습니다.
조던은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으로 30년 연구 노력이 거의 수포가 된 지경에서도 절망하지 않았던 인물이었으니까요. 단번에 내동댕이쳐진 수천 마리 물고기 표본과 흩어진 이름표들 앞에서 조던은 바늘을 들었습니다.
이젠 유리단지에 표본과 이름표를 넣어두는 대신 아예 물고기 피부에 이름을 꿰매 붙여서 같은 불상사를 대비하겠단 거였지요. 아무튼 조던은 충격적인 불행 앞에서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던 겁니다.
운다고 해결될 일은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조던은 자신의 오류를 수정하는 일에선 ‘지금이라도’ 정신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밀러가 한때의 우상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죠. 조던은 다윈의 진화론을 수긍하면서도 자의적 믿음과 질서를 위해 끝까지 우생학을 밀어붙였습니다.
잘못된 신념과 습관 따위는 지금이라도 수정하는 결단과 용기가 필요했는데 말이지요.

어떤 태도로 현명하게 살 것인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16강전(잉글랜드 대 아르헨티나)에서 잉글랜드의 데이비드 베컴(맨 오른쪽)이 레드카드를 받고 있는 모습. AP 연합뉴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16강전(잉글랜드 대 아르헨티나)에서 잉글랜드의 데이비드 베컴(맨 오른쪽)이 레드카드를 받고 있는 모습. AP 연합뉴스

그럼 두번째 자세를 꼽아볼까요? ‘반응 말고 대응’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번번이 반응하는 사람과 대응하는 사람의 차이를 알게 됩니다.
결국 자신을 스스로 컨트롤할 줄 아느냐, 아니냐의 차이 같습니다.
자신을 통제하고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은 대응해야 할 때 반응함으로써 낭패를 보는 일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보죠. 직장에서 상사로부터 터무니없는 주문을 받았다 칩시다.
“그걸 어떻게 해요?”, “말도 안 돼요!” 등으로 즉각적으로 부정적이고 싫은 감정을 내보이는 사람은 ‘반응하는 사람’입니다.
반면 일단 수긍하고, 왜 안 되는지 검토한 이유를 들고 다시 상사를 찾아가 설명하는 사람은 ‘대응하는 사람’입니다.
조직에선 결국 누가 신뢰받을까요? 답은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되겠지요. 저 또한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체득했습니다.

영국 출신의 세계적 축구 스타죠, 데이비드 베컴에 관한 4부작 다큐멘터리(‘베컴’, 넷플릭스)를 재밌게 봤습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의 16강전에서 베컴이 충동적인 행동으로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당한 일이 담겼더군요. 잉글랜드가 탈락했고 베컴은 패배의 주범으로 몰렸습니다.
당시 베컴과 물리적 신경전을 벌였던 아르헨티나 선수 디에고 시메오네는 인터뷰에서 “(베컴이) 살짝 건드린 수준인데 제가 연기를 좀 했어요. 베컴이 세게 찬 것처럼 넘어졌죠”라고 털어놨습니다.
베컴의 반응을 유도하려고 일부러 성가시게 굴었던 거였습니다.
베컴에겐 지우고 싶은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했더라면 이후 모진 트라우마에 시달리지 않았을 테지요. 대응보다 반응이 앞서면 종종 후회할 일이 생깁니다.
그러고 보니 언급한 두 사람, 조던과 베컴의 이름이 모두 ‘데이비드’네요!

