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잘못 인정할 줄 알아야 '진짜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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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겸손한
사람들을 좋아하며 자신이 틀렸음을 재빨리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을 더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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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아무나 붙잡고 묻지도 않은 조언을 하거나 꼰대질을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연장자로서 경험과 지혜가 많아 보여야 한다는 모종의 압박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
사람들 앞에서 어른으로서의 권위를
보여야 한다며 모르는 것도 아는 척 하고 틀려도 절대 굽히거나 사과하지 않는 모습에도 일면 자신의 사회적 이미지 또는 체면을 생각하는 마음이 숨어 있다.
꼰대질은 나이를
헛되게 먹은 것이 아니며 그간 많은 내공을 쌓았다는 과시와 자기 확인이 이루어지는 통로인 것이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나르시시즘이 강하고 자기 중심적이며 모든 공을 자기에게로 돌리는
사람보다 자기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존중할 줄 알고 타인에게도 공을 돌릴 줄 아는 겸손한
사람을 훨씬 더 좋아한다.

흔히 가장 싫은 유형의
사람이 어떤
사람들인지 물어보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이기적이고, 겉과 속이 다르고,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을 꼽는다.
대화를
나눌 때에도 끝없이 자기 자랑만 앵무새처럼 떠드는
사람과의 대화는 지루하고 시간낭비처럼 느껴지는 반면 상대방의 삶에도 관심을 가지고 경청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높은 만족감을 준다.

그래도 뭔가 지식과 관련된 부분에 있어서는 여전히 많이 알고 있는 것처럼 보여야 좋을 것 같다.
짧은 지식이 탄로나는 상황이 되면 그 나이 되도록 그런 것도 모르냐는 핀잔을 받을 것만 같아 식은땀이 난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주립대의 심리학자 알렉스 휴인(Alex Huynh) 등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들은 지적 영역에 있어서도 자신이 항상 옳을 수는 없으며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시인할 줄 아는
사람들을 더 좋아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아는 게 얼마나 많은지 떠벌리는
사람보다 자신은 모르는 것이 많으며 아직 배울 것이 많다고 시인하는
사람을 더 인간적으로 따뜻하며 유능해 보인다고 평가했다.

살면서 어떤 어른들에게 감명을 받았는지 떠올려 보면 객관적 지식을 끊임없이 열거하거나 자신의 사회적 체면, 권위를
내세우려는
사람보다는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스스럼 없이 시인하고 자신보다 어린
사람으로부터도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무작정 가르치려고 들기보다 타인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배울 점을 찾는
사람들에게서 ‘진짜 어른’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또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좋았던 시절을 돌아보며 과거를
미화하거나 아직 과거의 기준에 갇힌 채 현재를
바라보는 오류를
종종 저지르곤 한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가 과거를
통해서 배우는 것이 있듯, 과거를
살았던
사람 또한 현재를
살고 있는 보다 젊은
사람들을 통해 배워야 할 것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경험을 통한 배움은 위아래로 높게 쌓인다기보다 옆으로 넓게 쌓이는 종류의 것이어서 아무리 오래 살았다고 해도 고만고만한 환경에서 고만고만한 경험만 하고 살았다면 얼마든지 좁은 식견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일례로 나이가 꽤 있지만 부유한
사람들 틈에서만 살아서 구직난이나 생계 곤란을 겪는
사람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이야기한
사람을 본 적이 있다.
평생 코끼리 코만 만지고 살았다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코끼리에게는 사실 다리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그런 작은 식견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코끼리의 다리와 꼬리를
만져본
사람들과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수 밖에 없다.

