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없는 친환경 배터리 나올까…수계아연전지 수명 10배 늘려

연구팀이 구조분석 실험을 통해 수계아연전지의 증착 구조를 파악하고 있다.<BR> 에너지연 제공

연구팀이 구조분석 실험을 통해 수계아연전지의 증착 구조를 파악하고 있다.
에너지연 제공

국내 연구팀이 화재 위험이 없는 친환경 전지인 수계아연전지의 안정성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을 개발해 수명을 기존보다 10배 늘리는 데 성공했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은 우중제 광주친환경에너지연구센터장과 조재필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 연구팀이 수계아연전지에서 금속이 나뭇가지 모양으로 쌓이면서 전지를 단락시킬 수 있는 덴드라이트 문제를 해결하는 전극 제조 핵심기술을 개발했다고 28일 밝혔다.
연구결과는 23일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에너지 머티리얼즈'에 공개됐다.

수계아연전지는 물을 전해질로 사용하는 이차전지로 리튬 이온 전지와 비교해 화재 위험이 없고 친환경적이다.
또 이온당 전자 2개를갖기 때문에 이온당 전자를 1개 갖는 리튬 이온 전지보다 이론적으로는 2배 정도 높은 용량을 기대할 수 있다.

수계아연전지는 충전 과정에서 음극 표면에 금속인 아연이 무질서하게 증착되면서 길어지는 덴드라이트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 문제다.
덴드라이트가 음극과 양극 사이에 있는 분리막을 뚫어 손상시키면 단락이 발생해 전지 성능과 수명에 심각한 영향을 미쳐 상용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기존에는 구리 등 유도제를 첨가해 아연의 초기 성장을 촉진하고 균일하게 증착되도록 유도해 덴드라이트 형성을 억제하는 방식이 활용됐지만 전지의 충·방전이 반복되면 다시 덴드라이트 형성이 일어난다는 문제가 있었다.아연의 균일한 증착이 유도되는 과정. 산화구리는 아연의 핵성장을 유도한 후에는 아연의 불균일한 성장을 억제하는 울타리 역할을 한다.<BR> 에너지연 제공

아연의 균일한 증착이 유도되는 과정. 산화구리는 아연의 핵성장을 유도한 후에는 아연의 불균일한 성장을 억제하는 울타리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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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은 산화구리를 사용해 단계적으로 아연이 음극 표면에 균일하게 증착되도록 하고 덴드라이트 형성을 제어하는 데 성공했다.
산화구리가 아연을 균일하게 분포시킨 뒤 아연의 무질서한 증착을 물리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구조물로 자체 변환되며 덴드라이트 형성을 지속적으로 방지하는 원리다.

연구팀이 개발한 기술을 적용한 전지는 3000사이클의 충·방전 이후에도 80% 용량을 유지하며 기존 수계아연전지보다 수명이 10배 이상 향상됐다.

우중제 센터장은 "수계아연전지의 난제를 산화구리 같은 저가의 물질과 공정으로 해결할 단초를 제공한 것"이라며 "개발된 전극을 규격화·시스템화해 수계전지 상용화를 앞당기는 데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쫄깃쫄깃한 면발의 비밀

[쿠킹 사이언스 ①] 시간 흐르면 불어터지는 이유

밀가루와 물을 혼합해 반죽하면 밀가루 단백 질(글루텐)이 사슬과 같은 그물 구조를 형성 한다.<BR> 면이 쫄깃해지는 것은 바로 이 구조 덕분이다.<BR> - pixabay 제공

밀가루와 물을 혼합해 반죽하면 밀가루 단백 질(글루텐)이 사슬과 같은 그물 구조를 형성 한다.
면이 쫄깃해지는 것은 바로 이 구조 덕분이다.
- pixabay 제공