마지막으로는 ‘치료 전에 관리’를 꼽겠습니다.
이 대목에선 작은 차이가 결국 큰 차이로 이어짐을 알아채는 게 중요합니다.
꾸준함이 포인트고요.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말이 있지요. 미리 관리하고 예방하지 않으면 나중에 치료하고 수습해야 할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건강 문제에 한정할 얘기만은 아닙니다.
옷 관리를 예로 들어볼까요? 깨끗한 상태를 오래 유지하려면 필요할 때 세탁을 미루지 않는 게 좋습니다.
세탁물을 방치하면 찌든 때가 드니까요. 원상 복구하려면 결국 더 큰 노력과 비용이 들거나 아예 회복이 어려운 경우도 생깁니다.
운동하는 습관, 소식하는 습관, 양치하는 습관, 정리하는 습관처럼 작지만 좋은 습관들로 평소에 관리하면 혹시 모를 잠재적 불행을 막을 수도 있을 거예요. 적은 노력을 꾸준하게! 생각보다 효용이 크답니다.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버팀목이 되어줄 자세를 고민해 보는 일은 가치가 있습니다.
그 어떤 순간에도 나의 태도를 결정할 자유만은 내게 있으니까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끝까지 읽으신다면 저자인 밀러가 오랜 혼돈 끝에 얻은 ‘삶의 자세’를 알 수 있을 겁니다.
어류라는 범주를 부숴버린 책 제목도 결국 거기서 비롯됐더라고요. 좋은 자세가 우리의 일상을 빛내주길 기원해 봅니다.

삶이 주는 기회, ‘또 다른 나’가 되는 일

[한겨레S] 조민진의 꿈꾸기 좋은 날
‘다른 삶’ 위한 용기

내면에 다양한 자아 있지만
자신을 특정한 존재로 가둬
‘나를 선택’할 수 있음 깨닫고
행동방식 상상할 수 있어야

그림을 그리고 있는 윈스턴 처칠의 모습. 처칠은 화가이기도 했다.<BR> 위키아트 제공

그림을 그리고 있는 윈스턴 처칠의 모습. 처칠은 화가이기도 했다.
위키아트 제공

시인 박목월이 “빛나는 꿈의 계절”이라고 불렀던 4월이 가고 있네요. 여러분, 잘 지내셨겠지요? 조민진입니다.
내년에도, 그 후년에도 4월은 다시 돌아오니까 아쉬움을 접어봅니다.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드네요. 좋은 계절이 아무리 좋았던들 다음에도 이번과 똑같은 날들이 되풀이된다고 한다면 마냥 좋을까 하고요. 글쎄요, 저는 별로인 것 같습니다.
그냥 다르게 좋은 날들이면 좋겠습니다.
한번뿐인 생이라니 최대한 다채로운 즐거움을 누려보고 싶습니다.
같다면 반복하고 싶진 않고요.

너 I라고? E 같은데?

살면서 일인다역을 했던 윈스턴 처칠이 50대에 쓴 글들을 모아 묶은 수상록 ‘폭풍의 한가운데’를 읽으면서 스스로 다양한 행복과 행운을 누렸다고 생각하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임을 알았습니다.
“과연 다시 같은 삶을 살아보기를 진정으로 원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단연코 ‘아니요’가 될 것”이라고 썼더군요. 힘들고 위험한 순간에 자신을 따라다녔던 행운을 보장할 수 없음을 이유로 들었지만, 근원에는 인간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다른 삶’에 대한 동경이 있지 않을까 짐작합니다.
반복하고 싶진 않은 거지요. 2차 세계대전 기간에 영국 총리로서 연합군의 승리를 이끌었던 처칠은 정치인 말고도 군인이었고, 종군기자였고, 작가였고, 웅변가였고, 화가이기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다양한 자아로 살았음에도 “단 한번만”이면 충분했던 거네요.

