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빼주는 주사가 확 바꿔놓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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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빼주는 주사가 확 바꿔놓은 사회

 

photo 게티이미지


비만은 건강의 적인 동시에 경제의 적이다.
지난 9월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비만인이 늘어난 탓에 세계 경제가 막대한 피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글로벌 국내총생산(GDP)이 2035년까지 4조달러(약 5325조원) 감소할 것이라고 봤는데 그게
비만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당장
비만은 의료시스템에서 비용을 더 많이 지출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골드만삭스가 보기에도
비만이 지우는 부담은 상당하다.
순수하게
비만으로만 미국 의료시스템이 연간 1700억달러(약 230조8940억원)의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고 보는데 이 규모는 2022년 독일의 GDP와 비슷한 수준이다.
골드만삭스가 내세운 해법은 '
비만약'이다.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비만약이 이런 현상을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이 있으며 투자자들에게도 큰 기회가 될 거라고 봤다.
잘나가는 두 기업의 공통점,
비만해결사
지난해 금리가 고공행진을 하고 경기 침체가 진행되는 동안 눈에 띌 정도로 주가가 오른 기업이 있다.
이 두 기업에 투자했다면 꽤 재미를 봤을 거다.
하나는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Novo Nordisk)다.
또 다른 곳은 미국의 제약사 일라이릴리(ELI LILLY)다.

노보노디스크는 1년 전 403크로네(약 7만7200원)였던 주가가 현재(10월 19일 기준) 713코르네(약 13만6500원)가 됐다.
덴마크 경제를 떠받치는 기업이자 유럽 기업 중 시가총액 1~2위를 다투고 있다.
1년 전 335달러였던 일라이릴리 주가는 현재 608달러까지 오른 상황이다.
두 기업 모두 다른 기업들이 악전고투(惡戰苦鬪)할 때 두 배가량 주가를 끌어올렸고 시가총액도
노보노디스크가 약 3500억달러(약 469조원), 일라이릴리는 5740억달러(약 778조원)에 달한다.
삼성전자 시가총액(약 421조원)과 비교해보면 그 규모를 알 수 있다.

노보노디스크와 일라이릴리의 공통점은 단 하나다.
이들은 당뇨치료제 특화기업이지만 지금은 공급이 딸릴 정도로 인기가 높은
비만치료제를 갖고 있는 '
비만해결사'다.
우리 인체 내에는 GLP-1이라는 호르몬이 있다.
음식을 먹으면 혈당이 올라가는데 이 때문에 음식 섭취를 그만하라는 신호를 주기 위해 소장에서 GLP-1이 분비된다.
이 호르몬이 분비되면 음식의 소화 속도가 늦춰지고 포만감도 오래 느낄 수 있다.
자연스레 뇌는 식욕을 떨어뜨린다.
다만 인체 내에서 GLP-1의 작용시간은 매우 짧다.
이들 기업은 GLP-1의 기능을 수행하지만 더 긴 시간 동안 인체 내에서 활성화되는 GLP-1 유사체를 만들어 당뇨치료제에 활용했다.
그런데 이 당뇨치료제가 결과적으로 체중 감량에 효과가 있다는 게 밝혀지면서
비만치료제라는 또 다른 시장이 열렸다.
지금 각광을 받는
비만치료제는 세 종류다.
일단
노보노디스크의 당뇨치료제인 '오젬픽'을 오프라벨(허가외 처방) 처방할 수 있다.
오젬픽에서
비만 치료 효과를 알게 된
노보노디스크는 아예 '
위고비'라는
비만치료제도 따로 출시했다.
일라이릴리의 '
마운자로'도 당뇨치료제지만 오프라벨 처방을 통해
비만치료제 역할을 할 수 있다.

비만치료제는 제약산업에서 막다른 길에 몰려 있었다.
치료제로 등장한 것들이 효과가 없기도 했고 오히려 부작용이 커서 퇴출됐기 때문이다.
1996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던 펜플루라민은 대표적인 식욕감퇴제였지만 심장질환 발생률이 증가하면서 사용이 금지됐다.
또 다른
비만치료제인 시부트라민도 1997년 FDA의 승인을 받았지만 심혈관계 이상 등의 부작용 때문에 판매가 중단됐다.
오젬픽이 당뇨 치료를 위해 미국 FDA의 승인을 받은 게 2017년의 일이다.
1년 뒤 새로 임상을 시작한
노보노디스크는 2021년 미국 FDA로부터 1주에 한 번 주사할 수 있는
비만치료에
위고비를 승인 받았다.

