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있으면 건강한 노년 11.3년 더…우울한 초고령사회


[한겨레S] 남창훈의 생명의 창으로 바라본 사회
노화와 불평등

소득 5분위 건강수명 72.2살
1분위는 60.9살…경제력 변수
빈곤·질병 노인자살률 OECD 1위
돌봄·연금 확대, 양극화 해소 필요

지난달 4일 서울 용산구 효창운동장에서 대한노인회 서울시연합회가 주최한 시니어 올림픽이 열려, 참가자들이 공굴리기 게임 등을 즐기고 있다.<BR>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지난달 4일 서울 용산구 효창운동장에서 대한노인회 서울시연합회가 주최한 시니어 올림픽이 열려, 참가자들이 공굴리기 게임 등을 즐기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생명활동의 중요한 특징은 끊임없는 변화에 있다.
정자와 난자의 수정을 통해 형성된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되어 배아가 발생하고 태아로 발달한 뒤 한 개체로 태어나고, 성장을 통해 유소년기를 거쳐 청년기에 이르면 생리적 차원의 정점에 도달하게 된다.
중년기에 이르기까지 완만한 쇠퇴 이후 노년기의 급격한 쇠퇴를 끝으로 개체는 주변 환경과 평형을 이루며 그 일부로 돌아간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는 예외를 허용하지 않고 작동하는 프로그램을 따르는 듯 보이기도 한다.
가령 시간을 축으로 생애주기 동안 벌어지는 변화가 인체 내외부에서 필연적으로 벌어지는 일들로 구성되어 있다면 모종의 프로그램을 상정할 수 있다.

평균 건강수명, 11년간 제자리

노화 역시 그러한 변화 중 대표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노화 과정에서 유전체의 안정성이 떨어지고, 세포 속 단백질이나 소기관의 품질 관리에 문제가 생기고, 영양분에 대한 감지 및 통제 기전에 문제가 생긴다.
이처럼 누적된 문제들로 인해 세포 분열은 정지 상태에 이르고, 세포 재생능력이 사라지며 만성염증이나 장내 미생물 불균형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노화 과정을 유심히 살펴보면 인체 내부의 내재적 프로그램과 더불어 사회적 프로그램이 교묘하게 연계되어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체로 운동, 섭식, 스트레스 조절, 빈곤도, 오염도 같은 사회적 프로그램이 내재적 프로그램을 조절해 노화의 감속이나 가속이 이뤄진다.
노화 자체가 질병이라기보다는 노화 과정이 어떤 임계치를 넘어서 근감소증, 장기적 염증 상태, 신경변성 및 인지저하 상태에 처하게 되면 질병으로 진단하게 된다.

우리나라 노화 상황을 성찰하기 위해 수명에 대해 살펴보자.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1970년 62.3살이었지만 2023년에 21.3년이 늘어난 83.6살이 되었다.
이는 오이시디(OECD) 전체에서 세번째로 긴 것이다.
이처럼 기대수명이 늘어난 이유는 의료·교육·소득 수준이 증가하면서 노년층의 사망률이 크게 감소한 데 있다.
이렇게 기대수명이 늘어나는 한편 출생률이 감소하면서 우리나라는 2025년이면 65살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접어들게 된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아래 노화 문제는 빠르게 핵심 이슈로 부각하고 있다.
얼핏 우리의 기대수명이 세계 최상위인 것은 노화의 내재적 프로그램에 사회적 프로그램이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내막을 세밀하게 살펴보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노화와 관련된 사회적 프로그램의 중대한 문제점들이 보이게 된다.

우선 우리 사회의 기대수명은 꾸준히 증가하는 데 비해 건강수명은 계속 정체되어 있다.
특정 연도에 태어난 출생자가 앞으로 생존할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생존 연수를 기대수명이라 한다면, 건강수명은 개체의 기대수명에서 질병으로 인해 일상생활의 기능이 제약되는 기간을 제외한 것이다.
2012년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0.8살, 건강수명은 65.7살인 데 비해 2023년 기대수명은 83.6살, 건강수명은 65.8살이다.
11년 사이 기대수명이 2.8년 느는 동안 건강수명은 0.1년밖에 늘지 않았다.
건강수명을 산출하기 위해선 복지, 사회참여, 여가, 소득·소비, 노동, 가족, 교육·훈련, 건강, 범죄·안전, 생활환경 등 10개 부문에 걸쳐 조사가 이뤄지는데 이 부문에서 눈에 띄는 개선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국민연금 받기 전부터 아픈 노인들

