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는 ‘이집트판 주사파’의 팔레스타인 ‘프락치’였다

 

노석조의 외설(外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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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석조 기자

당신은 지금 미국 최신 베스트셀러 등 미번역 외서를 가장 빨리 읽고 우리말로 해제해 드리는 세계 유일의 뉴스레터 ‘노석조의 외설(外說)’을 읽고 계십니다.

하마스는 ‘이집트판 주사파’의 팔레스타인 ‘프락치’였다

이집트 반미·반체제 이슬람 교조주의 단체인 무슬림형제단의 창시자인 하산 알 반나(왼쪽)과 형제단의 팔레스타인 지부로 하마스를 창립한 아흐메드 야신(오른쪽).

본 글은 ‘하마스’나 ‘주체사상파(主體思想派·주사파)’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습니다.
그저 그렇다는 사실 관계 나열을 통해 전 세계에 충격파를 주고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인 ‘이스라엘·하마스 사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부분을 설명합니다.

‘외설’은 11월 셋째 주 정기물로 앨리슨 파게터(Alison Pargeter)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 선임연구원이 쓴 ‘무슬림형제단 : 전통의 부담(The Muslim Brotherhood: The Burden of Tradition)’을 소개합니다.
국내 많은 전문가가 하마스에 대해 설명을 하는데 ‘팥소 없는 찐빵’처럼 ‘무슬림형제단(이하 형제단)’을 빠뜨리고 있어서입니다.
형제단은 하마스란 단체를 이해하는 데 필수인데 말입니다.
형제단을 알면 하마스의 실체가 더 뚜렷하게 보이고 이번 사태의 맥을 읽는데도 도움이 됩니다.

영국인 아랍 전문가인 앨리슨 파게터(Alison Pargeter)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 선임연구원이 쓴 ‘무슬림형제단 : 전통의 부담(The Muslim Brotherhood: The Burden of Tradition)’. /사키 북스

하마스는 이집트 반미·반체제 단체의 팔레스타인 지부

많은 분이 이번에 이스라엘을 기습한 하마스를 팔레스타인 단체라고만 알고 있습니다.
국내외 언론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나 무장정파 등의 표현을 씁니다.
반(半)만 맞습니다.
하마스는 그 뿌리를 찾아올라가면 이집트의 이슬람교조주의 단체인 형제단의 팔레스타인 지부 및 분파(分派)로서 1987년 탄생했기 때문입니다.
형제단은 이집트의 반미(反美)·반서방·반체제 운동 단체로, 하산 알 반나라는 이집트 정치·종교 지도자의 사상을 추앙하는데요.

하마스는 바로 이 하산 알 반나(1906~1949)와 그가 창립해 요르단, 시리아, 카타르 등 아랍 전역으로 확산한 형제단에 감화를 받은 팔레스타인의 이슬람학자 아흐메드 야신(1936~2004)이 창립한 정치적·종교적 단체입니다.
하마스는 형제단의 직·간접적인 지시를 받고 움직였습니다.
형제단의 팔레스타인에 심어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의 공공의 적인 이스라엘을 무너뜨리고 ‘이슬람 국가’를 세우기 위한 ‘프락치(대리인·끄나풀)’였던 셈입니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독자적인 단체로 거듭나지만요.

2012년 이집트 대선에 무슬림형제단 후보로 나선 무함마드 무르시가 당선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로이터 뉴시스

이슬람 국가 건국이 목표인 무슬림형제단

그러면 파게터의 책 등을 바탕으로 형제단이 어떤 단체인지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형제단은 1928년 하산 알 반나에 의해 설립됐습니다.
하산 알 반나는 이슬람 종교지도자였던 아버지 밑에서 컸는데요, 어른이 되면서 이집트가 영국과 미국 등 서구 문화에 의해 타락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슬람의 가치를 회복해 정치·사회적 혁명을 일으키고자 형제단을 세웠습니다.

형제단은 이집트 전역으로 퍼져 정치, 사회, 종교, 교육 운동을 펼쳤는데요, 요르단 등 다른 아랍국가로도 세를 불려나갔습니다.
시리아 같은 세속적 군부 정권이나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왕정국가에는 큰 위협이 됐습니다.
이슬람의 가치로 무슬림들이 행복하게 사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는 형제단의 정치·종교적 슬로건은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려는 대부분의 아랍 정권들의 통치 기조와 상반됐기 때문입니다.
북한 김일성 주체사상을 지도 이념으로 삼은 한국의 반체제 운동 세력인 ‘주사파(主思派)’와 일면 비슷한 단체였습니다.

형제단은 이집트에서 현실 정치에 뛰어들기도 했는데요. 제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이집트 카이로국립대로 2007년 연수를 갔을 때 당시 무바라크 정권을 비판하는 반정부 시위 대부분이 바로 이 형제단 주도로 이뤄졌습니다.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나갔는데요, 이에 2010~2011년 이른바 ‘아랍의 봄(아랍 정변)’이란 게 터져 무바라크 정권이 무너지고 2012년 대선이 치러졌을 때 형제단이 정권을 잡았습니다.
형제단 출신인 무르시가 대통령에 당선됐던 것입니다.

