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대의 난'이 두려운 정부, '막던져'식 대책에다 유홍림만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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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대의 난'이 두려운 정부, '막던져'식 대책에다 유홍림만 흔든다

서울대학교병원. 뉴스1

정부가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하며 9개월째 수업을 거부해 온 의대생의 휴학을 조건부 승인하기로 했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6일 "내년 1학기 수업 복귀를 전제로 휴학을 허용하되 그렇지 않으면 유급, 제적 처분 하겠다"고 는 발표했다. 지난 6월 전공의들의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을 철회했던 정부가 의대생들의 휴학 금지 방침도 철회한 셈이다. 교육 공백을 피할 수 없는 상황임을 정부도 인정했다고 볼 수 있다.

전국의 의대 정원은 올해 3058명에서 내년 4567명으로 늘었다. 올해 의대 1학년이 대부분 휴학하거나 유급한다면 내년에는 7600여명이 한꺼번에 수업을 들어야 한다. 강의실과 교수진, 실습 여건이 부족하고 열악해질 게 불보듯 뻔하다. 정부는 이런 우려를 해소할 대책을 세우겠다고 했지만 의대가 만족할 내용을 현재까지 제시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수업을 거부한 학생들을 억지로 다음 학년으로 진급시키는 것도 말이 안된다. 서울대 의대가 최근 의대생 휴학을 전격 승인한 것은 이런 고민에 따른 것이다. 다른 37개 의대에서도 서울의대를 따라갈 기미가 보이자 정부도 무조건 휴학 금지에서 조건부 휴학 승인으로 돌아선 것이다. 정부는 현재 6년인 의대 교육과정을 5년으로 단축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그러나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라 높은 도덕적 의식과 교양을 갖춘 ‘지성인’ 양성이 목표인 의대 교육과정을 현장의 의견도 수렴하지 않고 무작정 단축하는 것은 되레 의대교육의 질을 떨어뜨리는 부적절한 발상이란 지적이 나온다. 7일 조간 사설들이 일제히 교육부 발표를 비판한 이유다.

사설들을 보면

동아일보는 "이틀 만에 “휴학 가능” 번복… ‘내년 복학 명시’ 요구는 적절한가" 에서 "(조건부 휴학 허용은) 의대생에게 편법 휴학을 강요하고, 휴학 승인의 책임을 대학에 미뤘을 뿐 의대생이 호응할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다"라며"옹색한 대책"이라 맹공했다. 6년인 의대 교육과정을 5년으로 줄이겠다는 발상에 대해서도 "놀랍다. 의사의 질은 따지지 않고 양만 맞추면 된다는 면피성 발상이다. 내년에도 의대생이 복귀하지 않는다면 4년제로 줄일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이어 "의정 갈등 사태가 8개월이 되도록 정책 오류를 바로잡지 않고 꼼수만 거듭하니 이제는 해법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뒤죽박죽이 됐다"고 꼬집었다. 상황의 본질을 깔끔하게 정리한 문장이다.

한겨레는 "조건부 휴학 승인, 일방통행 대처론 의-정 갈등 못 푼다" 에서 역시 정부를 맹공했다. "갈등의 근본 문제인 2025학년도 의대 증원 백지화 논란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정부에 협조할 리 만무한데 정부는 임기응변식 대책만 쏟아낸다"는 거다. "의대 교육과정을 5년으로 단축한다는 방침도 의-정 갈등만 더 키울 판국이다. 결국 정부와 의료계가 마주 앉을 대화 창구가 조속히 열려야 한다고 했다.

서울신문도 "‘7500명 수업’ 대비하되 의대 ‘교육 질’ 포기는 안 돼" 에서 "냉소적 반응으로 일관한 의대생들이 이번 대책으로 유의미한 변화를 보여줄지는 여전히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특히 의대 5년 단축 방안에 대해 "의대 교육의 질 악화를 되레 부채질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의사의 자질이 떨어지더라도 눈감고 넘어가자는 식의 방책은 의료개혁취지를 흐리는 패착일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의대증원에 호의적이었던 신문이기에 정부로선 더욱 뼈아플 대목이다.

중앙일보는 "조건부 휴학 승인, 의대 교육 정상화로 이어지길" 에서 정부를 가장 '관대하게' 다뤘다. "(휴학 허용은) 파행 장기화로 의대 교육 공백을 피할 수 없는 상황임을 정부도 인정한 것"이라며 "정부가 의대생에게 사실상 최후통첩을 했다는 해석도 나온다"고 평가했다. 사설은 "(휴학 전격 승인은) 다른 의대에서도 서울대를 따라갈 기미가 보이자 무작정 강경책을 고수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짚었다. 의대 과정 5년 단축 방안에 대해서도 "의료계 의견과 외국 사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중하게 논의할 문제"라고 했다. 어투는 온건했지만 정부 대응의 문제점을 비판한 본질은 다른 신문들과 다를 게 없다.

정부의 급변침 이유는

정부는 사흘전(4일)까지만 해도 의대생들의 휴학을 엄금했다. 이들이 11월초에라도 복귀하면 내년 2월까지 16주 동안 풀로 수업해 30주를 채울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그래놓고 이틀 만에 ‘조건부 휴학 승인’으로 입장을 바꾸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서울의대의 난'이 전국의 다른 39개 의대로 번져나갈 우려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들 의대 학생,학부모들이 "서울대는 휴학이 되는데 우린 왜 안해주나"며 압박하고 나섰기에 대학들이 버티기 힘들게될게 자명했던 것이다.