평균 수명의 증가를 바탕으로 노화에 미치는 사회적 프로그램에 대해 판단할 때는 통계의 이면을 살피는 주의가 요구된다.
그 이면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두가지 현실은 수명의 양극화와 박탈지수로 표현되는 ‘지역의 붕괴’에 있다.
건강수명을 소득계층별로 나눠 살피면 참혹한 현실을 발견할 수 있다.
상위 20% 소득 수준을 지닌 소득 5분위 노인의 경우 건강수명이 72.2살이지만 소득 하위 20%에 속하는 소득 1분위 노인의 건강수명은 60.9살에 불과하다.
무려 11.3년 차이가 존재한다.
우리 사회의 노화는 결코 평등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저소득층 노인은 국민연금을 수령하기 4년 전부터 갖가지 질병에 시달리며 노년을 시작한다.
이러한 수명의 양극화는 소득 격차뿐 아니라 지역 격차에서도 드러난다.
집과 차의 소유 여부, 주거 환경의 열악한 정도, 노인인구 비율과 독거가구 비율, 이혼과 사별 비율, 아파트 비율 등을 통해 ‘박탈지수’를 산출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지수가 가장 낮은 지역과 가장 높은 지역의 수명 격차는 남성의 경우 2.7년, 여성의 경우 0.7년에 이른다.
이는 우리 사회의 노화에 작용하는 사회적 프로그램이 지극히 차별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웅변하는 지표들이다.

이러한 사회적 차별은 우리 사회의 압도적인 노인자살률을 통해 부각된다.
2023년 기준 한국의 65살 이상 노인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39.9명으로 오이시디 1위이다.
이 수치는 오이시디 가입국 평균인 17.2명의 두배를 넘기고 있다.
특히 70대의 경우 46.2명이고 80살 이상은 67.4명에 이른다.
노인 자살의 주된 원인은 빈곤과 질병이다.
노년기의 빈곤과 질병은 자력으로 극복되거나 회복할 가망을 찾기 어려워 자살과 깊은 인과관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노화를 질병이나 형질의 저하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노인들이 사회 속에서 좀 더 효과적으로 생명활동을 할 수 있도록 사회를 바꾸는 것은 시급한 과제라 할 수 있다.
광범위한 공공의료체계를 구축하여 돌봄을 고르게 확대하고, 고령자의 강점을 살린 노인 일자리를 만들거나 발굴하여 노인의 사회적 활동이나 참여의 기회를 늘리며, 노인기초연금의 확대나 기본소득 등을 통해 수명 양극화를 완화하는 일은 사회의 건강한 노화를 위해 필수적이다.
생명의 역능은 노화를 통해 감퇴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피어난다.
그 진가를 발견하고 인정하는 사회에서라야 우리는 건강하게 나이들 수 있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교수

서울대와 프랑스 퀴리연구소, 영국 케임브리지 분자생물학연구소에서 생화학·면역학 등을 공부했다.
박테리오파지를 이용한 수용체 개발, 노화와 면역 사이의 연관 등을 연구하면서 대학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부단히 모색 중이다.
‘탐구한다는 것’, ‘이타주의자’, ‘소년소녀, 과학하라!’ 등의 책을 썼다.

타인의 마음 읽으며 ‘맥락’ 짚기…인공지능보다 앞선 인간의 능력

[한겨레S] 남창훈의 생명의 창으로 바라본 사회
알고 모름, 정확히 아는 게 ‘공부’
타인과 상호작용하며 맥락 형성
AI, 연산능력·판단력 앞서지만
한계 규명·의견 형성 능력 없어

지난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엠더블유시(MWC) 행사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아메카가 관람객과 소통하고 있는 모습. EPA 연합뉴스

지난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엠더블유시(MWC) 행사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아메카가 관람객과 소통하고 있는 모습. EPA 연합뉴스

우리의 뇌 속에는 ‘맥락 속의 자아’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하는 부위가 있다.
복내측 전전두피질(Ventromedial prefrontal cortex)이 바로 그것이다.
이 부위를 중심으로 한 두뇌 시스템은 인간이 경험하는 사건에 개인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자율신경, 신경내분비, 면역기능을 포함한 행동과 말초 생리를 나름의 의도를 가지고 제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이 시스템은 인간이 경험을 통해 학습하는 과정과 그에 기반하여 자신과 세계를 그려내는 과정에서 중추적인 구실을 한다.
인간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사회와 세계라는 맥락 속에서 자아를 형성한다.
속성이 그러하다 보니 이 시스템은 건강한 사회, 즉 건강한 공적 관계와 네트워크가 존재하는 사회에서라야 온전히 발달할 수 있다.