지금 내 눈앞에 달콤한 향기 물씬 풍기며 유혹의 주파수를 쏘아대는 한 접시의 스파게티가 있다고 상상해보자. 쫀득쫀득한 면발이 혀에 감겨지는 그 느낌이란! 상상만으로도 입 속 가득 군침이 감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그래서 ‘입에 착 달라붙는’ 면발을 좋아한다.
그리고 요리사들은 그런 면을 만들어내기 위해 수많은 노하우와 조리법을 자랑하고 나선다.
특히 조리 과학이 발달한 현대에 등장한 해법은 더욱 다채로우며, 이런 비법의 핵심은 ‘어떤 조리 방법으로, 어떤 재료를, 얼마나 과학적으로 사용하느냐’에 담겨 있다.
쫄깃하고 쫀득쫀득한 면을 만들 수 있는 비결, 그 속에 숨어있는 과학적 원리는 무엇일까.밀가루에 물을 섞어 주물러보자. 반죽을 할수록 끈기가 더해져 덩어리가 결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왜 그럴까. 면을 탄생시키는 원료인 밀가루는 크게 두가지 성분으로 구성돼 있다.
바로 전분(탄수화물)과 단백질이다.
밀가루 단백질은 수용성 단백질과 불용성 단백질로 나뉘는데, 이 중 물에 녹지 않는 단백질(글리아딘과 글루테닌)이 물을 만나면 끈기를 갖고 서로 결합하는 성분으로 변한다.
이 결합된 단백질을 ‘글루텐’(gluten)이라고 한다.
밀가루와 물을 혼합해 반죽하면 글루텐 분자 간에 마치 사슬과 같은 다리 결합이 생겨나 일종의 그물 구조를 형성한다.
면이 쫄깃해지는 것은 이런 구조 덕분이다.
쌀에는 글루텐이 없기 때문에 반죽을 할 수가 없다.
쌀이 밥이나 떡으로만 이용되고 빵이나 국수, 만두 등 반죽이 필요한 요리에 적용되기 어려운 이유다.

밀가루는 이 글루텐의 함량에 따라 가공 용도가 달라진다.
글루텐의 함량이 많은 강력분으로 만든 반죽은 탄력이 크고 단단한 성질이 있으므로 빵을 만드는데 쓰이며, 중력분은 국수류, 박력분은 과자, 케익, 튀김류를 만들 때 쓰인다.
글루텐의 양이 많은 밀가루에서는 사슬 구조가 더욱 두꺼워진다.
이 경우 적당한 탄력과 무른 정도를 유지하는 반죽을 하고 싶다면 더 많은 물과 긴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빵을 만들 때 밀가루의 특성 중 가장 중요한 점은 발효와 굽는 과정에서 생기는 이산화탄소를 보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글루텐의 그물 구조가 제 역할을 해낸다.
즉 글루텐의 끈기는 반죽 안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빠져나가지 못하게 붙잡아놓는 능력을 갖고 있어 빵을 부풀어오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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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루텐 결합 방해하는 주범, 설탕

글루텐의 친구는 소금, 천적은 지방이다.
소금은 글루텐의 늘어지는 성질을 더욱 강화시켜준다.
밀가루 반죽을 할 때 적당량의 소금을 첨가하는 이유는 이런 원리 때문이다.
이밖에 소금은 반죽의 숙성중에 일어나는 화학변화를 억제해 유해미생물의 번식을 막아주고 면의 맛을 좋게 하며, 데치는 시간을 단축시키는 역할도 한다.
하지만 너무 많은 양의 소금은 금물이다.
삼투압 현상을 일으켜 반죽 속에 수분이 지나치게 빨아들어가기 때문이다.
반면 설탕이나 유지의 입자는 글루텐의 결합을 방해하거나 아예 짧게 끊어버린다.
설탕이나 유지가 많이 첨가된 크로아상이나 파이가 잘 부서지는 이유다.
이렇게 첨가되는 재료는 밀가루의 반죽 시간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밀가루를 반죽할 때 ‘후염법’이 널리 사용되고 있는데, 반죽 종료 몇분 전에 소금을 첨가하면 반죽에 소요되는 시간을 20% 정도 단축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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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 흐르면 불어터지는 이유

한편 면은 즉시 먹지 않으면 몇분 지나지 않아 퉁퉁 불어터져 퍼지고, 퍼진 모양만큼이나 맛도 없어진다.
왜 그럴까.주된 원인은 면을 둘러싼 표면과 중심 사이의 수분 함량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면이 삶아지는 동안엔 면의 중심부분으로 수분이 흘러 들어가는데, 삶아지면서 면의 표면으로부터 중심부분으로 물이 서서히 스며든다.
따라서 막 삶아놓은 면은 표면과 내부의 수분 함량이 확실하게 차이가 난다.
면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면의 표면은 80-90%, 내부는 50-70%의 수분 함량을 지닌다.
요리책을 살펴보면 스파게티를 삶을 땐 면을 잘라봐서 면 중심부에 바늘 끝 정도의 심지가 남아있을 때까지만 삶아야 맛있다고 쓰여있다.
이 상태를 ‘알 덴테’(Al Dente)라고 한다.
‘덴테’란 이탈리아어로 ‘치아’를 뜻하는데, 알 덴테란 국수를 씹어보았을 때 약간 심지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덜 삶은 상태를 말한다.
이탈리아에서는 완전히 익힌 것보다 약간 덜 삶은 것을 별미로 꼽기 때문에 이런 용어가 생겨났다.

