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문제는 김건희가 아니야, 윤석열이지


한동훈, 尹 완강한 사과 반대에 金 의향 불신?
문자 5건과 진중권 통화 공개, 진실 추측 뒷받침
파동, 尹과 친윤 협량(狹量) 공개 자충수로 귀결
그러나 전대 최대 피해자는 원희룡이 될 것

국민의힘 한동훈, 원희룡, 윤상현, 나경원 당대표 후보가 지난 10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BEXCO)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4차 전당대회 부산·울산·경남 합동연설회에서 손을 맞잡고 있다.<BR> ⓒ데일리안

국민의힘 한동훈, 원희룡, 윤상현, 나경원 당대표 후보가 지난 10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BEXCO)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4차 전당대회 부산·울산·경남 합동연설회에서 손을 맞잡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데일리안 = 데스크] 결국 문제는 김건희가 아니고 윤석열이었다.
클린턴의 “바보야, 문제는 경제지(It’s the economystupid)란 구호를 빌리면 그렇다.
이걸 읽어야 문자 수수께끼가 풀린다.
한동훈은 당시 직간접 대화로 대통령 윤석열이 부인 김건희의 몰카 공작에 의한 명품 가방 받은 일에 절대 사과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확인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김건희가 개인적으로 사과 의향을 밝히자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었고, 문자 뉘앙스도 하면 안 된다는 쪽으로 전해졌다.
김건희 문자 5건에 이어 진중권의 ‘여사와의 통화’ 공개가 이런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총선 직후 거의 2년 만에 전화를 받았다.
57분 통화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지금 그 동네(친윤)에서 주장하는 내용은 3개월 전 여사께 직접 들은 것과는 180도 다르다.
대국민 사과를 못 한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이라고 했다.
의향이 있었는데, 주변에서 극구 말렸다고 한다.

그는 “김 여사가 (사과를 안 한) 그릇된 결정은 주변 사람들의 강권에 따른 것이라고 했는데, 지금 친윤 측은 사과를 못 한 게 한동훈 때문이라고 한다.
어이가 없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제가 지금 한 말 중에 사실에 어긋나는 내용이 있나요?라고 여사에게 묻기도 했다.
김건희는 남편의 반대로 앞이 꽉 막힌 상황에서 한동훈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수도 있다.
대통령 좀 설득해서 자기가 사과를 할 수 있게 된다면 용기를 내보겠다는 ‘의향’ 전달로도 보인다.

“한 번만 브이(V-대통령)랑 통화하시거나 만나시는 것 어떨지. 내심 전화를 기다리는 것 같은데 꼭 좀 양해를 부탁한다(1월 15일), 조만간 두 분이서 식사라도 하시면서 오해를 푸셨으면 한다(1월 25일).

사실상 SOS 타전이다.
김건희는 윤석열의 분노와 고집불통이 총선 승부에 매우 위험하다는 걸 알았다.
여기서 ‘내심 전화를 기다리는 것 같은데’가 묘한 해석을 요구한다.
윤석열도 화는 내고 있지만, 한동훈의 중재를 바란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한동훈은 이때 尹이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다고 본 것 같다.
실제로 본인과 주변 사람들 태도가 그랬다.
그래서 여사 의향을 접수한다면 일은 되지도 않은 채 시끄러워지기만 하고 자기와 대통령 관계가 더 나빠질 수도 있다고 봤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동훈의 무응답은 중립적인 의사 표현이다.
가도 부도 아닌 대답 안 함을 택한 것으로 봐야 옳다.
공과 사 구별은 진짜 이유를 둘러댄 것이다.
친윤들과 원희룡은 명백한 당시 상황을 전혀 없었던 일로 무시해 버리고 김건희 문자의 ‘문자 그대로’만을 읊어대며 한동훈에게 “여사가 사과하고 싶어 하는데도 그 의향을 씹고 말아 총선에서 대패케 한 제1 책임자라는 딱지를 붙였다.
과연 그런지는 본인들이 너무나 잘 알 것이다.
억지 모사(謀事)가 늘 그렇듯 시간이 지나면 그 주모자들의 치부, 음흉한 속셈이 드러나게 돼 있다.
이번 문자 이전투구는 그것을 공개해서 지지도 1등 후보를 수세에 몰리도록 했다가 도리어 자신들의 협량(狹量)만 공개하게 된 자충수로 귀결되고 있다.
바로 윤석열의 속 좁은 처신이다.
앞에서는 몰카 공작이니 절대 사과할 일 아니라고 해놓고 뒤에서는 한동훈이 아내가 사과할 뜻이 있다고 보낸 여러 통 문자에 대답도 안 했다며 이 새끼, 저 새끼 욕설과 함께 그 문자들을 주변에 돌렸다는 것 아닌가?이 단독 보도가 오보이기를 바란다.
일반 국민과 지지자들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윤석열 본인을 위해 오보여야만 한다.
윤석열도 김건희도 지금까지 사과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6개월 전의 사과 의향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고 진정성이 있었겠나? 이번 소동은 전적으로 전당대회 개입 목적으로 터뜨렸다가 망신당하고 있는 자해극으로 끝나가고 있다.
윤석열과 친윤들은 으레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러지 않을 것 같았던 사람이 느닷없이 뛰어들어 천둥벌거숭이가 되었으니 이해가 안 되고 걱정된다.
원희룡 말이다.
그는 철 지난 배신자 타령을 부르더니 문자 타령으로 곡을 바꿨다가 급기야 사천(私薦), 고의 패배까지 운운하고 있다.
모두 친윤(반한)들이 총선 패배 직후 합창했던 레퍼토리들이다.