좀 더 세부적으로 이 부위는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접근-회피 간 균형을 모색하는 구실을 한다.
이 부위가 편도체 또는 측핵과 맺는 신경망의 양상에 따라 자아의 균형이 잡힌다.
이 부위가 편도체와 더욱 빈번하게 상호작용하여 그 사이 연결 강도가 커지게 되면 지나치게 타인을 의식하게 된다.
이를 인지심리학에선 ‘회피 기제’라고 한다.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여 사회적으로 받게 될 비난을 회피하려는 것이다.
반대로 이 부위가 측핵과 빈번하게 상호작용해 연결 강도가 커지게 되면 타인을 의식하기보다 자신을 내세워 사회적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커진다.
이를 ‘접근 기제’라고 하는데 이 경향성이 극도로 커지면 타인의 비난 등에 둔감하게 된다.
두 기제 사이의 균형을 모색하는 것은 이상적인 사회관계를 맺기 위해 필수적이다.
그런데 이러한 균형은 끊임없이 자신에게 존재하는 편향성을 스스로 인식하고, 이를 재조정하는 일련의 성찰 과정을 통해 비로소 도달할 수 있다.
즉 자신이 존재하는 맥락을 이해해야 균형 잡힌 자아가 형성되는 것이다.

진정한 공부에 역행하는 ‘경쟁 과몰입’

그런데 타인에 대한 회피·접근 기제를 조율하면서 자아의 경계를 설정하는 과정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자신의 정체를 인식하는 일과 타인의 마음을 읽는 일이 서로 연결되는 과정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즉 이 과정들은 인간이 평생 수행해야 할 공부의 본질을 모두 아우르고 있다.
공부한다는 것은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타자들을 세계라는 맥락 속에서 이해하는 능력을 기르는 과정이다.
즉 우리는 공부를 통해 맥락 속의 자아를 형성한다.
공부하는 과정을 통해서 타자 및 세계와 효과적인 소통에 도달하게 되고, 효과적인 소통은 더 풍부한 맥락 속에서 제대로 된 공부의 조건을 조성하게 된다.
복내측 전전두피질이 다른 동물에 비해 인간의 두뇌에서 특별히 발달한 것은 사회적 존재인 인간이 오랜 시간에 걸쳐 진화적 적응을 거친 결과라 할 수 있다.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맥락 가운데 돌아볼 수 있는 능력’, 즉 메타인지가 중요한 까닭은 자신이 정말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분명하게 인지하는 능력이 학습 능력에서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능력은 아이러니하게도 타인의 마음 읽기 능력과 아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타인에게 자신의 견해를 밝혔을 때 그가 그것을 수용하고 다시 건네는 과정 가운데 자신의 견해를 더욱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이러한 성찰을 통해 더 나은 자기 인식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학습법이 있겠지만 그중 가장 효과적인 학습법으로 ‘가르치기’를 꼽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처럼 공부는 자기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그중 많은 부분이 자신과 관계를 맺는 타인을 통해 이뤄진다.
그런 의미에서 경쟁에 대한 과몰입은 진정한 공부의 반대에 놓여 있다.
경쟁에 몰입하는 사회에서 관계는 차단되고, 개체는 고립된다.
개체들을 잇는 촘촘한 네트워크들, 즉 맥락이 사라진 사회는 모래사막과 다를 바 없다.
바람에 부유하는 모래는 안정된 지형, 즉 맥락으로 구성된 세상을 이룰 수 없다.
이러한 세계 속 개체는 ‘맥락 속 자아’를 형성하는 데 심대한 곤란에 직면한다.