1954년 무하마드 나기브와 가말 압델 나세르.  

대단히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집트는 1952년 엘리크 군 장교들이 이른바 ‘혁명’을 일으켜 왕정을 무너뜨리고 이후 무함마드 나깁, 가말 압델 나세르, 안와르 사다트에 이어 호스니 무바라크까지 모두 군인이 대통령에 오른 군의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정교분리, 세속주의를 표방했습니다.
이집트는 1973년 4차 중동 전쟁 이후에는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미국의 중동 거점 국가 같은 역할도 했고요.

그런데 갑자기 반미·반서방에 이슬람국가를 목표로 하는 형제단이 민주화 물결의 수혜자로 정권을 덜컥 잡았던 것입니다.
주사파나 남로당 같은 세력이 정치적 혼란을 틈타 갑자기 대한민국의 정권을 잡은 것과 비슷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에 이집트에서는 세속주의자, 기득권층, 인구의 15%를 차지하는 기독교인 등이 형제단 정권에 반대해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압델 파타 엘시시를 앞세워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쿠데타를 일으켜 무르시를 쫓아냈습니다.
다시 지도자를 뽑았는데요, 그가 바로 현재 이집트 대통령인 엘시시입니다.
이집트에서는 이 사건을 쿠데타라고 하지 않고 ‘혁명’이라 평가하고 있고요. 저는 당시 조선일보 국제부 기자로 카이로에 특파돼 무르시가 축출되고 엘시시가 집권하던 상황을 현장 취재했었습니다.

지난 11일(현지시각) 가자지구와 인접한 이스라엘 국경에서 이스라엘군 탱크가 움직이고 있다.
/AP 연합뉴스

형제단의 몰락으로 하마스 더 궁지에 몰려

형제단은 2013년 무르시 축출, 엘시시 집권을 기점으로 몰락합니다.
엘시시 정권은 정치적 라이벌이자 위협 세력인 형제단이 재기하지 못하도록 대대적인 소탕전에 들어갔습니다.
형제단은 재정적 기반이 무너지고, 주요 지도자들은 투옥됐습니다.
궁지에 몰린 것인데요, 이에 따라 형제단의 ‘자식’인 하마스도 덩달아 어려운 처지가 됩니다.

하마스가 지난달 7일 이스라엘을 상대적으로 벼랑 끝 전술처럼 모든 전력을 총동원해 로켓·미사일 수천발을 쏟아부으며 전쟁을 벌인 배경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하마스의 정신적 지주인 형제단의 쇠락도 한몫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적어지고, 하마스의 존재감도 사라지는 가운데, 이웃한 이집트의 형제단까지 지리멸렬해지는데, 이런 와중에 이스라엘은 아랍에미리트(UAE)와 수교를 맺고, 여기에 이슬람 종주국이라는 사우디아라비아와까지 수교를 추진하며 승승장구를 하자 판을 뒤집어 버리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지난달 19일(현지시각) 이스라엘 텔아비브를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회담하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더 깊은 분쟁의 늪에 빠져드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저는 이번 전쟁을 아주 우려스럽게 보고 있습니다.
서아시아(중동) 정세가 이번 사태 이전의 안정 상태로 돌아가기 한동안 어려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지난 15년간 ‘스타트업 네이션(창업국가)’을 표방하며 세계적으로 경제·산업 강국으로서 구축한 긍정적 이미지를 이번 사태로 상당 부분 잃어버렸습니다.
공든 탑의 한 축이 허물어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반인륜적 범죄 공격을 당했는데도 대응 공격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희생되면서 하마스와 비슷한 수준의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럼에도 계속 공세를 이어나갈 가능성이 큽니다.
네타냐후 총리는 개인 비리와 사법 파동 등 자신의 정치적 위기가 있는 가운데 하마스에 허를 찔렸기 때문에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강경한 태세를 고집할 듯합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그간 이스라엘이 아랍세계와 관계 정상화를 하려 한 그간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커집니다.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의 보통 사람들은 하마스와 같이 테러를 벌이는 것은 원치 않는데, 도매급으로 하마스와 동급 대우를 받으며 이미지가 나빠지고 있습니다.
국제적 지지도 잃고 있고요. 이렇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 평행선을 달리면 피해를 보는 건 반복되는 무력 충돌로 인한 양측의 무고한 민간인들입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더 싶은 분쟁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으로선 악재이고 외교 정책의 부담입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대만 해협 위기,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등을 챙기기도 쉽지 않은데 말입니다.

이스라엘·하마스 사태가 확전되지는 않는지, 또다른 사태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지진 않을지 우려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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