나이를
불문하고 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세계의 양은 매우 한정적이다.
나의 지식 또한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나와 다른
사람들을 통해 배우는 것만이 조금이나마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이·팔 전쟁 해법은...'
집단적 감정'은 어떻게 움직일까

이스라엘 공습에 어린이 안고 대피하는 가자지구 주민들. 연합뉴스 제공

전쟁은 항상 가혹하다.
이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분쟁에서도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휴전을 촉구하는 목소리들이 커져가는 가운데 끝장(?)을 봐야 한다는 주장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집단적 분노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적을 ‘인간 이하’로 규정하고 무자비한 보복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적지 않다.
원래는 평화와 공존을 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을 테지만 한 번 분쟁이 촉발되고 나면 분노가 집단을 관통하는 주된 정서가 되는 현상은 흔히 관찰된다.
하지만 여론이란 생각보다 쉽게 바뀌기도 해서 언제든 분위기가 바뀌면 화해가 급물살을 타기도 한다.
헤브루대의 심리학자 로니 포랫에 의하면
집단적 감정이란 결국 집단의 목적이 변함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감정이란 어떤 사건이 발생하고 난 다음에 찾아오는 수동적인 반응인 것 같지만 실은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어떤 목적과 동기를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크게 달라지곤 한다.
예컨대 큰 피해를
보았을 때 신변의 안전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여기면 두려움을 느끼고 도망을 치게 되지만 피해를
가져온 상대와 싸워서 이기는 것이 목적이라면 분노를
느끼게 된다.
이렇게
사람들마다 감정에 대한 ‘기호’가 달라서 안전을 확보하는 것보다 싸워서 이기는 것을 더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분노를
더 자주 더 크게 느낀다는 발견들이 있었다.
포랫에 의하면
집단적 감정도 마찬가지다.
집단의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지는 경향을 보인다.
예를
들어 분쟁이 일어난 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싸워서 이기는 것이 우리 집단에게 더 큰 이득이 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많은
사람들이 분노를
느끼게 되지만 평화적인 해결이 장기적으로는 더 중요하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분노는 수그러들고 상대방을 용서해보려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분쟁에서도 생각보다 상황에 따라 서로에 대한 감정의 온도차가 크게 변화하는 현상이 관찰되었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일어난 사건에 대해 어떻게 느낄지 결정할 때 전체적인 ‘분위기’를
살펴보고 지금 사회가 분노와 맹목적인 애국심, 사이다 같은 시원함을 원하는지, 아니면 냉철함과 장기적인 해법을 원하는지에 따라 생각보다 쉽게 감정적 노선을 바꾼다는 것이다.
남북관계나 한일 관계도 한창 긴장이 고조되었다가 또 갑자기 분위기가 좋아지기도 하는 것처럼 여론이란 한 번 물살을 타면 모두가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성질을 띄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여론을 형성하는 역할을 하는 언론이나 리더들의 역할이 한 사회의 운명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 보인다.
싸움과 보복을 부추기는 목소리들이 많은지, 아니면 인간다움을 잃지 않을 것을 촉구하는 목소리들이 많은지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물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분쟁은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만큼 향방을 예측하기 힘들지만 가급적 평화적인 해결을 통해 무고한 희생이 늘어나지 않기를
바래본다.