AI에 갇히지 않으려면

‘맥락 속의 자아’에 대한 성찰과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최근 대두되고 있는 인공지능(AI) 이슈를 잠시 살펴보고자 한다.
인공지능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한편으론 유용함과 잠재적 이점을 이야기하고, 다른 한편으론 모종의 불편함이나 위협감을 호소하고 있다.
이 문제의 핵심은 갑자기 등장하여 인간에게 성큼성큼 다가오는 인공지능에 있다기보다 이것이 개발되고 널리 퍼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변화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제기되는 위협감의 기저에는 인공지능이 앞으로 발휘할 능력이 지금 우리가 현실을 살면서 요구받는 능력과 크게 겹친다는 판단이 깃들어 있다.
광범위한 정보를 수집하고 그 가운데 필요한 정보를 선택한 뒤 이를 종합하여 어떤 결론을 이끌어 내는 능력에는 빠른 판단력과 고도의 연산 능력이 요구된다.
이런 능력이라면 막대한 정보량과 연산 능력을 갖추고 있는 인공지능과 인간의 역량을 견주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과도한 경쟁에 기반한 성과지상주의 사회는 더욱 빠른 발전을 위해 이러한 능력을 끊임없이 요구한다.

하지만 인간이 추구하는 바를 생명의 본질에 기반하여 정의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인간은 세계 속 다른 타자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쉼 없이 생성되는 존재이다.
따라서 누구와 어떤 관계를 어떻게 맺으면서 어떤 맥락을 형성할지 궁리하는 일이 두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이처럼 맥락을 형성하면서 자기초월적 판단을 하며 스스로의 한계를 명확히 알고 타자와 사물들이 지닌 미덕을 깨달아 그들과 최적의 관계를 만들어 가는 능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중요하다.
이것은 생명이 지니는 본질적이면서 고유한 속성이다.
역설적이게도 관계를 형성하면서 견지할 수 있는 지적 겸손이야말로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최대의 강점이며, 이 능력을 통해 인간은 인공지능을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
인공지능의 가장 큰 약점은 스스로를 성찰하여 자신의 한계를 규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른 의견과 맥락을 형성하는 능력의 결여에 놓여 있다.

문제는 맥락을 잃어가는 인간에게 놓여 있다.
맥락을 잃어버린 인간은 인공지능이 보여주고 제시하는 세상에 안주한다.
인공지능이 산출하는 집적된 정보라는 벽돌은 우리를 가두는 성이 될 수도 있고, 생명을 연결하는 공동체의 받침돌이 될 수도 있다.
이 세계의 희망은 튼튼하고 촘촘한 맥락으로 연대하는 생명의 힘 속에 있다.

끝없는 간병에…그 방에만 들어가면 날파리가 보인다

[한겨레S] 전홍진의 예민과 둔감 사이
남편 병수발 우울증

남편은 10년째 루게릭병 투병 중
부담감·죄책감 벗어나고픈 심리
돌봄 방해하는 ‘환시’ 증상 보여
때로는 간병인에 맡기고 재충전

클립아트코리아

클립아트코리아

미영(가명)씨는 65살 여성입니다.
자녀들은 모두 출가하고 남편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남편은 10년 전부터 꼼짝하지 않고 방에 누워 있습니다.
남편은 근위축성측색경화증(ALS), 흔히 ‘루게릭병’이라고 알려진 병을 앓고 있습니다.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야구선수 루 게릭이 앓던 병으로 뇌와 척수의 운동 세포가 점점 파괴되면서 팔다리의 운동 기능이 떨어지는 증상이 나타납니다.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도 이 병을 앓았습니다.
우리나라에도 3천여명의 환자가 있습니다.

미영씨의 남편은 키가 185㎝나 되는 건장한 체격을 갖고 있습니다.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합니다.
눈동자의 움직임을 통해 미영씨와 소통을 합니다.
미영씨는 남편이 몸을 전혀 쓸 수는 없지만 정신은 매우 또렷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미영씨는 남편에게 하루에 세번, 콧줄을 통해서 영양을 공급하고 가래를 뽑아내줍니다.
욕창을 막기 위해 몸을 좌우로 굴리고, 그때 대소변을 받아내서 처리합니다.
간병인도 오지만 남편의 눈빛을 보면 간병인에게만 맡기기는 어렵습니다.
벌써 10년, 그 긴 세월 동안 거의 외출도 안 하고 집에서 남편을 돌보고 있습니다.
자녀들은 요양병원에 보내기를 바라지만 남편의 눈빛을 보면 미영씨는 차마 그런 결정을 할 수 없습니다.
이 일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언제 끝날지 모릅니다.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 눈물이 흐릅니다.