역설적이지만, 이처럼 삶을 한번이면 충분하다고 여기면 최대한 충만하게 살고자 하는 욕망도 뒤따르는 것 같습니다.
이번 생 안에서 ‘다양한 나’를 꿈꾸게 되는 거지요. 다양한 나를 꿈꾸다 보면 ‘또 다른 나’를 찾게 됩니다.
또 다른 내가 필요한 순간은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기도 하고요. 용기가 필요한 순간에 용기를 낼 수 있다면 ‘최고의 나’를 만나는 겁니다.
그러니까 다양한 나를 꿈꾸기 시작하면서 최고의 나를 구하는 길이 열리게 되지요. 생각보다 우리는 자신을 하나의 특정한 존재로 가두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나는 이건 할 수 있고, 그건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식으로요. 하지만 그러면 삶이 주는 기회들을 한껏 활용하기 어렵지 않던가요? 내가 나를 한계 짓고 구속하면 다양하고 충만한 삶을 구가하기 힘듭니다.
유일한 생을 좀 더 다채롭게 누리기 위해 저도 궁리를 많이 했습니다.
방법을 나눠볼까 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엠비티아이’(MBTI) 얘기를 꺼내볼게요. 스위스 정신과 의사였던 카를 구스타프 융의 심리이론을 토대로 개발된 성격 유형 검사지요. 저는 내향형(I)으로 나옵니다.
융에 따르면 내향형은 외부 요인에 크게 반응하지 않고 자신의 내면이나 주관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외향형(E)은 외부 상황이나 상대에게 맞춰 자신을 조율하거나 융통성 있게 부응하는 특성을 갖지요. 오랜 기간 기자였던 저는 일하면서 외향성이 더 크게 필요한 순간이 많았습니다.
내향성이 더 높았지만 일을 잘하고 싶은 마음도 컸기에 사람들을 만나고 취재할 때면 제가 가진 외향성을 최대한 키워 임했습니다.
부단히 노력했지요. 그러다 보니 어느새 주변에선 저를 외향형으로 보고 있더라고요. 일을 더 잘하려고 노력한 끝에 얻은 이미지였지만 비로소 알게 됐습니다.
사람에겐 겉으로 드러내 보일 수 있는 다양한 특성들이 내재돼 있음을요. 영화 ‘카사블랑카’로 유명한 배우 잉그리드 버그먼에 관한 다큐멘터리(‘그녀, 잉그리드 버그만’)를 봤는데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말했더군요. “나는 세상에서 제일 수줍음 많은 사람이지만 내 안의 사자는 끊임없이 으르렁댔다.
” 평소엔 수줍음을 많이 탔어도 카메라 앞에선 또 다른 자신이 되어 연기할 수 있었던 까닭은 제 안에 이미 다양한 자아가 존재했기 때문이었겠지요. 아이러니하게도 한번뿐인 삶에서 오직 하나의 나로만 사는 건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게 많아서일 수도 있겠고, 세상이 많은 걸 요구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또 다른 나’를 꺼내기 위해 용기가 필요한 순간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오늘은 어떤 내가 되어야 할까”

먼저 내가 나를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게 중요합니다.
외향형과 내향형을 처음 구분했던 융은 “나는 나에게 일어난 것이 아니라, 내가 되기로 선택하는 것”이라고도 규정했습니다.
처칠 전기 영화 ‘다키스트 아워’에선 2차대전 중 차기 총리로 임명됐다는 소식을 들은 처칠이 모자를 집어 들면서 “오늘은 어떤 내가 되어야 할까?”라고 읊조립니다.
오늘은 어떤 식으로 행동할지를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거죠. 실제로 그는 자서전 ‘윈스턴 처칠, 나의 청춘’에서 “인간의 자유의지와 운명에 대해 내가 내린 결론, 즉 이 두가지는 항상 동일하다”고 썼습니다.
운명조차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겠지요.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이용하길 권합니다.
나침반이 되어 선택할 방향을 알려줄 겁니다.
답을 갖고 있다면 말이지요.

선택했다면 다음으로 필요한 건 상상력입니다.
내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행동할지를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어야 행동으로 옮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경기력 향상 코치인 토드 허먼이 이른바 ‘숨은 나’를 찾는 법에 대해 쓴 ‘알터 에고 이펙트’라는 책을 재밌게 읽었는데요, “상상력 게임을 해보자”는 조언이 나옵니다.
예컨대 많은 청중 앞에서 연설해야 해서 초조하고 떨린다면 “원더우먼이나 슈퍼맨이 되어 무대에 오른다고 상상해보자”는 겁니다.
원더우먼이나 슈퍼맨이라면 조금도 떨지 않고 자신감 넘치게 말하겠지요? 상상대로 행동하면 결국 또 다른 나로서 비범하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겁니다.
벤치마킹할 수 있는 좋은 롤모델을 많이 알고 있다면 경쟁력이 커집니다.