“영부인이 그런 얘기를 했다면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 한 줄기 빛, 최후의 희망이 열린 것 아닌가? 없는 것도 만들어야 할 절박한 상황에서 총선을 고의 패배로 이끌려 한 것은 아닌가?

한동훈은 대학 선배인 수석 3관왕(학력고사-서울대 법대 입시-사법시험) 원희룡의 정치는 배우고 싶지 않으며 “허위사실 유포는 심각한 범죄라고 짚었다.

“당 선관위가 무서워서 네거티브 안 하겠다고 하더니 신나게 마타도어를 하는 다중인격 구태 정치다.
제 가족이 공천에 개입했다는, 늘 오물을 끼얹고 도망가는 정치 경험 같은 건 배우고 싶지 않다.

때마침 나오고 있는 여론조사 중에는 원희룡과 나경원이 10% 포인트 안팎으로 여전히 2~3위에 머물러 있는데, 元과 羅의 순위가 뒤바뀐 것도 있어서 눈길을 끈다.
이번 집권 여당의 ‘읽씹’ 난장판 전대 최대 피해자는 원희룡이 될 것인가? 그렇게 된다면 자업자득이다.

ⓒ

글/ 정기수 자유기고가(ksjung7245@naver.com)

강준만 |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최근 대통령 윤석열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한동훈 사이에 벌어진 2박3일간의 충돌 사태는 세가지 점에서 놀랍다.

첫째, 한동훈이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하면서 ‘김건희 리스크’와 관련된 사전 합의가 없었다.
여권에서 한동훈을 모셔 가려 한다면 한동훈은 윤석열의 ‘양보’를 얻어내는 걸 조건으로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하는 게 상식 아닌가? 그래서 ‘짜고 치는 고스톱’ ‘약속대련’이라는 말이 나왔겠지만, 이는 반윤 인사들의 정략적 시각이라는 한계가 있다.
한국 정치는 자주 상식을 초월하곤 하니 여기선 충돌 사태의 진정성을 전제로 이야기해보자.

둘째, 윤석열은 자신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이유를 망각하고 배신했다.
그는 문재인 정권의 내로남불에 분노하던 ‘공정과 상식’의 화신이 아니었던가? 대통령실은 김건희의 ‘명품백 수수 의혹’과 관련해 “함정을 파서 궁지로 몰아넣겠다는 계획 아래 진행된 것이 사건의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일리 있는 지적일망정, 문제의 핵심은 윤석열에겐 자신의 부인을 대상으로 한 ‘정치공작’에 대한 분노만 있을 뿐, 여러 면을 종합적으로 살펴서 판단하는 국민은 안중에 없다는 점이다.

셋째, 윤석열은 민심에 벽을 쌓은 채 무엇이 궁극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할지를 파악할 수 없는 판단 불능 상태에 처해 있다.
지금까지 ‘김건희 리스크’를 정권의 치명적 급소로 키워온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게다.
아내를 추앙하는 순애보를 완성하는 게 대통령이 된 이유는 아니었겠지만, 그게 그에겐 민심의 지지를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되었다는 게 분명해졌다.

우리 모두의 이성적인 판단을 위해 이른바 ‘119 대 29’ 사태가 일어난 지난해 11월29일로 돌아가 보는 게 좋겠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 총회에서 사우디 리야드가 119개국(72%) 득표를 해 29표(18%)를 얻는 데 그친 부산을 누르고 2030년 엑스포 개최지로 결정된 날이다.
이 사건은 국민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단지 패배했기 때문이 아니라 ‘119 대 29’라는 4배 격차가 문제였다.