면의 중심부분에 심이 남아있다는 것은 면의 표면과 중심부분의 수분함량이 차이가 난다는 점을 의미한다.
면을 입안에 넣으면 먼저 수분 함량이 높은 표면이 입에 닿고, 씹을수록 표면에서 내부로 파고들면서 쫄깃한 느낌을 주게 된다.
따라서 면의 표면과 내부의 수분 함량 차이가 명확할수록 부드럽고도 쫄깃한 맛을 탄생시킬 수 있는 것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가짜 과학

후쿠시마 다이이치 원자력 발전소. 연합뉴스 제공

후쿠시마 다이이치 원자력 발전소. 연합뉴스 제공

지난 1년 동안 까맣게 잊고 지냈던 후쿠시마 오염수 '괴담'이 다시 등장했다.
깜짝 놀랄 일은 아니다.
후쿠시마 오염수방류 1주년을 맞이해서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일부 괴담 발신자와 야당의 황당한 억지를 언론이 다시 소개하고 있을 뿐이다.

당연히 자신들의 부끄러운 오류와 억지에 대한 반성이나 괜한 혼란에 시달렸던 국민에 대한 사과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현대 과학과 기술을 거부하고 정부와 과학자를 불신하도록 만들었던 불통과 억지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 방류와 함께 감쪽같이 사라졌던 '괴담'

후쿠시마에서 방류를 시작하면 곧바로 우리나라 해역이 전부 삼중수소를 비롯한 치명적인 방사성 오염물질로 뒤범벅이 되고 감당할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한다는 것이 후쿠시마 오염수 괴담의 핵심이었다.

일본 정부가 오염수의 해양 방류 계획을 밝힌 2019년 가을부터 등장해서 우리 사회를 통째로 뒤집어 놓았던 괴담이 정작 본격적인 방류가 시작된 작년 8월 24일부터 언론과 유튜브에서 신기할 정도로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방류가 시작되어 구체적인 실측 자료가 실시간으로 공개되면서 엉터리 괴담의 핵심이었던 부끄러운 '가짜 과학(fake science)'이 설자리를 잃어버린 덕분이었다.

지난 1년 동안 후쿠시마 원전 사고 현장에서 7차례에 걸쳐 태평양으로 방류한 오염수의 총량은 5만5000톤에 이른다.
현재는 지난 7일에 시작한 8차 방류가 진행 중이다.
다핵종제거설비(ALPS)를 이용해서 방사성 핵종의 대부분을 제거한 '처리수'(treated water)를 바닷물로 충분히 희석한 후에 해저 터널을 통해 방류한다.

물론 적지 않은 비용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후쿠시마 근해의 삼중수소 오염도를 '후쿠시마 제1원전이 정상적으로 가동되던 때보다 더 나쁘게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 일본 정부가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통해 국제 사회에 제시한 확실한 약속이다.
문재인 정부도 일본의 그런 계획에 동의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행히 지난 1년 동안 후쿠시마 인근 해역의 삼중수소를 비롯한 방사성 핵종의 농도가 기준치를 넘은 적은단 한 번도 확인된 적이 없었다.
IAEA의 전문가가 방류 현장에 상주하면서 함께 확인했고 한국 원자력안전위원회도 29차례나 전문가를 파견해서 확인했다.

모두 243개소에 해양 방사능 조사 설비를 설치·운영하면서 모든 관측 자료를 인터넷을 통해 공개하고 있는 우리나라 해역에서도 이상 징후가 확인된 적이 없었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수산물에 대한 적극적인 방사능 검사도 진행되고 있다.
지금까지 약 5만 건에 가까운 방사능 검사 중 실제로 기준치 이상의 방사능이 검출된 경우가 없었다.
더욱이 일본의 후쿠시마 인근에서 생산되는 수산물의 수입은 여전히 원천적으로 차단했고 일본의 다른 지역에서 수입하는 수산물에 대해서도 엄격한 생산지 증명서를 확인하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후쿠시마 오염수방류에 대한 국민적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 정부와 지자체가 총 1조60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했다고 최근 설명했다.
괴담이 아니었더라면 사용할 이유가 없었던 명백한 낭비라는 지적이다.
정부가 오염수 방류의 안전성을 100% 확신했다면 그런 예산을 집행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은 억지다.