위고비의 경우 12개월 투약 시 약 16%의 감량 효과를 보였다.
당뇨치료제인
마운자로는 이보다 늦은 2022년 5월 FDA 승인을 받았다.
12개월 투약 시 약 23%의 체중 감량 효과를 보였다.
이들 치료약의 임상3상에서 드러난 부작용은 과거에 비하면 경미하다.
최근 일각에서는 이런
비만치료제가 자살 충동의 부작용이 있다고 경고한다.
식욕을 억제한다는 것은 뇌에 인위적인 개입을 하는 것이어서 관련 부작용에 관한 문제 제기가 나오고 있지만 시장에 배포된 지 얼마 안 된 약이라 더 많은 모니터링이 필요한 상태다.
오히려
위고비는 심혈관계 질환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추가되기도 했다.
이렇게 '살 빠지는 당뇨약'은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비만치료제가 끼칠 영향 연구 중인 월가

비만치료제의 등장이 뭐가 그리 대단한 일인가 싶을 수도 있다.
그런데 꽤 다양한 현상들이 사회 전방위에서 발생한다.
일단 관련 산업으로 꼬리를 물고 전해지는 파급효과가 예사롭지 않다.
대학병원에 가면 볼 수 있는 수술용 로봇 '다빈치'를 만드는 기업 '인튜이티브 서지컬'은
비만 치료 수술의 감소 가능성을 투자자들에게 이미 알려놓은 상태고 주가까지 하락했다.
모건스탠리는
비만과 관련한 질병인 수면무호흡증, 인공관절 기업들이 영향을 크게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월가는 최근 오젬픽,
위고비,
마운자로와 같은
비만치료제가 식음료 소비의 미래에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는지 의문을 갖는 중이다.
펩시나 코카콜라, 미국 식품회사인 캠밸수프 등의 주가는 지난 6개월 평균 15%가량 떨어졌다.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비만치료제의 활황 탓이라고 본다.
존 퍼너 월마트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0월 5일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아직 완전한 결론은 아니다라고 전제하면서도
비만약을 복용하는 사람들이 소비를 약간 줄이는 경향이 확인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식품업계는 이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펩시의 휴 존스턴 최고재무책임자(CFO)는 현재 우리의 숫자에서는 그 어떤 영향도 감지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두
비만치료제를 두고 이런저런 의견을 밝혀야 할 정도로 식음료 산업은 제약사에 꽤 예민해진 상태다.
카지노산업의 영향을 우려하는 보고서까지 나왔을 정도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비만과 도박 사이의 상관관계를 연구했는데 카지노산업 수익의 10~30% 정도는 상습적으로 카지노를 방문하는 중독성 방문자의 베팅으로 생긴다.
그런데 이 집단에
비만 비율이 매우 큰 사람들이 모였다.
이 때문에 BOA는 보고서에서 이렇게 결론 내린다.
GLP-1 
비만치료제가 광범위하게 사용될 경우 카지노산업 수익은 최대 4% 줄어들 수 있다.

비만 비즈니스는 이제 막 열렸을 뿐이지만,
비만치료제는 이미 신드롬을 일으켰다.
날씬해지고 싶은 욕망에 셀럽이 결합하자 치료제는 대중성까지 갖추게 됐다.
지난해 7월 그리스에서 휴가를 보내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한층 살 오른 상체 노출 사진이 찍힌 탓에 온라인에서 순식간에 밈이 돼버렸다.
그런데 8월 다시 공개석상에 나타난 그의 모습은 살이 쫙 빠진 채 믿기 어려울 정도로 건강해 보였다.
그는 13㎏을 뺐다고 알렸는데 비결을 묻는 트위터 사용자에게 두 가지를 답했다.
'단식', 그리고 '
위고비'다.
머스크의 '내돈내산' 후기에 더해 방송인 킴 카다시안도
위고비 때문에 날씬해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마운자로파도 있었는데 NBA 레전드인 찰스 바클리가
마운자로를 먹고 운동을 하면서 6개월 만에 28㎏을 뺐다고 간증했다.
유명인의 증언이 뒤따르자 이 약은 미친 듯이 팔렸다.
먼저 세상에 등장한
위고비는 주 1회 피하지방에 주사하면 되는데 월 4회 처방 가격이 1350달러(약 183만원)로 결코 싸지 않다.
하지만
위고비를 구하려는 여성들이 투잡을 뛰거나 지출을 줄이는 일들이 소셜미디어상에서 널리 퍼지고 있었다.