다른 삶에 대한 갈망은 다시 태어나지 않아도 현생에서 실현할 수 있습니다.
내가 바뀌면 됩니다.
나라는 사람을 상황에 맞게 변주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좋습니다.
자신의 다양한 잠재력을 믿고 원하는 만큼 변할 수 있다고 믿는 게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대담성과 용기는 이런 믿음에서 비롯됩니다.
나는 고정불변의 존재가 아니기에 꿈도 변하는 거겠지요. 내 안의 다양성을 발현하면 훨씬 자유로워지는 것 같습니다.
삶이 주는 기회와 가능성도 덩달아 커지는 셈이니까요. 자, 그럼 원하는 모습을 그리며 상상력을 발휘해봅시다.
한번뿐인 생을 후회 없이 다양하게, 기왕이면 언제나 ‘최고의 나’를 불러낼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요?

민주당 ‘상임위원장 독식’…대선 승리 걸림돌 될수도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539

여야 상임위원장 ‘비례 배분’ 원칙
민주당 열성 지지층 요구에 ‘흔들’
사생결단, 대결 격화, 정치 실종…
중도층 이탈로 차기 대선 악영향

우원식 국회의장이 6월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장실에서 열린 원 구성을 위한 양당 원내대표 회동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BR> 왼쪽부터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 우원식 의장,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공동취재사진

우원식 국회의장이 6월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장실에서 열린 원 구성을 위한 양당 원내대표 회동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왼쪽부터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 우원식 의장,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공동취재사진

인간은 부족주의 유전자를 갖고 있습니다.
무인도에 상륙해서 혼자 살아가는 로빈슨 크루소는 인간의 원형이 아닙니다.
인간은 처음부터 집단적 존재요, 사회적 존재였습니다.
태어나면 상당 기간 부모와 무리의 돌봄을 받아야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부족에서 쫓겨나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낯선 부족은 치명적 위협이었습니다.
수만년, 수천년 동안 인간은 피부색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인간들을 살해했습니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다른 부족이나 사람을 함부로 죽이면 안 된다는 각성이 서서히 생겼습니다.
각성은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인류는 매우 오랫동안 봉건제, 군주제, 공화제를 거친 뒤 아주 최근에야 민주주의를 겨우 정착시키고 있습니다.
여성을 포함한 일반 시민이 참정권을 가진 것은 20세기 들어서였습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지난 6월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장접견실에서 국회 원 구성 관련 기자회견을 열어 발언하고 있다.<BR> 연합뉴스

우원식 국회의장이 지난 6월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장접견실에서 국회 원 구성 관련 기자회견을 열어 발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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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공동체 구성원 다수가 공동체를 지배하는 체제입니다.
피부색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신념이 다른 사람들을 죽이거나 내쫓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체제입니다.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는 권력 구조는 크게 나누어 의원내각제와 대통령제가 있습니다.
유럽의 의원내각제는 의회 다수 세력이 국정을 이끌어가는 시스템입니다.
의회의 정부 불신임권과 정부의 의회 해산권이라는 상호 견제 장치를 전제로 작동합니다.
미국의 대통령제는 의회와 대통령을 각각 선출하고 두 기관이 상호 협력과 견제로 국정을 이끌어가는 시스템입니다.
연방제와 승자독식이라는 미국의 독특한 체제와 문화 때문에 새로 발명됐습니다.
4년마다 치르는 선거에서 대통령이 바뀔 수 있다는 전제가 필수 조건입니다.
미국 이외의 나라에서는 성공한 사례가 별로 없습니다.