● '불확실한 미래'를 먹고 사는 괴담

국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괴담'은 당장 공개적 확인이 불가능한 미래의 불확실성을 근거로 삼는다.
세월이 흘러 불확실성이 해소되면 괴담은 홀연히 사라져 버린다.
물론 괴담으로 발생하는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

괴담을 만들어낸 인물이나 단체가 사과하거나 비용을 떠맡은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KTX 터널 완공과 함께 사라진 2003년 천성산 도롱뇽 괴담이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함께 사그러들었던 2008년의 광우병 괴담이 그랬다.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괴담이나 작년의 후쿠시마 오염수 괴담도 마찬가지였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1주년을 맞이해서 언론이 애써 되살린 후쿠시마 오염수 2차 괴담도 예외가 아니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제2의 태평양전쟁'이라고 우겼던 야당은 "오염수가 우리 바다로 돌아오는 것은 4~5년 후의 일이기 때문에 속단할 수 없다"면서 억지를 계속하고 있다.

물론 2011년 원전 사고가 발생한 직후부터 2년 동안 하루 500톤의 오염수가 직접 바다로 흘러 들어갔던 명백한 사실을 무시한 궤변이다.
실제로 상당한 수준의 해양 오염이 발생했지만 우리 해역에는 지금까지 어떠한 피해도 발생하지 않았다.
"1년이 지났는데 아무 일 없지 않냐로 들이대는 것은 무지(無知)와 경망의 비논리"라는 주장은 그런 사실을 무시한 무의미한 억지라는 뜻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괴담의 원조(元祖)였던 일부 학자들의입장이 기묘하다.
쿠로시오 해류도 모자라 낯선 '심층해류'와 '평형수'까지 들먹이면서 오염수 방류가 시작되면 당장 우리 해역이 죽음의 바다로 변하고 특히 제주도의 해녀가 위험하다고 떠들썩하게 경고했다가 뒤늦게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의 안전성을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금 배출되는 물은 정류된 것이기 때문에 처리수에 가깝다.
1조 원을 투자해 (방사능 검출) 조사를 하더라도 (방사성 물질이) 나올 수가 없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생방송 뉴스에서 "(태평양에서 잡은 생선으로) 저녁 식사를 하겠다"고 당당하게 밝혔던 2013년 11월 자신의 당초 입장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물론 세상을 불안하게 만들고 불필요한 예산을 낭비하게 만든 억지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 '가짜' 과학과 '유사'(類似) 과학

미국의 천체물리학자 칼 세이건은 1995년 '악령이 출몰 세상'(사이언스북스, 2022)에서 '유사 과학'(pseudo science)의 폐해를 통렬하게 지적했다.
유사 과학은 경험을 통해 객관적이고 분명하게 확인할 수도 없고 과학적으로 반증(反證)하는 일도 불가능한 억지를 말한다.

어떠한 객관적 근거도 없는 일방적 주장으로 사람들의 이성과 판단력을 어지럽히고 세상을 어둡게 만드는 주술(呪術)과 미신(迷信)이 가장 널리 알려진 유사 과학이다.

가짜 과학(fake science)은 그런 전통적인 유사 과학보다 더 악의적이다.
스스로의 정치적·경제적 이익을 위해서 명백하게 확인된 과학적 사실을 정면으로 거부해 버린다.
물론 그런 가짜 과학이 무지(無知)에서 비롯된 단순한 실수나 오류일 수도 있다.
요소수 대란이 벌어졌을 때 암모니아를 석탄에서 뽑아낸다는 일부 언론의 주장이 그랬다.
요소수의 품질에 대한 선무당급 전문가의 과도한 우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후쿠시마 오염수 괴담을 만들어낸 '가짜 과학'은 차원이 달랐다.
감당하기 어려운 국민적 혼란과 경제적 손실을 철저하게 외면해 버렸다는 점에서 그렇다.
일본열도의 태평양 연안에서 방류한 오염수가 시코쿠와 규슈를 돌아서 우리나라 해역까지 흘러온다는 주장부터 가장 초보적인 과학 상식을 벗어난 억지였다.