안쓰럽기도 무섭기도

그런데 3개월 전부터 남편이 있는 그 방에 들어가면 날파리들이 날아다니고 자신의 얼굴에 달라붙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간병인은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데 한마리도 아니고 날파리 여러마리가 미영씨의 얼굴에 달라붙어, 남편 방에서 나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방을 나오면 날파리가 한마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미영씨는 날파리 때문에 그 방에 들어가는 것이 점점 더 힘들어졌습니다.
남편 방에 모기장도 설치하고 살충제 스프레이도 뿌려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명절 때 집을 방문한 자녀들은 날파리와 싸우고 있는 미영씨의 모습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자녀들 눈에는 날파리가 보이지 않는데도 미영씨는 계속 손으로 허공을 휘젓고 있었습니다.
자녀들은 미영씨를 데리고 먼저 동네 안과를 방문해 검사를 받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안과 전문의도 미영씨가 ‘비문증’이 아닐지 의심했습니다.
비문증이란 검은 실타래, 거미줄, 그림자, 또는 검은 구름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안구 내 출혈이 유리체 박리로 인해 자유롭게 눈 안에 떠다니고 환자가 이를 자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미영씨의 안구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비문증은 눈을 좌우로 움직이면 검은 실타래가 함께 좌우로 움직이는데 미영씨에게 보이는 날파리는 그렇게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미영씨는 안과 전문의의 의뢰로 인근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검사를 통해 오랜 간병으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증, 불안증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간병에 대한 모든 책임을 혼자 견뎌야 하는 사실이 심각한 우울증의 원인이 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상담 결과 미영씨는 남편의 방에 들어가면 자신을 쳐다보는 남편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무섭게도 느껴졌다고 합니다.
미영씨는 자신이 더 이상 남편을 간병하기 힘든 상태라는 것을 의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날파리가 자신이 방에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는 것으로 인식함으로써 죄책감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뇌 자기공명영상이나 인지기능 검사에서도 모두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긴병에 효자 없다고…

미영씨는 남편이 건강했던 시절을 회상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세상 누구보다도 건강하고 운동을 좋아했던 남편이 조금도 자신의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남편과의 추억을 생각하면 자신이 간병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도 늙고 힘이 부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요양병원에도 보내려고 했지만 이런 희귀질환 환자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고 합니다.

담당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미영씨가 지금처럼 자신의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간병만 한다면 정신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미영씨는 정신병적 증상이 동반된 우울증으로 날파리를 보는 환시가 동반되고 있었습니다.

미영씨는 이틀에 한번 간병인이 오는 시간을 소중히 잘 활용해야 합니다.
간병인이 있을 땐 미영씨가 옆에서 지키고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간병인이 남편을 돌보는 동안 외출해 친구도 만나고 운동도 하면서 마음의 긴장을 풀어주어야 합니다.
날파리는 환시이기도 하지만 미영씨에게 이제는 더 이상 현재 상태로 생활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말해주는 신호입니다.
미영씨도 오랜 간병에 지쳐서 우울증뿐 아니라 혈압, 당뇨 등의 만성질환이 생겼습니다.
집안에 오랜 질병을 앓는 환자가 있으면 가정이 침울해지지만 하루 종일 그런 분위기에 빠져 있는 건 좋지 않습니다.

희귀 난치병 환자와 가족을 돕기 위해서는 국가와 민간의 관심과 경제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환자 가족들만의 부담으로 하기에는 너무 긴 세월 동안 자신을 갈아 넣어야 하고 끝도 없이 희생해야 합니다.
결국 가족들도 지치게 됩니다.
처음에는 환자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지만 ‘긴병에 효자가 없다’고 결국 가족들 간에 간병 부담을 두고 사이가 벌어지는 일도 발생합니다.
대개 환자의 아내나 가장 마음이 착한 보호자가 도맡아서 간병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영씨는 남편을 간병하다 보니 자신의 건강을 챙기는 데 소홀했습니다.
건강검진을 받고 우울증, 고혈압, 당뇨에 대한 치료를 받았습니다.
환시 증상에 대해서도 약물치료를 받았습니다.
건강이 호전되면서 날파리가 날아다니는 증상도 점점 희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담당 의사의 조언에 따라 미영씨는 일주일에 사흘은 남편을 간병하는 일을 쉬고 친구를 만나고 여행도 다녀왔습니다.
미영씨의 표정이 점점 밝아지고 다시 자신의 삶을 찾아갈 수 있게 되자 그를 바라보는 남편의 눈동자도 편안해졌습니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책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상담소’를 썼습니다.
글에 나오는 사례는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으며, 이해를 돕기 위해 여러 경우를 통합해서 만들었습니다.
자세한 것은 전문의와의 상담과 진료가 필요하며, 쉽게 자가 진단을 하거나 의학적 판단을 하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운명보다 마음 가는 대로…자극적 소재의 성찰적 결말