위고비를 제외한 오젬픽이나
마운자로는 일단 당뇨병 환자에게 필요하지만 살을 빼고 싶은 일반인 쪽으로도 약이 전파되자 공급이 수요를 쫓아가지 못했다.

위고비는 미국 내 수요도 벅차 유럽 출시 일정을 늦추기도 했다.

마운자로 역시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노보노디스크는 올해 1~9월 사이 매출액이 전년도 같은 기간과 비교했을 때 33%, 영업이익은 37% 늘었다.
일라이릴리도
마운자로의 인기 덕분에 지난 2분기 매출 83억1000만달러를 기록해 전년 동기보다 28%나 증가했다.
미국에는 현재 성인의 약 42%, 1억명 정도의
비만 환자가 있다.
게다가 약물 치료 침투율은 3%가 안 된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잠재시장을 눈앞에 두고 얻은 실적이다.
이미 경구약 개발 상당히 진척이처럼
비만 비즈니스의 잠재력은 엄청나다.

비만치료를 원하는 사람은 전 세계에 퍼져 있다.
세계 인구 10명 중 1명꼴인 약 7억500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골드만삭스는 2030년까지 미국 성인 중 약 1500만명이
비만치료제를 사용할 것으로 본다.
그럴 경우 시장 규모는 약 1000억달러(약 135조원)로 추산된다.
권해순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2030년경 예상됐던 시장 규모는 연초 450억달러였는데 1000억달러로 상향 조정되는 분위기라며 최근의
비만치료제 열풍이 단기간에 끝날 것 같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며 1000억달러를 상회하는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으로 더 커질 시장이다 보니 국내에서도 GLP-1 
비만치료제 개발 경쟁이 치열해졌다.
가장 발 빠른 곳이 한미약품으로 한국인 맞춤형 GLP-1 치료제 임상 3상 신청에 나섰다.
2025년 출시를 계획하고 있다.
 LG화학이나 유한양행 등 국내 제약사들도 도전에 나섰지만 아직 임상 1상 정도의 단계가 대부분이다.
한 글로벌 전략컨설팅펌 임원은 임상 3상을 끝내도 출시까지는 5년 이상 걸린다.
1상이라면 치료제까지 도달할 확률이 10% 미만이다.
게다가 이미
노보노디스크나 일라이릴리는 경구용 먹는 약 개발이 상당히 진척됐다.
화이자도 먹는 약을 내놓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오젬픽은 국내에서 유통되고 있지만 당뇨 환자만 처방을 받을 수 있다.

위고비와
마운자로 모두 식약처의 품목허가를 받았지만 국내 출시 일정은 아직 정해진 바 없다.
글로벌 공급이 원활치 않은 탓이 크다.
설혹 이들 약이 들어왔을 경우도 문제다.
과거
노보노디스크의
비만치료제
삭센다가 국내에서 처방됐을 때의 일이다.

삭센다는 주 1회 주사하는
위고비와 달리 매일 주사해야 한다.
임상에서 보인 체중감소율은 9.2%였다.
상대적으로 불편하고 효력도 떨어지는
삭센다지만 국내에 들어오자 반년도 안 돼 품절사태가 일어났고 온라인에서는 웃돈까지 붙으며 불법거래가 번졌다.

위고비와
마운자로는 1주일에 1회 주사라는 편의성에,
삭센다보다 월등한 체중감소율을 증명한 약이다.
들어왔을 때의 광풍은
삭센다보다 더 할 공산이 크다.
공급의 어려움으로 도입 시점이 불투명하지만 2025년께 국내로 들어올 거라는 전망이 많다.
지금 나라 밖에서 불고 있는 신드롬은 그때면 국내로 옮겨 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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