국내 홍보를 어찌나 요란스럽게 했던지 은근히 부산이 이길 걸로 기대한 국민이 많았다.
그런데 아슬아슬하게 진 것도 아니고 완전한 참패였으니, 정권에 대한 신뢰가 크게 추락했다.
야권 원로 유인태가 그 충격을 잘 표현했다.
“우리 외교부니 국정원이니 또 재계니 알고도 대통령 눈치 보느라고 말을 못 했는지 모르겠지만 국민들이 느끼는 것은 ‘야, 이런 정부를 믿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나’ 이런 절망 같은 게 있었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제일시장을 찾아 어묵을 먹고 있다.<BR>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제일시장을 찾아 어묵을 먹고 있다.
연합뉴스

‘김건희 리스크’도 마찬가지다.
그 리스크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이는 대통령이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느냐는 국정 운영 자세와 관련된 신뢰의 문제다.
‘명품백 정치공작’은 분노할 만한 일이다.
‘몰카’ 영상을 1년 넘게 묵혔다가 총선 국면에서 터뜨린 게 악의적인 공작이라는 걸 국민이 모르는 게 아니다.
국민은 국정 운영의 기본 시스템이 훼손되고, 대통령이 그렇게 강조해왔던 공정과 상식을 스스로 배반하는 행태에 분노하는 것이다.

한번은 공작에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두번 당하면 그건 실수가 아니라 버릇이다.
2년 전 대선 50여일을 앞두고 ‘김건희 7시간 통화 녹취’가 공개된 사건을 기억하시는가? 당시 윤석열 캠프는 ‘정치공작’이라며 펄펄 뛰었지만, 일부 언론은 “윤 후보 측이 정치감각이 떨어지는 배우자에 대해 적절한 조언을 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문제는 김건희가 자신의 정치감각이 탁월하다고 믿고 있으며, 남편이 대통령이 된 뒤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고 애써왔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그걸 말려야 할 남편이 부인의 그런 시도를 사실상 지지했고, 그러면 안 된다고 고언을 하는 주변 인사들에게 불같이 화내는 등 성역화함으로써 ‘김건희 리스크’를 키우는 후원자 역할을 해왔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이해할 수 없단 말인가?

지금 이 나라 정치는 상대를 죽여야만 사는 전쟁인 양 미쳐 돌아가고 있지만, 그건 결코 정치가 아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어느 정당이건 혁신하고 성공해야 한다.
누가 더 큰 혁신과 성공을 했느냐는 선의의 경쟁을 해야 한다.
그런데 집권여당이 공사 구분을 하지 못하는 대통령의 아내 사랑 때문에 극심한 내홍을 겪게 되면 정상적인 국정 운영은 어려워지고 정치는 민생에서 더욱 멀어져 자기들끼리 싸움판으로 전락하고 만다.
멀리 내다보자. 윤석열이 스스로 실패하려고 애쓰는 대통령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윤석열이 사는 길 [강준만 칼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의료 개혁과 관련해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하고 있다.<BR>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의료 개혁과 관련해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강준만 | 전북대 명예교수

이번 총선은 더불어민주당의 대승, 국민의힘의 참패로 끝났지만, 선거의 승패는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은 소수의 중도파가 결정했다.
국민의힘은 전체 득표수 기준으로 2년 전 대선 땐 24만표(0.73%포인트) 차이로 승리했지만, 이번 총선에선 157만표(5.4%포인트) 차이로 패배했다.
이 차이의 변화가 바로 중도 유권자의 이동에 따른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바로 이 중도 유권자들에게 공정과 상식의 수호자처럼 여겨져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승리했다.
이들이 등을 돌린 건 그런 믿음을 철저하게 배신한 윤 대통령의 내로남불 행태 때문이다.
특히 김건희 여사 문제와 관련해 공사 구분 의식이 전혀 없는 내로남불이 결정적이었다.

말이야 바른말이지만, 이번 총선은 속된 말로 ‘윤석열이 말아먹은 선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이종섭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대사 임명을 발표한 3월4일부터 의대 증원 관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4월1일까지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이 참패를 당하는 데 도움이 될 여러건의 일들을 했다.
묘기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그는 왜 이런 묘기를 부렸을까?

나는 윤 대통령이 앞으로 공개적으론 무슨 말을 하건 속으론 이번 참패의 이유와 의미에 대해 여전히 납득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 그럴까? 그간 윤 대통령이 보여온 정치적 지향성과 행태는 거시적인 노선과 정책 중심이었다.
그러나 중도 유권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자신의 일상적 삶과 관련된 미시적인 것들이다.