정수기의 원리를 따르는 ALPS를 이용한 '처리'와 충분한 양의 물을 이용한 '희석'이 오염수에 의한 오염을 해소하는 가장 보편적이고 확실한 기술이라는 사실도 무시했다.
삼중수소를 비롯한 방사성 오염물질이 바닷물에서 충분히 희석·확산한 후에는 유해성을 걱정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현대 과학이다.

가짜 과학에서 출발한 후쿠시마 오염수 괴담을 고집하던 일부 몰상식한 과학자들의 억지는 볼썽사나운 것이었다.
하루 120톤의 오염수를 처리·희석·방류하는 일이 '유례없는 시도'라고 우기고 "과학적으로 100% 안전성을 보장하지 못하면 안전하다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고 외치던 전자공학자도 있었다.

그런 입장이라면 자동차와 비행기도 안전하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인간이 개발한 모든 기술을 '편익'과 '위험'(危害)을 함께 가지기 마련이다.
편익은 극대화하고 위험은 기술 개발과 제도 개선으로 최소화하는 투자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생태계의 복잡성을 고려하지 않은 '과학적 안전성'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물리학자도 있었고 어설픈 '과학'보다 확실한 '국민적 신뢰'가 우선이어야 한다는 과학사학자도 있었다.
국민적 신뢰를 잃어버린 과학자가 함부로 '과학'을 들먹여서는 안 된다는 궤변이었다.

IAEA의 보고서는 신뢰할 수 없고 화학적 성질이 수소와 빼닮은 삼중수소가 생물체의 몸에 '생체축적'이 된다고 우기는 역학자(疫學者)도 있었다.
놀랍게도 모두 언론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던 특정 대학의 이공계 교수였다.

어설픈 과학자만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것도 아니다.
인문학자의 억지도 만만치 않았다.
'진보의 과학'과 '보수의 과학' 중 '어느 쪽 과학'이 옳은지를 모르겠다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부끄러운 역사학자도 있었다.
현대의 기술로 세계가 놀라는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이룩한 우리 사회에 현대의 '과학'과 '기술'을 통째로 거부하는 반(反)과학적 정서가 얼마나 심각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언론의 상황도 어지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가짜·유사 과학을 걸러내는 능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오히려 독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가짜·유사 과학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 우리 언론의 부끄러운 현실이다.
그런 혼란 속에서도 정범진 경희대 교수와 정용훈 KAIST 교수와 같은 원자력공학자의 용기 있는 소신과 노력을 주목한 것은 정말 다행한 일이었다.

정치권의 현실은 더욱 당혹스러웠다.
괴담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에는 어떠한 맥락도 없었고 어떠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도 없다.
사실 알량한 정치적 이득이 국민 안전과 국가 경제까지 뒷전으로 밀어내 버렸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괴담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기도 했다.

실제로 정권이 바뀌면서 여당과 야당의 입장이 정반대로 바뀌었다.
정치적 입장의 돌변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한국적 정치'라고 우기는 정치인도 있었다.
국민에 대한 심각한 가스라이팅이다.

과학자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과학 지식과 기술에 대한 말초적이고 단편적인 관심보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을 가능하게 만든 '과학정신'(scientific spirit)에 대한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현대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과학이 필요한 이유를 이해하도록 해주는 것이 핵심이다.

언제나 '위험'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 '기술'의 사회적 수용성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가짜·유사 과학이라는 악령(惡靈)이 춤추는 현대 사회에서 과학과 기술만이 우리를 지켜주는 희미한 등불이라는 칼 세이건의 소중한 교훈을 기억해야 한다.

주요 대학병원 응급실도 파행 운영…"응급의학 붕괴 직전"

정부 의대증원에 반발하며 의료현장을 떠난 전공의들이 복귀하지 않으며 의료공백이 이어진 21일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 응급실로 내원객들이 들어가고 있다.<BR> 연합뉴스 제공

21일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 응급실로 내원객들이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전공의들의 업무 공백이 장기화되면서 최일선에서 환자를 받는 응급실에 과부하가 걸렸다.
정부는 응급의료 관련 인건비와 수가를 인상하면서 응급실 파행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응급의료계는 '응급실 붕괴'를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7일 의료계에 따르면 '빅5' 병원 등 서울 시내 주요 응급실 대부분은 지난 2월 전공의들의 집단사직 이후 지속되는 인력난으로 파행을 겪고 있다.

이날 오전 서울대병원 응급실은 정규 시간 외 안과 응급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알렸다.
세브란스병원은 성인·소아 외상 환자 등을 수용할 수 없다고 공지했다.
서울아산병원 응급실은 인력 부족으로 정형외과 응급 수술과 입원이 불가한 상태다.
서울성모병원 응급실은 혈액내과 신규 환자를 받지 못하고 있다.