부정적 생각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감정에 먹히지 않되 그것의 메시지를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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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대해 생각할 줄 아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부정적 정서를
잘 이겨낸다는 발견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슬프고 우울한 기분이 들 때 밑도 끝도 없이 우울하다고 하기보다 "오늘따라 사소한 실수에도 크게 속이 상하고 실패자가 된 느낌이 드는데 왜 그럴까. 아마 며칠 동안 스트레스가 심해서 그런 거 같다"처럼 자신의 마음 상태를
분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우울감을 잘 이겨내는 경향을 보인다.
많은 경우 우리의 감정이나 생각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기보다 다양한 상황적 요소들에 의해 들쑥날쑥하기 마련이다.
보통이라면 전혀 짜증나지 않았을 만한 일이 몸과 마음이 지쳐있을 때면 버럭 화가 날 만한 일이 되는 것이 단적인 사례다.
우리의 판단력이라는 것도 이렇게 평소보다 감정이 격해질만한 상황에 놓였을 때는 그다지 신뢰할 만하지 못하다.
배가 심하게 고플 때 장을 보면 평소보다 훨씬 많이 사게 되고 화가 났을 때는 세상
사람들이 나의 적인 것처럼 보인다.
화장실 가기 전과 갔다 온 후가 완전히 다르다는 말처럼, 감정적으로 머리가 뜨거울 만한(hotstate) 상황에서는 우리의 감정도 이성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잔뜩 화가 났거나 한 밤 중에 갑자기 존재론적 고독감이 몰려왔을 때 중요한 결정을 하지 말라는 조언들을 한다.
홧김에 사표를
내는 것이나 새벽에 갑자기 전 애인에게 문자를
보내는 행위는 대체로 다음 날 큰 후회를
불러오곤 하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우울함이 몰려오는 새벽이면 인터넷으로 충동구매를
하고 그 다음 날이면 정신이 들면서 부랴부랴 구매를
취소하는 일을 겪곤 함을 고백한다.
“마음의 소리”를
따르라고들 하지만 그래도 될 때가 있는 반면 그러면 안 되는 때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통 마음의 소리를
따르면 안 될 때일수록 마음의 소리가 유난히 시끄럽기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마음의 소리를
따라야 할 것 같은 확신이 든다는 게 문제다.
이런 점에서 더더욱 내 마음에 대해 따지고 분석할 줄 아는 능력이 중요하다.
나의 경우 만성 통증이 올라오면 우울해지는 경향이 있다.
바로 어제도 통증을 감지하고 한창 우울감에 빠져 있었다.
어느새 스스로에게 이렇게 사는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을 던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럴 때면 모든 일을 그만 두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훌쩍 사라져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문득 신체적 통증과 이에 대한 감정 반응(짜증, 슬픔 등)은 별개임을 떠올리고 이런 감정들이 나타난 경위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내 마음이 계속해서 나에게 ‘정말 싫다.
우울하다.
짜증난다.
’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물론 지금의 삶이 별로 의미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을 사실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우선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감정이고 생각임을 떠올려 보았다.
‘나는 지금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나는 지금 내 마음이 나에게 이렇게 살기 싫다고 이야기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 하고 목소리를
내어 스스로에게 이야기해 보았다.
별 것 아닌 행동이지만 목소리를
내어 이야기해 보니 나를
계속해서 괴롭히던 것의 정체는 나의 생각임이 분명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만들어 낸 생각과 현실을 조금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기저에는 통증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아플 거라는 다소 비합리적인 신념이 있다는 점도 발견할 수 있었다.
꾸준히 치료를
받는 것이 분명 도움이 되고 전반적인 건강 관리를
잘 하면 좋아진다는 것도 경험을 통해 분명히 알고 있다.
하지만 우울감에 깊이 빠져 있을 때면 마치 마음에 검은 장막이 드리워지듯 긍정적이었던 경험들이 묻혀 하나도 떠오르지 않게 된다.
결국 우울할 때면 가장 안 좋았던 경험과 가장 안 좋은 상상만 선택해서 떠올리는 것이 큰 문제임을 알 수 있었다.
떠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는 것은 별로 좋지 않지만 감정에 대해 따져보는 시도는 중요한 것 같다.
부정적 감정의 존재 이유는 어디까지나 우리가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잠재적인 위험 요소에 주의를
주게끔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어디까지나 감정에 먹히지 않되 그것의 메시지를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지나치게 주의를
빼앗겨 현실적인 문제 해결과는 동떨어진 길을 가게 될 수 있음을 기억하자.

 

'뒷담화'의 사회적 순기능

가십의 대표적인 역할은 ‘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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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상사에 대한 욕을 하거나 자신에게 상처를