김 여사 문제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윤 대통령의 정치관에서 볼 때는 그건 매우 사소한 문제이며, 야권의 선전·선동에 의해 부풀려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지난 2월7일 한국 정치사에 길이 남을 최악의 ‘대통령 특별대담’을 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게다.
그는 ‘김건희 명품백’ 논란에 대해 “시계에다가 몰카를 들고 온 정치공작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그 어떤 사과나 유감 표명조차 하지 않은 채 “아쉬운 점은 있다고만 했다.

아! 주변의 참모와 지인들은 왜 그를 말리지 못하는가? 그가 1월 중순에 나온 당시 국민의힘 김경율 비상대책위원의 발언을 조금만 더 들여다보았더라면 결코 저지르지 않았을 과오였다.
그는 “(역사학 교수가) 프랑스 혁명이 왜 일어났는가,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치 등이 드러나면서 감성이 폭발한 것이라고 하더라며 “지금 이 사건도 국민들의 감성을 건드렸다고 본다고 말해 여권 내부와 국민의힘 지지자들로부터 엄청난 반발을 샀다.
그의 진짜 메시지가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이름에 가려져 전달되지 않은 비극이었다.

김건희가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게 아니다.
역사란 무슨 거창한 사건과 명분만이 아니라, 매우 사소하게 시작된 일이 야기한 집단적 감성의 폭발에 의해 이루어지거나 바뀔 수 있다는 것, 대통령이 사소하게 여기는 명품백 하나가 윤 정권의 운명을 결정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어떻게 그런 식으로 받아들인 것인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게 바로 윤 대통령뿐만 아니라 국민의힘의 수준이자 실력이었던 걸까?

김경율 전 위원은 15일 “(그 사건 이후) 많은 당내 인사들이 직간접적으로 ‘인터뷰 자제했으면 좋겠다’ ‘너는 안 하는 게 낫겠다’고 하고 언론과 만나고 있으면 누군가 옆에 와서 빤히 쳐다보고 뭔가 감시받는 듯한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종섭 전 대사, 황상무 전 수석 사태가 일어나자 의원들, 중진들 전화와 문자가 20~30통 왔다며 그 내용이 “‘네가 나서서 조금 더 이야기해주라’는 것이었다고 허탈해했다.

중요한 건 바로 이 대목이다.
김 전 위원은 “당의 큰 문제 중 하나는 다른 목소리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목소리 자체가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했다.
그렇게 만든 장본인은 바로 윤 대통령 자신이다.
지난해 2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대통령실의 ‘명언’으로 대변된, 대선주자급 당내 인사들에 대한 침묵 강요는 윤 대통령의 ‘불통과 오만’을 상징하는 동시에 윤 정권의 암울한 미래를 예고한 사건이었다.
이제 윤 대통령이 살 길은 딱 하나다.
진정한 소통, 그리고 그 전제인 겸손의 회복이다.
검사 시절 권력의 보복으로 겪어야 했던 가장 비참했던 순간으로 돌아가 오만의 화신처럼 변신한 지금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것, 그게 바로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이다.

윤 대통령 착각이 불러올 파국의 위험 [박찬수 칼럼]

“국민이 겨우 명줄만 붙여놓았다는 홍준표 대구시장의 총선 평가는 나름 정확하다.
실낱같은 생명이라도 이어가려면 윤 대통령은 자신이 싫어하는 야당 대표들을 정치 파트너로 인정하고, 이들과 대화하면서 국정을 이끌어가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정치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끊임없이 검찰에 의존하고,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윤석열 정부 앞날은 더 험난한 위기의 연속일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4월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BR> 의사 파업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대통령 특유의 독선과 오만이 고스란히 드러난 담화였다는 평가를 받았다.<BR> 총선 참패로 달라질 수 있을까,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BR>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4월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의사 파업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대통령 특유의 독선과 오만이 고스란히 드러난 담화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총선 참패로 달라질 수 있을까,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대통령실 제공

박찬수

범민주 또는 범진보 세력이 189석을 차지한 22대 총선 결과를 두고 나오는 평가 중 하나는 “윤석열 정권에 대한 엄중한 심판이자 민주당 견제의 의미가 담겼다는 것이다.
여기엔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야권이 탄핵선인 200석을 훌쩍 뛰어넘으리란 기대를 불어넣은 방송 3사 출구여론조사의 영향이 적지 않다.
야당 지지층에선 실제 개표 결과가 기대에 못 미쳤다는 실망감을 표출했다.
방송에 나온 어느 보수 패널은 “국민의힘이 100석을 넘기면 그건 국민이 몽둥이 아닌 회초리를 들었다는 뜻이라고 여당 참패 의미를 축소했다.