의대 학사 일정을 5년으로 줄인다는 발상 역시 황당한데, 정부는 구체적인 디테일도 발표하지 않았다. 치대가 6년, 약대, 수의대도 6년인데 의대만 5년으로 마친다는 것이다. 미국 등 선진국 의대도 다 6년이다. 이러면 미국 의사 면허를 딸수도 학위 호환도 안되는 갈라파고스 의대가 될 게 불문가지다. 의대 교수들은 "실소도 안나온다"는 반응이다. 대량 휴학 사태를 막을 수 없는데다 의사가 1년 간 나오지 않는 공백을 감내할 수 없으니 다급히 이런 꼼수를 내놓았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올해 휴학이 승인됐는데 내년 수업에 복귀하지 않는다면 학칙에 따라 유급 또는 제적 처리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교육부, 감사위원 13명 보내 서울대 조리 돌림…번지수가 틀렸다

'난'의 진원지인 서울의대는 정작 조용하다. 교육부는 연건(서울의대 캠퍼스) 아닌 관악(서울대 본부)에 감사위원을 무려 13명을 보내 열흘간 집중 '특수감사'를 벌이고 있다. 유홍림 서울대 총장이 지난달 30일 김정은 서울의대 학장의 휴학 승인 조치를 묵인,방조한 것 아니냐가 감사 촛점이다. 거두절미하고 '헛삽질' 이다. 서울대는 단과대 교수들이 투표로 학장을 뽑는다. 즉 단과대는 독립국이나 다름없으니 총장이 학장 결정에 관여할 권한이 없다. 학장도 자기 맘대로 결정하는 게 아니다. 내과,외과,피부과 등 주임 교수 회의에서 "9월30일"을 마지노선으로 정했으니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 교육부도 이를 모를리 없다. 그러나 "휴학 허용은 안된다. 반역자는 응징하라"는 용산의 뜻이 확고하니 '큰집'인 서울대 본부와 총장 조리돌림에 나선 것이다. 언제든지 서울의대를 따라 '난'을 이어갈 가능성이 있는 전국의 나머지 39개 의대 총장들에게 "그러면 혼난다"고 경고하는 시위 효과도 노렸다.문제는 교육부가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다는 거다.

돌이켜보면 상황의 고비 고비마다 서울 의대가 총대를 멨다. 전공의 이탈과 의대생 수업 거부, 집단 휴학과 휴학 승인 모두가 서울 의대 홀로 가장 먼저 '사고'를 쳤다. 의대 소식통은 "의학교육과 의료정책을 대표하는 위치와 책임감에서 나온 선제적 행동"이라고 했다. 특히 서울의대가 정부 방침을 정면으로 어기고 휴학을 허용한 건 의대만의 '특수성' 때문이었다고 한다. 의대는 12월말까지 2학기 수업을 하고 신학기도 3월 아닌 2월에 개강한다. 커리큘럼이 빡빡한데다 병원 실습 등 고려할 것들이 워낙 많아서다. 겨울방학이 1월 한달 밖에 안된다는 얘기다. 그래서 전국 의대 학장 회의(KMC)는 "9월30일 이후엔 보충수업으로도 공백을 메울 수 없으니 대책을 세워달라"는 입장을 교육부에 전달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묵묵부답이었다. 김정은 서울의대 학장이 9월30일 휴학 허용 '쿠데타'를 단행하고 잠적한 이유다.

교육부의 서울대 감사는 오는 11일까지 열흘간 계속된다. 유홍림 총장이 타깃인데, 힘없는 총장을 닥달해봤자 뭐가 나올지 궁금하다. 유 총장이 대통령을 만나 상황을 설명하고, 사태를 풀 방안을 제시할 기회를 주는 게 보여주기식 헛삽질 감사보다 적절하지 않을까.

거듭 강조하지만 현 정부의 의대 증원 취지는 분명히 옳다. 해야 한다. 그러나 예상된 반발과 문제점들에 대해 너무나 안이하게 대응하며 꼼수만 거듭하니 의료대란이 현실화하고 여론도 등을 돌린 것 아닌가. 이제라도 용산의 맹성과 분발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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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설
"이틀 만에 '휴학 가능' 번복…'내년 복학 명시' 요구는 적절한가"


■ 눈여겨볼 만한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진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뉴스1

[한국경제 칼럼] 의사 수 문제, 페이퍼 갖고 논쟁해야

정부의 헛발질에도 불구하고 의대증원은 반드시 이뤄져야할 국가적 과제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 글이다. 의사 연봉이 6.4% 증가한 동안 일반 근로자의 그것은 3.5%에 그쳤다. 의사 수요가 공급보다 많다는 방증이다. 의사 진료 건수는 OECD 국가중 한국이 1위이나 의사 수는 35위다. 환자는 열악한 진료에, 의사는 중노동에 각각 시달린다. 의대 증원의 필요성을 간명하게 보여준다."의사단체들은 과학을 배운 전문가 집단이라기보다 무모하고 고압적인 이익결사체처럼 보인다. 정부가 718쪽의 연구보고서에 근거해 제시한 정책에 반대한다면, 적어도 반대의 합리적 논거를 담은 짧은 보고서라도 냈어야 한다. 아무리 뒤져봐도 그런 진지한 문서는 눈에 띄지 않는다" 정부의 잘못과 별개로, 의사들은 이 지적을 성찰해야할 것이다. 정부의 실패가 의대증원의 대의를 꺾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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