[한겨레S] 황진미의 TV 새로고침
신들린 연애

무속·사주·타로 남녀 8명 짝짓기
젊고 세련된 모습에 선입견 깨져
사주 선택과 현실감정 사이 고뇌
주술 얽매이지 않은 인간적 통찰 

에스비에스(SBS) 제공

에스비에스(SBS) 제공

‘신들린 연애’(에스비에스)는 6부작 짝짓기 리얼리티 예능이다.
수많은 연애 리얼리티쇼가 있었지만,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독특한 기획으로 차별화를 꾀했다.
출연자 전원이 사주·무속·타로 등 점술가 8명으로 구성되었다.
엠시(MC)로 신동엽, 유인나, 가비, 유선호에 역술가 박성준이 합류했다.

‘신들린 연애’가 지상파 예능으로 편성된 것은 영화 ‘파묘’의 흥행 이후 샤머니즘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진 것과 관련이 있다.
오컬트물은 오랫동안 비(B)급 콘텐츠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파묘’의 1000만 흥행은 이러한 인식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이는 마치 영화 ‘부산행’의 흥행으로 좀비물이 주류 장르로 탈바꿈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얼마 전까지 무속인이 된 연예인의 근황을 전하는 예능 콘텐츠가 유튜브나 종합편성채널에 간간이 소개되는 정도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신들린 연애’, 무속인들을 조명한 오티티(OTT) 다큐멘터리 ‘샤먼: 귀신전’, 웹드라마 ‘타로: 일곱 장의 이야기’의 공개가 잇따르고 있다.

젊고 매력적인 무당

에스비에스(SBS) 제공

에스비에스(SBS) 제공

‘신들린 연애’가 던지는 원초적인 충격은 점술가들이 모두 젊고, 세련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무당들의 미모가 ‘미쳤다’. ‘어서 와, 이렇게 매력적인 무당은 처음이지?’랄까. 영화 ‘파묘’에서 김고은과 이도현이 연기하는 ‘엠제트(MZ) 무당’을 보았음에도, 무당에 대한 오래된 선입견이 깨지질 않았던 모양이다.
하기야 영화 속 캐릭터를 보는 것과 리얼리티쇼의 실존 인물을 보는 것은 다른 충격이다.
출연자들의 아름다운 외모와 마성의 섹시함에 넋을 놓고 보다가, 본래 ‘아름다울 미’(美)의 상형이 샤먼임을 떠올린다.
원래 전통사회에서 샤먼은 화려한 장식을 한 미남·미녀였고, 연예인적인 카리스마를 뿜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외모뿐 아니라 인간적인 매력도 출중하다.
함수현은 내숭 없이 솔직하고 화통한 성격에 유머러스하다.
무당이 된 과정을 말하는 순간도 담백하다.
10년간 은행원으로 무당의 운명을 거부하다가 신내림을 받았다는 사연도 인간적인 고뇌가 서려 있지만 씩씩하다.
이홍조는 운동 트레이너와 통역사를 했고 스튜디오와 위스키 바를 운영하는 등 여러 가지 직업을 가졌던 재능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다.
신내림을 받은 과정의 신비함도 곁들인다.
더욱이 ‘양보가 없는 신’에게 ‘동생을 대신해’ 신내림을 받았다니, 이타적이기까지 하다.
박이율은 선과 악이 공존하는 듯한 신비한 눈빛과 인상이 특징적이다.
그는 시종 차분하고 진중한 수행자의 태도를 보여준다.
‘무당이면서 퇴귀사’라는 그의 낯선 직업이 내공이 단단한 종교인임을 믿게 만든다.
흥미로운 점은 출연자들은 모두 점술가지만, 그들 내부에서도 무당은 눈빛 등으로 알아보고 다소 특별하게 여긴다.
무당은 소수자 중에서도 소수자인 셈이다.