디제이가 버텨서 쟁취한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은 1987년 대통령직선제 개헌 이후라고 봐야 합니다.
그 전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대통령은 행정부·입법부·사법부를 다 지배했습니다.
독재자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국회는 대통령의 통치 기구였습니다.
‘청와대 거수기’ ‘통법부’라는 오명으로 불렸습니다.
국회의장은 국회의원들이 선출했지만, 대통령이 미리 후보자를 지명했습니다.
임명직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상임위원장은 당연히 여당이 다 차지했습니다.
승자독식, 여당 독식이 국회 원 구성의 원칙이었습니다.

변화가 생긴 것은 1988년 4·26 13대 총선 이후였습니다.
소선거구제로 치러진 선거 결과는 노태우 대통령의 민주정의당 125석, 김대중 총재의 평화민주당 70석, 김영삼 총재의 통일민주당 59석, 김종필 총재의 신민주공화당 35석이었습니다.
사상 최초로 여소야대 국회가 탄생한 것입니다.
여당인 민정당의 독식이 불가능해졌습니다.
13대 국회 전반기 원 구성 협상에서 국회의장은 민정당, 부의장 2명은 평민당과 통일민주당이 각각 맡기로 여야가 합의했습니다.
상임위원장은 의석수에 따라 민정당 7, 평민당 4, 통일민주당 3, 공화당 2의 비율로 배분했습니다.
승자독식 원칙을 버리고 비례성 원칙을 도입한 것입니다.
상임위원장을 여야가 나누어 맡은 것은 국회가 만들어진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특별위원회 위원장도 여야가 나누어 맡았습니다.
‘광주 특위’와 ‘5공 특위’가 가동되며 국회 차원의 과거 청산, 5공 청산이 시작됐습니다.
이처럼 13대 국회 전반기에는 의회 중심의 정치가 만개했습니다.

1990년 13대 국회 후반기에 위기가 닥쳤습니다.
1990년 1월 민정당, 통일민주당, 공화당이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을 창당했습니다.
국회 지형은 거대 여당 민자당과 소수 야당 평민당의 양당 구도로 바뀌었습니다.
민자당은 과거처럼 상임위원장을 독식하려고 했습니다.
김대중 총재가 강하게 반발했고 평민당 몫 4개 상임위원장을 확보했습니다.
만약 이때 김대중 총재가 버티지 못했다면 국회는 다시 승자독식 시대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 국회에서 의석수에 따라 상임위원장을 배분하는 비례성 원칙은 그런대로 잘 지켜지고 있습니다.

집권 여당은 국회 보이콧

1997년 사상 최초의 정권교체 이후 국회의장 선출과 상임위원장 배분 등 원 구성 협상은 매우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특히 법안 처리 길목을 지키는 법제사법위원장 자리를 어느 당이 차지하느냐를 놓고 매번 치열한 논쟁과 싸움이 벌어집니다.
4·10 총선 이후 22대 전반기 원 구성 협상도 마찬가지입니다.
법사위원장 자리 때문에 집권 여당이 국회를 보이콧하는 희한한 장면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배준영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오른쪽)와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가 지난 6월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원 구성 협상을 한 뒤 나와 취재진에게 각자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BR> 연합뉴스

배준영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오른쪽)와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가 지난 6월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원 구성 협상을 한 뒤 나와 취재진에게 각자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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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여당을 견제하고 22대 총선 민심을 반영하기 위해 법사위원장은 야당이 맡아야 한다”, “국회의장을 차지한 다수당을 견제하기 위해 법사위원장은 관례대로 2당이 맡아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습니다.