그러나 4년 전 180석에 이어 범민주 진영이 189석을 확보한 건, 보수 우위의 정치구도가 강고했던 우리 정치사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압도적 승리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 정당이 200석을 넘은 건 딱 한번뿐이다.
선거에 의해서가 아니라 1990년 3당 합당이라는 인위적 정계개편을 통해서였다.
노태우·김영삼·김종필의 보수대연합으로 탄생한 민자당은 217석의 공룡 정당이 됐지만, 불과 2년 뒤 열린 14대 총선에 과반에 못 미치는 149석으로 쪼그라들었다.
189석 쟁취가 소선거구제 특성에 기반을 뒀을 뿐이란 지적도 있지만, 총선에서 국민 과반 지지를 얻은 정당은 진보·보수를 떠나 1987년 이후 이번 더불어민주당(50.5%, 1475만8083표)이 유일하다.
유권자들이 얼마나 무서운 민심의 칼날을 정권 명치에 들이댄 것인지 알 수 있다.

착각이 문제인 건, 가뜩이나 자기중심적이고 고집 센 윤석열 대통령의 판단과 행동에 잘못된 정보를 입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국정 쇄신을 하되 야당도 무리한 요구를 자제하라’는 식으로 총선 결과를 오판한다면, 윤 대통령은 약간의 시늉만 할 뿐 국정운영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을 터이다.

새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을, 국무총리엔 권영세·주호영 의원 등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단적인 예다.
원 전 장관은 김건희 여사의 양평 땅 투기 의혹이 일자 고속도로 건설을 백지화할 정도로 윤석열 정부 폭주에 책임이 있다.
또 ‘범죄혐의자 이재명을 잡겠다’며 인천 계양을에 표적 공천을 자청한 사람이다.
이런 인사를 비서실장에 임명하면서 야당과 대화하고 국정운영 기조를 바꾸겠다고 하면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대통령 참모인 비서실장보다 더 중요한 건 차기 국무총리 임명이다.
민심의 전면적 이반을 봤다면, 먼저 제1야당 대표를 비롯한 각계 인사를 만나 국정운영 방식을 어떻게 바꿀지 진지하게 논의하는 게 올바른 순서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이관섭 비서실장을 통해 의례적인 총선 입장을 밝히더니 곧바로 인선에 착수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여전히 ‘인사권은 대통령 고유 권한이니 누구도 참견 말라’는 식의 아집과 독선이 느껴진다.

“국민이 겨우 명줄만 붙여놓았다는 홍준표 대구시장의 총선 평가는 나름 정확하다.
실낱같은 생명이라도 이어가려면 윤 대통령은 자신이 싫어하는 야당 대표들을 정치 파트너로 인정하고, 이들과 대화하면서 국정을 이끌어가려는 자세를 보이는 게 필요하다.
‘사법 리스크’는 사법부에서 판단할 문제지, 민심을 뛰어넘을 만큼의 무게를 지니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노예제를 폐지하고 남북전쟁을 불사한 미국의 에이브러햄 링컨은 역대 미국 대통령 평가에서 항상 1, 2위에 오른다.
링컨은 당시 합법이던 노예제의 폐지를 주장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민심이 전부다.
국민의 마음을 얻으면 못 할 게 없다.
이걸 잃으면 할 수 있는 게 없다.
따라서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자가 법을 제정하거나 판결을 내리는 자보다 더 중요하다.
이 말의 의미를 ‘정치인 윤석열’은 깨닫기 바란다.

윤 대통령은 국회 과반을 차지한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를 만나야 한다.
국무총리로 누가 적합한지, 야당과 협치를 통해서 지금의 경제·민생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데 머리를 맞대야 한다.
국무총리 후보자를 국회 청문회에 세우기 전에 미리 야당 지지를 얻으려는 노력과 행동을 보일 때 비로소 ‘대통령이 변하려 애쓰는구나’ 국민은 느낄 것이다.
현명한 참모라면, 윤 대통령에게 조국 대표와 이준석 대표도 만나라고 조언하지 않을까 싶다.

정치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끊임없이 검찰에 의존하고,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윤석열 정부 앞날은 더 험난한 위기의 연속일 것이다.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해야 낭떠러지에 걸린 외줄을 건널 수 있다.

대기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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