주술보다 강한 ‘연애 일반이론’

에스비에스(SBS) 제공

에스비에스(SBS) 제공

‘신들린 연애’는 운명을 믿고 남의 연애를 점쳐주는 이들이 스스로 플레이어가 되는 게임이다.
과연 운명의 점괘대로 될 것인가. 이런 흥미로운 질문을 충족시키기 위해 구성을 차별화했다.
제작진은 출연자들이 하우스에 들어가기 전에 사주만 적힌 운명패를 보고 상대를 고르게 했다.
각자 직감과 점사를 활용해 운명패를 골랐다.

최한나와 이홍조는 서로 운명패를 고른 운명의 짝이었다.
과연 두 사람의 관계는 처음에 순항했다.
우연히 첫 데이트도 함께 했고, 서로의 매력을 칭찬했다.
최한나는 운명패를 고를 때 강력한 점사가 나왔는데, 운명패의 주인공이 바로 이홍조일 것 같다고 말한다.
둘 사이에 확신에 찬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런데 출연자들의 직업을 밝힌 직후 최한나가 이홍조에게 오방기로 연애운을 봐달라고 한다.
점사가 나쁘게 나오자 최한나는 불안해하며 스스로 타로 점을 본다.
배신 카드와 데빌 카드가 뜬다.
더욱 불안해하며 계속 타로 점을 본다.
데스 카드가 뜬다.
그러자 이제는 끝장이라며 낙담한다.
최한나와 이홍조는 여전히 서로에게 선택표를 주는 관계이다.
하지만 최한나가 점사에 의존하면서 둘의 마음은 하염없이 흔들린다.

여기 점사의 지옥에 빠진 또 한 사람이 있다.
이재원은 자신이 고른 운명패에 집착했다.
그는 자신이 고른 운명패가 함수현인 줄 오인해, 계속 함수현에게 선택표를 주며 직진했다.
사실 운명패와 무관하게 실제 관계에 집중하며 마음 가는 대로 상황을 풀어나갔다면 자신에게 호감을 표하며 첫 데이트를 하고 선택표를 주었던 조한나가 자연히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사실 조한나가 이재원이 고른 운명패의 주인공이었다.
조한나가 응답 없는 이재원을 향한 마음을 거두자, 이재원은 0표를 기록한다.
그제야 이재원은 자신의 추리가 전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멘붕’에 빠진다.
급기야 그는 도중하차해버린다.

한편 조한나는 하우스에서 끊임없이 타로 점을 보며, 눈앞의 연애에 집중하지 못한다.
일명 “타로에 미친 여자”이다.
조한나는 말이 빠르고 질문이 많고, 생각난 것을 모두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에, 직업적 자의식도 강하다.
이재원과 첫 데이트를 했을 때 그는 직업에 대해 주로 말을 하느라, 상대의 매력에 집중하지 못한다.
처음 호감을 느낀 이재원이 퇴소해버리자 이홍조에게 이성적 매력을 느끼지만, 전화로 바깥에 있는 ‘선생님’에게 20분간 조언을 구하거나, 다른 사람의 타로 점을 계속 봐주는 등 연애 감정에 몰입하지 못한다.

‘신들린 연애’는 주술적 세계관을 전제하지만, 주술적 세계관에 갇히지 않는다.
오히려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에서 운명이 아닌 마음을 따를 것을 자연스럽게 설득한다.
프로그램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주술의 힘’이 아닌 ‘연애의 일반이론’이다.
즉 성적인 매력, 인간적인 매력, 배려 등이 승리한다.

최한나가 이홍조와의 관계에서 불안을 느끼고 괴로워할 때, 박이율이 그 사이로 직진해 들어간다.
박이율은 호감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며 한결같은 믿음을 준다.
마음이 여리고 피암시성이 강한 최한나가 갈등할 때, 곁에서 충분히 기다리고 다독이고 축원한다.
그는 처음부터 “퇴귀사인 것을 내려놓고 인간으로 왔으며, 운명이 아닌 마음 가는 대로 하겠다”고 말했다.
최한나를 지지하고 보살피고 ‘힘들 때 일으켜줄 수 있는’ 박이율은 과연 최적의 남자이다.