현장 의료진들은 인력 부족이 장기화되면서 이제는 응급실을 유지하기 어려운 수준에 치닫게 됐다고 전했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유행과 온열질환자 급증으로 평소보다 응급실을 찾는 환자들이 늘어났으며, 그간 응급실을 지켜온 전문의들의 이직 움직임에 따라 응급실 현장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는 전언이다.

실제로 아주대병원 응급실에 근무하던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당초 14명이었으나 의정 갈등 속에서 이 중 3명의 사직서가 수리됐다.
최근에는 남은 이들 중 4명도 사직서를 냈다.
건국대 충주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의사 7명 전원이 최근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응급의학계는 또 오랜 기간 누적된 인력 부족과 저수가 등이 현 사태를 계기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며 응급의료의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의 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응급실은 사람을 뽑으려 해도 못 뽑는다"며 "인력 부족은 전부터 쌓여왔던 건데 이번에 완전히 무너지게 생겼다"고 전했다.

● 정부, 응급실 인건비 확대·형사소송 면책 주문

정부는 응급의료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현장 의료진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경증 환자는 지역 병의원을 이용하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최근 응급실 전문의 진찰료를 가산하고 권역·지역 응급의료센터의 전담 인력에 대한 인건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추석 연휴에 한시적으로 적용되는 응급진찰료 수가 가산을 기존 응급의료기관 408개에서 응급의료시설로 확대 적용해 경증 환자를 분산할 방침이다.

의료계에서는 정부 정책의 방향성에 공감하면서도 아직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경증 환자의 본인 부담을 대폭 상향하겠다는 정부 대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은 "정부의 책임 회피에 불과하다"며 "현장에서 경증·중증을 의료진이 판단하게 될 텐데 의료진과 환자 사이에 갈등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연합뉴스에 전했다.

의료계는 응급의료체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수가 인상과 형사소송 면책 등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은 긴급한 상황에 대처하는 진료과목 특성상 민형사 소송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러한 법적 부담을 완화해줘야만 자긍심을 갖고 최선의 진료를 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크다.

이 회장은 "응급치료에서 형사소송은 100% 면책이 돼야 하는 게 당연하다"며 "지금은 의료계와 정부 간 신뢰가 사라졌다.
정부가 사과하고 의대 증원을 백지화해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응급의학과 전공의, 尹 대통령에 편지…"현장 목소리 들어달라"

응급실 모습. JV_LJS/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응급실 모습. JV_LJS/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과 응급의학과 사직 전공의들은 2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민원실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편지와 수기집 '응급실, 우리들의 24시간'을 전달했다.

전공의들은 편지에서 "환자들조차 공공과 지방의 의료를 신뢰하지 못하고 서울로 발을 옮기고 있는 지금 이 시기에 환자와 의료진이 쌍방 신뢰할 수 있는 진료와 교육 환경,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조성되지 않는다면 정부가 지향하는 의료개혁의 방향대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의 의료개혁을 원점에서 재논의를 요청한 이유로 명확한 원칙과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근거 하에 정책의 방향을 결정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환자의 곁에서 지속적으로 의료진이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 그리고 '조건 없는 반대'를 하자는 것이 아닌 정부가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주기를 원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응급의료의 최전선에서 자긍심을 갖고 일해 나가던 젊은 의사들이 왜 가장 먼저 사직서를 제출했는지 살펴달라"며 "직접 환자를 보는 전문가의 의견과 과학적인 근거를 기반으로 의료개혁이 신중히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또 "얼마 전 서울역 전광판에 걸려있던 공익광고를 보았다"며 "국민을 위한 의료개혁을 반드시 완수하겠다는 내용이 몇번이나 흘러나오는 광고에서 정부의 의료개혁에 대한 의지가 굳건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날 편지와 함께 전달하는 책은 응급의학과 사직 전공의 54명이 기억하는 응급실에서 느낀 경험과 생각을 담은 수기집이다.
책에 대해 김인병 대한응급의학회 이사장은 "어려운 시기에 글을 통해 응급의료제공자로서의 전공의들과 응급실에 내원한 환자들이 서로서로를 이해하여 한 단계 발전하는 응급의료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의대 증원을 둘러싼 의정 갈등으로 응급의학과 사직 전공의가 속출하며 전국의 대학병원들이 응급의학과 의사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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