사람에 대해 그
사람을 알고 있는 제 3자에게 이야기 하는 행위를
흔히 ‘가십(gossip)’ 또는 뒷담화라고 한다.
가십과 관련된 흥미로운 발견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 어떤 사회에서든 가십은
사람들이 가장 즐기는 사회적 스포츠 중 하나였다는 사실이다.
학자들은 이러한 가십이 사실 매우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한다고 본다.
우선 한 가지는 평판을 수정하고 처벌하는 효과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력을 휘두를
수 있어서 잘 보여야 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간도 쓸개도 빼줄 것 처럼 잘 하다가 별루 중요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함부로 대하는 등 대상에 따라 언행을 달리하는 모습을 보인다.
직장은 멀쩡하게 잘 다니고 있으면서 학교에서 교사를
상대로 갑질하는 학부모나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예의바르면서 유독 나에게는 무례하게 구는
사람 등이 대표적인 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보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저
사람의 실체’를
알려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고 주변
사람들에게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저
사람이 그동안 괜찮은
사람인 양 평가받아왔던 것이 사실은 터무니 없이 높게 책정된 잘못된 평판 또는 가격임을 알리고 그
사람의 평판은 수정을 거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는 불공정한 방법(거짓말, 겉과 속이 다름)을 통해 불공정한 방식으로 높은 평판을 얻어낸
사람에 대한 합당한 처벌을 이끌어 내고 나름의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의지가 나타난다.
옳고 그름을 떠나 양육비를
주지 않은 아빠들의 신상을 공개하거나 다른 여러 범죄의 가해자들의 신상을 퍼트리는 행위 또한 이러한 시도의 일환이다.
또한 가십은 어떤
사람의 실체나 다면성을 알려
사람들에게 주의를
줌으로써 소중한
사람들이 무방비 상태로 같은 피해를
입지 않게끔 2차 가해를
방지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가십의 또 다른 대표적인 역할은 ‘결속’이다.
보통 좋지 않은 일에 대한 이야기이고 가십의 대상이 가십의 존재를
알면 안되므로 많이들 ‘믿을 만한’
사람에 한해 가십을 시도한다.
때로 아무에게나 모두의 험담을 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보통 무리 안에서 빠르게 신뢰를
잃기 마련이다.
특히 민감한 사안에 대한 폭로는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에게서도 이
사람이 나를
믿고 의지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한다.
가십이 일어나는 경우 이미 상당히 친밀한 관계일 가능성이 높지만 서로 은밀하고 민감한 정보를
교류하면서 점점 더 친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에 대해 나누면서 친해지기도 하지만 싫어하는
사람에 대한 욕을 하면서 친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틱톡이나 유튜브 등을 통해 타인들의 대화를
촬영하고 인터넷에 공유하는 일이 늘어나면서 맥락 없이 대화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을 사악한 캐릭터로 보이게 만들어 마녀사냥 하는 일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사실 가십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양한 이유로 많이 참여하는 대표적인 사회적 활동이다.
정도는 달라도 다들 적어도 한 번쯤 자신에게 큰 상처를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제 3자의 의견이나 위로를
구한 적이 있을 것이다.
또한 아무리 오래된 친구 관계라도 타인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는 우리는 자신이 쓴 색안경이나 오해로 인해 타인의 행동을 실제보다 더 부정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따라서 정의를
실현하겠다고 어떤 이에 대한 험담을 잔뜩 했지만 실상을 알고보면 내가 틀린 경우 또한 적지 않다.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이미 가십을 어느 정도 걸러 듣는 편이기도 하다.
따라서 가십 자체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물론 누군가가 나로 인해 상처를
받고 그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일도 있겠지만, 이 또한 어느 정도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틀렸다면 경솔한 판단이었음을 빨리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 관계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일 것이다.
또한 나에 대한 험담을 한
사람에 대해서도 너무 서운해 하지 말고 나의 잘못이 존재하는 경우 수정조치하고 오해라면 이를
풀어나가려 노력하는 것도 좋겠다.


Foster,E.K. (2004).Researchongossip:Taxonomy,methods,andfuturedirections.Reviewofgeneralpsychology, 8(2), 78-99.Wu,J.,Balliet,D., &VanLange,P.A. (2016).Reputation,gossip,andhumancooperation.SocialandPersonalityPsychologyCompass, 10(6), 350-364.

※필자소개박진영.《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1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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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람들은 겸손한
    사람들을 좋아하며 자신이 틀렸음을 재빨리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을 더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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