함수현과 이홍조. 카리스마 넘치는 최고의 미남·미녀 무당이 하우스에서 밤새 웃고 떠든다.
(두 사람이 밤새 떠드는 것을 듣는 다른 참가자들의 심정을 서술하시오.) 롤러장에서 시시덕거리는 두 사람을 보라. 둘은 특수 전문 직업인으로 결이 맞고 죽이 맞고 농담의 코드가 잘 맞는다.
가령 이홍조에게 조한나는 “나를 스캔할 것 같다”고 말한다.
또 최한나는 “왜 나에게 충분한 확신을 주지 않았느냐?”고 따진다.
그런데 함수현은 그런 설명·변명·해명 등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만나면 뭘 자꾸 정색하고 말해야 하지만, 이 사람은 얼굴만 봐도 씩 웃음이 나오고 실실 농담을 해도 다 말이 통하는 상대이다.
누가 봐도 너무 잘 어울리는 환상의 짝꿍이다.
이상형이 뭐냐는 질문에 이홍조는 “가치관이 맞는 사람”이라 답한다.
함수현은 “잘 놀아주는 사람”이라 답한다.
함수현은 “아까 잠깐 황혼과 애가 둘이라는 미래를 보았다”고 말한다.
무당 커플다운 최고의 고백이다.

선정성 유혹 이겨내고…

에스비에스(SBS) 제공

에스비에스(SBS) 제공

참가자들은 대부분 처음 찍은 운명패가 아닌 마음을 따라 선택했다.
최한나·조윤아가 박이율을 선택하고, 함수현·조한나가 이홍조를 선택했다.

오직 허구봉만이 운명패의 상대를 최종 선택하였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선택받지 못했다.
하지만 허구봉은 역술가로서 가장 충실하였고 인간으로서 가장 지순한 시간을 보냈다.
그는 함수현의 운명패를 선택한 순간부터 자신이 경쟁 구도에 놓이고 다른 남자로 인해 괴로워질 것을 예측했다.
초반에 함수현이 적극적으로 다가올 때도 흐름을 예측했다.
마음이 떠난 함수현이 거절하는 부담을 덜어주고자, 허구봉은 함수현에게 엽전을 던지게 한다.
그 점사를 혼자 읽으며 거절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함수현이 이홍조를 최종 선택한 뒤에도, 허구봉은 일편단심을 마지막으로 고백하며 마무리한다.
이렇게 될 줄 알면서도, 그는 피하지 않았다.
“역술가로서 본분을 내려놓고 마음을 따르고 싶었다”고 말했지만, 사실 가장 역술가다운 행보였다.
함수현의 마음을 얻지 못한 것은 그의 운명이다.
허구봉은 최선을 다하고, 그 운명을 받아들였다.

조윤아도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그도 남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해 관심에서 벗어나 있었지만, 역술가로서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박이율에게 “최종 선택이 맺어지지 않는 것을 안 좋은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선택할 사람이 없는 것을 안 좋은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는 박이율이 자신과 맺어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그와 뜻깊은 만남을 가졌다고 생각하기에 선택한다.
그리고 그렇게 선택하는 것도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길이다.

‘신들린 연애’는 자칫 샤머니즘과 연애 리얼리티쇼의 결합이라는 고자극 요소가 담뿍 담긴 예능으로 만들어질 수도 있었다.
선정성과 볼거리 수위를 한껏 끌어올렸다면 화제성은 훨씬 높았을 것이다.
그러나 제작진은 그런 유혹을 이겨내고, 지극히 담담한 연출과 편집으로 성찰적인 결말에 도달했다.
점술가들이 운명을 타고 넘거나 받아들이는 것을 보며, 오히려 인간의 길을 음미하고, 운명에 얽매이지 않아야겠다는 통찰을 얻는다.
이토록 철학적인 예능이라니!(그래서 점집에 철학관이라고 쓰여 있구나!)

대중문화평론가

‘씨네21’ 영화평론가로 출발하여 티브이 드라마, 예능 등을 두루 평론한다.
인권·역사·여성·장애·인구·성·계급·권력 등 사회과학 전반에 관심이 많다.
원래 전공은 의학·보건학이다.


댓글 쓰기

Welcome

다음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