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은 보수세력의 궤멸까지 각오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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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은 보수세력의 궤멸까지 각오한 것인가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부산 금정구 범어사에서 대웅전 참배 후 정오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부산 범어사를 찾아 “돌을 던져도 맞고 가겠다”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런 아내를 버려야 합니까”처럼 처절한 순애보다. 전날 충돌한 윤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모두 ‘국민’을 이야기했다. 윤 대통령은 범어사에서 “나라와 국민을 위해 좌고우면하지 않고 일하겠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강화에서 “오직 국민만 보고, 민심을 따라서, 피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겠다”라고 말했다. 강한 각오를 했다는 뜻이다. 이대로 정면충돌할까.

한동훈 모욕주기는 성공

한국일보는 사설 제목을 尹 대통령, 국정 위기 속 ‘한동훈 모욕 주기’ 할 때인가라고 달았다. 제목은 달라도 모든 신문이 ‘모욕주기’를 거론했다. 대통령실이 전날 “면담 분위기는 좋았다”고 한 말이 모욕주기에 성공했다는 말이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대통령실은 ‘회담’ 대신 ‘면담’이란 표현을 고집했다. 이날 의전은 그렇게 고집한 이유를 드러냈다. 한 대표를 25분간 면담장 밖에 세워놓았다. 벌을 세운 것 같았다는 말이 나온다. 예상 밖으로 갑자기 길어질 긴급한 일정이 아니었다. 의도가 아니었더라도, 자리에 앉아 기다리게 할 수 있었다.

장소도 접견실이나 회의실이 아니었다. 취조실 같은 구조에 원탁 요청을 거부하고, 직사각형 테이블을 놓았다. 배석자가 대통령 뒤나 옆에 앉는 게 아니라, 대통령 앞에 한 대표와 나란히 앉아 취조받는 모습이었다. 기자의 취재를 허용하지 않고, 전속사진사가 찍은 사진을 배포했다. 윤 대통령이 고압적으로 보이는 사진을 골라 내보냈다. 면담에 앞서 산책에 한 대표 측이 김건희 여사 라인 핵심이라고 지목한 비서관을 동행했다.

면담 뒤 추경호 원내대표와의 만찬은 압권이다. 저녁 약속이 있다며, 어중간한 4시 30분을 면담 시간으로 잡았다. 저녁 약속을 의식하면 쫓기는 시간이다. 할 말만 하고 빨리 가라는 신호다. 그런데 불가피한 저녁 약속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추 원내대표는 여의도에서 의원들과 식사 도중 대통령실 연락을 받고 용산으로 갔다고 말했다. 한 대표를 저녁 시간에 부를 수 있는데 피했다는 뜻이다. 더구나 한 대표를 박대해 보낸 직후 당내 이인자인 추 원내대표를 불렀다는 건 “앞으론 한 대표는 건너뛰고 국회 일은 추 원내대표와 협의하겠다는 공개 시그널”이다.

“(특검법 찬성)해볼 테면 해보라”

한 대표가 김건희 여사 관련 대통령실 내 인적 쇄신, 김 여사 대외 활동 중단, 김 여사 의혹 규명 절차 협조 등 세 가지를 요구했지만, 윤 대통령은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 대표가 김 여사 라인 8명의 구체적 이름을 밝혔지만, 윤 대통령은 “누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문제를 전달하면 조처를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또 “집사람이 많이 지쳐 있고 의욕도 많이 잃었다. 이미 대외활동을 자제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국제신문은 “이게 대통령이 할 말인가”라며, “‘집사람 때문에 힘들어하는 국민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하는 게 순서”라고 질타했다. 또 “김 여사 의혹은 누가 조작한 것이 아니라 자업자득”이라며 “영부인이 명품가방 받는 동영상을 국민이 다 봤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이는 대통령의 말이 아니다. 아내 허물을 온몸으로 방어하는 지아비의 모습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여론이 더 악화하면 (김건희) 특검법을 막기 힘들어진다”는 한 대표 말에 “당 의원들이 야당과 같은 입장을 취한다면 나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다”라고 말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동아일보 등은 “김건희 특검법을 찬성할 테면 해보라는 협박”이라고 해석했다.

윤 대통령 설득에서 특검법으로 기우는 여론

한동훈 대표도 22일 친한계 의원 22명과 예정에 없던 저녁 모임을 했다. 만찬 뒤 조경태 의원은 “(참석자들이) 상황을 심각하게, 엄중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신문들은 일제히 윤 대통령이 잘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실제 그런(추가 이탈자가 더 나와 거부권이 무력화되는) 일이 벌어질 경우 그 사태의 파장은 특검이 실시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중앙일보는 “여당 중진들이라도 중지를 모아 대통령을 만나 해법을 권고”하며 실기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진보성향의 한겨레·경향신문은 물론 동아일보도 특검법을 통한 해결을 주장했다. 경향신문은 “윤 대통령과의 면담 결과, 김 여사 문제를 규명하려면 특검밖에 없음을 확인했을 것”이라며 한 대표에게 “야당의 특검법안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면, 대안을 내고 협상해 김건희·채상병 특검법을 처리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한겨레도 “남은 건 한 대표의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동아일보는 “여당이 ‘김 여사 특검법’을 막아설 정치적 명분조차 대통령이 주지 않는다면 여당은 민심에 부응하는 쪽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라고 주장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는 감동을 줬다. 그것으로 덮었다. 그러나 “돌을 맞겠다”는 윤 대통령의 말은 거부감만 일으킨다. 국민을 버리고, 아내를 보호하겠다는 말로 들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런 자세로는 김 여사를 보호할 수 없다. 특검뿐 아니다. 정권은 유한하다. 정권이 넘어간 뒤도 생각해야 한다. 돌은 윤 대통령 혼자 맞는 게 아니라 국민이 맞게 된다. 윤 대통령은 보수세력의 공멸까지 각오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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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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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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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여겨볼 만한

윤 대통령의 아세안 정상회의 참석에 동행한 김건희 여사. 연합뉴스

[국민일보 칼럼] 영부인의 영적 대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수렁에 빠뜨린 요소들이 있다. 가장 먼저 꼽는 게 정유라 씨의 "능력 없으면 너희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라는 말이다. SNS에서 언쟁을 벌이다 내뱉은 글이 전국의 학생은 물론 학부모의 마음도 뒤집어 놓았다. 또 한 가지는 박 전 대통령이 무속을 믿는다는 소문이다. ‘오방색’이느니 뭐니 하며 온갖 것이 그 증거로 내밀어졌다. 종교인의 반발만이 아니다. 그 사람의 말이 신뢰를 잃어버리는 계기가 된다.

영부인 김건희 여사도 그런 점이 걱정이다. 윤 대통령이 손바닥에 ‘王(왕)’자를 쓰고 TV토론에 나온 건 온 국민이 다 봤다. 김 여사는 또 유튜버와의 전화에서 “나는 영적인 사람이라 도사들과 얘기하는 걸 좋아한다” “웬만한 사람보다 관상을 잘 본다”라고 말한 것이 공개됐다. 어제는 김 여사의 공천개입 의혹을 폭로한 강혜경 씨가 국회에서 “명태균씨가 윤석열 대통령은 칼을 잘 휘두르는 장님 무사, 김건희 여사는 밖으로 나가면 안 되는 주술사, 장님의 어깨에 올라타서 주술을 부린다고 김 여사에게 얘기했다”라고 말했다. 점입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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