역대 사례를 살펴보면 “그때그때 달라요”입니다.
국회 다수당이 야당일 수 있는 대통령제의 특성 때문인 것 같습니다.
2002~2004년 16대 후반기에는 야당의 박관용 국회의장이었는데, 같은 야당의 함석재·김기춘 의원이 법사위원장을 했습니다.
2016~2018년 20대 전반기에는 야당의 정세균 국회의장이었는데, 여당의 권성동 의원이 법사위원장을 했습니다.
2020~2022년 21대 전반기에는 여당의 박병석 국회의장이었는데, 여당의 윤호중·박광온 의원이 법사위원장을 했습니다.
2022~2024년 21대 후반기에는 야당의 김진표 국회의장이었는데, 여당의 김도읍 의원이 법사위원장을 했습니다.
따라서 22대 전반기에 법사위원장을 민주당이 맡아야 하는지 국민의힘이 맡아야 하는지는 꼭 어느 쪽이 옳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번 사안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방탄’이나 판사·검사 탄핵을 위한 민주당의 법사위원장 자리 욕심으로 단순하게 읽어서는 곤란하다는 점입니다.
무슨 소리냐고요? 1987년 6월 항쟁과 1988년 여소야대로 정착하기 시작한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서서히 위기에 처하고 있습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2009년 검찰 수사로 인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2019년 조국 사태, 2022년 대통령 선거 등이 그런 위기 현상입니다.
가장 큰 원인은 정치 양극화입니다.
정치 양극화에는 두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첫째, 불복입니다.
정권을 빼앗긴 이른바 보수 세력과 검찰을 위시한 비선출 권력이 선거 결과와 민주주의 정치 질서를 무시하기 시작했습니다.
보수층 유권자들이 따라가고 있습니다.
민주당 유권자들도 따라가고 있습니다.
둘째, 전세계적 흐름인 정보화 혁명입니다.
2000년 인터넷 혁명, 2010년 모바일 혁명으로 ‘스마트 몹’이 출현했습니다.

민주적인 싸움의 방식

스마트 몹은 네트워크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사회의 각종 사안에 직접 참여해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들의 주의나 주장에 맞지 않으면 직접 실력을 행사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민주당 열성 지지층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4·10 총선 이후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 지도부는 열성 지지층에 끌려다니고 있습니다.
‘추미애 사태’를 계기로 국회의장 후보자와 원내대표 선거에 권리당원 의사를 20% 반영하기로 한 것이 단적인 사례입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6월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BR>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6월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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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열성 지지층 가운데 상당수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국회 상임위원장을 민주당이 다 차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요구는 매우 위험한 측면이 있습니다.

첫째, 1987년 민주화 이후 우리나라에서 겨우 정착돼가고 있는 민주주의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독식이 아닙니다.
공존입니다.
민주당이 상임위원장을 독식하면 윤석열 정권과 민주당의 대결이 격화하고, 정치 양극화는 더 극심해질 것입니다.
정치가 사생결단으로 치달을 수 있습니다.
정치가 망가지면 최종적으로 국민이 피해를 봅니다.

둘째, 민주당의 대선 승리 가능성이 적어집니다.
민주당 열성 지지층은 민주당이 국회를 장악하고 특검으로 윤석열 대통령을 무력화시키고 조기 대선을 치르면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민주당을 둘러싸고 있는 우호 세력과 중도층 유권자들이 떨어져 나갈 수 있습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19일 “6월 임시회의 회기는 7월4일까지”라며 “‘이번 주말까지’ 원 구성 협상을 종료해달라”고 통보했습니다.
‘이번 주말까지’는 6월23일 일요일까지입니다.
6월24일 월요일에는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만으로 본회의를 열어, 국민의힘 몫으로 남겨둔 7개 상임위원장 자리에 민주당 의원들을 선출할 것 같습니다.
4년 전에는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의원들이 등원하면 상임위원장 자리를 곧바로 내주기 위해 민주당 의원들을 ‘임시로’ 앉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예 2년짜리 상임위원장 후보들을 내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드러내놓고 독식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큰일입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국회는 정치의 공간입니다.
국회법보다 여야 간 대화와 합의가 더 중요합니다.
국회 다수 세력인 민주당이 끝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정치는 때로는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진 ‘부족주의 유전자’를 당분간은 꾹꾹 더 억눌러야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은 싸울 때도 민주적으로 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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